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3.08.06 12:41 수정 : 2013.08.07 17:58

“외로움으로부터 도망치려는 와중에 당신은 고독의 기 회를 놓치게 된다.” - 지그문트 바우만, ‘군중 속의 고독’

“Running away from loneliness, you drop your chance of solitude on the way.” - Zygmunt Baumann, ‘Crowed Solitude’

 

불안의 알속은 외로움이며, 접속은 이런 외로움이라는 질적 단절을 기계적으로 보충하려는 불가능한 반복이다. 연작.
1. 매체와 환상

1-1 이 공식은 다음과 같다. ‘환상은 매체의 매개성에 반비례한다.’

1-2 이 공식에 대한 설명은 다음과 같다. ‘환상’ (Phatasie)이란 그 뜻이 늘 명확하게 획정된 것은 아니며, 심지어 이론가나 필자에 따라 무시할 수 없는 진폭이나 변 수가 생긴다. 그러나 이 글에서 선택된 개념의 알속은, 그것 이 일종의 ‘자기극본(劇本)’이라는 점에 있다. 남이 준 배역 을 좇아 자신의 생각이나 변덕을 끊고 ‘연극적 실천’을 하는 대신, 자기 뜻과 소망대로 배역을 스스로 창조하고 선택하 고 연기한다는 것이다. 루이 알튀세르(프랑스 철학자)나 슬 라보이 지제크(슬로베니아 철학자)처럼 말하면, 호명자(呼名者)가 없이도 즐겁게 호명당하며, 수신자(受信者)가 적혀 있지 않은 편지도 반갑게 받아보게 되는 경우와 같다.

연극과 자의(恣意) 사이의 모순적 결합이라는 특징 이 외에도, 환상 개념은 그 층위가 상상적이라는 사실에 의해 제한된다. 이로써 환상은 이데올로기의 일반 형식과 겹치 며, 스스로의 운신을 상상적 무대에 집중함으로써 현실의 객관적 반영에 실패한다는 점에서도 비슷한 운명에 처한 다. 또 하나 생략할 수 없는 지점은, 상상적 자기극본의 생 성이나 거기에 따른 역할 연기가 결국 왜곡된 형태의 주체 화에 이바지함으로써 자신의 현실과 욕망을 방어하는 데 쏠린다는 것이다.

이 공식이 뜻하는 바는, 이런 환상의 생성과 유지가 어 떤 매체(들)에 의지한다는 것이다. 동시에 몸이 그 매체에 익 숙해지거나 고착됨으로써 급기야 그 ‘매개성’의 존재를 잊 을 만큼 자연스러워진다는 것이다. 당연히, 거꾸로, 매체와 의 거리두기(Distanzierung)에 성공한다면 매체는 ‘적절하 게’ 부자연스러워지고, 이윽고 그 환상도 소실되고 만다.

1-3 이 공식의 사례(들)는 다음과 같다. 국내 스마트폰 가입자가 이미 3천만 명을 훌쩍 넘어섰다고 한다. 압축·과 잉 성장에다 졸부 망탈리테(Mentalité)의 한국답게, 세계 최고의 보급률과 유통 속도를 자랑하고 있다. 이른바 ‘작은 차이의 나르시시즘’은 극에 달한다. 그런가 하면 휴대전화 나 스마트폰이 빌미 혹은 매개가 되어 발생하는 사건·사고 들도 줄을 잇고 있다. 이반 일리치(오스트리아 신학자·철 학자)가 이미 오래전에 도구의 문제성에 대해 경고한 대로, 매체-도구들은 어떤 수위와 관련성을 넘어서면 도대체 무 죄할 수가 없다. 예를 들어, 오래전 수능시험장에서 휴대전 화를 이용해 조직적으로 ‘커닝’한 사건이 벌어지면서 그 책 임 소재를 놓고 설왕설래한 적이 있다. 잘라 말해서, 이런 정도로 귀여운(?) 사건의 경우에도, 반드시 책임의 일부는 휴대전화-매체라는 도구에 물어야 한다.

지난 7월 초 통계에 의하면, 미국인도 사정이 심각해 4 명 중 3명이 스마트폰을 끼고 사는 정도로 중독현상을 보 이며, 심지어 성관계 중에도 휴대전화를 손에서 놓지 못하 는 이들이 10%에 달한다고 한다. 성관계나 대화관계- 마주 앉아 있으면서도 각자의 휴대전화만 만지작거리는 관 계- 는 대표적인 사적 친밀성의 자리인데도, 이 자리마저 휴대전화에 의해 급속히 침탈당하고 있다는 사실은 인간 관계의 미래에 대해 시사하는 바가 적잖다. 여러 통계치에 따르면, 한국인은 사정이 더 심각하며, 중독과 고착은 이 제 어느새 우리의 일상이 되고 있다.


<기사 전문은 <나·들> 인쇄판에서 볼 수 있습니다.>


글 김영민 철학자. <동무론> 3부작(한겨레출판사) 외 26권의 단행본 저자. 지난 20여 년간 <장미와 주판> <금시정> 등 인문학술 공동체 운동에 지속적으로 간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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