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3.09.01 14:23 수정 : 2013.09.02 13:45

화가 정정엽이 첫책 출간기념으로 선물해준 초상화(서재에 걸려있는) 앞에서./목수정 제공
외부의 적보다 내부의 비판자가 더 불편할 때가 있다. 외부와 적대관계에 놓인 집단 안에는 자기 지시적인 분위기가 형성 되고, 그 분위기는 내부의 감수성을 떨어뜨린다. 그리고 문화 적 배타성으로 고착된다. ‘차이’는 이물스러운 것으로 여겨지 면서, 좀처럼 드러나지 않고, 잘 수용되지도 않는다.

목수정은 이른바 진보 진영에서 그런 존재다. 그녀는 그쪽 내 부에 굳게 형성된 어떤 전형성에서 벗어나 있다. 자유분방, 세 련, 이국성 혹은 다국적성, 그리고 무엇보다 여성성…. 그녀 는 일련의 계열화된 차이와 남다른 자원에 의해 눈에 띄었고, 논란을 일으켰다. 더구나 그녀는 ‘외삽’된 존재였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환호를 받았다. 환호하는 이들도 진영 내 부에 있었다. 그 전까지 드러나지 않았을 뿐. 그녀는 그들을 대변하는 문화적 아이콘이 되었다. 이름 앞에 관형어가 따라 붙었다. ‘감성 좌파’, 이 표현은 긍정으로도 부정으로도 쓰였 다. 그녀는 그 사잇길을 따라 걸으며 메시지를 타전해왔다.

지금 그녀가 도달한 곳은 어디일까. 처음 출발한 곳은 아닐 것이다. 새로운 관형어는 무엇이 되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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