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3.10.07 11:33 수정 : 2013.11.11 14:23

“현직 국회의원과 정당이 내란를 꾀했다는, 일명 ‘이석기 사태’를 접할 때마다 불현듯 떠오르는 인물이 있다. 2년 전 북한의 대남 선전 사이트 ‘우리민족끼리’(@uriminzokkiri) 트위터 계정 글을 리트윗(RT)한 혐의로 구속됐던 박정근(26)씨다. 남한 내 주사파 수장으로 분류되는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과 일개 사회당(현 노동당) 당원인 박정근의 기막힌(?) 인연에서 기인한다.

사상이나 정파적으로도, 직업이나 활동 공간·이력 면에서 공통점이 없을 것 같은 두 사람을 관통하는 건 ‘국가보안법’이다. 검찰은 지난 9월26일 이석기 의원을 형법상 내란음모 및 내란선동, 국가보안법 위반(찬양·고무) 혐의로 구속 기소했다. 이 의원은 지난 5월 ‘RO’ 조직원들과 모임을 열고 국가 통신·유류 시설 파괴를 모의한 혐의, 또 다른 RO 모임에서 북한 혁명가요인 <혁명동지가> <적기가> 등을 부른 혐의를 받고 있다. 박정근씨는 2011년 9월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압수수색을 받은 이후 다섯 차례 조사 끝에 2012년 1월 구속됐다. 공교롭게도 두 사람의 체포영장이 발부돼 수감된 곳도 수원남부경찰서 유치장이다. 구속 이후 수감된 곳도 수원구치소로 동일하다. 기이한 인연 아닌가.

북한 조롱했는데 거물 간첩? 하하하

정근씨와의 만남은 지난 9월7일 그가 운영 중인 서울 강동구 암사동의 작고 아담한 사진관에서 이뤄졌다. 단층 주택이 밀집한 골목과 어울리지 않는(?) 노란색 ‘조광사진관’ 간판이 2년 동안 ‘리트윗 국보법’ 파동으로 그가 겪었을 충격과 고뇌, 복잡다단한 심경을 대변하는 듯했다. 사진관에 발을 들여놓았을 때, 이 심증은 확증이 되었다. 14평 남짓한 사진관 내부는 오랫동안 주인의 손길이 닿지 않은 듯 어수선했다. 액자엔 먼지가 쌓여 있었고, 장비들이 사진관 구석에 아무렇게나 방치돼 있었다. 불안한 마음에 다짜고짜 그의 심경부터 물을 수밖에 없었다.

“지난 8월 2심에서 무죄 선고를 받은 뒤 안정을 찾아가고 있는 거죠?”

“에헤~ 뭘요. 그냥 원래 하던 대로 사진 찍고, 사진관에서 일하며 지내고 있죠. 압수수색 후유증이 의외로 컸어요. 가게문을 닫으면 그만이라 매일 출근해야 하는 직장인들보다 낫긴 했겠지만. 재판·선고가 일상에 영향을 주는 게 싫어서 더 악착같이 일에 매달렸죠. 음반도 냈고요. 경찰이 쑥대밭으로 만들어놓은 뒤 사진관에 대한 애정이 식긴 했지만….”

음반 기획이라니, 혹시 가수? 그는 손사래를 치고는 “고등학교 때부터 ‘비싼트로피레코드’ 레이블을 운영해오고 있다”며 웃었다. “음악을 워낙 좋아하기도 했고 학창 시절부터 주변에 음악하는 친구가 많았어요. 걔네들을 통해 ‘회기동 단편선’ ‘곽푸른하늘’과도 절친이 되었죠. 홍익대 앞 두리반, 쌍용차, 희망버스 등에 결합하며 더 친해졌고요. 회기동 단편선의 최신 앨범 <처녀>를 기획한 사람이 저예요. 하하. 조만간 곽푸른하늘 앨범과 사진집도 나올 거고요.”

애초 정근씨에게 궁금했던 건 주사파로 분류되는 경기동부연합과 이석기 의원에 대한 생각이다. 그에게 과거 경찰 신문의 악몽을 떠올리게 할지도 모른다. 일단 내질러보기로 한다. 한때 있었던 유치장과 구치소에 이 의원도 머물렀던 사실을 아는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네, 알고 있어요. 영광스럽게도, 인연입니다. 그럼 이 의원한테는 제가 구치소 선배네요? 그럼 나도 ‘거물 간첩’? 하하하. 아마 이석기 의원은 저를 괘씸하다고 생각하겠죠? 어쨌든 저는 이 의원이 옹호하는 북한을 조롱 대상으로 삼은 사람이니까. 심지어 제 변론을 맡은 이광철 변호사님도 북한을 조롱과 유머의 대상으로만 보지 말라고 충고했을 정도였는데, 아이러니해요.”

변호사의 농담 ‘북 병사가 총 쏠지 몰라’

실제 이 의원이 북한과 주체사상을 추종하는 쪽이라면, 그는 그 반대다. 이런 점에서 통일운동을 하는 이들에게 그는 나쁜 놈, 못된 놈이나 다름없을지 모른다. 더 나아가 그들은 정근씨가 국보법을 위반해 구속1된 것 자체가 모욕이라고 여기지 않을까. 그 역시 “변호사님도 우스갯소리로 북한 병사가 총을 쏠지 모르니, 금강산 여행이 재개돼도 가지 말라고 했다”며 껄껄 웃었다.

보안법은 이렇게 북에 비판적인 평범한 20대 젊은이를 범법자로 만들었다. 앞으로 그는 취직·결혼 등에서 예기치 못한 난관을 만날 수도 있다. “보안법, 정말 나쁘죠. 제 인생을 망쳤잖아요. 저랑 아무 상관도 없는 이석기 의원이랑 동일 선상에서 취급했으니까, 그것도 나쁘고요. 농담과 패러디를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곡해하니까. 평범한 시민도, 현직 국회의원도 공안 당국이 어떻게 옭아매느냐에 따라 범법자로 만들 수도 있고요.”

이석기 의원도 그같은 억울한 범법자로 봐야 한다는 뜻일까. 그는 잠시 머뭇거린 뒤 “이석기 의원과 진보당, 경기동부연합의 사상과 활동을 정확히 모른다”며 “정부와 국정원이 국면 전환에 이용한 측면도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 근거는 녹취록에 등장하는 비비탄, 총알, 압력솥 같은 것들 때문이다. “그런 걸로 국가기관 파괴가 가당키나 하냐”며 “우리 집에도 압력밥솥이 있고, 그 훌륭한 무기가 된다는 수입 비비탄 총도 있다”고 꼬집었다. “고작 이런 걸로 내란을 모의했다니 짠하다는 생각부터 들고, 시대착오적 발상이라 웃음이 날 지경이에요. 그런데 이 의원이 구속되면서 장난이 아닌 내란의 실체가 됐잖아요.”

혹시 이 의원을 동정하는 걸까. 그는 “그렇지 않다. 질문 내용이 가혹하다”며 손사래를 쳤다. “자영업자 처지에서 보면 안쓰럽긴 해요. 저런 식으로 장사해도 정당을 만들 수 있고, 국회의원도 배출할 수 있구나. 가장 동정을 받아야 할 사람은 접니다. 주사파, 즉 경기동부연합과 공안 당국이 함께 만들어 싼 똥이 운 나쁘게 저한테까지 튄 거잖아요. 억울하고 피곤해요. 세상이 나에게 왜 이럴까요?”

어쨌건 그는 자신과 이석기 의원의 구속으로 헌법에 명시된 표현과 사상의 자유가 침해된 사실을 매우 씁쓸해했다. 이것들이 확실히 보장돼야 자유민주주의 국가 이념에 맞는 것이라고 어릴 적부터 배워왔다. “야당 등이 일련의 사태를 두고 국정원 공작정치 혹은 박정희 독재시대 ‘막걸리 보안법’ 부활이라고 의심하는데, 개연성이 충분히 있다고 생각해요. 정부나 공안 당국으로서는 저나 이석기 의원 등을 기소함으로써 여론에 재갈을 물리는 효과를 톡톡히 거뒀잖아요.”

사상의 자유 범주에 주체사상도 포함돼야 한다는 뜻으로 들렸다. 그는 “그것 역시 하나의 갈래라는 점에서 전적으로 인정돼야 한다”며 “주체사상은 수용자가 어떻게 해석하고 포장하느냐에 따라 해석이 달라질 여지가 있는 것 같다”고 답했다. “남한 사회에서 주체사상이라고 하면 많은 이들이 뜨악해하지만, 그 기본 내용은 당의 영도하에 인민대중이 중심이 되어 민족해방·계급해방을 이루자, 뭐 이런 거잖아요. 만약 이것을 주체사상이라 하지 않고 다른 사상으로 이름 붙이고, 김정일이 아닌 국내 지도자가 한 말이라고 가정해보세요. 새마을운동이나 창조경제란 말과 별반 차이 없어 보이지 않아요? 결과적으로 국민이 중심이 되어 잘사는 나라를 만들자는 얘기잖아요.”

장군님 패러디에 법정 ‘빵’ 터져… 검사만 다큐 모드

이제 대화의 주제를 박정근 이야기로 옮겨보자. 2011년 9월21일, 그와 국가보안법의 악연이 시작된 날이다. 여느 때처럼 그날도 오전 10시쯤 가게문을 열었다. 30분도 채 안 돼 국가보안법 제7조2 위반으로 압수수색을 한다며 경기지방경찰청 보안수사대 수사관 예닐곱 명이 들이닥쳤다. 그의 혐의는 북한의 대남 혁명 전략을 수행하는 조국평화통일위원회에서 운영하는 트위터 계정 ‘우리민족끼리’ 트윗을 다수 리트윗하고, 북한의 주의·주장에 동조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글을 수차례 트윗한 것이었다.

2년 전 북한의 대남 선전 사이트 ‘우리민족끼리’ 트위터 계정 글을 리트윗 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됐던 박정근씨. 지난 8월 2심에서 무죄 를 선고받았지만, 검찰의 상고로 ‘리트윗 보안법’에 대한 대법원의 최종 판결을 앞두고 있다. 그는 “그동안 도움과 지지를 보내준 이들을 위해서 라도 보안법으로 고통받는 이들을 돕는 일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제 전체 트윗 중에서 공소장에 기재된 문제의 트윗은 극소수인 200개였어요. 우리민족끼리 리트윗 96건, 북한 혁명가 등을 게재한 29건, 북한식 억양과 말투를 사용한 트윗글 76건 등이죠. 북한의 억양과 말투, 독재를 칭송하는 표현이 재밌어서 리트윗한 것뿐인데, 보안법 위반인 줄 알았으면 안 했죠. 심지어 구속될 정도로 중죄일 줄은…. 경찰이 압수수색하면서 가져간 것도 <진보집권플랜> <우리가 바로잡아야 할 역사 37장면> <러시아혁명사> <사회주의 문화건설 이론> 같은 책들이고요.”

그는 아버지가 운영하던 사진관을 2010년 물려받았다.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트위터에 빠졌다. 아버지는 그에게 ‘사진가의 무덤, 사람들을 기다리는 곳이 사진관’이라는 말을 종종 했다. 역시나 혈기왕성한 그에게 하루 종일 사진관을 지키는 일은 고문과 다름없었다. 트위터(@seouldecadence) 계정을 만들고 여기에 몰두했다. 트위터는 그에게 새로운 세상을 열어주었다. 구속 전까지 1년여 동안 무려 7만~8만 개 트윗글을 올렸다. 그게 화근이었다. 문제의 트윗글은 어떤 것들이었을까. “장군님 빼빼로 주세요.”(빼빼로데이 전날) “코끼리를 냉장고에 넣는 방법은 김정일 장군님께 부탁드리면 됩니다. 알아서 신묘하게 들어갑니다.” “제가 수령님 생각만 하면 주체주체하고 웁니다만” “아기 주사파는 웅위웅위 하고 웁니다.” “조선의 심장인 혁명의 수뇌부는 단백질이 풍부하다.” “모든 것은 장군님께서 해주십니다. 홀아비에겐 아이도 갖게 해주시죠.” “나의 사랑 너의 사랑 아주 귀여워요. 요덕수용소의 무료숙박권을 드릴게요.”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에 조의를 표하며, 조문 대신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우라늄과 플루토늄을 조의의 뜻으로 보내겠습니다.” 등등.

“한번 평가해주세요. 변란 혹은 북한을 찬양하기 위한 목적 같아요?”

그만의 재치가 살아 있는 패러디였다.

“그렇죠? 왜 제가 억울했는지 아시겠지요? 재판 때 방청석에서도 검사가 이 문장들을 읽는 동안 ‘빵’ 터졌다니까요. 웃긴 내용인데 검사만 심각했다니까요. 처음엔 멘붕에 빠졌고, 정신을 차리고 나선 국가가 처벌 목적으로 국민을 ‘사찰’했다는 사실에 분개했죠. 발가벗겨진 기분에 수치스러워 불면증에 시달리고, 한동안 약을 먹어야 할 정도로 고통스러웠어요. 국가정보원이 이석기 의원의 혐의를 잡으려고 수년간 내사했다는 뉴스를 접했을 때는 소름이 다 끼치더라고요. 아, 끔찍해. 정부는 어떤 이유에서건 개인의 인권과 사생활을 침해해서는 안 되는 거잖아요.”

순간 엉뚱한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만약 그가 트위터가 아닌 ‘일베’(일간베스트 저장소) 사이트에서 북한을 조롱하고 폄훼했어도 그런 일을 겪었을까. “아마 다르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네요, 하하. 사실 전 조사·재판 과정에서 미운털이 단단히 박혔거든요. 억울하다고 1인시위도 하고, 보안법 폐지 행사에 참여해 증언도 하고, 언론 인터뷰도 다 했거든요. 얌전히 성실하게 조사에 임했다면 어땠을까, 그런 상상을 해보긴 해요.”

어이없는 상고이유서 “제가 이 의원과 같나요?”

인터뷰가 1시간 넘게 이어지면서,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구치소 경험담으로 흘러갔다. 이석기 의원의 구치소 생활도 그와 유사하지 않을까. 구치소에서 보안법 사범은 ‘3’으로 시작하는 세 자리 수번을 쓴다. 지난해 1월 구속된 그는 독방을 쓴 지 이틀 만에 6인방으로 옮겨졌다. 약을 먹어야 할 만큼 심각한 심리적 건강 상태를 감안한 조처였다. 한방을 쓰게 된 제소자들은 그를 꼬리 달린 이상한 사람 취급했다. 어떤 이는 “그렇게 안 보이는데 왜 젊은 사람이 간첩이 됐느냐”며 안쓰러워했다. 중앙정보부를 소재로 한 소설책을 읽던 어르신은 “이제라도 간첩 하지 말고 정신 차리라”고 충고했다. 그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인물은 어느 중국인 제소자다.

“어느 날 제게 ‘자유민주주의 국가 한국에선 사상의 자유가 보장되는 걸로 알고 있는데, 네가 왜 여기 있는 거냐’고 묻더군요. 창피했어요. 그 중국인에겐 한국도 중국처럼 사상을 통제하는 나라라는 거잖아요. 근데 웃긴 사실이 하나 있어요. 구치소 안에는 보수 쪽에서 ‘좌파 신문’ ‘좌파 서적’이라고 불리는 간행물이 널려 있다는 사실이에요. <한겨레>와 <경향신문>도 들어오고 <황해문화> 같은 잡지, 사회과학 서적도 볼 수 있어요. 간첩이 간첩 신문, 간첩 서적, 간첩 잡지를 대놓고 읽는 곳이 구치소인 거예요.”

2007년까지 30명 수준에 머물던 보안법 위반자는 이명박 정권을 거치며 크게 늘었다. 2008년 40명, 2009년 70명, 2010년 151명, 2011년 131명, 2012년 109명이다. 박근혜 정권이 들어선 올해도 8월 말까지 93명에 이른다. 고 노무현 대통령은 재임 시절 보안법 폐지를 추진했다. 당시 형사법 전공교수 230여 명은 “국가보안법 폐지는 마땅하며, 현행 형법으로 대체하는 것에 전혀 문제가 없다”며 힘을 보탰다. 하지만 끝내 당시 야당인 한나라당과 보수 세력에 밀려 좌절됐고, 이명박·박근혜 정부를 거치며 유야무야된 상태다. 예로부터 정부와 여당은 보안법이 폐지되면 국가 안보가 무너지는 것처럼 호도하며 국민의 불안 심리를 부추겼다. 그리고 정권의 위기 상황에서 보안법을 꺼내 비판 세력을 탄압하는 수단으로 썼다. 지금은 표적의 칼끝이 이석기 의원과 진보당, 경기동부연합을 향해 있다.

보안법 폐지에 대해 물었다. “물론 폐지해야죠. 당장 폐지할 만한 현실 조건이 안 된다면, 자의적 해석이 가능한 7조 찬양·고무죄라도 없애거나 개선해야 한다고 봅니다. 정권의 입맛대로 악용되잖아요. 지금 상황이 딱 그렇고. 또 저처럼 북한을 추종하지 않아도 처벌받게 하는 조항이니까. 더 큰 이유는 표현의 자유를 위축하고 침해하니까. 앞으로 누가 장난 삼거나 풍자하려고 ‘우리민족끼리’ 트윗을 리트윗하겠어요?”

박정근의 ‘리트윗 보안법’ 싸움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지난 8월 2심에서 무죄가 선고되자 검찰이 대법원에 상고해 최종 판결을 남겨놓고 있다. 며칠 전 그에게 대법원에서 보낸 검찰의 두꺼운 상고이유서가 날아왔다. ‘그럼에도 우리 체제의 우월성에 대한 지나친 자신감과 어울려 헌법이 보장하는 자유를 빙자하는 체제의 적에 대한 경계와 통제를 그동안 철저히 해오지 못하였던 점을, 작금의 이석기 의원 내란음모 사건 등을 통해 다시 한번 인식하게 되었습니다’라는 검사의 소견서가 가장 먼저 시야에 꽂혔다. “순간 화딱지가 나더군요. 내가 이석기 의원이랑 같다는 얘기인가? 웃겼어요. 제게 중요하지 않은 인물과 정당(진보당)이 제 의지와 상관없이 제 삶과 의식 안으로 깊숙이 밀고 들어와버린 꼴이 되었어요.”

“제가 유머 자체인데… 점점 몸 사리네요”

‘이석기 사태’, 그리고 <나·들>과의 인터뷰가 대법원 판결에 악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순간 염려가 되었다. “형사재판의 경우 대부분 혐의가 뒤집히는 경우가 없대요. 제 경우도 그렇지 않을까 전망하고 있기는 한데…. (잠시 머뭇거림) 시국이 시국인지라 잘 모르겠네요. 조심스럽긴 해요. 저와 유사한 사례로 재판받고 있는 분이 8명이나 되거든요. 제 판결이 아무래도 이분들에게까지 영향을 주니까….”

인터뷰 내내 그는 진지하고 침착했다. 잠시 눈을 감기도 하고, 묵직한 한숨을 내쉴 때도 있었다. “대화 내용이 너무 무겁다”고 하자, 그는 이렇게 답했다. “그랬나요? 아무래도 지금은 움츠러든 상태여서 모든 게 조심스러워요. 이해해주세요. 말과 글, 행동에 앞서 자기검열부터 하게 되네요. 원래 제가 유머 그 자체인데, 지독한 후유증이죠. 정치나 권력에 관한 민감한 말을 할 때나 인간관계에서조차 몸을 사릴 때는 종종 섬뜩할 때가 있어요.”

“예전 모습을 빨리 되찾았으면 좋겠어요. 언제쯤 가능할까요?”

“글쎄요. 시간이 해결해주면 좋겠어요. 그때가 언제가 될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말이죠. 사진관 운영도 정상화하고, 음반기획자로서도 활동폭을 넓혀야겠지요.”

그 출발점으로 선택한 것이 사진관 이전이다. 고객뿐 아니라 다양한 문화활동가들과의 교류를 확대하기 위해서다. “충무로 같은 시내로 사진관을 옮기게 된다면 자립음악협동조합과 공간을 나눠 사용하게 될 것 같다”고 귀띔했다. 더불어 그는 “알게 모르게 도움과 지지를 보내준 분이 많고 그 빚을 갚는 게 도리”라며 “‘박정근후원회’와 함께 보안법으로 고통받는 이들을 돕는 일을 지속적으로 하고 싶다”는 바람도 전했다.

사진관은 한산했다. 3시간 남짓 진행된 인터뷰 내내 ‘조광사진관’을 찾은 손님은 중년의 아주머니 단 1명뿐이었다. 염치 불구하고 노파심에 가게의 일급비밀까지 과감히(?) 물어보기로 했다.

“가게 월세를 감당할 수준은 되는 거죠?”

“그 정도는 됩니다. 다행히 사진관 말고 외부에서 사진을 찍어달라는 요청이 종종 들어오거든요. 제가 유명해지긴 했나봐요. 트위터 팔로어도 2천 명에서 7500명까지 증가했고요, 하하. 앞으로 저를 찾는 고객이 점점 더 늘겠죠?”

‘조광사진관’ 간판이 해 질 녘 노을빛과 어울려 더욱 선명한 노란색으로 시야에 들어왔다.

글 김미영 기자 kimmy@hani.co.kr

1 사진관과 자택에 대한 압수수색 이후 박정근씨는 다섯 차례에 걸쳐 경찰 조사를 받았고, 2012년 1월11일 구속됐다. 그리고 40여 일 뒤인 2월20일 ‘향후 재판에 성실히 임하겠다’는 출석확인 서약서와 공탁금 1천만원을 납입하는 조건으로 보석으로 풀려나 재판을 받아왔다. 1심 재판부는 그에게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지만, 지난 8월 2심 재판부는 1심 판결을 뒤집고 무죄를 선고했다.

2 국가보안법 제7조(찬양·고무 등)는 “국가의 존립·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를 위태롭게 한다는 점을 알면서 반국가단체나 그 구성원 또는 그 지령을 받은 자의 활동을 찬양·고무·선전 또는 이에 동조하거나 국가 변란을 선전·선동한 자는 7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고 명시돼 있다.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