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3.10.07 11:55 수정 : 2013.10.09 19:38

1. 박 대통령의 못 믿을 원칙

지난해 박근혜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됐을 때 언론매체들이 독일 앙겔라 메르켈 총리를 떠올리며 닮은꼴이라는 비교분석 기사를 쏟아냈다. 메르켈 총리가 세 번째 연임에 성공하자 또다시 성공한 리더의 이미지를 차용해 미화하려는 시도가 적지 않은 듯하다. 대선 전 공약을 발표할 때는 닮은꼴이었는지 모른다. ‘국민대통합’을 모토로 야당이 내세웠던 복지 확대, 경제민주화, 검찰 개혁 등 보수 정당으로서는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진보 정책을 끌어안아 대선 공약으로 내세울 때는 ‘포용의 정치가 메르켈’이 떠올랐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도 그때뿐, 지금은 확연히 다른 길로 접어들고 있다. 닮은 점이란 여성과 이공계 출신이란 것밖에. 박 대통령은 집권 이후 달라져도 확 달라졌다. 원래 감춰져 있던 게 서서히 드러나는 것인지도 모르지만. 기초노령연금 지급 대상이 축소돼 매달 20만원을 기대했던 어르신들을 우롱한 결과가 되었다. 노인을 비하하는 말 한마디 내뱉은 야당 정치인에게는 몰매를 던지더니 표심에 영향을 미쳤을지 모를 핵심 공약을 반쪽으로 만들어놓고도 어르신들과 곧 어르신이 될 많은 국민연금 가입자에게 “죄송한 마음”이지만 실현 불투명한 “임기 내 실천” 약속으로 공약 파기는 아니라며 위기를 넘기려 한다. 경제민주화도 실종되고 검찰 개혁도 사실상 물 건너갔다는데 대통령을 수식하던 ‘원칙과 신뢰’도 함께 휩쓸려 가는 것 같다.

2. 눈 밖에 난 자의 퇴출

메르켈 총리가 보인 ‘무티’(Mutti·‘어머니’의 애칭) 리더십은 보수와 진보의 진영 논리와 이념에 얽매이지 않은 채 통합과 포용을 중요시하고 원칙을 지키지만 유연성도 있는 리더십이다. 반대파에게 다가가 손을 내밀고 그들이 주장하는 원전 폐기 같은 정책도 받아들여 내 편으로 끌어안는 ‘더하기’ 정치로 진정한 정치가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처럼 내 편이 아니면 무시하고 내치는 ‘빼기’ 정치는 정치의 본연이 아니다. 채동욱 검찰총장의 혼외아들 의혹에 대처하는 청와대와 대통령, 여당의 행태는 보수와 진보를 편 갈라 자기편만 포용하고 상대방은 찍어 누르는 것이니, 진정한 의미의 정치는 사라지고 있다. 그러니 우리 정치는 당리당략에 매몰돼 늘 정쟁뿐이고, 정치는 형식적 다수결 논리로 민주주의를 훼손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에서 검찰 개혁은 좌초 위기에 놓여 있다. 대검 중수부가 폐지됐다고는 하지만 검찰 개혁의 핵심인 상설특검제는 올해 안에 도입되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청와대는 한사코 부인하지만 채동욱 검찰총장이 확실히 내 편임을 드러내 보였다면 이처럼 모욕적 퇴출을 당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 박근혜 대통령이 검찰총장을 임명했다고 가정하자. 그 휘하의 검사들이 국가정보원 댓글 사건을 종북좌파를 몰아내기 위한 대북 사이버 활동이자 대북 심리전의 일환으로서 정상적인 국정원의 업무라며 무혐의 처분했다고 하자. 아니면 검찰총장이 황교안 법무부 장관의 지시를 받들어 담당검사에게 압력을 넣어 선거법

위반을 공소장에서 제외시켰다고 하자. 그랬더니 야권과 시민단체가 들고일어나 ‘국정원 선거 개입 축소·은폐, 검찰총장 물러나라’며 연일 대통령과 검찰을 압박했다고 하자. 그래도 요지부동인 상황에서 야권이 수소문 끝에 ‘혼외자’ 특급 정보를 입수하고 언론에 흘리며 검찰총장의 공직자로서 윤리를 들먹이고 철저한 진상 규명, 감찰 및 징계와 사퇴를 주장했다고 하자. 그랬다면 청와대와 여당, 보수 언론들은 어땠을까? 불을 보듯 뻔하다. 지극히 사적인 일인데다 징계 시효도 지났고 유전자 검사를 할 방법도 없는데 어떻게 검증할 거냐며 옹호했을 것이다. 멀리 가지 않고 채 총장에 대한 의혹보다 더했던 김학의 법무부 차관의 예만 보더라도 충분히 유추할 수 있다. 청와대는 인사 검증 단계에서 그의 성접대 의혹을 알았지만 임명했다고 한다. 언론에 성접대 의혹이 도배되고 경찰 수사 대상인 상황에서도 법무부 장관과 청와대는 감싸기만 했다. 지금은 어떠한가? 두 사건에 다른 점이 너무 많지만 위법과 윤리 위반의 정도 차이가 아니라 원칙도 룰도 없이 맘에 드는 자인지, 눈 밖에 난 자인지의 차이가 그렇게 크게 작용했던 것이다.

3. ‘내 편 검사’만 곁에 두는 검찰공화국

청와대는 법무부 장관의 결재가 끝난 검찰총장의 사표 처리를 미룬 채 ‘진상 규명이 먼저’라며 막강한 검찰권력의 정점도 청와대 앞에선 ‘을’임을 분명히 보여주었다. 검찰의 인사권자가 누구인지, 칼자루를 누가 쥐었는지 확실히 보여주니 반발 움직임이 있던 검찰 내부도 움찔하면서 눈치 보기 모드로 들어갔다. 검찰총장은 2년의 임기를 보장받을 수도 없으며, 대통령의 맘에 들지 않으면 마음대로 그만둘 수도 없는 존재임을 국민 앞에 공표하면서 만점의 효과를 거두었다. 검찰뿐만 아니라 임명직 고위 공직자에게 ‘갑’의 존재를 각인시켜 양심과 영혼이 있더라도 잠시 접어두는 것이 신상에 좋을 거라는 경고와 함께.

검찰 인사에 관한 한 박 대통령도 대선 후보 시절에는 그렇지 않았다. 여야 모두 한목소리로 검찰 인사제도 개선을 강조했다. 박근혜 후보는 현직 검사가 청와대에 파견되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고 약속도 했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국민의 신뢰 회복을 위해 인사와 관련해서 검찰의 독립성과 중립성이 충실히 보장되도록 인사제도를 개선하겠다고도 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 때부터 현직 검사가 청와대에 파견돼 사실상 검찰을 장악하고 간섭하는 일이 반복되면서 청와대 파견이 1996년 법 개정으로 금지됐지만, 지난 정부에서도 사표만 냈을 뿐 검사들이 청와대에 파견됐다가 다시 검찰로 복귀하는 관행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로 인해 검찰의 정치적 독립이 훼손되고 ‘정치검찰’이라는 비난의 목소리가 커지자 박 대통령이 검찰 인사제도 개선을 약속했던 것이다.

그러나 대통령의 약속은 침이 마르기도 전에 현직 부장검사를 청와대 민정비서관으로 발탁하면서 산산이 깨지고 말았다. 정권 출범 초 민정수석만 검사 출신으로 임명하더니 이제는 비서실장까지 전직 검사로 채워 민정비서관으로 위장 전입한 검사들까지 합치면 청와대 비서실은 곧 작은 검찰청과 다름없다. 크기는 작지만 법무부 장관이나 검찰총장보다 기수가 높은 선배들로 채워져 법무부와 대검찰청을 능가하는 검찰청이 되어버린 형국이다. 여기에 더해 국무총리와 법무부 장관도 검사 출신이다. 가히 ‘검찰공화국’이라 부를 만하다.

4. ‘상설 특검’ 빠진 검찰 개혁 좌초 위기

그러니 후보 시절 과연 검찰 개혁 의지를 갖고 공약을 발표한 것인지도 의문이었지만, 상하 위계가 몸에 밴 친검찰 출신 인사를 곁에 둬서는 검찰 개혁을 시도할 수 없을 거라는 예측도 있었다. 그 우려가 현실로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집권 초기에는 신뢰받는 정부가 되기 위해 공권력에 대한 국민의 신뢰 회복이 절실하다고 판단하고 그 핵심 방안으로 검찰 개혁을 꼽았을 것이다. ‘정치검찰’이라는 오명의 근원이라고 볼 수 있는 대검 중수부를 폐지해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과 독립성을 확보하겠다는 생각도 있었을 것이다. 사실 대통령직인수위의 검찰 개혁안도 반쪽이었다. 대통령의 대선 공약인 상설특검제가 사라지고 특별감찰관제만 남았다. 수사 대상이 판검사 및 고위 공직자 비리가 아닌 대통령의 친·인척 비리에 국한돼 있고 기소권마저 없는 허울뿐인 개혁안에 불과했다. 검찰 개혁의 핵심인 상설특검제도 사실은 선거 직전 마지못해 공약으로 끼워넣더니 결국 인수위 개혁안에서는 빠져버렸다.

공약대로 대검 중수부는 폐지돼 조직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간판은 역사박물관에 보관돼 있다. 대단한 개혁 성과로 자랑하고 싶을 것이다. 개혁의 전부인 것처럼 느꼈을 거다. 그러나 검찰 개혁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중수부 폐지는 조직 자체를 없애는 게 관건이 아니다.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과 독립성을 확보하기 위한 전제 요건이므로 그것에 그쳐서는 안 된다. 중수부가 담당했던 고위 공직자 비리 수사를 누가 담당할 것인지가 개혁의 요체다. 그런 점에서 박근혜 정부가 과연 검찰 개혁 의지가 있는지, 판검사를 포함한 고위 공직자와 정치인이 관련된 권력형 비리 수사를 정치권력의 영향을 받지 않고 할 수 있는 방안이 무엇인지 고민했는지 의문이 들었던 것이다.

이제 검찰 개혁도 좌초 위기에 놓여 있다. 국회 사법제도개혁특별위원회가 검찰 개혁의 핵심인 상설특검 도입에 합의하지 못한 채 사실상 활동이 종료됐다. 상설특검은 박근혜 후보의 대선 공약으로 지난 3월 여야가 올해 상반기 중 입법을 완료하기로 한 사항이었다. 그러나 동상이몽이었다. 같은 ‘상설’특검을 말하면서도 여당은 특검법을 만들어놓았다가 정치적 의혹이 큰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특검을 임명해 수사하는 형태의 ‘제도특검’을 주장한 반면, 야당은 별도의 조직과 인력을 갖춘 상설적 ‘기구특검’을 요구해왔다. 상황이 이렇게 된 데는 대통령과 여당의 책임이 크다. 상설특검 공약을 발표했던 대통령이 침묵하는 사이 새누리당은 기존 한시적 특검과 차별성이 전혀 없는 제도특검을 주장하면서 시간만 끌었다. 결국 상설특검제와 특별감찰관제 도입 문제를 법제사법위원회 차원에서 논의하게 되었지만 올해 안 입법은 물 건너갔다고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5. 수사·기소 독점권 수술부터

아무리 범죄 혐의가 있어도 수사기관의 수사가 개시되지 않으면 진실은 묻혀버리고 정의를 세울 수 없게 된다. 검찰 수사가 이루어지더라도 기소하지 않으면 공개된 법정에서 진실이 무엇인지 다퉈볼 수도 없다. 수사권뿐만 아니라 검찰의 기소권 독점과 불기소 처분을 내릴 수 있는 기소재량권이 바로 검찰권력의 핵심이다. 이렇게 법과 제도적 장치가 검찰을 권력기관으로 만들었다. 여기에 상명하복의 검찰조직이 법무부 장관이나 검찰총장의 정치적 소신이나 성향에 따라 좌우될 수 있는 폐쇄적 위계질서 조직이라는 점이 더해지면 그 권력 행사의 정치적 독립성과 중립성은 기대하기 어려워지는 것이다.

청와대는 한사코 부인하지만 채동욱 검찰총장이 확실히 내 편임을 드러내 보였다면 이처럼 모욕적인 퇴출은 안 당했을지 모른다.
그래서 국민에게 위임받은 검찰권이 공정하게 행사될 수 있도록 견제장치를 마련하는 것이 검찰 개혁의 핵심이다. 검찰의 수사·기소 독점권은 어떤 형태로든 수술이 불가피하다. 중수부를 폐지하는 데 그칠 것이 아니라 상설적 제도특검이든 공직자비리수사처든 권력형 비리수사 전담기구를 도입해야 한다. 검찰뿐만 아니라 임명권자인 대통령으로부터 독립된 특별수사기구를 설치해 수사기관을 다변화함으로써 수사(지휘)권에다 기소권까지 독점적으로 보유한 검찰이 수사 의지를 보이지 않는 판검사, 정치인 및 고위 공직자가 관련된 권력형 비리와 부정부패 사건에 대해 수사할 수 있어야 한다.

6. ‘정권의 시녀’에서 ‘법의 시녀’ 돼야

법치국가의 법은 통제와 억압의 도구가 아니라 시민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하는 장치다. 이런 민주주의의 대명제가 지난 정부에서 훼손됐다. 그 핵심에 법무부·검찰이 자리잡고 있다. 정치적으로 예속돼가는 검찰, ‘정권의 시녀’라는 오명을 뒤집어쓴 검찰을 그대로 둘 것인가. 살아 있는 권력의 의지를 실현하는 데 봉사하는 법무부·검찰이 되도록 내버려둘 것인가. 그러면 안 된다. 국가의 권력 의지가 아니라 법적 의지를 실현하는 검찰조직으로 변하게 해야 한다.

검찰의 정치적 중립과 독립은 대통령과 정치권이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대선 전후에 진정 검찰 개혁의 필요성과 당위성을 인식했다면 인적 쇄신을 통한 과거와의 단절과 검찰 개혁 실천 의지를 분명히 밝혔어야 한다. 검찰조직을 어떻게 이끌어갈지에 대한 소신과 능력이 있는 인물을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으로 임명하는 것이 출발점이었다. 권력의 의지를 대변해야 할 때 언제든지 불러세워 수족으로 삼을 수 있는 인물을 곁에 둔다면 검찰의 정치적 독립은 요원해진다. 개정 검찰청법에 따라 검찰총장 후보추천위원회가 구성돼 검찰총장 후보를 법무부 장관에게 추천하는 절차로 개선됐다. 이젠 시민사회의 다양한 목소리를 반영하고 다각도로 검증할 수 있게 위원회 구성을 다양화하고 후보 추천 기준과 절차 등이 공개되는 가운데 검찰총장이 임명돼야 한다. 그래야 채동욱 검찰총장처럼 청와대와 여당이 아니라 국민을 바라보고 검찰을 지켜나갈 수 있을 것이다. 양심과 소신에 따라 검찰권력을 진실을 파헤치고 정의를 세우는 데 쓸 수 있을 것이다.

대통령이 벌써 검찰을 곁에 둬야 임기 내내 편할 수 있다는 달콤한 유혹에 빠졌다면 큰일이다. 그래서 대통령의 입맛에 맞는 검찰 인사가 단행되고 발탁된 검사들이 보은을 한답시고 기획·표적·과잉 수사로 검찰권을 남용하는 일이 벌어진다면 그것은 더 이상 국가의 권력 행사도 아니고 대통령의 국가 통치도 아니다.

국가는 비슷한 생각, 취미, 이념을 가진 사람들만 모여 있는 곳이 아니다. 정말 다양한 시민이 그 다양성을 존중받으며 살아가길 원하는 공동체다. 가뜩이나 사람은 무의식적으로 자기와 비슷한 특질을 가진 사람에 대한 편향을 갖고 있다는데, 그런 사람만 곁에 두고 국정을 운영한다면 나라의 앞길은 안갯속이고 뒷걸음질만 하게 될 것이다. 어느 쪽으로도 편향되지 않고 균형을 이루려면 의식적으로라도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사람, 다른 성향을 가진 사람을 곁에 두고 조언을 얻거나 통제를 받아야 한다. 그래야 한 나라의 대통령으로서 성공할 수 있다. 대통령은 더 이상 자신이 속했던 집권여당의 대표가 아니다. 대통령은 야당 성향과 여당 성향의 국민, 진보적 성향과 보수적 성향의 시민 모두를 보듬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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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하태훈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검찰개혁심의위원회 위원,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소장을 역임했다. 다수의 법학 책을 저술했고, <검찰공화국, 대한민국>(2011)을 공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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