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3.09.01 14:56 수정 : 2013.09.03 15:52

‘의원 나리님하! 니 돈 주고 집사를 고용해라. 18대 때 모 의원은 자기 애 학원 데려다 주는 거 수행(비서)한테 시키고 과외도 가르치라고 했다지.’

‘당신이 할 일은 좀 당신이 할 수 없나? 다른 직원한테 미루지 말고…. 이 연봉 7천만 원짜리 ‘잉여’ 보좌관님아!’

‘우리 무능력한 비서관님은 어딜 가셨나. 뭔 놈의 점심시간이 3시간이 넘어….’

‘하루 종일 해도 표도 안 나는 잡무에 일평균 10시간 이상 일하면 인턴 급여는 시급 3500~4천 원꼴….’

국회의원 보좌진은 사실상 밥줄을 쥐고 있는 ‘영감’ 모시기 경쟁을 벌이느라 궂은일도 마다하지 않는다. 사진은 2009년 12월 21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회의장을 점거한 민주당 의원들을 지원하는 보좌진의 모습.한겨레 김봉규
지난해 10월 개설된 ‘국회 옆 대나무숲’(@bamboo1501712)이라는 트위터 계정에 올라온 글이다. 국회의원회관의 9급 비서와 인턴 직원들이 들락거리는 이곳에선 일반인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또 다른 ‘여의도 정치’의 속살이 드러난다. 익명이 보장되기 때문에 말단 직원들의 속시원한 ‘뒷담화’로 타임라인을 채우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이들의 뒷담화 대상이 그야말로 다양하다는 것이다. 국회의원뿐 아니라 같은 의원실에서 일하는 보좌관·비서관 등이 함께 도마에 오른다. 보통 국회의원 1명의 보좌진은 인턴 직원 2명을 포함해 9명이다. 같은 보좌진이라도 선임 보좌관과 인턴 직원 간의 서열은 하늘과 땅 차이다. 그 안에서도 ‘갑을 관계’가 존재하는 셈이다.

최근 대기업 간부에게 골프 모임 스폰서를 요구한 30대 비서관의 ‘갑질’을 한 언론이 보도1해, 보좌진이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상당수 보좌진이 “언론 보도가 침소봉대됐다”며 반발했지만, 국회의원의 권력을 등에 업고 각종 이권을 챙기려는 이들이 없지 않다. 만 10년 넘게 국회의원회관에서 일한 전직 보좌관 정수철(가명·43)씨는 “우리끼리는 영감(의원) 빼놓고는 무서운 게 없는 사람들이 보좌관이라는 얘기를 한다”고 말했다. 일명 국회의원의 ‘그림자’로 불리는 보좌진, 그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보좌진은 국회의원의 각종 입법 및 상임위 활동, 국정감사 등 의원 업무 대부분을 보좌한다. 의원의 지역구 관리에 동원되거나 기자·민원인 등을 상대하는 일도 보좌진 몫이다. 심지어 의원의 집안일 등 사적인 업무에 투입되면서 ‘집사’ 역할까지 한다는 이야기도 심심찮게 들려온다.

의원실마다 배속된 9명의 보좌진은 4급(보좌관) 2명, 5급(비서관) 2명, 6·7·9급(비서) 각 1명으로 구성된다. 일반적으로 4급 보좌관이 업무를 총괄하고, 5~6급이 실무를 담당한다. 방마다 차이는 있지만 운전까지 겸하는 수행 비서가 7급, 의원실 살림살이를 도맡는 여비서가 9급이다. 15대 국회부터 보좌진으로 일해온, 새누리당 이종훈 의원실의 김성현(44) 보좌관은 “5급 비서관이 축구선수로 치면 ‘미드필더’ 격으로 가장 왕성한 활동을 한다”며 “업무량이 늘어나면서 최근 인턴 2명을 추가로 채용했다”고 말한다. 바깥에서는 국회가 하는 일 없이 싸움만 벌인다는 인식이 강하기 때문에 정직원을 늘리면 우호적 여론이 조성될 리 만무하다. 따라서 인턴 채용을 상시화한다.

공격수 보좌관·미드필더 비서관, 그 외 수비수

보좌진의 신분은 공식적으로 국회 사무처 소속 ‘별정직 공무원’이다. 그렇지만 실질적으로는 9명의 보좌진 모두 국회의원 소속이나 다름없다. 의원의 의중에 따라 채용이나 해고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300개의 별도 회사’가 경쟁하는 곳이 국회라는 말은 이런 맥락에서 나온다. 인사권이 의원 한 사람에게 집중돼 있다 보니 의원의 친인척이나 선거 때 도와준 사람에 대한 ‘보은’ 차원의 채용도 종종 이루어진다.

해고 절차도 간단하다. 의원이 ‘면직요청서’ 한 장만 국회 사무처에 내면 바로 잘린다. 이 때문에 보좌진 사이에서는 의원 임기에 맞춘 4년짜리 비정규직도 못 되는 ‘하루살이’ 인생에 불과하다며 자조 섞인 푸념이 나온다. 임기 동안 수십 명을 교체하는 등 유독 보좌진을 자주 바꾸는 의원 명단이 일종의 ‘블랙리스트’로 의원회관을 돌기도 한다.

의원실에 들어오려는 사람은 크게 두 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우선 보좌관을 징검다리 삼아 ‘배지’(의원)를 달려는 ‘가신형’ 그룹이 있다. 흔히 ‘측근’으로 불리는 이들의 목표는 공천을 받는 것이다. 보좌관 출신인 박관용 전 국회의장 등이 롤모델이다. 당별로 있는 보좌진협의회의 숙원사업도 동일하다. ‘숙원사업’이란 표현에서 알 수 있듯이 공천받는 게 쉽지 않다.

김성현 보좌관은 “아직 여의도 정치에서 ‘보좌관은 보좌관일 뿐’이라는 인식이 강해 바깥에 나가서 다른 경력을 쌓고 오지 않으면 공천받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라며 “그래서 자신이 속한 당이 정권을 잡으면 청와대 근무 경력을 쌓고 오려는 이들도 적지 않다”고 말한다. 정무적 활동에 강한 이들은 의원의 지역구 선거뿐 아니라 지방 선거와 대통령 선거 등에 종종 투입된다.

다음으로 주로 특정 상임위를 지망해 정책 전문성을 쌓아가는 ‘직업형’(혹은 생계형) 그룹이 있다. 의원실 혹은 여·야를 옮겨다니는 이들은 알음알음 채용되는 가신형과 달리 공채를 통해 국회에 들어오는 경우가 많다. 국회 홈페이지에 보좌진 공채 공지가 뜨면 각 분야 전문가를 포함해 수백 명의 지원자가 몰린다. 의원들의 상임위 활동 비중이 커지고 시민단체의 감시가 활발해진 16대 국회부터 이런 유형의 보좌진이 많아졌다. 이른바 ‘직업형’ 보좌관이던 정수철씨는 “모시던 의원이 낙선하거나 상임위를 바꾸는 바람에 10년 동안 5명의 의원을 보좌했다”며 “중간중간에 3개월 정도씩 집에서 쉴 때는 막막했다”고 한다.

보좌진 9명에 지급되는 총 인건비는 연간 4억 원 정도 된다. 최고 연봉을 받는 이들은 당연히 4급 보좌관(세전 7149만 원)이다. 맨 아래 직급인 인턴 직원들은 월 130만 원 정도에 그친다. 의원실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서열이 낮을수록 업무가 잡다해진다. 7·9급 비서와 인턴 등 낮은 직급에 있는 이들은 때때로 ‘가방모찌’, ‘커피셔틀’ 등의 표현으로 스스로를 비하한다.

한때 ‘국회 옆 대나무숲’에는 과도하게 집안일을 시키는 의원들을 꼬집는 글들이 올라왔다. ‘의원 식구들 여름휴가 가서 집이 빌 때 개 밥 주라고 해서 출근한 적 있음’, ‘의원 집 이사할 때 이삿짐 나르고 집 청소한 적 있음’, ‘명절 때 전 부치러 간 적 있음’, ‘의원 사모님이 빌려주고 떼인 돈 받으러 간 적 있음’ 등.  

임기 첫해 국감 뒤 ‘보좌진 장’이 선다

국회의원 보좌진이 1년 중 가장 바쁠 때는 국정감사(국감) 기간이다. 해마다 9월 중·하순 혹은 10월 초부터 3주가량 이루어지는 국감을 준비하느라 8월부터 야근을 밥 먹듯 하고 집에 들어가지 못하는 날이 부지기수다.

국감에서 보좌진의 핵심 업무는 자료 제출을 둘러싸고 피감기관 공무원들과 팽팽한 신경전을 벌이는 것으로 압축된다. 의원실에서 요구하는 자료를 순순히 내놓는 피감기관은 거의 없다.

김성현 보좌관은 “질의를 준비하기 위해 필요한 자료를 요청하면 일단 못 주겠다고 버티거나 부실하게 제출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이를 두고 의원회관에선 “공무원이 보좌관 ‘간’을 보는 것”이라는 뒷담화가 나온다.

17대 국회에서 민주노동당 최순영 의원(당시 교육위)은 경북도교육청 교구 납품 비리와 관련해 1.5t 트럭 한 대 분량(A4 용지 30만 장)의 자료를 요구해 입길에 올랐다. ‘해당 기관 공무원이 복사하다가 기절했다’는 전설적 이야기가 아직도 의원회관을 떠돌아다닌다. 국감 질의에 필요한 정당한 자료 요청이 많지만 일종의 ‘군기잡기’ 성격도 있다. 일부 의원실에서는 의원의 민원사항을 해결하기 위한 압박 수단으로 무리한 자료를 요구하는 일도 종종 있다는 게 국회 업무를 오래해온 공무원들의 전언이다.

의원실의 자료 요청에 “공개 대상 자료가 아니다”, “외부 유출이 곤란하다”는 등의 이유로 버텨온 피감기관에 다시 자료를 받을 수 있을 만한 근거를 들이밀면, 아예 기관장이 의원한테 직접 사정해서 유야무야시킬 때도 있다. 보좌관들이 가장 맥 빠지는 경우다. 피감기관의 읍소 작전은 다양하다. “서면 질의로 바꿔달라”, “보도자료는 내지 말아달라”고 사정하고, 정 안 되면 “질의를 좀 살살해달라”는 식으로 눈치 작전을 편다.

‘윗선’(의원·기관장)에서 국감 질의가 봉합되기도 한다. 보좌진이 기껏 자료를 준비했는데 막상 의원이 나서지 않는 것이다. 특히 이런 일은 여당 의원 안에서 벌어지는데, 이 과정에서 화가 난 일부 보좌진은 야당 의원에게 자료를 넘기는 경우도 있다.

보좌진이 자료 제출에 비협조적인 피감기관을 압박하는 수단은 국감에서 의원들이 제기할 ‘질의 요지’다. 이를 최대한 늦게 넘겨주면서 해당 기관을 곤란하게 만드는 것이다. 국감 전에 의원실 앞에서 날밤 새우며 대기하는 공무원들 역할의 상당 부분이 질의 요지 사전 입수다. 나이 많은 의원일수록 보좌관들이 써준 질의 요지를 그대로 읽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유용하게 써먹을 수 있다.

대체로 의원 임기가 시작되는 첫해 국감은 어느 해보다 치열한 전쟁이 벌어진다. 정수철 전 보좌관은 “첫해 국감 결과는 보좌진의 성적표나 다름없다”며 “국감이 끝나면 보좌진의 30%가량이 물갈이될 정도”라고 말한다. 국감을 전후로 “(보좌진 채용과 관련해) 큰 ‘장’이 선다”는 말마저 나온다. 의원실 간 경쟁도 극심하다. 같은 상임위 옆 자리 의원의 올해 ‘실탄’이 무엇인지 캐내는 것도 보좌진의 역할이다.

“한 의원이 국감에서 화이트보드를 들고 나와 질의하면, 다음날 또 다른 의원은 파워포인트를 쏩니다. 사실 국감은 행정감사가 아니고 정책감사인데 너무 미시적인 부분까지 파고들어가는 폭로전이 많아지고 있어요. 특히 초선 의원들은 존재감을 알리는 데 국감을 활용하기 때문에 보좌진만 죽어나는 거죠.”

육탄보좌하는 놈, 돈 심부름하는 놈, 갑질하는 놈

여·야가 극한 대립으로 치닫던 시절에는 각 의원실 보좌진이 ‘몸싸움’에도 투입됐다. 일명 ‘육탄보좌’다. 17대 국회부터 여·야 간 막후협상을 통한 타결이 줄어들고 보수-진보 간 대립이 극심해지면서 몸싸움에 동원되는 일도 잦아졌다. 육탄보좌를 하더라도 당직자와 의원실 보좌진의 분위기는 확연히 다르다. 당직자들이 전투에 좀더 적극적이라면 보좌진은 의무방어로 동원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직업형 보좌진인 경우 고역일 수밖에 없다. 이들에겐 정권 교체나 여·야 간 역학관계가 그다지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당 원내 대표실에서 ‘출동하라’는 단체 문자메시지를 받는 순간 고민에 휩싸인다. 보좌진협의회 등이 돌아다니면서 참여를 독려하기 때문에 피하기도 쉽지 않다. 일부 보좌진은 의원실 대표로 한두 사람 보내는 것으로 ‘성의 표시’만 하는 전술을 구사한다.

19대 국회가 들어선 뒤 이른바 ‘국회 선진화법’2이 통과되면서 보좌진의 몸싸움은 사라졌다. 다만 앙금은 여전히 남아 있다. 과거에 여·야 정당을 초월해 이루어지던 보좌진 간의 모임이 뜸해진 것은 눈에 보이는 변화다. 격렬한 대립을 거치면서 보좌진끼리 가져온 끈끈한 동류 의식이 많이 사라졌다.

인사권을 쥐고 있는 의원의 횡포를 고스란히 당해야 하는 것도 이들의 고통이다. 18년째 정당과 국회 사무처 등에서 일하며 잔뼈가 굵어온 이영재(가명·54)씨는 “의원실 보좌진 가운데 급여를 받는 직원이 절반밖에 안 되던 시절도 있었다”고 말한다. 의원이 보좌진의 급여를 가로채서 필요한 데 먼저 돈을 쓰기 때문이라고 한다.

일부 의원들은 국회 사무처에 4급 보좌관 채용을 신청해놓고 급여는 5급 비서관에 해당하는 금액만 주는 방식으로 돈을 챙기는 경우도 있었다. 17대 국회에서 한 의원은 보좌진에게 자신의 채무 보증을 서도록 요구해 뒷말이 나기도 했다. 의원들의 은밀하고 궂은 일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돈봉투 사건’ 등에 휘말려 검찰 조사를 받는 이들도 심심찮게 나온다.

인터뷰 과정에서 만난 전·현직 보좌진은 ‘갑질 보좌관’이 일반적인 현상은 아니더라도 ‘의원급’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보좌관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대체로 수긍하는 분위기다. 한 의원실에서 보좌진 간 서열 차이도 크지만 의원실 간에도 역학관계가 존재한다. “보좌관들의 부탁을 많이 받는 보좌관이 갑”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의원의 영향력에 따른 차이도 있지만 원내대표 혹은 각 상임위원장을 보좌하는 이들이 힘 있는 보좌관으로 꼽힌다. 정수철 전 보좌관은 “자신의 의지와 결정에 따라 소속 의원실을 바꾸는 이들이 있다”며 “이들은 정무적 역량이 강해 선거에서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거나 기자를 상대하는 일에 선수급인 경우가 많다”고 한다.

공식적으로 의원의 특권이 하나둘씩 줄어드는 상황3에서 보좌관이 실속을 챙기려는 부작용도 있다. 이영재씨는 “사회가 투명해지면서 뒷말이 날까봐 접대를 받지 않으려는 의원들 뒤에서 각종 민원인이나 이익단체 등과 접촉해야 하는 보좌관들이 의원인양 구태의연한 ‘갑질’을 하는 경우가 간혹 있다”고 꼬집는다.

1 <문화일보> 2013년 8월 1일치 1면, ‘2030 비서관들까지 갑질’ 기사에서 인용. 2 국회의장 직권상정을 제한하고 쟁점 법안은 재적 의원 과반수가 아니라 60% 이상의 찬성을 얻도록 하는 내용의 법안. 여당이 단독으로 법안을 처리할 수 없게 됨에 따라 여·야 간 타협이 필수조건이 됐다. 3 지난 7월 2일, 국회 본회의에서 국회의원의 영리 목적 겸직 금지와 연금 폐지 등을 골자로 하는 이른바 ‘특권 내려놓기 법안’이 통과했다.

글 황보연 기자 whyn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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