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2.12.28 02:00 수정 : 2012.12.28 02:00

남과 북이 분단되어 67년의 세월이 흘렀다. 사회주의 체제를 표방하는 북한에서 생애 전반기를, 그리고 이렇게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남한에서 중반기를 보내고 있는 나로서는 남과 북의 경계에서 양 쪽을 바라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고마움을 느끼곤 한다.

 독자들에게 자못 생소하게 들릴지도 모를 ‘북향민’이라는 단어부터 설명해야겠다. 보통 우리들(탈북민)을 자유이주민이니, 귀순자니, 탈북자니, 새터민이니 하는 다양한 표현으로 부른다. 공식법률용어로는 ‘북한이탈주민’이지만 나는 그 용어에 거부감이 든다. 헌법에도 대한민국은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이루어져 있다’고 명시했으므로 북한이탈주민이라는 어감 자체가 북한을 국가로 은연 중 규정하는 듯한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스스로 북향민(북한이 고향이라는 뜻)으로 부르고 있다. 주변 반응도 나름대로 괜찮은 편이다.

 내가 굳이 우리를 규정하는 표현에 민감한 건 우리를 대한민국 국민으로 온전히 인정하지 않는 경우를 심심찮게 겪었기 때문이다. 몇 안 되는 고향 친구들을 아주 가끔씩 만나서 사는 얘기를 나누다 보면 자연스럽게 신세한탄으로 이어지곤 했다. 많고 많은 나라 중에 왜 하필 북한에서 태어났으며 지금은 이렇게 고달픈 이방인의 삶을 살아야 하는지 토로하다 눈물바다를 이룬다. 한 번은 나처럼 식당 일을 하던 친구가 그날 겪은 얘기를 털어놓았다.

 “같이 일하는 아주머니가 ‘이 고사리가 어디에서 온 건 줄 아느냐’고 해. 겉보기에 다 같은 고사리 아냐? 그런데 나더러 ‘너희 나라에서 온 건 데도 몰라?’ 하면서 혀를 차는 거야. 얘들아. 우리나라가 어디니? 한국 아니니?”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 묻던 친구의 얼굴이 도저히 잊혀지지 않는다.

 지금은 그런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아무리 울고불고 해봐도 마주한 냉정한 현실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모두가 깨달았기 때문이다. 다만 이런 이야기들은 한다. 지금 생을 주어진 현실에 맞게 최선을 다해 살아가자고, 그리고 다음 세상이 있다면 다시는 사람으로 태어나지 말자고. 모두들 처연한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이곤 한다. 나는 다시 태어난다면 비둘기로 태어나고 싶다. 남과 북의 하늘 위를 훨훨 날아다니고 싶은 소망이 간절하기 때문이다.

<기사 전문은 <나·들> 인쇄판에서 볼 수 있습니다.>

동명숙 탈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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