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3.08.07 10:44 수정 : 2013.08.07 18:03

여성 선수들의 약진은 스포츠 전 분야에서 이미 보편적 현상이다. 전통적인 남성 종목으로 여기던 분야도 예외는 아니다. 그러나 종합격투기는 다소 다르다. 무엇보다 시기가 늦었다. 격투기라는 종목 특성상 여성이 하기에는 과격하다고 여기는 인식이 강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로 남성 경기에 앞서 오프닝 이벤트 위주로 경기가 열렸고, 부상을 방지한다는 명목으로 룰에 제약도 많았다.

여성을 위한 본격적인 격투기 무대는 2000년 레믹스(Remix)라는 토너먼트대회와 함께 시작됐다. 그 뒤 스맥걸(Smack Girl) 등 새로운 여성대회로 이어졌고, 이에 따라 많은 여성 격투가가 등장했다. 그중에서도 두각을 나타낸 이가 후지이 메구미다.

전설의 ‘초살여왕’ 후지이 메구미는 유도에서 시작해 삼보, 브라질리언 주짓수를 거쳐 종합격투기에서 화려하게 꽃을 피웠다. 요즘은 유소년 아마추어 레슬링를 지도하고 있다.

유도로 다진 몸에 삼보를 입히다

‘격투기계의 여왕’으로 불리는 후지이 메구미1는 1974년 4월 26일 복숭아 산지로 유명한 일본 오카야마에서 2남1녀의 둘째로 태어났다. 유도선수던 아버지는 도장을 경영했다. 후지이는 3살 때부터 자연스럽게 유도를 배웠다. 10살 때 처음 대회에 나가 입상하면서 이후 중·고등학교에서도 유도선수로 활약하며 전국학생선수권대회 52kg급 3년 연속 베스트 8에 입상했고, 일본 유도 명문인 국사관대학에 유도선수로 입학했다. 물론 어려서 꿈은 올림픽에 나가 금메달을 따는 것이었다.

하지만 대학을 졸업하면서 선수 생활을 접고 연예기획사에서 매니저 일을 시작했다. 연예기획사 대부분이 그렇듯 새벽부터 시작해 언제 끝날지 모르는 업무의 강행군이 그녀에게 상당한 스트레스였다. 그러다 보니 체중이 늘기 시작했고, 60kg을 넘어서는 순간 어떻게든 스트레스를 풀지 않으면 안 되겠다고 생각해 테니스, 골프, 수영 등을 시작했다. 하지만 체중은 쉽게 줄지 않았고, 스트레스 해소에도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성취 동기가 없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그래서 다시 유도를 하게 되었는데, 이것이 본격적인 격투기 세계로 진입하는 계기가 되리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도구 없이 매트 위에서 몸 하나만으로 같은 체급 선수와 승부를 펼치는 투기 종목은 그녀에게 정직 자체로 여겨져서 더없이 기뻤다고 한다. 다만 오래해서 익숙한 유도와 달리 당시 엘리트 체육이던 아마추어 레슬링은 사회화된 프로그램이 없어 배우기 힘들었다. 그때 지인이 레슬링과 흡사하지만 뭔가 특이한 투기 종목을 소개해줬다.

러시아 무술인 삼보였다. 23살에 시작한 삼보는 유도와는 전혀 다른 운동이었다. 유도는 맞잡기 방식에서 손의 위치가 대부분 정해져 있는데, 삼보의 맞잡기 기술은 그야말로 변화무쌍했다. 유도는 소매 끝 또는 도복의 목 부분을 주로 잡지만, 삼보는 신체의 어느 부위든 잡고 기술의 흐름과 종류가 풍부했다. 유도 기술이 던지기와 굳히기에 집중되어 있어 삼보의 하체 관절기 등은 새로운 도전 과제였다. 그럴수록 성공했을 때의 성취감은 컸다. 그녀는 삼보에 깊이 빠져들었다. 그러면서 조금씩 본격적인 격투가로 나서고 싶어졌다. 삼보는 그녀 인생에 큰 전환점이 된 셈이다.

본격적인 삼보 선수 생활이 시작되었다. 굵직한 대회에 7회 정도 나갔다. 1998년부터 2005년까지 체급을 8회 제패하는 기염을 토했다. 국제대회에서도 은메달을 4차례 따냈다. 삼보에서 실적이 나오기 시작할 무렵부터 또 다른 그라운드 기술을 본격적으로 익혀나갔다. 브라질리언 주짓수를 만난 것도 이 무렵이었다. 2002년과 2003년 전국선수권대회에서 우승했고, 2004년과 2006년 미국에서 열린 팬암대회에서도 우승했다. 2001년부터 아마추어 레슬링도 AACC를 통해 익히기 시작했고, 점점 시합의 재미에 빠져들었다. 격투기 선수로 데뷔한 이후 2005년 5월에는 그라운드 기술을 익히는 모든 선수가 선망하는 아부다비 컴배트에 참가했다. 60kg 이하 체급에서 준결승에 진출한 그녀는 키라 그레이시와 대결에서 아쉽게 삼각조르기에 패하고 말았지만, 3위 결정전에서 토 홀드로 상대를 물리치면서 3위에 입상했다. 이어 2007년에도 3위를 차지하면서 두 대회 연속 3위 입상 기록을 세웠다.


<기사 전문은 <나·들> 인쇄판에서 볼 수 있습니다.>

1 <나·들> 9호에 소개한 일본 AACC팀의 지도자.

글·사진 천창욱 어려서 프로레슬링을 탐닉하면서 삶이란 피와 땀과 쇼가 뒤섞인 것임을 직감했다. 프로레슬링과 종합격투기 전문 해설자로 활약하면서, 최무배 선수를 한국인 최초로 프라이드(PRIDE)에 출전시키고, 김동현 선수를 UFC에 최초로 출전시키는 등 세컨드 활동도 함께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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