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3.08.06 13:02 수정 : 2013.08.08 11:43

‘달칵, 달칵, 달칵….’

재봉틀 소리가 요란했다. 가파른 언덕길을 따라 오밀 조밀 마주한, 지은 지 수십 년은 되어 보이는 2층 양옥주택 1층 봉제공장에서 끈적한 기름 냄새가 새어 나왔다. 8~10 평의 작은 공간에는 작업 테이블과 다리미, 원단, 실 등이 빼곡했다. 중년 남녀들이 라디오 소리에 귀를 기울인 채 땀 을 뻘뻘 흘리며 작업에 열중하고 있다. 폭 1m 남짓 되는 골 목을 비집고 옷과 원단을 실은 오토바이가 쉼 없이 오갔다. 지난 7월 11일, 서울 지하철 동대문역 1번 출구로 나와 우회 전한 뒤 큰길 따라 한참 걸어올라가 마주한 종로구 창신동 낙원봉제거리의 풍경이다.

봉제공장 일색인 그 마을에 유독 튀는 공간이 몇 곳 눈에 띄었다. 최신식 카페처럼 꾸민 ‘000간’ 두 곳(000간 1·000간2)과 ‘뭐든지’라는 간판이 내걸린 공간. 도대체 무 엇을 하는 곳일까? 그런가 하면 오르막길 중간쯤엔 창신동 골목길을 그린 커다란 지도 벽화가 있었다. 예술가의 손길 이 미친 흔적이 분명했다. 나는 그 예술가를 찾아나선 길이 었다. ‘000간’의 주인이자 러닝투런의 대표인 신윤예(29)· 홍성재(31)씨. 이들은 마을 주민과 함께 도서관 ‘뭐든지’를 만들고 벽화를 그렸다. 마을 사람은 이들을 ‘창신동 도시기 획자’로 부른다.

“계세요?”

“네, 들어오세요.”

성재씨가 반갑게 맞이한다. 그사이 골목을 지나던 초 등학생이 성재씨를 보고 반갑게 “안녕하세요” 인사를 건넨 다. 성재씨 역시 손을 흔들며 “그래, 안녕. 조심히 가. 어제 준 피자 잘 먹었어”라고 응수한다.

“마을 주민과 친한가 봐요?”

“네, 그럼요.”

“저기 보이는 하얀색의 ‘뭐든지’ 간판과 벽화를 만들고 그린 것 맞죠?”

“네. 마을 주민, 학생들과 함께 작업한 겁니다. 그런 작업을 기획하고 함께하는 것이 ‘도시기획자’의 역할이거든요. 궁 극적으로 우리가 지향하는 작업모델이기도 하고요.”

옆에 있던 윤예씨가 설명을 덧붙인다. “도시기획자는 도시의 경제·사회·문화적 환경과 특성을 바탕으로 도시 전 략을 짜는 사람이에요. 우리는 도시 전략 대신 창신동 주민 들의 의견과 요구사항을 반영해 주민과 함께 마을의 영속성 과 생명력을 불어넣는 예술품 만드는 일을 하는 것이죠.”

윤예씨와 성재씨는 대학에서 회화를 전공했다. 흔히 화가(예술가)라고 하면 작업실에서 고독하게 작품 활동에 몰입하는 모습을 상상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윤예씨 말대 로라면, 그림을 그리는 것뿐 아니라 관계를 만들고, 이를 매 개로 작품을 만드는 것도 화가의 역할이라는 뜻으로 들렸 다. 말하자면 이들은 ‘창신동’이라는 캔버스에 그림을 그리 고 있는 셈이다. 또한 마을 주민들도 그 캔버스에 그림을 그 릴 수 있도록 연결해주는 매개자 역할까지 한다.

“우리한테는 창신동이 하나의 미디어예요. 창신동이라는 공동체 속 관계를 잘 조율하고 매개해서 도시를 재생시키 는 것이 우리의 임무인 셈이죠.”(윤예씨)

강남에서 굴욕, 강북에서 실험

창신동은 1970~90년대 봉제공장이 밀집해 있던 대표 적인 서민 동네다. 이때만 해도 10~20대 젊은이들로 북적 였다. 그러나 봉제공장들이 하나둘 중국 등지로 이전한 뒤 창신동도 쇠락의 길로 접어들었다. 젊은 층의 유입도 거의 사라져 빠르게 활력을 잃어갔다.

두 사람은 왜 그런 창신동을 택했을까. 이들이 창신동 에 첫발을 디딘 건 2011년이다. 당시 성재씨는 이 지역에 위 치한 해송지역아동센터에서 아이들한테 주 1회 미술 강의 를 했다. “지금도 첫인상이 생생해요. ‘서울에 이런 동네가 있다니….’ 신기했어요. 창신동을 매개로 작품 활동을 하면 의미가 있겠다 싶었죠. 생명력을 잃어가는 창신동을 저와 윤예의 상상력과 아이디어를 덧대어 예술품을 만들면 남 부럽지 않은 동네가 될 수 있다고 믿었거든요.”

성재씨는 2011년 연말부터 본격적으로 정착 준비를 했 다. 작업실을 알아보고, 창신동에서만 할 수 있는 예술활동 과 작품을 고민했다. 창신동의 특색인 봉제공장과 천, 옷, 이곳에서 살고 있는 사람과 아이들, 구불구불한 좁은 골목 길…. 이것을 소재와 주제로 삼는다면 가능하다는 데까지 생각이 미쳤다. 가장 먼저 ‘러닝투런’이라는, 예술과 마을을 기반으로 한 청년 사회적 기업을 만들었다. 2009년부터 ‘컬 렉티브(COLLECTIVE)2’ 1라는 그룹으로 공동작업을 해 온 윤예씨와 의기투합했다. 운 좋게 ‘청년 사회적 기업가’ 육 성사업에 선정돼 사업비를 지원받았다. 2012년 봄 사무실 겸 작업실인 ‘000간’을 열었다. ‘000간’이란 이름은 비어 있 으면서 다른 이름들로 채워지기를 기다리는 의미의 ‘0(공)’


<기사 전문은 <나·들> 인쇄판에서 볼 수 있습니다.>


글 김미영 기자 kimmy@hani.co.kr

1 ‘컬렉티브2’는 신윤예·성재 두 명으로 구성된 작가 그룹으로, 2009년부터 활동을 지속해오고 있다. 필요에 따라 다른 커뮤니티와 협업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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