등록 : 2013.10.07 14:47 수정 : 2013.10.07 14:47

고바야시 료칸(투수)●출생지: 일본 나가사키 ●생년월일: 1979년 4월28일 ●신장: 185cm ●경력: 지바 롯데 마린스(1998~2002), 주니치 드래곤스(2003), 숭디 엘리펀츠(2008), 고양 원더스(2011~)
낚였다.

안영춘 <나·들> 편집장이 던진 낙차 큰 커브에 보기 좋게 당하고 말았다. 그 시각 담배의 유혹을 참았어야 했다. 한겨레신문사 9층 옥상에서 우연히 그를 만나지 않았다면 나의 추석 연휴는 훨씬 윤택했을 것이다.

“너, 야구 좋아하지?”

“당근이쥐~.”(프로야구 표 주려고?)

“너, 영어 좀 하냐?”

“초큼?”(왜~? 야구 아이템으로 해외 취재 갈 일 있나?)

“그럼, 고양 원더스에 있는 외국인 선수들 인터뷰하고 기사 좀 써라.”

그때라도 돌아섰어야 했다. 우리나라 첫 번째 독립구단, ‘야신’(야구의 신)이란 별명을 가진 김성근 감독이 지휘봉을 잡고 있다는 정도가 아는 것의 전부였다. 그런데 그만 “원더스에도 외국인 선수들이 있어?”라고 관심을 보이고 말았다. 연휴 전날인 9월17일, 남들이 고향 갈 맘에 바쁠 시각 나는 경기도 고양으로 가는 자유로를 타고 있었다.

고양 원더스 홈구장은 일산 킨텍스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아담한 규모의 관중석까지 갖춘 그라운드에서 선수들이 한창 구슬땀을 흘리고 있었다. ‘오늘 내 먹잇감도 저기 있으려나?’ 하고 어슬렁거리는데 2층에서 누가 불렀다. 사무실에 들어서니 고바야시 료칸(34)과 디오니 소리아노(31)가 기다리고 있었다. 원더스에는 이들 외에 오시리스 마토스·루이스 곤살레스 등 외국인 선수가 2명 더 있다.

두 선수 모두 190cm 가까이 되는 거구들. 유니폼 아래로 운동으로 다져진 탄탄한 근육이 느껴졌다. 가볍게 몸을 풀고 온 모양인지 이마엔 땀방울이 송글송글 맺혀 있었다. 사회인 야구선수 말고는 운동을 업으로 하는 이들과 처음 마주 앉은 나만큼이나, 그들도 긴장하고 있는 것 같았다.

인터뷰의 기본은 자료 조사고 그 속에서 질문이 돋아나기 마련인데, 그들에 대한 정보는 원더스 홈페이지에 소개된 짧은 경력과 지난 시즌 성적 외에 아무것도 없었다. 그만큼 그들의 야구와 삶이, ‘1등만 기억하는’ 언론의 주목을 받을 일이 드물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들도, 국적만 다를 뿐, 야구에 대한 열정으로 프로 진입을 위한 마지막 열차에 올라탔다는 점에서 다른 원더스 선수들과 다를 바 없었다.

4개국 돌아서 온 고바야시 “야구는 가족”

1998년 일본 지바 롯데 마린스에서 선수 생활을 시작한 고바야시에게 한국은 다섯 번째 나라다. 일본에서 야구선수로 성공했다면, 이후 징검다리처럼 찍고 왔던 미국·대만·멕시코에서 투수로서의 성적이 돋보였다면, 낯선 땅까지 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고바야시에게, 성경책만큼 두꺼운 <야구란 무엇인가>라는 책 제목과 동일한 질문부터 던졌다. 야구가 도대체 무엇이길래 30대 중반의 나이에 이국땅을 떠돌고 있느냐는 물음이었다.

“내게 야구는 가족 혹은 사랑과 같다. 늘 곁에 있고 같이 울고 웃는…. 마운드에 설 수만 있다면 나한테 나라는 중요하지 않다.” 맞다. 지구는 야구하기에 좋은 별이다.

가족 같다는, 없으면 죽고 못 산다는 야구를 하고 있지만, 정작 한국에서 그는 혼자다. 가족을 부양할 만큼 벌이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고향이 멀지 않은 곳이라 짬 나는 대로 오갈 것 같은데 지난 2년 동안 최근에 그의 부모님이 한 번 다녀간 게 전부다. 그만큼 모든

에너지를 한곳에 쏟아붓고 있다는 얘기다.

프로 진입을 위해 날을 벼르고 있는 고바야시에게 실력 외에 또 다른 장벽이 있다. 나이다. 30대 중반에 접어든 그는, 야구선수로서 전성기를 누릴 생물학적 나이는 넘어섰다고 보는 게 객관적이다. 그는 어떻게 생각할까.

“2006년 처음 일본을 떠나 미국 독립리그로 갈 때도 주변에선 ‘그 나이에 어디 가서 뭘 하겠느냐’고 말렸다. 현재 내 나이가 일본에서는 뛰기 힘든 나이일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은 ‘인터내셔널’이다. 그 기준으로 보면 결코 많지 않다. 30대 중반에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는 선수도 많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그의 얘기를 듣자 서른일곱의 나이로 미국 메이저리그에 성공적으로 데뷔한 임창용(시카고 컵스)이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임창용이 해태 타이거즈에 막 입단했을 때 그를 ‘뱀직구 임창용’으로 단련시킨 이가 김성근 감독이다. 고된 훈련이 싫어 ‘땡땡이’를 치자 “짐 싸서 나가라”고 쫓아냈고, 다시 돌아오자 “1년만 나를 믿고 같이 해보자”고 품어준 일화는 유명하다. 고바야시는 김 감독을 너무 늦게 만났다.

고바야시와 임창용을 같은 선상에 놓고 비교하기엔 무리가 있다. 임창용에겐 화려한 젊은 날이 있었기에 ‘용의 부활’이라는 찬사가 따라붙는다. 고바야시는, 미국이나 일본·한국과는 수준 차가 있다는 대만 리그에서 2008년 10승(평균자책점 2.66)을 거둬 골든 글러브를 받은 게 최고의 성적이다.

어쩌면 고바야시에겐 ‘고바야시의 길’이 따로 있을지도 모른다. 밀릴 대로 밀리고 쫓길 대로 쫓긴 절박함과 간절함이 그의 야구 인생을 새로 쓰게 하는 것 같다. 고바야시는 올해 퓨처스리그 교류경기 27경기에 마무리 투수로 나서 4승4패 9세이브를 기록했다. 46.1이닝을 던졌다. 지난해(28경기 81이닝, 4승1패 7세이브)에 비해 승률과 이닝수는 줄었지만, 평균자책점이 1점대(1.86)로 최고의 피칭을 선보였다. 물론 경기 수와 리그의 수준 차이가 있어 직접 비교할 수는 없지만, 1점대 방어율은 현재 기아 타이거즈 감독을 맡고 있는 선동열(1.20)이 유일하다.

더 많은 경기에, 더 실력 있는 선수들을 상대해봐야 진면목을 알 수 있다는 점에 고바야시는 동의했다. “원더스에서 가장 아쉬운 건 경기가 많지 않다는 점이다. 옆에 있는 소리아노나 다른 선수들도 100게임 이상 뛸 수 있고 그런 날이 빨리 오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고양 원더스는 프로야구 2군과 경찰청, 상무 등이 참여하는 퓨처스리그에서 뛰고 있지만 아직 정식 멤버는 아니어서 ‘교류경기’라는 이름으로 한 해 48게임을 소화하는 게 전부다. 대학팀 등 다른 야구팀과의 친선경기까지 다 합쳐도 1년에 80게임 안팎이니 야구가 한창 ‘고픈’ 젊은 선수들에겐 턱없이 모자란 실정이다. 그래서 고바야시를 포함해 원더스에서 뛰고 있는 모든 선수의 꿈은, 원더스가 정식 한국야구위원회(KBO)의 멤버가 되는 것이고 기량을 갈고닦아 ‘몸값’을 제대로 받는 프로의 세계로 진입하는 것이다.

고바야시가 꿈을 이루게 된다면, 원더스 출신의 첫 외국인 선수인 그는 국내 유일의 일본 선수가 된다. 프로야구 초창기만 해도 일본 국적을 가진 교포 선수가 많았고 1998년 외국인선수 등록제도가 생긴 이후 모두 6명의 일본 선수가 뛰었으나, SK 와이번스와 삼성 라이온즈에 몸담았던 가도쿠라 겐을 끝으로 현재는 단 한 명도 없다.

야구 강국에서 온 소리아노 “빨리 직업 갖고 싶다”

‘야구의 나라’ 도미니카공화국에서 지구 반 바퀴를 돌아 한국에 온 소리아노에겐, 프로팀에서 투수로 뛰고 있는 같은 나라 출신 선수가 4명이나 된다는 점이 위안이자 자극이다. 기아 타이거즈의 헨리 소사, 한화 이글스의 바티스타, LG 트윈스의 리즈, 그리고 지난 7월 삼성 라이온즈에 입단한 카리다드가 도미니카공화국 출신으로 비슷한 연배다. 9개 구단 18명의 외국인 투수 중 4명이나 된다. 나라로 치면 미국 다음으로 많다. 마토스도 같은 나라 출신이다.

디오니 소리아노(투수)●출생지: 도미니카공화국 ●생년월일: 1982년 12월30일 ●신장: 189cm ●경력: 광둥 레오파즈(2006), 히로시마 카프(2009~2011), 퉁이 라이온스(2012), 고양 원더스(2012~)
소리아노는 “소사와는 같이 야구를 해 그에 대해 잘 알고 지금도 ‘굿 커뮤니케이션’을 유지하고 있다”며 “우리는 어릴 때부터 눈뜨면 나가서 야구를 하고 해가 지면 들어오는 날이 많았다. 내게 야구는 특별한 게 아니라 늘 있는 것이었고 지금은 나의 모든 것이다”라고 말했다. 야구는 도미니카공화국에서 국기(國技) 수준이며, 실력 있는 젊은이들의 신분 상승 ‘사다리’로 쓰인다.

소리아노의 유년기와 청소년기의 경험은 그들과 비슷했겠지만 경로는 달랐다. 소사 등이 일찌감치 두각을 나타내면서 ‘아메리칸드림’을 꿈꾸며 미국으로 건너가 메이저와 마이너리그에서 뛰는 동안, 소리아노는 아시아를 향했다. 아직 프로리그라고 보기엔 민망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중국 리그의 광둥 레오파즈가 그가 처음 만난 팀이었다. 이후 일본 히로시마 카프와 대만 퉁이 라이온스에서 1∼2년씩 뛰었다. 아시아를 전전한 그에게 한국은 네 번째 나라다. 소리아노는 도미니카공화국에서 스포츠용품 사업을 하는 일본인 친구의 소개로 원더스를 알게 됐고 지난해 입단해 팀에서 가장 많은 이닝을 소화했다. 19경기에 나서 5승2패(평균자책점 2.98)의 성적으로, 동료 마토스(7승3패 평균자책점 1.67)에는 뒤지지만 다양한 변화구가 강점으로 꼽히는 원더스의 기둥이다.

되도록 빨리 떠나야 할 원더스지만, 그는 팀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다. “짬이 나서 서울에 놀러가면 한국 사람들이 무슨 일을 하느냐고 물어본다. 야구선수이고 원더스에 있다고 하면 반응이 똑같다. ‘원더스? 김성근? 우와~ 사인해줘요’ 한다.”

1시간가량 이어진 인터뷰 동안 강한 스페인어 억양으로 주로 단답형으로 말하면서, 특히 지난 일에 대해서는 말을 아끼던 소리아노는 갑자기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한국 야구팬들이, 2009년 기아 타이거즈 한국시리즈 우승의 주역 가운데 한 명인 로페스를 인상 깊게 기억한다고 전하자 자신에게도 빨리 그런 기회가 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빨리 ‘직업’을 갖고 싶다”는 표현을 썼다. 소리아노에겐 온통 맵기만 한 한국 음식 중에서도 김치찌개는 즐겨 먹을 정도로 한국 생활에 잘 적응하고 있다고 자부하지만, 불쑥불쑥 찾아오는 외로움은 어쩌지 못하는 듯했다. “사실 혼자 있는 시간이 지겹다. 외로움을 잘 못 견디는 스타일이다. 가족과 같이 외식하고 놀고 즐기던 시절이 그립다. KBO 선수가 되면 가족을 데려올 생각이다. 다녀가기엔 너무 먼 거리 아닌가.”

투수로서 자신의 강점이 무엇인지 물었다. “몇년 전이었으면 패스트볼이라고 답했을 거다. 지금은 스마트 피칭이라고 말하고 싶다. ‘지금은 빠른 직구, 아니면 낙차 큰 커브, 아니면 슬라이더…’ 상황에 맞게 늘 생각하고 던지려 노력한다. 그런데 야구는 하면 할수록 점점 어려운 거 같다.”

같은 물음에 고바야시는 “강한 정신력”이라고 답했다. ‘내게 다음 게임은 없어. 이게 마지막 마운드야. 집중해. 즐겨. 넌 할 수 있어’를 주문처럼 외우면서 던지면 투구 내용이 만족스럽다고 했다. 그런 변화가 가까이서 지켜본 이들에겐 더 잘 보이나보다. 지난 9월7일 일본에서 건너와 아들의 경기를 지켜본 고바야시 기이치(61)는 “공 던지는 모습을 오랜만에 봤는데 오히려 전보다 좋아진 것 같다. 한국에서 잘 적응하는 것 같아 기쁘다”고 말하면서 연신 셔터를 눌러댔다.

도전하는 영혼들 TV서 볼 수 있길

배우를 해도 빠지지 않을 만큼 훤칠하게 잘생긴 고바야시 선수는 팬이 많다. 김성근 감독만큼은 아니지만, 경기가 끝나면 그의 사인을 받으려는 줄이 제법 길게 선다. 가고 싶은 프로팀이 있는지 물었다.

“투수한테는 팀워크가 정말 중요해요. 타석에는 혼자 서잖아요. 물론 주자가 있으면 사정이 달라지기도 하지만, 투수는 야수들과 힘을 합치지 않으면 힘들어요. 삼성과 롯데가 팀워크가 좋아 보이고 안정된 것 같아요.” 일본에서 ‘돌직구’ 오승환에게 눈독을 들이고 있으니 그에게 기회가 오면 좋겠다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소리아노는 맘이 급해 보였다. “전 어떤 팀이라도 좋아요. 공만 던지게 해준다면 정말 멋지게 해낼 자신이 있다고요.”

이날 두 선수의 공을 가까이서 볼 수는 없었다. 투수들의 어깨는 ‘소모품’이어서 아무 때나 던지지 않는다고 했다. 그래서 피칭 연습하는 날도 따로 정해져 있다. 인터뷰를 마친 뒤 “나도 야구하는 남자다. 주말에 그라운드에 서면 심장의 위치를 생생하게 느낀다”고 하자, 고바야시는 “슨배!” 하면서 장난스럽게 고개를 숙였다.

서울로 돌아오는 길, 하늘은 높고 눈부시게 맑았지만 마음은 서늘했다. 절망하지 않고 끊임없이 도전하는 아름다운 영혼들을 만난 직후인데도 말이다. 프로야구 외국인 선수 규정을 보면 한 팀당 2명만 보유할 수 있다. 그래서 각 구단은 단 두 장의 카드를 최고에게 투자하려 한다. 그만큼 문이 좁다는 얘기다. 어쩌면 고양 원더스에서 뛰고 있는 한국 선수들보다 기회가 적을 수도 있다. 고바야시와 소리아노가 마운드에 선 모습을 텔레비전으로 보는 날이 올까. 왔으면 좋겠다. 두 젊은이의 선한 웃음이, 형형한 눈빛이 오랫동안 잊히지 않을 것 같다.

글 김보협 <한겨레> 에디터부문 편집2팀 기자 bhkim@hani.co.kr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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