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3.09.01 14:01 수정 : 2013.09.03 15:00

‘추신수는 몇 승 타자일까?’

한국 프로야구(KBO)에서 ‘승’이라는 기록은 투수의 독점 분야다. 야구는 적게는 9명(지명타자 제도가 없을 경우)에서 많게는 25명(한 경기 출전 선수 최대치)의 협업 과정이지만 타자에게 승은 돌아가지 않는다. 그래서 위 문장은 낯설어 보인다. ‘류현진은 몇 승 투수일까?’라는 말은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지만….

하지만 세이버메트릭스1를 적용하는 미국 프로야구(MLB·메이저리그)에서는 흔한 말이다. 타자의 가치를 승으로 환산해 평가하는 WAR(Wins Above Replacement)라는 스탯(능력치) 측정 방법이 있기 때문이다. WAR 기록은 메이저리그 평균선수를 0으로 놨을 때 그에 비해 얼마나 많이 승리에 기여했는지 나타내는 지표이다. 그러므로 마이너스인 선수도 존재한다. 신시내티 레즈 추신수의 가치를 승으로 환산하면 3.1로 메이저리그 전체 52위에 해당된다. 물론 타자만 계산한 순위다. 수치상으로 대단한 성적 같지 않은 이유는 추신수의 독특한 상황이 있기 때문이다. WAR라는 공격력(Offensive WAR)뿐만 아니라 수비력(Defensive WAR)까지 반영한다. 올해 팀을 옮기며 포지션을 바꾼 추신수에게 WAR는 불리한 기록임이 분명하다. 추신수의 공격 WAR(Offensive WAR)만 계산하면 4.4로 전체 11위에 해당하는 수치다. 이 기록만 보면 추신수는 소속팀에 4.4승을 더 올릴 수 있는 선수가 된다. 참고로 메이저리그 최고 WAR를 가진 선수는 지난해 아메리칸리그 신인왕을 차지한 LA 에인절스의 마이크 트라웃(7.4)이다. 출장 수가 적은 선수에게 불리한 기록인 WAR를 투수에게 적용하면 LA 다저스 류현진의 WAR는 2.7로 전체 41위이며, 같은 팀 크레이트 커쇼가 7.1로 전체 1위다.(8월 23일 baseball-reference.com 기준)

다승과 방어율, 타율과 타점으로 선수의 능력을 계산하던 야구계에 통계학적 개념, 즉 세이버메트릭스를 도입한 사람은 미국 야구전문가 빌 제임스다. 빌을 잘 모른다면 영화 <머니볼>(감독 베넷 밀러)을 떠올려보라. 극중 주인공빌리 빈(브래드 피트)이 자주 언급하던 정책의 주인공이 빌이다. 그리고 한국에도 빌 제임스의 추종자가 있으니, 그가 바로 ‘스포츠투아이’의 박기철 전무다.

 

‘프로야구 통계원 1호’ 박기철씨는 1999년 ‘스포츠투아이’의 전신 ‘한국야구 정보시스템’을 만들어 스포츠 데이터 서비스의 첫 장을 열었다.
문제 1 타격왕을 차지한 이듬해 타격(규정 타석을 채운 선수 중) 꼴찌로 추락한 유일한 선수는? (정답 맨 아래)

박기철 전무는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출신인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다. 그가 졸업한 과는 한국 사회에서 ‘원전 마피아’로 문제가 된 곳이다. 그가 원자폭탄을 만들려던 꿈을 버리고 야구에 관심을 갖게 된 건 우연이었다. 그는 그때를 이렇게 회상한다.

“원자핵공학과를 간 건 어릴 때부터 꿈이었어요. 원자폭탄을 만들고 싶었죠. 그리고 내가 대학 들어갈 때만 해도 최대 유행은 원자핵이었거든. 그런데 박정희가 죽고 군사정권이 들어오면서 시들해졌어. 솔직히 공부도 너무 어려웠고…. 1981년 가을에 복학했는데 우연히 신문에 ‘한국 프로야구 생긴다’는 기사를 본 거야. 이거 재미있겠구나 했지.”

그는 우연이라고 했지만 정확히 말하면 아니다. 고등학교 때부터 벌써 자신만의 방법으로 야구 경기를 기록해온 것이다. 대학 때는 야구 경기를 보려고 동대문운동장을 어슬렁거렸다. 그때 그는 동대문 체육사에서 정식 기록지를 사서 본격적으로 기록의 세계에 입문한다. 그가 애초 꿈을 포기하고 야구를 택한 건 필연이었는지도 모른다. 박 전무는 졸업을 한 학기 앞둔 1981년 말 KBO 사무실이 있던 장충동 반공연맹회관(현 한국자유총연맹)으로 ‘무작정’ 달려갔다.

1982년 한국 프로야구가 정식으로 출범하고 ‘OOO 1호’라는 타이틀이 무수히 많다. 박기철 전무는 그중 ‘통계원 1호’ 타이틀의 소유자다. 당시 기록원은 계약직인 반면 통계원은 운영부 정직원으로 선발했다. 통계원들은 KBO 사무실에 기록원이 작성한 기록을 정리하고 분석하기에 바빴다. 그런 그가 갑자기 1년 만에 통계원 1호 타이틀을 내놨다.

“야구를 직접 현장에서 보고 뭔가를 하고 싶었는데 답답했죠. 그래서 1년 만에 공부한다고 나왔어요. 그리고 이듬해에 계약직 기록원으로 다시 들어갔죠. 그때는 기록원이 더 대우가 좋았죠.”

박 전무는 그 뒤 13년간 기록원으로 현장을 누빈 뒤 KBO 기획실로 자리를 옮기며 정직원으로 다시 신분 상승했다.

프로야구 출범 초기에는 KBO에서 직접 경기를 진행했다. 운영 인력이 부족했던 KBO는 심판이나 기록원에게 관중 표 검사부터 포스트 시즌에 선물 돌리는 일까지 맡겼다. 장내방송도 기록원 몫이었다.

“예전에는 경기 시작 전 꼭 애국가를 틀었어요. 그때는 컴퓨터가 없어 카세트테이프로 틀었지. 홈런 치면 일일이 홈런송도 틀어주고…. 관중들이 소주병 던지잖아, 그러면 소주병 던지면 안 된다고 장내방송도 했다니까.” 

문제 2 경기 수가 적은 한국에서 100타점은 어려운 기록이다. 불과 41차례밖에 나오지 않았다. 불행하게도 두 차례나 99타점에 그쳐 100타점에 실패한 불운의 타자는?

박 전무는 기록하면 할수록 좀더 전문적인 방법이 없을지 고민했다. 하지만 해외 자료를 얻기는 굉장히 어려웠다.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온 스포츠 잡지를 이태원 등에서 사다가 드문드문 있는 메이저리그 기록에 관한 기사를 뒤지고, 주한미군방송(AFKN)을 통해 일주일에 한 번씩 메이저리그를 접했다. 그리고 운명처럼 빌 제임스를 만났다.

“어느 날 KBO에 근무하는 분이 빌 제임스의 <야구의 개요>(Baseball Abstract)라는 책을 주셨어요. 그 책에는 많은 메이저리그 기록에 관한 역사가 적혀 있었죠.”

박 전무는 기록원으로 일하며 기록관리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사비 25만 원을 털어 KBO에 컴퓨터를 들여다 놓고 기록을 관리했다.

“그때는 시위성이 강했지. 기록을 전산화해야 하는데 중요성을 모르니까. 결국 1985년 당시 KBO 이용일 총장의 도움으로 4천만 원의 거금을 들여 컴퓨터 기록 시스템을 도입했어요.”

박 전무는 이때부터 프로야구 기록을 데이터 서비스 하는 사업을 구상하기 시작했다.

스포츠 전문통계 회사로는 일본의 ‘데이터 스타디움’, 미국의 ‘엘라이어스 스포츠뷰로’, ‘스태츠’, 그리고 한국의 ‘스포츠투아이’가 있다. 메이저리그 공식 통계 회사인 엘라이어스 스포츠뷰로는 야구 통계에선 최고의 전통과 권위를 자랑한다.2

박 전무가 데이터 서비스 사업에 뛰어든 때는 KBO에서 나온 1999년이다. 지인의 소개로 세종대 통계학과 이원우 교수 등과 손잡고 스포츠투아이의 모태가 된 ‘한국야구정보시스템’을 만들었다. 한국야구정보시스템은 2000년 스포츠투아이로 사명을 변경했다. 현 대표이사 이기주씨는 이 교수의 동창이다.

회사는 사업 초기에 굉장히 어려움을 겪었다.

“스포츠 데이터 서비스에 대한 인식이 없을 때였죠. 그러니까 시장 형성이 안 됐죠. 구단이나 언론에 자료를 팔아야 하는데 말이 안 통해. 첫해 매출이 300만 원이었으니 말 다했지 뭐.”

미국 기록 회사도 초기에는 굉장이 어려웠다고 한다. 스테이플러로 찍어서 기록지를 만들고 당구장과 술집을 전전하며 야구광들에게 약간의 돈을 받고 팔았을 정도다. 한국은 오죽했을까. 스포츠투아이는 2001년 KBO 공식 기록통계 업체로 선정된 뒤 사업 영역을 넓혀 현재 프로축구, 프로농구, 프로배구 등까지 데이터 서비스를 하고 있다.

스포츠투아이가 자랑하는 데이터 서비스는 투구 추적 시스템이다. 2009년 첫 도입한 이 시스템은 스피트·궤적·릴리스 포인트 등의 자료를 3차원 그래픽으로 제공한다. 프로야구 중계를 보면 포수를 중심으로 스트라이크존에 그래픽이 자주 등장하는데, 그것이 투구 추적 시스템이다. 지상파 3사는 물론 케이블스포츠 채널에도 제공한다. 투구 추적 시스템과 올해 메이저리그에 입성한 류현진에 얽힌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류현진의 한국 기록은 미국에서는 신뢰할 수 있는 데이터가 아니었어요. 수준이 다르니까 승수와 탈삼진 수는 의미를 잃게 되죠. 미국 스카우터들이 우리 회사에 자료를 요청했는데 그게 류현진의 투구 추적 시스템이었어요. 구질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자료는 이 시스템밖에 없었어요. 다저스도 요청했고요.”

문제 3 2008년 창단된 넥센은 2012년 MVP를 배출했다. 1982년 창단된 팀 중 아직 MVP가 없는 팀은?

박 전무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기록은 두 가지다. 둘 다 깨진 기록인데, 하나는 직접 기록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심판 판정으로 날아간 기록이다.

1989년 7월 19일, OB 김광수(현 고양 원더스 수석코치, 전 두산 감독대행)가 63경기 2루수 무실책 기록을 이어오고 있었다. 그런데 1회초 수비 중에 사달이 났다. MBC 윤덕규 선수가 친 땅볼 공을 잡다 놓친 것이다. 잡기 어려운 바운드지만 강습은 아니었다. 당시 기록원이던 박 전무는 심사숙고 끝에 실책으로 기록했다. 그러자 다음날 언론에서 ‘대기록을 깼다’며 기록원에 비난이 빗발쳤다. 그때 우연히 난다 긴다 하는 3대 스포츠신문 고참 기자들이 모두 취재 중이었다. 한 기자는 클리닝 타임 때 찾아와 “야 ××야, 그게 에러야”라며 쌍욕을 해댔다. 박 전무는 지금도 기록이 중단된 데 아쉬움은 있지만 그 결정에 대해 후회는 없다.

“대기록을 세우고 있는 선수에게 안타로 기록해도 되지 않느냐는 비판이 많았어요. 하지만 저는 그걸 봐주면 다른 선수 기록이 값어치가 떨어진다고 생각해요.”

김광수의 기록은 2005년 소속팀 후배 안경원에 의해 깨졌다. 그리고 지금은 2007년 LG 박경수가 기록한 107경기 무실책이 최고 기록이다.

KBO 공식 야구규칙에 나와 있는 ‘실책’ 조항은 6개밖에 없다. 갖가지 상황이 발생하는 그라운드에서 기록원이 ‘안타냐 실책이냐’ 판정하는 데는 아무래도 기록원의 재량권이 개입할 수밖에 없다. 박 전무는 이를 주관이 개입된 ‘감상의 차원’이라고 말한다. 기록원들은 수많은 경험을 통해 얻은 지식으로 ‘객관적인 감상평’을 적는다. 판정의 최일선에 있는 심판도 다르지 않다.

1991년 해태와 빙그레의 한국시리즈 3차전. 8회 2사까지 퍼펙트게임을 이어가던 빙그레 투수 송진우에게 두 번의 악재가 닥친다. 해태 정회열 타석 때 파울플라이를 야수가 놓치고 스트라이크성 볼로 포볼을 내줘 퍼펙트게임이 무산된 것이다. 업친 데 덮친 격으로 경기까지 4 대 1로 지면서 퍼펙트게임이 무산되고 한국시리즈도 놓쳤다. 박 전무는 그때를 이렇게 회상한다.

“8구까지 가는 접전 끝에 정회열이 볼넷으로 출루했는데 2 대 2에서 잘 던진 공을 볼로 선언했어요. 그 뒤 흔들려서 패전 투수가 되고, 다음 경기까지 지면서 빙그레가 우승도 놓쳤죠. 공 한 개 때문에 많은 것을 잃는 순간이었어요. 이규석 심판이 스트라이크를 선언했어도 별 문제 없는 공이었는데….”

문제 4 프로야구 통산 1만 번째 홈런을 기록한 선수는 롯데 펠릭스 호세다. 그런데 어떤 사건이 없었다면, 그 기록의 주인공은 9999번째 홈런을 기록한 양준혁이 될 수도 있었다. 그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박 전무는 우리가 맹신하는 기록 중 타율과 다승은 선수를 평가하는 데 믿을 것이 못 된다고 주장한다. 승리타점처럼 사장되어야 할 기록으로 꼽는다. 그러면서 세이버메트릭스를 강조한다.

“그동안 야구 통계가 잘못된 방향으로 갔어요. 세이버메트릭스에 의해 새로운 통계가 많이 만들어지고 있는데 프로야구 구단들은 무시하고, 골수 야구팬들에게만 유행되는 기현상이 일어나고 있어요.”

세이버메트릭스에 기반하면 내년에 가장 ‘핫’한 선수는 누가 될까? 기록자의 입장에서 답을 물었다.

“SK 최정의 WAR가 8 정도 나옵니다. 내년에 FA(자유 계약 선수)가 되는데 잡는 팀이 일약 우승권으로 올라갈 겁니다.”

박 전무는 요즘 야구장에 자주 나가지 않는다. 특별한 일이 있을 때만 찾는다. 고질적인 관절염으로 다리가 불편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터뷰 내내 과거를 회상하듯 즐거운 표정이었다. 기록인답게 매번 자료를 뒤적이며 열정적이었다. 그에게 마지막으로 기록과 통계의 의미를 물으니 색다른 답이 돌아왔다.

“기록과 통계를 하는 이유는 선수에 대한 분석과 예측 가능성을 정확히 하기 위한 거예요. 하지만 저는 기록의 대중성도 중요하다고 봅니다. 기록을 잘 뽑아내서 트리비아(잡학), 즉 재미있는 기록을 만들어내는 것이죠. 복잡한 기록은 통계학자들이나 좋아할 테고.”

기사 중간중간에 들어가 있는 트리비아는 박 전무가 직접 만들어준 야구광들도 쉽게 알 수 없는 희소성 높은 기록들이다.

정답 1. 박종호(2001년 0.241) 2. 이병규 3. LG 4.한화 송지만이 1만 호 홈런이 나오기 18일 전 홈런을 치고도 홈을 밟지 않아 홈런이 취소되었다. 홈런을 친 타자가 베이스를 밟지 않아 아웃된 것은 송지만이 처음이다.

1 야구에 통계학적 개념을 적용해 선수의 능력치를 계산하는 방법론.

2 <스포츠춘추> 박동희 기자의 ‘한국 야구기록의 역사’ 기사 참조.


글 김원일 기자 nirva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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