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3.10.07 14:25 수정 : 2013.10.09 20:03

‘지구촌 아이들에게 책가방을 선물하자’ 캠페인에 대해 얘기를 꺼내면 첫 반응은 약속이나 한 듯 똑같다. “맞아요, 맞아요. 우리 집에 그런 가방 있는데, 쓰지도 않으면서 버리자니 아까워서요. 근데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셨어요?”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게 됐는지에 대한 답을 하면서 ‘반갑다 친구야’가 펼치고 있는 이 캠페인 이야기를 풀어본다.

지난해 이맘때쯤, 우여곡절을 겪으며 4살배기 아들이 잇따라 어린이집을 옮기게 됐다. 새 어린이집에 갈 때마다 새 가방이 하나씩 따라왔다. 어린이집 입학금 항목에 가방값이 포함돼 있어 내키지는 않지만 어린이집을 옮기면 가방도 새로 받았다. 몇 번 들고 다니지 않아 새것이나 다름없는 가방이 3개나 방 한쪽을 차지했다. 멀쩡한 것을 버리자니 아깝고, 그렇다고 겉면에 ‘○○어린이집’이라고 쓰인 가방은 도무지 쓸 데가 없었다.

방구석 헌가방 활용, 묘수를 찾다

‘저 가방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 가방을 숙제처럼 껴안고 있던 어느 날, 베트남 아이들이 비닐봉투에 교과서를 담아 등교하던 모습이 떠올랐다. ‘어린이집 가방을 책가방으로!’ 그 아이들이 어린이집 가방을 메고 다니는 모습을 상상하며 실현 가능성 여부를 타진했다.

베트남에서 가장 활발하게 어린이 구호 활동을 펼치고 있는 비정부기구(NGO)를 찾아 연락했다. 전자우편으로 아이가 쓰던 가방 사진을 보여주며, 한국에서 이런 가방을 모아 보내면 베트남 아이들이 책가방으로 쓸 수 있을지 물었다. 그쪽 담당자한테서 충분히 활용 가치가 있다는 답이 돌아왔다.

우선, 이 일을 함께할 ‘동지’를 모았다. 중학교 동창인 절친 3명이 대략의 계획을 듣고 단박에 함께 해보겠다고 뜻을 모았다. 돌배기와 4살, 7살 아이를 키우는 친구들은 두 번도 고민하지 않고 그 자리에서 “되든 안 되든 충분히 시도해볼 만한 일”이라며 팔을 걷어붙였다.

한국에선 도무지 쓸 데가 없어 버려지는 ‘○○어린이집’ ‘△△유치원’ ‘□□학원’ 가방이 베트남·필리핀 등에서는 태어나 한 번도 자기 가방을 가져보지 못한 아이들에게 값진 선물이 된다. ‘반갑다 친구야’는 2012년부터 지구촌 아이들에게 가방 보내기 캠페인을 전개하고 있다.
이혜련, 정지혜, 김현진, 필자까지 넷(중학교 때부터 4명은 스스로 ‘까소’라는 이름을 지어 부르며 뭉쳐 다녔다)이서 각자 지인들에게 가방을 모으기 시작했다. 가방 보내기 캠페인을 전해들은 지인들은 흔쾌히 몇 개씩 가방을 내놓았다. “쓰지도 버리지도 못하고 있었는데 잘됐다”며 오히려 “고맙다”는 인사까지 덤으로 기부했다. 아파트 이웃과 친구의 친구까지 며칠 만에 가방 30여 개가 모였다. 가방들을 들고 NGO를 찾았고, 반응은 기대 이상이었다. “이 정도 품질의 가방이면, 태어나 한 번도 자기 가방을 가져보지 못한 아이들에게 좋은 선물이 될 거예요.”

베트남에서 ‘거리의 아이들’을 돌보는 이 단체와 가방 보내기 캠페인을 함께할 구체적인 방법을 두 달 넘게 적극적으로 찾았다. 쉽지 않았다. 막상 구체적인 절차를 알아보니, 새 제품이 아닌 쓰던 물품을 해외로 보내는 일은 걸림돌이 많았다. 선박이나 항공 편으로 물품을 보내야 하는데 물류비 마련이 현실적으로 어려웠고, 자칫 잘못하면 배보다 배꼽이 더 커질 우려가 컸다. 관세 문제도 넘기 힘든 벽이었다. 기부 물품이라는 증명을 받아 무관세로 물건을 통관시키는 절차가 무척 까다로웠다. 현지 NGO 쪽에서 백방으로 방법을 찾았지만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결과적으로 현지 NGO를 통해 그곳 아이들에게 가방을 전달하려는 계획은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다른 방법을 찾아야 했다. 가방 보낼 방법을 찾는 동안에도 알음알음으로 가방은 계속 모이고 있었다. 가방을 먼저 모은 뒤 보낼 방법을 찾을지, 보낼 방법을 찾은 뒤 가방을 모아야 할지 고민을 거듭하다, 일단 가방부터 모으다보면 길이 있을 거라는 근거 없는 낙관에 기대 본격적으로 가방 모으기에 들어갔다.

친구 4명 ‘대구결의’… <한겨레>도 캠페인 동참

<한겨레> 육아 사이트 ‘베이비트리’(www.ibabytree.co.kr)가 가방 보내기 캠페인 취지에 동의하고 흔쾌히 앞장섰다. ‘가방이 500개쯤 모여서 아이들 500명에게 책가방을 선물하면 좋겠다’는 희망을 품고 시작했다. 지난해 10월 베이비트리에 캠페인 광고가 나간 뒤 우리 집으로 가방이 하나둘 배달되기 시작했다.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택배비까지 부담하면서 선뜻 가방을 보내는 이들이 오히려 ‘고맙다’는 손편지까지 써서 응원을 아끼지 않았다. 새 학용품을 장만해 가방에 넣어 보내거나, 아이들이 입던 깨끗한 옷가지를 넣어 보내는 기부자도 있었다.

처음에는 하루 한두 상자씩 배달되던 택배가 점점 늘더니 캠페인 막바지에는 하루 수십 상자씩 무더기로 배달됐다. 한두 개씩 가방을 보내는 개인 기부자도 있었지만, 온라인 육아모임, 아파트 주민자치회, 학교, 학원 등 단체로 가방을 모아 참여하는 이들도 늘었다. 우리 집 방 한 칸을 비워 가방을 보관했다. 가방이 쌓이기 시작하더니 어느새 거대한 산이 되어 쓰러질 듯 위태롭게 비대해질 즈음 친구네 집 안방 욕실을 비워 공간을 확보했다. 얼마 가지 않아 목욕탕도 가방 창고로 변했다. 이쯤 되니, 가방을 모으는 데는 자신이 생겼다. 문제는 수만km 떨어진 곳에 사는 아이들에게 이 가방을 전하는 현실적인 길을 찾는 일이었다.

궁리를 거듭하다, 해외 자원봉사자들을 떠올렸다. 방학 때 해외로 자원봉사를 하러 가는 대학생들이 가방을 들고 가서 마을 어린이들에게 나눠줄 수 있으면 물류비 문제가 해결되고, 관세도 걱정할 필요 없다. 무엇보다 가방을 꼭 필요로 하는 어린이들에게 직접 나눠줄 수 있다.

국내에서 대학생을 대규모로 파견하는 해외 봉사단체를 찾았고, 한국대학사회봉사협의회와 연락이 닿았다. 이 단체를 통해 지난 1~3월 가방 2천여 개가 지구촌 아이들에게 전해졌다. 자원봉사자들이 베트남·라오스·캄보디아·중국·방글라데시·몽골·우즈베키스탄·모로코·동티모르·필리핀 등의 어린이에게 직접 가방을 메줬다. “가방을 받고 기뻐하는 아이들 모습을 보며 ‘펄쩍펄쩍 뛰며 기뻐한다’는 표현을 이럴 때 쓰는구나 생각했어요. 어떤 아이는 전날 받은 가방을 어깨에 멘 채 잠을 자고, 다음날 그대로 학교에 왔다고 하더라고요.” 봉사단원들이 전해준 이야기다.

비록 한국 아이들이 쓰던 가방이지만, 지구촌 어딘가의 아이들에게 좋은 선물이 됐다니 이 캠페인을 좀더 널리 알리고 더 많은 아이들에게 가방을 전해야겠다는 확신이 섰다. 아시아평화인권연대를 통해 캄보디아 어린이들에게 가방을 전달했고, 친정을 방문하는 결혼이주여성들도 손에 가방을 들고 가 고향 마을 아이들에게 나눠주었다.

2012년 첫 캠페인 결과, 지구촌 아이들에게 3천여 개의 가방을 전했다. 3천여 명의 아이들에게 책가방을 선물한 셈이다.

“왜 캠페인을 10월에 하나요? 새 학기 시작 무렵에 하면 교체하는 가방이 많을 테니 더 많은 가방을 모을 수 있을 거예요.” 캠페인에 함께해준 기부자뿐만 아니라 미처 참여하지 못한 이들의 제안이 잇따랐다.

한겨레 베이비트리와 까소는 지난 2월 새 학기를 앞두고 2차 캠페인을 열었다. 이번에는 가방과 함께 장난감을 모았다. <한겨레> 새해 특집 기사에서 시리아 난민촌에 사는 5살배기 아이의 인터뷰를 보고 아이디어를 얻었다. “형들과 장난감 자동차 하나를 가지고 같이 노는데, 온전한 나만의 장난감을 갖고 싶다”는 말에 장난감도 가방과 함께 전하기로 했다.

까소는 본격적인 가방 보내기 활동을 위한 단체를 꾸렸다. 회원은 까소와 그 가족들이고, 단체 이름은 ‘반갑다 친구야’(반친), 영문 이름은 ‘하이 프렌즈’(Hi, Friends!)로 불렀다. 1차 캠페인 때 가방을 비닐봉투에 넣어 포장해서 해외로 보냈는데, 이때 가방에 스티커를 붙였다. 그 스티커에 ‘반갑다 친구야’라는 문구가 있었다. 가방을 받아 정리할 작은 공간도 마련했다.

전국서 모인 책가방… 10여 개국 어린이에게

베이비트리 누리집과 <한겨레> 지면에 2차 캠페인 광고가 나간 뒤, 택배는 그야말로 물밀듯이 쏟아졌다. 캠페인 소식은 순식간에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퍼져나갔고, 문의 전화와 문자메시지가 줄을 이었다. 하루 100개 가까운 택배가 들어오기도 했으니, 반친 회원들은 매일 택배 상자를 정리하느라 이전에 경험하지 못한 육체노동으로 행복한 비명을 질러야 했다.

어떤 날은 특정 택배회사 트럭 한 대에 반친으로 배달된 가방 상자만 한가득 실어오기도 했다. 학교와 회사, 유치원, 아파트 주민자치회, 동호회, 교회 등 직접 나서서 작은 캠페인을 벌여 가방을 모아 보내오는 단체가 줄을 이었다. 광주에 있는 김대중컨벤션센터는 자체 캠페인을 벌여 가방과 신발, 장난감, 학용품을 트럭 한가득 실어 보내왔다.

최근에는 육아 사이트 ‘베이비트리’를 비롯해 학교와 회사, 유치원, 아파트 주민자치회, 동호회, 교회 등 가방 보내기 캠페인 취지에 동의하는 단체들이 자발적 캠페인을 벌여 가방과 장난감을 모아 ‘반친’으로 직접 보내오는 사례가 줄을 잇고 있다. 방 한 칸을 가득 채울 정도로 많은 전국에서 보내온 가방과 장난감.
2차 캠페인이 진행되면서 애초 마련한 공간에서는 도저히 물품들을 감당할 수 없어 따로 창고까지 얻었다. 가방과 장난감뿐만 아니라 옷 수만 벌, 신발 수천 켤레가 함께 접수됐다. 지난 8월 현재 1만3천 개가 넘는 가방이 한국대학생자원봉사협의회·태평양아시아협회 등의 대학생들과 대구시자원봉사센터 ‘나마스떼’, 아시아평화인권연대 ‘사피나코’ 등을 통해 지구촌 10여 개국의 어린이들에게 건네졌다.

반친도 지난 5월 사피나코와 함께 가방을 들고 필리핀 케손주 아테모네 지역에 있는 카리다드 이바바초등학교 아이들을 찾았다. 작은 어촌 마을에 있는 이바바초등학교 운동장에는 아이들 400여 명과 학부모까지 나와 우리를 맞았다. 아이들은 반친 회원이 건넨 가방을 저마다 하나씩 받아 메고는 수줍은 미소로 인사를 대신했다. 아이들이 멘 가방에는 ‘○○학원’ ‘**유치원’이라는 한글이 또렷했다. 더러 새 가방도 있지만 대다수가 쓰던 가방이라 겉면에 매직펜으로 김아무개, 이아무개라는 이름이 쓰여 있는 가방이 많다. 낯선 한글조차 싫지 않은지 아이들은 몇 번이고 가방을 쓸어보고, 친구들끼리 서로 가방을 견줘보며 신이 났다. 우리가 가져간 인형은 가방만큼이나 인기를 끌었다. 이바바초등학교 아이들이 보여준 함박웃음은 그동안 캠페인 과정에서 겪은 크고 작은 어려움을 싹 잊게 만들었다.

이 학교의 교장 선생님은 “전교생이 500여 명인데 내년에는 모든 아이에게 가방을 나눠줄 수 있으면 좋겠다”며 소박한 바람을 전해왔다.

한국에서 이주노동자로 일한 경험이 있거나 현재 한국에서 일하는 필리핀 노동자들이 함께 만든 공동체인 사피나코는 해마다 이 학교를 찾아 학용품과 가방을 선물하고 있다. 올해부터는 해마다 반친이 가방을 기부하기로 약속했다. 이바바초등학교 방문 뒤 사피나코를 통해 필리핀의 다른 지역에 있는 초등학교에도 가방을 보내기 시작했다.

이바바 아이들을 직접 만나기 전까지 반친 회원들은 이 캠페인이 혹시라도 의도와 다른 부작용을 낳지 않을까 걱정을 떨치지 못하고 있었다. 혹시 쓰던 가방을 받은 아이들과 현지 주민의 마음을 다치게 하지 않을지 늘 조심스러웠다. 가방을 받고 기뻐하는 이바바 아이들과 눈웃음을 주고받고 온 우리는 확신을 가지고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예상치 못한 문제도 있겠지만, 가방이 필요한 아이들에게 책가방을 선물하는 일은 꼭 필요하다는 것에 마음을 더 굳게 모았다. 가방과 함께 들어온 옷과 신발도 차근차근 필요한 곳에 전달하는 중이다. 아이들이 책가방으로 쓸 수 없는 성인용 가방이나 어른 옷, 신발은 노숙인쉼터와 이주여성쉼터 등에 전달하고 있다.

헌가방 선물해줄 ‘착한 운반객’ 찾습니다

‘지구촌 아이들에게 책가방을 선물하자’는 캠페인이 이처럼 빠른 속도로 널리 퍼질 수 있는 힘은 뭘까. 반친 스스로도 그렇지만, 주위에서 나름의 분석을 내놓는다. 이유는 간단하다. 누구나 취지에 공감하고 쉽게 동참할 수 있어서다. 누군가와 나누고 싶어 하는 ‘착한 마음’을 쉽게 움직인 덕분이다.

지난 3월 말로 2차 캠페인은 끝났지만, 지금도 매일 전국 곳곳에서 택배 상자가 배달된다. 그리고 지난봄부터 반친 사무실이 있는 대구 지역 봉사단체의 대학생과 고등학생들이 찾아와 물품 정리 등을 돕고 있다. 전국에서 모이는 ‘착한 마음’과 지역의 ‘착한 일손’이 한데 어우러져 반친 활동을 엮어가는 중이다.

이 일을 하면서 ‘좋은 일 하니 복 받을 것’이라는 인사를 종종 듣는다. 반친이 누리고 있는 가장 큰 복은 매일매일 ‘이 착한 마음들을 확인’하는 기쁨이다. 바다 건너 지구촌 어딘가로 여행을 떠나는 분들에게 반친이 이런 제안을 해본다. “옷가방 하나쯤 비워서 가방을 담아가 그곳 아이들에게 선물하면 어떨까요? 가방이 필요하면 언제든 반친으로 연락 주세요.”

기부 품목: 아이들이 쓰던 어린이집·유치원·학원 등의 가방, 학용품

참여 방법: 택배로 보내주세요. (가방과 함께 택배비도 기부하는 셈이 됩니다. 가방은 깨끗이 닦아 주시면 좋습니다. 장난감은 부피가 작고 가벼우면 더 좋습니다.)

보내실 곳: (706-011) 대구시 수성구 범어1동 688-2번지 1층 ‘반갑다 친구야’

연락처: 010-8955-9335/ hope0130@gmail.com

글·사진 박주희 <한겨레> 기자로 일했고, 지금은 ‘반갑다 친구야’를 꾸리며 신나게 지구촌 아이들에게 가방을 보내고 있다. 덕분에 ‘착한 일’을 취미로 혹은 직업으로 하는 사람들과 어울리는 기쁨을 누리고 있다. 가까운 이들과 시시콜콜한 일상 나누기를 즐기며, 가끔은 낯선 곳으로 좋은 사람들을 찾아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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