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3.09.01 16:05 수정 : 2013.09.09 15:37

수도권 어느 신도시에 사는 중학교 2학년 ㅅ양(14)은 지난봄 어느 날, 잇따라 세 번이나 충격을 받았다. 같은 학 교, 같은 학년 남학생이 자기 집 아파트에서 스스로 몸을 던져 목숨을 끊은 날이었다. 물론 첫 번째 충격은 그 학생 의 죽음 자체였다. 복도를 오가며 익힌 얼굴과 이름 석 자, 그리고 자기만큼 그림 그리기를 좋아한다는 소문 정도만 들어 아는 사이지만, 같은 또래의 자살을 가까이에서 처음 접한 충격은 컸다.

두 번째 충격은 그 아이가 어떻게 집단 괴롭힘을 당했 는지 듣고 나서였다. 부모를 따라 외국에서 몇 해 살다 온 아이를 ‘일진’들이 집요하게 괴롭혔다. 자리 비운 틈을 타서 책가방 안에 쓰레기를 잔뜩 담아놓는 일도 있었다. 가해 행 위보다 가해 이유가 더 충격적이었다. 남자가 애니메이션 그리기를 좋아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팬인 ㅅ양이 알기에 세계적인 애니메이션 작가는 대부분 남 자들이었다.

세 번째 충격은 같은 학교 학생들이 ‘카카오스토리’에 올린 글 때문이었다. ‘그래봐야 누가 알아주기나 한대?’ 이런 유의 냉소는 차라리 나았다. ‘오늘 같은 날엔 육개장이 딱이지!’ 그날 점심 급식 메뉴가 공교롭게도 상가(喪家)에서 주로 나오는 육개장이었다. 아이들은 살뜰하게 자신의 이해를 따졌다. ‘우리 학교 시끄러워지는 거 아냐?’ 평소 ‘학교가 후졌다’고 불평하던 아이였다. 죽은 아이와 같은 아파트에 사는 한 아이는 ‘우리 아파트 값 떨어지겠네’라고 글을 올렸다.

30일 저녁 서울 여의도 공원을 가득 메운 시민들이 공연을 보며 즐거워 하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중2병은 중2만 걸리는 병이 아니다. 중3이 되어도 자연 치유되지 않는다. 더 어려서 나타날 수도 있고, 더 나이 들어 나타날 수도 있으며, 한두 해에 끝나지 않을 수도 있다. 심지어 중2병은 과학이나 의학 관점에서는 아무것도 지시하지 못한다. 실제 이 표현은 1990년대 중반 일본의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처음 등장한 것으로, ‘나는 남과 다르다’, ‘나는 남보다 뛰어나다’는 자의식이 지나쳐서 허세 부리는 짓을 가리키는 속어다.1

중2병에 가장 가까우면서도 부정적 뉘앙스가 적은 표현이 ‘사춘기’다. 18살이 방년(芳年·20살 전후 여성의 나이)을 대표하듯이, 중2는 사춘기에 관한 대유법이다. 자의식이 가장 충일한 사춘기를 그 치기어림만 문제시해 질병화한 것이 중2병이다. 이런 시선으로 보면, 알에서 깨어나 ‘아브라삭스’로 나아가려 하는 데미안, 아니 그런 이상향을 문학 작품 속에 집요하게 투사한 대문호 헤르만 헤세야말로 중환자실에서 호흡기를 대야 할 중증 환자인 셈이다.

중2병이라는 말이 크게 유행하자 문용린 서울시 교육감은 올가을부터 중학교 2학년이 의무적으로 참가하는 단축 마라톤대회를 열겠다고 밝혔다. ‘비유’와 ‘실재’를 분별하지 못하는 점에서 중2들조차 웃지 못할 소극이었다. 그러나 마냥 웃어 넘길 일은 아니다. ㅅ양 또래의 모습이 중2병이라는 무개념적인 개념에 얼마나 부합하는지 모르겠지만, 공교롭게도 그들은 정확히 중2다. 안타깝게도 그들에게서 병리적 행태가 엿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서울시 교육감의 처방은 역학(疫學)을 간과한 결정적 오진이다. 미셸 푸코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중2에게는 학교와 집이, 아니 세상 전체가 거대한 병원이다. 그들은 이미 발병 상태이거나 보균자로 간주된다. 그럴 땐 감염 경로부터 파악하는 게 순서다. 답은 ‘병원 감염’이다. ㅅ양 또래가 집단적으로 중2병을 일으키는 유전자를 타고 난 게 아니라면 그들의 차별, 배제, 폭력, 냉담, 비하, 이기성 따위는 어른 사회에서 삼투했다고 봐야 한다.

그들이 카카오스토리에서 주고받은 대화는 그리 낯설지 않다. 가학적이면서도 피학적인 분열상이 일베의 그것과 빼닮았다. 중2의 카카오스토리는 일베의 유소년 리그 같다. 중2병과 일베는 ‘원형’과 ‘미래’의 관계로 연결된다. 어쩌면 중2에서 성장이 멈춰버린 게 일베일 수도 있다. 하지만 거기에 세대적 혐의를 씌우면 해법은 역시 단축 마라톤대회 말고 없다. 일베의 모습은 중2의 카카오스토리에서도 현전하지만, 일베를 꾸짖는 우리 사회 곳곳에 편재(遍在)하는 유비쿼터스는 아닐까. 다만, 일베만큼 노골적인 표정은 짓지 않을 뿐이다.

온라인 독점 ‘깨시민’의 대칭적 거울상

노무현 전 대통령을 조롱하고 희화화하는 것에 대한 비판에 일베는 “너희들도 똑같이 하지 않느냐”고 반박한다. 이명박 전 대통령에 대한 ‘쥐박이’ 호칭이나 쥐 이미지를 합성한 각종 패러디물 등을 이르는 말이다. 시간을 거슬러 오르면, 2004년 여성이 침대에 모로 누운 장면의 영화 <해피엔드> 포스터에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표의 얼굴 사진을 합성한 패러디 그림을 만날 수도 있다. 이런 표현물이 문제가 되는 건 표현 수위의 과도함이 아니다.

2011년 10월 <나는 꼼수다>(나꼼수) 팀의 김용민은 이명박 당시 대통령의 혼외아 관련 의혹을 제기하며 “눈 찢어진 아이를 조만간 공개하겠다”고 말했다. 주장의 사실 여부도 그렇지만, 더 문제가 된 것은 어린아이에 대한 외모 비하였다. 수감된 정봉주 전 의원을 응원하기 위한 비키니 차림 여성 사진에서 비화된 ‘나꼼수 코피’ 사태 와중에 김어준은 “생물학적 완성도에 감탄했다”고 말했다. 지식인의 언어로 과포장했으나, 여성에 대한 성적·우생학적 대상화였다.

극한의 대립관계인 것처럼 보이는 진보와 보수 양쪽에서, 구체적인 대상은 다르지만 사회적 약자에 대한 대상화, 차별, 비하가 함께 목격되는 이유는 뭘까. 중요한 건 정도와 빈도의 차이가 아니다. 보수가 그것을 드러내놓고 정당화한다는 점에서 뻔뻔하거나 무지하다면, 진보는 무의식적으로 노출하거나 노련하게 미학화한다는 점에서 외설적이다. 핵심적인 차이는 그것이다. 일베의 활동 범위가 철저히 온라인으로 한정되고 일베 출현 이전까지 진보가 온라인을 독점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일베의 양태는 이른바 ‘깨시민’의 대칭적 거울상인지 모른다.

문제의 원인을 우리 사회의 낮은 성숙도에서 찾는다면 해법은 의외로 간단해진다. ‘계몽’하면 된다. 하지만 사정은 단순하지 않다. 계몽 장소인 담론장을 그들이 지배하기 때문이다. 계몽의 대상이 계몽의 주체이기도 하다. 원인과 결과가 되먹임하는 구조다. 그렇다면 일베만 문제시하는 데 그쳐서는 답이 없다. 이른바 민주·진보에 대해 낯설게 물어야 한다. 중2병에 대해 단축 마라톤대회라는 처방을 내리는 어리석음을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역학적 추적이 필요하듯이, 일베의 계보뿐 아니라 민주·진보 세력의 계보까지 먼 데서부터 찾아야 한다.

엘리트주의로 점철된 교육 개혁

노무현 전 대통령 임기 마지막 해인 2007년 봄, 국립 서울대에 이어 일부 유력 사립대에서 동시에 ‘3불제’(본고사·고교등급제·기여입학제 금지) 폐지를 요구하고 나섰다. 몇몇 대학은 국제화 시대에 대학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악법 중 악법이 3불제라고 주장했다. 겉으로는 대학 경쟁력 제고를 내세웠지만, 이미 음성적인 고교등급제로 특목고와 강남 8학군에 체계적으로 특혜를 부여해오던 것을 이젠 대놓고 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노무현 정부는 대한민국의 공교육을 지켜내겠다며 성전을 선포했으나, 싸움은 곧 흐지부지 끝나고 말았다.

노 전 대통령은 당시 이런 말을 남겼다. “(3불제를 폐지하면) 가난한 사람들은 항구적으로 가난을 대물림해야 하고 굳어져버린다. 교육에 의해 계층 이동할 기회를 상실할 수 있다. (중략) 합리적으로 상위 1% 정도 선발할 수 있을 정도면 되지 이를 또 1000분의 1로 나눠서 우열을 가리려고 한다.” 얼핏 교육 평등을 강조하는 말 같고, 고졸 출신 대통령의 입지전을 떠올리게도 한다. 부모의 자원 등 그 어떤 우연한 배경도 경쟁의 변수에서 배제해야 한다는 입장에서는 그의 이념적 정체성이 엿보인다.

하지만 한국에서 교육 평등의 이념은 진보의 고유 영역이 아니다. 3불제의 핵심인 고교평준화를 도입한 건 다름 아닌 박정희 전 대통령이었다. 자신의 외아들이 명문고에 입학하지 못하자 고교 간 서열을 없애기 위해 이 제도를 도입했다는 설이 유력하지만, 적어도 그는 제도를 바꾸는 것보다 훨씬 수월한 부정입학은 선택하지 않았다. 이명박 전 대통령도 교육 평등을 강조한 적이 있다. 2009년 “과거엔 없는 사람들도 공부만 열심히 하면 대학에 진학하고 취업해 가난의 대물림을 끊을 수 있었다. 서민계층이 체감할 확실한 로드맵을 갖춘 사교육비 경감 방안 마련에 속도를 내라”고 교육부 장관을 다그쳤다.

이 세 대통령은 말뿐이든 정책으로든 교육 평등을 강조했다. 교육 평등이 이들의 대립하는 이념을 횡단하는 이유는 뭘까. 이들이 교육 평등을 하나같이 공정 경쟁의 문제로 바라봤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교육은 국가 공동체를 위한 공적 투자가 아니라 미래 자원의 사적 분배를 둘러싼 제로섬 게임이다. 입시는 제로섬 게임의 하드코어이고, 입시제도는 제로섬 게임의 룰이다. 자원을 어떻게 분배할 것인지의 문제는 늘 ‘누구나 같은 값에 복권을 살 수 있어야 한다’는 당위 뒤에 가려졌다.

이들은 가난한 사람, 없는 사람을 하나의 계급적 정체성으로 연대하는 주체들이 아니라 ‘탈출’이라는 자기 부정의 욕망을 품은 분열된 타자 집단으로 표상하는 점에서도 인식을 공유한다. 앞서 노무현 전 대통령의 말이 함축하고 있는 것은 엘리트주의다. 개인의 실력으로 우열을 겨루는 것이 교육이다. 거기서 살아남은 상위 1%는 엘리트다. 99%는 나머지다. ‘나머지’가 되지 않기 위해 약자여, 개천에서 난 용이 되어라! 이른바 민주 정부 10년 동안 이룬 각종 ‘교육개혁’도 이 틀을 벗어난 적이 없다. 이를테면 특목고 문제 역시 언제나 ‘계급장 떼고 붙자’ 식으로 다루었다. 마지막에 남는 건 오로지 힘의 우열이다.

구한말 계몽주의 엘리트들의 사회진화론

엘리트는 패권적 카르텔을 형성하기 십상이지만, 사회변혁을 꿈꾸는 것 역시 그들이다. 그들은 자신이 속한 사회의 ‘수준’을 중시한다. 이 점에서 그들은 현실 유지를 위해 문제를 부분 보수하려는 보수주의나 사회의 타락상 위에서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귀족주의와 구별된다. 그들이 사회 수준을 견인하려는 이유는 그들의 준거가 외부에 있기 때문이다. 이념에 따라 미국이 될 수 있고, 서유럽이나 북유럽이 될 수도 있다. 한때는 소비에트가 누군가의 준거이기도 했다. 한국은 그들보다 훨씬 낮은 수준이었다. 사회 수준을 견인하려면 인민의 수준도 함께 끌어올려야 한다. ‘계몽’은 엘리트의 윤리로 내면화한다.

구한말로 거슬러가보자. 개화파를 비롯해 구한말 계몽주의 지식인들은 19세기 영국 철학자 허버트 스펜서의 사회진화론을 적극적으로 수용했다. 거칠게 정리하면, 사회진화론은 생물학적 진화론처럼 인류 사회 또한 끝없는 경쟁을 통해 적자만 살아남고, 그것이 곧 사회가 진보하는 길이라고 믿는 사상이다. 민족이나 국가가 무한경쟁을 벌이는 건 피할 수 없는 법칙이고, 거기에 적응해 살아남으려면 힘을 길러야 하며, 힘을 기르려면 인민이 계몽되어야 한다는 연역적 인식이 당대 엘리트 지식인에게 자리 잡은 것이다.

“갑오개혁의 이념가라 할 유길준이나 일본과 같은 강력한 근대국가 만들기를 바랐던 1900년대의 계몽주의자들, 조선인들도 하루빨리 일본인 못지않게 ‘문명인’이 되기를 바랐던 식민지 시대의 제도권 지식인들은 (중략) 약자를 당연히 도태시키는 ‘힘’에 입각한 ‘문명’이 새로운 지배적 이야기가 된 것이다.”(박노자, <나는 폭력의 세기를 고발한다- 박노자의 한국적 근대 만들기>, 인물과사상사, 2005, 13쪽)

우리는 친일파 이광수가 독립운동가 안창호를 사숙했다는 사실을 모르거나 등한시한다.

“안창호는 미국이나 유럽의 기독교적 국민국가들을 모델로 한 국민 집단과 정치 체제를 추구했던 인종주의로부터 비교적 자유롭고, 자유주의에 비교적 가까웠던 독립운동가였다. 반면에, 그의 제자를 자임했던 이광수는 1930년대 초부터 일본식 ‘동원 체제’를 이상시하고 조선 민족이 살아남으려면 ‘위대한 일본 민족’에 동화돼야 한다는 ‘천황의 신민형 내셔널리즘’으로 악명을 얻은 친일파였다. 그러나 근대적 ‘힘’의 근본적 성격 문제에 관한 한 그렇게도 다른 두 사람의 목소리가 거의 하나로 들린다.”(같은 책 14쪽)

안창호와 이광수의 관계를 오늘날 도식에 배치하면 ‘진보-보수’에 정확히 맞아떨어질 것이다. 이 두 사람의 낯선 친연성을 설명할 개념 역시 사회진화론 말고는 없다. 문명으로 가는 길에 가장 필요한 것은 힘이고, 다만 그 방법론이 서로 달랐을 뿐이다. 또한 이광수에게서 보듯, 사회진화론은 당대 계몽주의 지식인 가운데 상당수가 친일파의 길을 간 사실에 대한 유력한 설명 수단이기도 하다. 그들의 행태는 변절이나 전향이 아닌 내적 일관성의 유지는 아닐까. 이광수는 ‘소신 친일파’였다.

그들 가운데 다시 상당수가 식민지 귀족의 삶을 누린 사실에서도 모순은 없다. 어차피 그들에게 인민은 대상이었고, 계몽은 수단이었다. 인민을 계몽하고 민족 독립의 의지를 고양했다는 <독립신문>은 첨정권을 주창하되 결코 보통선거권까지 밀고 나아가는 법이 없었다. 왕권에 도전하면서도 의병 활동 같은 민의 저항권은 결코 인정하지 않았다. 동학군을 비도로 몰아세우며 외국군을 불러들여서라도 무력으로 진압할 것을 요구했다. <독립신문>의 사상을 연구한 정치학자 이나미는 이 신문의 정체성을 민족주의도 민주주의도 아닌 자유주의에서 찾는다.2 여기서 자유주의는 사회진화론적 자유주의다.

민주·진보 진영에 전승된 힘의 욕망

민주·진보 세력이 지금까지 보여준 여러 행태는 구한말 계몽주의 지식인들의 그것과 징후적으로 겹친다. 한국 사회에서 신자유주의라는 새로운 사회진화론적 자유주의 논리가 본격적으로 제도화한 시기는 이른바 민주화 정부 10년이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은 부국강병의 논리로 홍보되고 강제되었다. 미국의 이라크 침략 때 두 차례 한국군을 파병한 것도, 평택 대추리 미군기지 확장 반대 운동을 군까지 동원해 진압한 것도 그때였다. 자립형 사립고, 국제중 등 평준화의 근간을 흔드는 제도가 도입된 것도 그 10년 사이다. 지난해 대선 때 참정권을 행사했다고 노동자 후보들을 비난하고, 50대보다 참정권을 덜 행사했다고 20대를 비난한 것은 민주화 정부의 재림을 기획한 이들이다.

철학자 김상봉 전남대 교수는 2009년 부마항쟁 30주년을 맞아 열린 한 토론회에서 진보 진영조차 부마항쟁을 망각하고 있는 것과 박정희 부활의 상관관계를 ‘힘의 욕망’이라는 열쇳말로 매우 인상 깊게 분석했다. 요약하면 이렇다.

진보 진영은 광주의 대학살을 시작으로 1980년대를 관통하며 분노와 증오를 내면화한다. 분노와 증오는 학살자를 이기기 위한 힘에 대한 욕망으로 전화된다. 1987년, 독재정권을 완전히 종식시키지 못했지만 자기 힘으로 지배 권력을 누르고 민주주의를 쟁취하는 경험을 얻는다. 그러나 승리의 관성도, 불완전한 승리의 기억도 힘에 대한 욕망을 더욱 부추긴다. 그리고 1990년대 이후 ‘부자 되세요’로 상징되는 힘의 욕망이 지배적 정념이 되고, 진보 진영도 그 스노비즘의 흐름에 적극 동승한다. 박정희는 그런 힘의 욕망에 의해 한국 사회에 다시 호출된다. 그가 바로 한국 근현대사에서 힘의 화신이었으므로.

구한말 계몽주의 엘리트들의 사회진화론은 100년의 세월을 건너 오늘날 민주·진보 진영에 전승되었다. 후대는 그 사상의 알속인 근대적 힘의 논리뿐 아니라 그 부산물인 약자에 대한 대상화·수단화, 우생학까지 승계했다. 민족 독립과 민주주의는 표면상 둘 다 사회를 진보시키려는 준거적 목표이지만, 같은 힘의 논리를 따르는 친일이나 독재의 대칭적 거울상이기도 하다. 양쪽은 게임의 룰을 놓고 대립할 뿐 서로 가역적이기까지 하다. 그러면서도 정작 계몽 대상인 약자에게는 철저히 폐쇄적이다. 이 사실을 뒤늦게 감지한 약자들은 지금 그 거울에 돌을 던져 균열을 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금이 간 거울은 약자들의 모습까지 파편화해 일그러져 보이게 한다. 중2병과 일베는 그 거울이 어지럽게 난반사한 또 하나의 상인지도 모른다.

“예전에는 아이들을 괴롭히는 일진들이 보기 싫었는데, 이젠 걔들보다 더 싫은 애들이 생겼어요. 따로 놓고 보면 착한 것 같은데, 일진들이 힘없고 좀 뒤처지는 애들 괴롭히는 걸 뒤에서 보면서 킥킥 대고, 심지어 똑같은 짓을 따라하는 애들이 많아요. 주로 남자애들이 그래요. 그렇게 해서 누구한테 인정이라도 받고 싶은 건지….”(ㅅ양)

안영춘편집장 jona@hani.co.kr

1 박권일·최태섭, ‘덕후와 잉여- 중2병’, <나·들> 8호, 2013년 6월호 참조.

2 이나미, <한국 자유주의의 기원>, 책세상,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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