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3.09.01 15:49 수정 : 2013.09.03 16:23

‘일베!’

그를 보자 조건반사처럼 떠오른 단어였다. 아무렇게나 손으로 빗어 넘긴 짧은 머리, 잠에서 막 깬 듯한 부스스한 얼굴에 듬성듬성 자란 수염…. 인터뷰하는 자리인데 반바지에 티셔츠, 맨발에 슬리퍼 차림이라니. 남성성을 과신하고 마초적 성향을 즐길 것 같은 전형적인 외모다. 역시 그는 ‘일베’인 걸까?

일베형 외모에 대한 규정은 따로 없다. 하지만 일베에 대해 알려진 여러 특성에 비춰봤을 때, 그의 겉모습은 그 특성을 시각화한 것처럼 느껴졌다. 일베는 어떤 집단인가. 스스로를 ‘병신’, ‘베츙이’라 비하하고 반말과 욕설, 성적 농담을 즐긴다. 호남과 진보, 노무현 전 대통령을 ‘홍어’, ‘민주화’, ‘운지’, ‘노알라’로 조롱한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쩔뚝이’라고 부른다. 여성을 ‘김치녀’, ‘보슬아치’로 적대시하고, 이주노동자를 폄훼한다. 남들에게만 그러는 것도 아니다. 자신의 외모를 비롯한 신체에 대해 열등감을 표출한다.  

뱅크시의 그래피티.
‘일베스러운’ 일베의 등장

일베 회원 한민재(가명·25)씨1와의 만남은 ‘극적인 우연’ 끝에 성사됐다. 그를 만나기 전까지 ‘나의 일베 이야기’를 들려줄 이를 찾는 일은 녹록지 않았다. 수소문 끝에 찾아낸 몇몇 일베 회원에게 인터뷰를 요청했지만, 번번이 퇴짜를 맞았다. 실패의 그림자가 짙어갈 무렵, 우연히 민재씨 친구 되는 이와 합석하게 되었고, 그에게서 민재씨를 소개받았다.

민재씨와의 첫 대면은 지난 8월 19일 낮 서울의 한 대학교 앞 카페에서 이뤄졌다. 그는 이 대학에서 언론학을 전공한다. “방송국 PD가 되어 지구 곳곳을 탐험하고 싶다”는 그는 학점과 취업을 고민하고 있었다. 연애에 관심이 많고 친구들과 술자리를 즐기며, 틈틈이 아르바이트하면서 생활비를 해결한다.

“피곤해 보이세요.”

“아… 어제 술을 좀 마셔서. 좀전에 일어났어요.”

“술 좋아하나 보죠?”

“네… 즐기는 편입니다. 낮에도 그렇고(마시고).”

쑥스럽게 웃는 그의 표정에서 순간 친근함이 엿보였다. 그의 말투는 경상도 특유의 사투리가 섞여 간결했지만, 점잖고 예의 발랐다.

‘어라~ 이게 아닌데….’

첫인상과 다른 그의 말투와 태도에 당황했다. 표정을 들킬까 재차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만나서 반갑습니다.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 뭘요… 그냥 제 생각을 얘기하려는 건데요.”

“인터뷰에 대한 두려움은 없으세요.”

“그런 건 없어요.”

“말씀한 내용만 가감 없이 담겠습니다.”

긴장한 나와 달리 그의 표정은 무덤덤했다. 타인의 시선도 크게 개의치 않는 눈치였다. 혹시 ‘일밍아웃’2을 해서일까. 그는 “친한 친구들은 알고 있다”고 했다.

“‘일베 하냐?’고 물으면, ‘일베 본다’고 얘기해요. 헤비 유저가 아니라서 ‘한다’ 대신 ‘본다’고 표현해요. 굳이 숨길 이유도, 거짓말할 필요도 없고요. 솔직히 그렇게 부끄럽지도 않아요. 일베를 욕하는 사람들이 이상한 거죠. 잘 알지도 못하면서 일부 편향적인 글이나 사진만 보고 일베를 욕하니까요. 학교 복도에서 마주친 친구들이 종종 제게 ‘일베충!’이라고 해요. 순간 얼굴이 달아오를 때도 있지만, 신경 쓰지 않겠다고 마음먹으면 금세 가라앉아요.”

디시에서 일베로 자연 이동

스물다섯, 이 평범해 보이는 청년은 어쩌다 일베를 하게 되었을까. 개연성이 가장 높은 건 출신지가 아닐까. 고향이 경남 ○○시란다. ‘그럼 그렇지’ 속으로 쾌재를 불러본다. 아무래도 다른 지역보다 일베에 호의적일 수밖에 없을 거다. 지역 성향이 일베하는 데 영향을 미쳤는지 물었다. 그는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제 또래 젊은이들은 지역감정 없어요. 할아버지께서 호남 사람한테 피해를 입었다고 말씀하시는 걸 어릴 때 듣긴 했어요. 미군부대 PX를 운영했는데, 전라도 사람이 일부러 불을 질러 큰 피해를 입은 적이 있다고 말이죠.”

“전라도 하면 괜히 싫겠어요?”

“하하, 그건 아닙니다. 저나 제 친구들은 그런 거 없어요. 어른 세대는 모르겠지만.”

그가 일베 사이트에 접속한 건 의도적이지도, 자발적이지도 않았다. 그는 일베에서 활동하기 전부터 ‘디시인사이드’, ‘오유’(오늘의 유머), ‘웃긴대학’, ‘알지롱’ 같은 유머 사이트의 유저였다. 일베는 지난해 초부터 본격적으로 접속했다. 디시인사이드 속 일간베스트 자료를 모아둔 커뮤니티가 ‘일베’로 독립하면서 자연스럽게 따라갔다. 그는 특히 일베 내 ‘정보글’을 주로 검색했다. “우주와 행성, 제2차 세계대전, 미제사건, 특정 가수의 일대기 등 전문 지식을 다룬 게시물이 유독 많았거든요. 지금처럼 정치색이 뚜렷하지 않았고요.”

그의 기억대로라면, 일베가 정치 사이트 성격을 띠게 된 건 지난해 7월쯤부터다. 이후 정보글이 대거 사라졌지만 1년6개월이 흐른 지금까지 그의 주요 활동 무대는 변함없이 일베다. “오유보다 일베가 더 재밌고 접속자가 많아, 실시간 게시글이 많이 올라올 뿐 아니라 유익한 정보글이 더 많다”며 “무엇보다 오유와 달리 ‘척’하지 않는 문화, 생각이 다르다고 배척하지 않는 분위기가 와닿았다”고 했다.

“노 전 대통령이 살아 있을 땐 오유도 그를 옹호하지 않았어요. 죽고 나서야 진정한 대통령이라며 우상화했죠.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180도 바뀌는 것을 보고 실망했어요.

잘난 척, 지식인인 척 포장하니까.”

나의 상상이 점프컷으로 튀었다. 그럼 혹시 님은 진보 성향? 그는 손사래부터 쳤다.

“보수이고 새누리당 쪽에 가깝죠. 야당의 포퓰리즘식 복지정책에 반대하고, 강경한 대북정책을 지지합니다. 앞으로도 진보로 전향할 일 없고요. 반공주의자이고, 종북도 싫어합니다.”

그러나 그가 일베족이 된 데는 그의 정치 성향보다 일베 특유의 유희·놀이 문화의 영향이 더 커보였다. 그는 “오타쿠적 문화, 맛이 살짝 간 혹은 비틀린 놀이 문화가 일베에 있다”며 “나를 비롯한 10~ 20대 젊은 남성이 일베에 열광하는 건 그 때문”이라고 말했다. 다른 사이트와 달리 철저하게 익명성이 보장되는데다 일베에서는 ‘병신짓’해도 ‘병신’ 취급당하지 않는 것도 큰 매력이라고 했다.

“일베엔 ‘나도 병신 너도 병신’이라는 삼류의식 같은 게 있어요. 서로 반말을 쓰는데다, 잘난 체하지 않고, 잘 보이려 하지도 않아요. 까이면 까이는 거죠. 그래서 부담 없고 편해요. 한마디로 말해, 생각 없이 보면서 스트레스 풀기 좋은 사이트죠. 일종의 심심풀이 땅콩, 장난감….”

그런 부담 없는 놀이를 왜 익명으로 할까.

“주변에 일베 하는 친구들이 얼마나 되는 것 같아요?”

“5~10명 정도…. 서로 일베 하는 걸 알지만 대놓고 말하지는 않아요. 일밍아웃 안 해도 일베는 일베를 알아봅니다. 댓글에서 ‘ㅍㅌㅊ’, ‘ㅅㅌㅊ’, ‘ㅎㅌㅊ’, ‘ㅁㅈㅎ’, ‘ㅈㄱㅈ’, ‘ㅈㅈㅂ’, ‘ㅇㅂㄹ’3등을 자주 쓰면 ‘나 일베’란 뜻이에요. ‘광주는?’ 물었을 때, ‘광역시지’ 그러면 일베충이 아니에요. 반면

‘총기를 들고 일어난 또 하나의 폭동~’ 이러면 일베충입니다, 하하.”

일베 활동 하는 이들은 어떤 사람들인지 물었다. 그는 “제 또래인 20~30대도 많지만, 다양한 것 같다”고 했다. 학생이나 노무직도 있는가 하면 교수, 의사, 변호사 등 고학력·전문직 종사자도 꽤 되고, 젊은 사람뿐 아니라 나이 든 사람들도 상당하다고 한다.

일베가 급격히 커진 이유는 뭐라고 보는지 궁금했다.

그는 “인터넷은 진보에 점령된 지 오래고, 유일하게 보수 성향을 가진 이들이 모일 수 있는 공간이 일베”라며 “보수를 자처하는 이들, 그리고 젊은 남성, 일베에 호기심을 가진 10대들이 일베를 찾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레벨 욕심 내면 일베에 중독

그는 대선이 코앞이던 지난해 12월 무렵 일베에 회원으로 가입했다. 1년 남짓 ‘눈팅’만 하다가 직접 쓴 게시물을 일간베스트에 올리고 싶어서였다. 지금껏 쓴 게시물은 10여 개. 레벨은 2다.4 이 중 2개가 일베(추천 33개 이상)에 등극했다. 레벨을 높이려고 시도한 적은 없다. 일베의 레벨(1~25단계)은 ‘양날의 칼’일 수 있기 때문이다. “레벨에 욕심 내면

점점 자극적이고 비정상적인 것을 찾을 수밖에 없어요.”

‘극우’ 인터넷 문화를 자처하는 일베는 요즘 가장 ‘핫’한 키워드다. 이 배경엔 ‘레벨의 함정’이 한몫했다고 볼 수 있다. 가장 두드러지는 건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희화화와 조롱이다. 사자에 대한 모독은 용인의 수준을 넘어선다. 일베의 언어는 남성적·폭력적이며, 일탈적이다. 약자 공격과 신상털기엔 예외가 없다. 언론에서 논란이 된 가수 수지 성희롱, 6살 여아 강간 모의, 예비교사의 ‘로린이’ 발언, 가수 고 임윤택 모욕 등이 대표적이다. 민재씨는 이를 두고 “레벨 등급을 올리려는 욕심이 부추긴 측면이 없지 않다”면서도, ‘일베=반사회적·반인륜적’이라는 비판에서는 할 말이 많은 듯했다.

“인신공격하고 신상을 터는 건 인터넷에서 흔히 있는 일입니다. 일베만의 문화라 하고, 그래서 나쁘다고 하면 우린 억울하죠. 어느 사이트나 좋은 글과 나쁜 글이 공존합니다. 일탈과 외설은 ‘소라넷’ 같은 성인 사이트가 훨씬 심하죠. 처제랑 하고 싶다거나, 스와핑했다고 자랑도 하고….”

그가 하루에 일베를 하는 시간은 평균 1~2시간 남짓. 잠자리 들기 전 30분이나 대중교통 이용할 때는 물론이고, 수시로 스마트폰으로 일베 게시물을 검색한다. “인터넷은 잘 하지 않는 편인데, 접속하면 가장 먼저 일베부터 찾는다”며 “그런 정도면 중독 수준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단, 지금껏 일베에 정치 성향 글을 쓴 적은 없다. 일베가 된 자신의 글도 재미가 목적인 이른바 ‘먹방’, 수업 중 ‘직찍’ 등 유머러스한 글과 사진이다. 그는 “일베 회원 다수는 저처럼 게시글 눈팅하면서 재미를 좇는 편”이라며 “전직 대통령 비하 등 논란이 된 게시물은 실제로 많지 않고, 그런 게시물을 올리는 이들 역시 여느 커뮤니티처럼 많지 않다”고 했다. 일베의 성향과 특성을 우리 사회와 언론이 침소봉대하고 있다는 뜻으로 들렸다. 그는 일베의 정치성에 대해서는 한사코 부인하거나 사소한 것으로 평가했고, 결국 유희로 돌렸다.

“일베가 전직 대통령을 비하하고 조롱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잘못이죠. 하지만 노 대통령을 비하하더라도 정말 미워하거나 싫어서 그런 건 아닐 겁니다. 저도 노 대통령에 대한 반감은 없어요. 인간적으로 좋은 분이라고 생각해요. 저 같은 다수는 별 뜻 없이 관용어처럼 쓰는 걸 거예요. 일종의 유희죠. 한때 이명박 대통령을 ‘MB’, ‘명바기’, ‘쥐박이’라 하고, 전두환 대통령을 ‘문어 대가리’라 한 것처럼요. 일베만 나무라는 건 이중잣대죠. 언론과 사회는 우리의 이런 유희와 오락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있어요. 그냥 두면 소수의 문화로만 소비되거나 자연스럽게 잊힐 텐데 너무 호들갑 떠는 것 같아요.”

“민재씨도 노 전 대통령을 희화화하는 단어를 자주 쓰는 편인가요?”

“아니요. 다른 사람의 게시글을 보면서 웃고 넘기는 수준이죠.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조롱은 곧 잊힐 거예요. 유통기한이 이미 지났어요. 이제 재미 없더라고요. ‘문어대가리’, ‘쥐박이’가 잊힌 것처럼 말이죠.”

“다른 일베 회원들도 동의할까요.”

“아마….”

“일베는 ‘민주화’라는 용어도 비추천·하향평준화·획일화·몰락 등의 좋지 않은 의미로 사용하는데요.”

“역시 별 뜻 없이 사용하는 관용어라 할 수 있죠. 386 민주화 세대나 진보 세력을 향한 조롱, 야당인 민주당에 대한 반감의 뜻으로 쓰기 시작했죠. 처음에 왜 쓰게 됐는지는 저도 정확히 몰라요.”

지난 5월 일베는 5·18 민주화운동을 폭동으로 규정하고, 광주시민의 시신을 ‘홍어 택배’로 폄훼해서 빈축을 샀다. 그에게 이에 대한 생각을 물었다.

“홍어 택배는 일베가 너무 심했어요. 5·18은 고등학교 때 민주화운동이라고 배웠어요. 그때나 지금이나 가치 판단은 보류예요. 폭동인지 민주화운동인지 판단하기에는 제 지식이 아직 짧아요.”

“일베는 전두환·박정희 두 전직 대통령을 찬양하는데요.”

“저는 두 사람을 구분해서 생각합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쿠데타로 집권했고, 수많은 시민을 학살했습니다. 찬양만 할 수 없지요. 박 대통령은 독재를 했지만 경제개발 측면에서는 칭찬할 만합니다. 산업화 과정에서 다수를 위한 소수의 희생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일베 중에서 민재씨처럼 생각하는 이들은 얼마나 될까요.”

“글쎄요. 어느 정도 역사적 지식이 있는 이들이라면 저처럼 중립적인 가치판단을 하겠죠. 일베는 내 편이라도 깔 건 깝니다. 워낙 ‘인증’을 중시하고요.”

그는 대다수 일베 회원이 정보를 적절하게 취사 선택해 합리적으로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다고 믿는다. 또한 일베 내부의 자정 시스템을 신뢰한다고 덧붙였다. 문득 민재씨는 ‘일베충’으로 일반화할 수 있는 인물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근거는 이렇다. 레벨, 접속 시간, 게시글 수 등 모든 면에서 일베 내 활동이 미미하다. 레벨에 큰 욕심을 내지 않는다. 그러나 그는 “일베 회원 다수는 나처럼 활동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의 말대로라면 일베는 차라리 소수의 노출증과 다수의 관음증으로 구성된 공간이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 현실에서는 금욕적으로 행동하는 이들이 온라인이라는 가상 공간을 해방구 삼아 외설적인 페스티벌을 벌이는 것인지 모른다. 그가 앞에서 언급한 ‘소라넷’이 육체적 음란성이 유통되는 공간이라면 일베는 그것이 사회 현실의 이슈에 투사된 셈이다. 일베 운영진이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연결을 완벽하게 차단하려는 것도 그런 맥락에서 설명할 수 있다. 일베는 ‘번개’나 회원 간 친목 도모 행위도 ‘친목 밴(강퇴)’이라고 금지한다. 일베 회원은 대부분 오프라인에서 자신이 일베임을 밝히거나 드러내지 않는다. 일본의 ‘재특회’(재일한국인의 특권을 허용하지 않는 시민의 모임)와 달리 일베는 거리와 광장에 출몰하지 않는다.

일상에서 일베처럼 활동하면 왕따

“저뿐 아니라 일상에서 일베처럼 생활하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그랬다면 저부터 왕따당했을 겁니다. 일베룰에 맞춰 장난을 즐길 뿐이죠.”

그는 인터뷰 도중 자신의 보수성과 일베 활동의 정당성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하지만 인터뷰가 길어질수록 그는 정작 보수와 진보의 경계에서 아슬아슬하게 줄타기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박근혜 후보를 지지했지만, 지난해 대선 때는 투표를 안 했다. 야당 후보인 문재인 의원에 대한 평가도 후했다. “인간적으로 괜찮은 사람 같고, 새누리당 후보로 나왔다면 당선됐을 것”이라고 했다. 또 일베를 옹호하면서 비판했다. 특히 홍어 택배 사건에 대한 평가에서 더욱 두드러졌다. 그는 “죽은 사람을 모욕한 것은 잘못이다”면서 “10대들이 편견을 갖고 5·18을 바라보고 잘못된 판단을 할까 염려스럽다”고 말했다.

그는 어쩌다가 자신을 보수라는 정체성으로 인식했을까. 진보는 현 체제를 바꾸려고 하지만, 자신은 유지·순응하는 쪽을 지지한다고 했다.

“체제를 바꾸지 않고도 서로 노력해서 맞추면 잘살 수 있다고 믿고 있어요. 우리 집이 잘사는 건 아니에요. 중하위쯤? 그렇다고 해서 복지 혜택을 더 받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무상급식도 반대했고요.”

진보 쪽에 서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그가 대학에 입학할 무렵 ‘반값 등록금’이 화두였다. 그는 “동참하지 않았다”고 했다. 학자금 대출로 학비를 충당하는 형편이지만, 시위할 시간에 공부해서 장학금 받는 게 낫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국가에서 등록금까지 대출해줄 필요가 있습니까?”

“스스로 애국자라고 생각하세요.”

“애국자라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다만, 전쟁이 난다면 당장 뛰쳐나가 싸울 것 같아요. 전 우리나라를 사랑하거든요.”

일베는 학생과 노동자들의 집회와 파업을 비난한다.

문득 그의 생각이 궁금해졌다. “그 자체는 나쁘게 생각하지 않는다”며 “ 다만 본인의 의사와 무관하게 제3자를 집회나 파업에 끌어들이는 것은 잘못이라고 생각한다”는 답이 돌아왔다. 역시나 기존 일베에 대한 시각에 부합하지 않는다. 그는 나름대로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인물이다. 이런 모습은 여성과 이주노동자에 대한 시각에서도 발견됐다.

“일베는 여성과 이주노동자를 욕하는데요.”

“여성 전체를 비난하는 것은 아니고 잘못된 생각을 가진 ‘김치녀’들만 욕합니다. 제 주변엔 김치녀가 없어요. 하지만 주변에 자기 돈은 안 쓰면서 남성의 경제력에 기대려는 여성들이 있는 것 같아요. 그건 그렇고, 여성을 김치녀라고 하는 건 일베만이 아니잖아요? 이주노동자의 경우 범죄를 저지르는 조선족을 싫어합니다.”

일상에서 마초성을 드러내거나 여성을 함부로 대하는지 물었다. 그는 “여성에게도 할 말은 하는 편이지만, 폄훼하거나 비하하진 않는다”며 “그랬다면 연애도 못 해봤을 것이고, 벌써 왕따당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혼란스럽지 않으세요.”

“전혀요. 인터넷과 현실은 분명히 다른 공간이잖아요.”

민재씨는 한국 사회의 전형적인 보수가 아니라 개인주의자에 가까웠다. 사회나 개인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법과 제도보다는 개인의 노력과 실천을 중시했다. 그는 아직도 ‘개천에서 용이 난다’고 믿고 있었다.

“개인의 노력으로 부와 명예를 충분히 얻을 수 있어요. 제가 그 본보기인걸요. (그는 군대 제대 뒤 2년간의 독학으로 대학입시에 성공했다) 제 꿈인 방송국 PD도 제가 어떻게 준비하느냐에 달렸고요.”

그는 사회 부적응자도 아니고, 현실에서의 일탈을 꿈꾸지도 않으며, 소외받는 약자도 아니었다. 사회에 대한 불만이나 일탈 욕망을 일베에서 해소하려는 거창한 의도도 없었다. 우리 사회에 대한 그의 인식은 부분 부정과 조건절이 달린 부분 긍정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부분 긍정과 조건부 부정일 때도 있었다. 그리고 거기에는 나름의 사실적 근거와 논리가 함께했다. 일상에서 흔하게, 심지어 진보를 자처하는 이들에게서도 부분적으로 찾아볼 수 있는 특성이었다. 그런 존재가 일상에서 흔하다는 건 일베의 세가 무섭게 불어날 수 있는 조건의 일부를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민재씨는 말한다. “대다수의 일베가 나와 같다”고.

지난 8월 24일 일베에는 ‘일베 오유 둘다 해본 입장에서’란 제목의 게시글이 올랐다.

“오유 애들보다 일베 애들이 더 순수하다. 그리고 오유보단 일베가 글 쓰는 게 더 자유롭다. 오유는 자기네들 의견 아니면 다 묵살한다. … 오늘 오유 탈퇴하고 일베인 됐다. 다시는 오유 안 간다.”

민재씨도 오유에서 일베로 갈아탔다. 그것을 ‘전향’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둘은 어쩌면 종이 한 장 차이다. 그가 일베충이 된 건 유희를 향한 욕망이 강하고, 진보가 주축이 된 온라인 문화에 대한 반감이 있기 때문이다. 진보적 성향에서 비켜선, 보수를 자처하는 개인주의적 성향을 가진 이들이 일베의 다수라면, 일베는 하나의 신드롬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문제는 부분 긍정이나 부분 부정의 태도를 가진 다수가 현실에서 자신의 정치적 영토를 확보할 가능성이 크지 않다는 데 있다. 그럴수록 그들은 온라인상에서 다른 유희적 대안 공간이 보이면 언제든 갈아탈 것이다. 그 공간은 일베보다 더 극단적인 양태를 띨 가능성이 크다.

1 그는 가명을 쓰고 사진을 찍지 않는 조건으로 인터뷰에 응했다.

2 일베 회원임을 공개하는 것.

3 ‘ㅍㅌㅊ’, ‘ㅅㅌㅊ’, ‘ㅎㅌㅊ’, ‘ㅁㅈㅎ’, ‘ㅈㄱㅈ’, ‘ㅈㅈㅂ’, ‘ㅇㅂㄹ’ 순서대로 평타취(평균), 상타취(평균 이상), 하타취(평균 이하), 민주화, 좆고전(정말 오래된 게시물. 뒷북칠 때), 좆중복(똑같은 것 또 올렸을 때), 일베로를 의미한다.

4 일베의 레벨은 1~25등급이 있다. 추천을 많이 받아 일베에 오르면 레벨이 오르고, 비추천을 받으면 레벨이 떨어진다.

글 김미영 기자 kimm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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