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3.09.01 14:35 수정 : 2013.09.02 13:46

목수정은 경계 안에 안착하기보다 경계를 확장하기 원한다. 그래서 ‘월경’이란 단어를 좋아하고 자주 쓴다. 막 출간된 그녀의 새 책 제목마저 ‘월경독서’다.
좌파란 무엇인가?

‘좌파가 아닌 것’으로 좌파를 규정하기는 쉽다. 좌파는 시장만능주의에 반대한다. 좌파는 자유지상주의에 반대한 다. 좌파는 맹목적 권력에 반대한다. 좌파의 역사는 기성과 관성에 대한 반발의 역사이고, 따라서 좌파는 부정태의 문 장으로 빈번하게 정의된다. 하지만 무엇이 좌파가 아닌지로 충분할까? 여전히, 좌파란 무엇인가? 좌파의 대역폭을 말 할 수 있을까? 좌파의 경계는 어디인가? 작가이자 좌파 정 당의 활동가였던 목수정은 어느 지점에 내려둘 수 있는가? 목수정이 스스로 말한다.

목수정 좌파의 사각지대, 저는 그 지점에 있어요. 진지하고, 거칠고, 마초적이고, 곁가지를 허용하지 않는 경직된 분위 기 바깥이죠. 프티부르주아적이라고 배척되거나, 집단의 목표 아래 희생을 강요당한 개인들의 자리예요.

 

그녀가 서 있는 곳은 좌파의 사각지대일 수도 있고, 좌파의 변두리 일 수도 있고, 한국의 표준 좌파가 그어놓은 방위한계선일 수도 있 다. 그녀는 경계 안에 안착하기보다는 경계를 확장하기 원한다. 그 래서 ‘월경’이란 단어를 좋아하고 자주 쓴다. 자궁이 그러듯 지난 것 을 버리고 아무 망설임 없이 새로운 담금질을 시작하는 것(月經). 세 계의 경계를 넘는 것(越警). 막 출간된 그녀의 새 책 제목마저 ‘월경 독서’다. 초경을 시작한 여중생 시절부터 최근까지 읽은 책들의 서 평집이다. 서평집이라고 말하는 게 적당할지 모르겠다. <월경독서> 는 자서전의 인상을 강하게 풍긴다.

목수정 내 안에 들어 있는 책들, 나를 만들어온 책들에 대해 썼어요. 내 삶과 연결지어 생각할 수밖에 없었죠. 내 성장 과 밀접한 연관이 있어서 선택했으니까요. ‘대체 내가 어쩌 다 여기까지 왔지’ 하는 벽 같은 고민과 마주친 때가 있었어 요. 어쩌면 <월경독서>를 쓰면서, 그 질문을 해결할 수 있겠 다 싶었어요. 나는 왜 지금 이런 모습으로 살고 있는지, 지 금의 나를 쌓게 해준 그 벽돌들은 무엇이었는지, 그리고 그 벽돌들이 결국 어떤 이유에서 내게 남겨졌고 내 삶에서 어 떻게 발효됐는지 확인해보고 싶었어요. 결국 나를 위해서 쓴 거죠. 독자들이 제가 소개한 책들을 꼭 읽으면 좋겠다 는 바람보다는, 각자 자신을 채워준 ‘내 인생의 책’의 목록 을 만들어보고, 거기 들어간 책들을 들춰보는 시간을 가지 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목수정은 프랑스에서 결혼이 아닌 시민연대계약(PACS)으로 배우자를 만났다. 그녀는 자신의 책에서 ‘결혼 자체가 어쩌면 공식적인 매춘제도’라고 썼고, ‘가부장제는 여성을 남성의 종으로 길들여왔다’고 썼다.
<월경독서>에서 두드러지게 발효된 것은 ‘결혼’과 ‘가부장제’에 대한 목수정의 관점이 아닐까 한다. 그녀는 <몽실언니>를 읽고 ‘결혼 자 체가 어쩌면 공식적인 매춘제도’라고 썼고, <늑대와 함께 달리는 여 인들>을 읽고서는 ‘인간이 늑대를 개로 길들인 것처럼 가부장제는 여성을 남성의 종으로 길들여왔다’고 썼다. <황금물고기>를 읽고서 는 ‘창녀의 존재는 일부일처제의 영원한 위선을 폭로한다’고 썼다. 그녀는 프랑스에서 결혼이 아닌 시민연대계약(PACS)으로 배우자를 맞았다. 결혼이라는 관습적 제도의 필요성을 부정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목수정 그렇게까지 생각하는 건 아니에요. 다만, 한국 사람 이 자기 인생에서 비로소 하는 최초의 선택이 이혼인 거 죠. 결혼은 ‘선택’이 아니라 ‘의무’처럼 되어 있어요. 대학입 시, 취직, 결혼까지의 의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면 명 절에 식구들과 제대로 보낼 수도 없죠. 그래서 사람들은 주체적 판단을 할 새 없이 결혼이라는 관습 속에 밀려들어 가요. 주변에서 하니까 두려움 속에 따라 하는 거죠. 반대 로 이혼은 주변의 반대를 무릅쓰고 하는 결정이에요. 저 는 결혼이 쉽게 깨질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결혼으로 행복을 찾을 수도 있겠죠. 하지만 이혼으로 행 복해질 수도 있어요. 시민연대계약은 이혼의 복잡한 절차 가 필요없다는 게 장점이에요. 일방의 의사표시로 파기할 수 있거든요.

 

나는 생활로서의 결혼은 가부장제를 유지하는 강력한 장치이지 만, 발생적으로 제도로서의 결혼은 여성의 필요 역시 반영됐을 거라고 생각한다. 임신과 출산을 생물학적으로 전담하느라 경제 적 활동이 단절될 수밖에 없는 여성을 남성 배우자에게 부양 의 무를 지우기 때문이다. 만약 시민연대계약이 일방의 의사로 파기 할 수 있다면, 출산과 양육 과정에서 여성은 어떻게 보호받을 수 있는가?


<기사 전문은 <나·들> 인쇄판에서 볼 수 있습니다.>

글 손아람 힙합 그룹 ‘진실이 말소된 페이지’의 멤버로 활동했다. 그룹 이름과 같은 제목의 소설을 써서 작가의 길로 들어섰다. 용산참사를 소재로, 정통 법정소설인 <소수의견>을 썼으며, ‘전태일’이라는 이름을 가진 인물을 찾아다니며 인터뷰해 <너는 나다-우리 시대 전태일을 응원하다>에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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