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3.08.06 11:02 수정 : 2013.08.08 17:34

국선 전담 변호 사 전주원씨의 사 무실에는 소송 관 련 서 류 뭉치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고 피고인과 그 가족이 보낸 돌미역, 음료수 상자 등이 가득했다. “‘하나마나 국선’은 옛말”이라고 말하는 전 변호사는 어려운 처지에 놓인 피고인들의 변론에 늘 열정적인 모습을 보여왔다.

“직업이 뭔가요?”

“목수입니다.”

“공소 사실을 인정합니까?”

“예.”

“피고인이 오해한 걸로 밝혀진 겁니까?”

“잘 알아보지도 못하고… 죄송합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식칼을 들고 그러면 됩니까?”

지난 7월 19일 오전, 울산지방법원 102호 법정. 바깥에는 폭염주의보가 내려졌지만 법정 안은 오싹한 기운이 들 만큼 시원하다. 형사3단독 이승엽 판사의 심리가 이어진다. 피고인 김철수(가명·40)씨는 아내가 일하는 음식점 사장을 상대로 흉기를 휘두르고 가스통을 집어드는 등 폭행을 가한 혐의로 기소됐다. 몇 달 전의 일이다. 술에 취한 상태에서 아내와 사장이 승용차 안에서 키스하는 줄 알고 격분해 일을 냈다.

조선족 아내와는 2004년 결혼했다. 불안한 마음이 일었는지 피고인은 때때로 말을 더듬거린다. 마음고생을 많이 한 탓일까. 가무잡잡한 얼굴의 그는 실제보다 훨씬 나이 들어 보인다. 옆자리에 있던 전주원 변호사가 담담한 어조로 변론을 이어간다.

“피고인은 현재 가족 내 의사소통이 잘 안 된 점을 반성해 심리 치료를 받는 중입니다. 아내와 초등학교 3학년 아들을 고려해 선처를 부탁드립니다.”

전 변호사는 피고인의 아내가 집 부근이 아닌 경남 양산까지 일을 다닌 점과, 음식점 사장이 자신의 차로 자주 퇴근시켜준 점 등을 미루어볼 때 오해의 소지가 충분했다는 것을 강조한다.

“어디까지 할 수 있냐고요?” 저 쩐변입니다

이날 102호 법정에서는 2시간 남짓 10여 건의 재판이 진행됐다. 방청석에는 변호사 서너 명과, 재판 순서를 기다리는 피고인과 그 가족들이 모여 앉았다. 대체로 사건당 10분 안팎, 길면 20분 남짓 걸렸다. 재판 진행 절차는 엇비슷했지만 그 속에 담긴 사연은 그야말로 다양하다. 술을 마시다가 옆 동료와 사소한 말다툼 끝에 소주병을 집어든 일용직 노동자부터, 어렵게 서울에 일자리를 얻었는데 음주운전 사고를 낸 어느 회사원까지. 고단한 인생사의 축약판이다.

전주원 변호사는 국선 전담 변호사(이하 국선 변호사)다. 국선 변호사를 소재로 한 SBS TV 드라마 <너의 목소리가 들려>의 인기로 요즘 주목받고 있는 직업이다. 국선 변호사는 법원이 선정한 형사소송 관련 국선 사건만 맡을 수 있다. 전담변호사제는 변호사들이 보수(건당 30만 원)가 적은 국선 변호 사건을 불성실하게 변론한다는 비판에 따라 도입됐다. 2년간 시범 기간을 거쳐 2006년 3월 본격 시행됐다.

“‘어디까지 할 수 있느냐’고 묻는 피고인을 만나면 기분이 확 상합니다.(웃음) 당신한테 돈만 안 받을 뿐이지 변호사가 할 수 있는 건 다 한다고 이야기해주죠.”

이른바 ‘하나마나 국선’이라는 오명을 받던 시절을 기억하는 피고인들에게 종종 받는 질문이라고 한다. 피고인을 법정에 나오기 5분 전에 만난다거나 천편일률적인 변론문을 읊어대는 일도 허다했다. 드라마 속 국선 변호사인 ‘짱변’(이보영)이 “어머님을 여의고 외롭게 살아온 피고인의 힘든 세월을 참작하시어…”로 변론을 시작하는 장면도 그런 세태를 풍자했다. “국선 치고는 잘 하더라, 너!”라고 비꼬는 검사 서도연(이다희)의 이야기도 마찬가지 맥락에서 나온 대사다. 국선 전담 변호사 제도가 도입된 이후로 사정은 많이 달라졌지만 아직 예전 기억을 갖고 있는 사람이 많다.

“드라마가 인기를 끈 이후로 주변에서 인식이 좀 달라졌나요?”

“그런 것 같더라고요. 옆방 변호사가 전화번호를 포털 사이트에 등록했는데 드라마 때문에 문의 전화가 많이 걸려온대요. 억울한 사연이 있는데 해결 좀 해달라는 거죠. 우리는 법원에서 주는 사건만 할 수 있다는 걸 모르고 연락하는 분이 많아요.”

국선 변호사가 만나는 피고인은 대체로 어려운 형편에 놓인 사람들이다. 사선 변호인을 선임할 만큼 경제적 여유가 없어 국선 변호사를 찾는 것이다. 미성년 혹은 70살 이상이거나 청각·언어 장애인, 심신 장애가 의심되는 피고인에게 변호인이 없으면 법원이 국선 변호인을 선임하게 돼 있다. 또 경제적 빈곤 등의 사유로 변호인을 선임할 수 없는 피고인이 국선 변호를 청구할 수 있으며, 연령·지능 및 교육 정도 등을 참작해 권리보호를 위해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때도 해당된다.

한 달 최대 30건… 배심원 사로잡는 게 특기

전 변호사에게 배정되는 사건은 한 달에 대략 25건이다. 많을 때는 30건까지 들어온다. 지역마다 사정이 다르지만, 울산에 있는 세 명의 국선 변호사는 단독 재판부 외에 강력 사건이 많은 합의부 사건도 맡는다. 전자에선 이른바 ‘주폭’(주취폭력) 사건이 많다면, 후자에선 살인이나 강도·상해 사건이 주를 이룬다.

“보통 금요일까지 사건 기록 자료가 들어오면 검토한 뒤 월요일 오전에 구치소로 갑니다. 가보면 정말 어려운 환경에서 자라난 피고인이 어찌나 많은지…. 가슴이 먹먹할 때가 많아요.”

그동안 만난 피고인들을 떠올릴 때마다 눈물이 그렁그렁해진다는 그는 이야기를 이어갔다. 구치소에서 전 변호사를 처음 울린 피고인은 상습적으로 본드를 흡입해온 어느 20대 여성이었다. 부모가 없는 피고인은 다방에서 일하며 오빠와 남동생 학비를 벌었다. 16살이 되던 해 동네 폭력배들에게 성폭행을 당한 뒤로 본드를 흡입하기 시작했다. 본드는 잠시라도 현실을 잊게 해주는 유일한 은신처였다.

“사연을 듣다가 눈물을 흘렸더니 교도관이 저를 부르더군요. ‘변호사님, 여기 피고인들 다 웁니데이. 속으시면 안 됩니데이’ 하는 겁니다. 물론 자신에게 유리하게 하려는 측면도 있겠지만 워낙 사정이 안타깝다 보니….”

전 변호사는 사연이 딱한 피고인일수록 손글씨로 반성문을 써오게 한다. 컴퓨터를 이용하면 성의 없어 보인다는 이유에서다. 초등학생 자녀가 있는 경우엔 반드시 볼펜 말고 연필로 탄원서를 받아오게 한다. 재판부의 마음을 움직이려는 일종의 심리 전략이다.

“반성문을 요구하다 간혹 깜짝 놀라게 됩니다. 중학교 의무교육이 된 지 꽤 오래됐는데 아직 한글을 쓸 줄 모르는 피고인이 많거든요.”

“연세가 많은 분들이던가요?”

“아뇨, 20~30대인데도 그래요. 왜 한글을 못 쓰느냐고 물었더니 우여곡절 끝에 졸업장은 받아뒀지만 제대로 교육 받아본 적이 없다는 거예요. 집안이 어려워서 어릴 때부터 돈 벌러 다녀야 했다는 식이에요.”

상습 절도로 기소된 한 피고인의 이야기도 들려줬다. 그는 부모의 이혼으로 할머니의 손에서 자랐다. 그러다 할머니가 병으로 쓰러지면서 어린 동생들과 자신만 덩그러니 남게 됐다. 피고인이 14살 되던 해였다. 당장 먹고살 길이 막막했다. 오토바이를 훔쳐오면 값을 쳐주겠다는 동네 불량배 형들의 꾐에 넘어갔다. 라면 살 돈이 필요하던 차에 냉큼 시키는 대로 했다. 이때부터 피고인은 어른이 되고 나서까지 절도를 일삼았다. 중졸 학력으로는 취업문을 넘기도 어려웠다. 구멍가게에 들어가서 먹을거리를 훔치거나 남의 집 빨랫줄에 걸린 옷가지를 집어오는 일이 빈번해졌다.

“저랑 만났을 때는 몇 달 동안 100만 원어치가 채 안 되는 물건을 훔쳐왔더라고요. 상습 절도가 인정되면 징역형의 하한이 6년이거든요. ‘누군가 먹을 것만 해결해줘도 이런 일을 겪지 않았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국민참여재판에 나선 배심원들도 전 변호사의 변론에 공감했다. 이렇게 되기까지 사회가 피고인을 방치한 책임도 크다는 점이 인정되면서 배심원단에서는 무죄 평결이 나왔다. 피고인이 전부 자백한 사건에 무죄 평결은 이례적이었다. 당연히 재판부는 술렁였다.

“부장판사 표정이 안 좋아졌어요. 배심원들이 무죄 평결을 내리면 그와 반대되는 판결을 할 때에는 다른 이유를 근거로 대야 하니까 부담스러웠던 거죠. 그다음부터는 판사가 배심원들 교육할 때 이런 얘기를 하더군요. 피고인이 다 자백하는 사건에서 무죄라고 하면 안 된다고요.” 전 변호사의 얼굴에선 자부심과 아쉬움이 교차했다. 배심원들의 무죄 평결을 이끌어냈음에도 이런 평결이 법적 구속력을 갖지 못한 탓이다.

울산에서 두드러지게 발생하는 사건은 어떤 게 있을까. 울산은 현대자동차를 비롯해 대기업 생산공장이 많이 들어선 도시다. 억울한 일을 당한 노동자들이 많이 찾아오는 건 아닌지 물었다.

“노조 관련 사건은 새날이라는 법무법인에서 거의 전담하기 때문에 국선 사건으로 넘어오는 일은 없어요. 그것보다는 울산에서만 나오는 사건이라면 고래가 아닐까 싶은데요.(웃음)”

사연은 이랬다. 고래잡이는 법적으로 금지돼 있는데 간혹 돈벌이를 위해 이를 어기는 사람들이 있다. 법정에 선 피고인이 “고래가 죽어 있어서 그냥 건져왔다”고 거짓으로 진술해 물의를 빚은 사건이 있었다. 마침 재판장이 ‘고래 문화 특구’로 알려진 울산 장생포 출신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고래잡이를 한두 번 본 게 아니라는 뜻이다.

“재판장이 누구보다 고래 잡는 과정을 잘 아니까 피고인이 거짓말하는 걸 훤히 들여다본 겁니다. 고래를 잡으려면 배가 움직일 수 있도록 키를 잡아주는 사람이 있어야 하고 작살 던지는 사람도 있어야 하는데다, 무거운 고래를 수면 위로 끌어올리려면 여러 사람의 손이 필요한데, 혼자 가서 건져왔다는 건 말이 안 된다는 거였어요. 얘기를 듣고 있는데 속으로 웃음이 나더라고요. 참, 고래 고기 먹어봤나요? 맛은 별로 없더라고요.”

세 아이 엄마, 대출금 갚으려 ‘생계형’ 변론

우리나라의 국선 변호사는 모두 197명(올해 기준)이다. 전국 법원 36곳에서 일하고 있다. 제도 도입 첫 해인 2006년(38명)에 견줘 크게 늘어난 규모다. 이전에는 대법원이 국선 변호사를 위촉했지만 지난해부터는 고등법원장이 선발하고 있다. 임기 2년이 지나면 법원의 평가를 거쳐서 재위촉 여부가 결정된다. 6년이 지난 뒤에는 신규 지원과 마찬가지 절차를 거쳐야 다시 국선 변호사로 일할 수 있다.

국선 변호사의 처우는 ‘안정적’이다. 우선 매달 800만 원(세전·경력 2년 미만은 600만 원)의 급여를 받는다. 또 사무실이 무상으로 제공되며 한 달에 50만 원씩 사무실 운영비를 받는다. 이 때문에 변호사들의 지원이 해마다 크게 늘고 있다. 어려운 처지의 소외 계층을 돕겠다는 사명감에서 시작하는 사람도 있지만 변호사 수가 급증한 데 따라 안정적 사건 수임을 원하는 이들이 대거 몰린 탓이다. 올해 3월 선발된 43명의 국선 변호사는 9.23 대 1의 경쟁률을 뚫어야 했다.

드라마 속 짱변처럼 전 변호사도 ‘생계형’으로 국선 변호사가 된 경우다. 2009년 3월 국선 변호사가 되기까지 그의 삶은 파란만장했다. 대학에서 심리학을 전공한 전 변호사는 1998년 사법고시 공부에 뛰어든 늦깎이 수험생이었다. 그전까지는 사회복지법인 ‘사랑의 전화’에서 자원봉사 상담원으로, 또 영어유치원 교사로 근무했다.

“어릴 때 막연히 법조인이 되면 좋겠다 싶었지만 마음속으로만 품고 있었어요. 5년 정도 영어유치원에서 일했는데 적성에 맞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원생이 줄어들까봐 잘못을 저지른 아이한테 제대로 지적도 안 하고 비용 절감을 위해서 아이들 간식비 아끼는 모습이 싫더라고요. 불만이 점점 쌓여가던 차에 ‘원래 내 꿈이 뭐였지’ 싶어졌어요.”

겁이 나서 포기하면 나중에 후회할 것 같다는 생각에 바로 서울 신림동 고시촌으로 달려갔다. 고시학원에 등록한 첫날, 현재 국방부 군법무관으로 있는 남편 박명재씨를 만났다. 연하의 남편은 제대한 지 얼마 안 돼서인지 짧게 깎은 스포츠머리에 웃통을 벗고 강의실에 앉아 있었다. 학원에서 주최한 장학생 선발고사에서 공동 1등을 한데다 공교롭게도 같은 독서실에서 공부하며 두 사람은 급속도로 가까워졌다.

서울대 법대를 나온 남편 박씨의 고향은 경북 포항이다. 집안 분위기는 보수적이었고 제법 연상인 전 변호사를 순순히 받아들이지 않았다. 남편의 고향에선 그가 사시에 합격만 하면 맞선을 주선할 만반의 채비를 갖추고 있었다.

“나이 차이를 극복하기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에 헤어질 결심을 하던 때가 있었어요. 더 상처받기 전에 끝내자는 마음이었습니다. 남편은 충격을 받고 울산에 있는 절로 들어가서 공부했어요. 이때부터 2010년 정식으로 결혼식을 올리기까지 얼마나 많이 울었는지 모릅니다. 아마 눈물을 몇 트럭은 쏟아냈을 겁니다.(웃음)”

그는 2005년 시험에 합격한 뒤 2009년 초 사법연수원을 졸업하기까지 세 아이를 낳았다. 남편은 그보다 늦은 2007년에 합격했기 때문에 그동안의 고생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다고 했다.

“둘째를 낳고서 연수원에 들어가려는데 애를 봐주던 친정어머니가 고혈압으로 쓰러지셨어요. 남들은 입소식 때 꽃다발 받고 행복해하는데 저는 눈물 철철 흘리면서 휴학계를 내러 갔죠. 원래는 판사가 되고 싶었는데 연수원에 들어가 보니 그건 거의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밤새워 공부하는 동료들 틈에서 저는 세 아이를 돌봐야 했으니까요.”

사법연수원을 나올 무렵, 고민이 깊어졌다. 부부가 모두 시험에 늦게 합격하는 바람에 대출금이 한두 푼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대형 로펌에서 받아줄 리도 만무했다. 전 변호사의 나이가 발목을 잡은 것이다.

“연수원에서 마지막 회식을 하던 날 우리 반 반장이 저한테 ‘국선 변호사를 해보면 어떻겠느냐’고 하더라고요. 그전까지 이런 제도가 있는 줄 몰랐어요. 알아보니까 급여를 안정적으로 주는 편이어서 지원하기로 마음먹게 된 거죠.”

전 변호사가 국선 변호사를 지원할 때 경쟁률은 10 대 1 수준으로 치열했다. 연수원 성적이 그리 신통치 않던 그가 면접을 통과하기 위해서는 뭔가 치밀한 전략이 필요했다. 부장 판·검사 출신도 많이 지원할 무렵이었다.

마침 법원 시보를 할 때 맡았던 국선 사건에서 무죄 판결을 이끌어낸 적이 있었다. 와이파이폰 제조 공장을 운영하던 한 60대 피고인이 납품 기일을 지키지 못해 사기죄로 기소된 사건이었다. 사정을 자세히 알아보니 납품 기일을 지키지 못할 만한 예측불허의 상황이 여럿 나왔다. 자기소개서를 쓸 때 당시 무죄 판결을 받아낸 과정을 상세히 기록했다.

배심원 ‘무죄’ 받았는데 ‘실형’… “안타까워요”

‘사랑의 전화’에서 상담한 경력과 아나운서 시험을 준비하면서 교육 과정을 수료한 점도 부각시켰다. 전자는 피고인을 대하는 자세에서, 후자는 국민참여재판 때 배심원을 설득하는 화법에서 장점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자칫 단점이 될 수 있는, 세 아이의 엄마라는 점도 오히려 강조했다. 아이를 낳아 길러본 경험이 다양한 사건을 변론하는 과정에서 도움이 될 수 있다는 논리였다.

“실제로 국민참여재판에서 아이를 키우며 겪은 이야기를 해서 공감을 얻어낸 경우가 많아요. 한 소매치기 피고인이 있었는데 핸드백을 빼앗기지 않으려는 피해자와 실랑이를 벌이다 피해자가 무릎을 약간 다친 사건이었어요. 소매치기는 잘못한 일이지만 상해를 입은 것까지 인정되면 징역형 하한이 7년으로 늘어나거든요. 그래서 내가 그랬어요. 우리 아이가 구름사다리에서 떨어지는 바람에 얼굴에 상처가 나서 병원에 간 적이 있는데 의사 선생님이 ‘예전 같으면 병원에 오지도 않았다’고 하더군요. 심지어 얼굴도 아니고 무릎이면 연고 하나로 충분한 것 아니냐고 내가 말했어요. 배심원들도 고개를 끄덕이더라고요.”

대출금을 갚기 위해 시작한 일은 평생의 업이 되고 있다. 울산지법에서 그는 배심원들을 울리는 국선 변호사로 유명하다.

“합의부 부장판사와 국선 변호사들의 회식이 있었는데, ‘이번에 국민참여재판을 맡는 변호사가 누구냐’고 묻더라고요. 내 차례라고 했더니 대뜸 이런 말을 하는 거예요. 법정 경위한테 들었는데 전 변호사가 국민참여재판하면 펑펑 울어서 다음 재판이 기대된다고 했다는 거예요. 그래서 재판부에서도 기대하고 있다는 겁니다. 내가 배심원들 선동하는 재주가 좀 있는 거 같긴 해요.(웃음)”

전 변호사는 국민참여재판에서 음악이나 동영상, 애니메이션까지 전방위로 활용해 배심원 설득에 나선다. 간혹 피고인의 가족 등을 만나 직접 동영상을 촬영하기도 한다. 애니메이션 <강아지똥>(감독 권오성)의 편집본을 배심원들에게 보여주며 호소한 일은 아직 그의 머릿속에 생생하게 남아 있다.

고아로 자란 피고인은 23살이 될 때까지 사회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한 채 자살을 결심했다. 그런데 자살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문득 택시기사를 흉기로 다치게 하면 사형 당할 수 있다는 쪽으로 생각이 번졌다. 실행에 들어갔다. 택시기사와 옥신각신하던 끝에 칼을 빼앗겼고 택시기사는 옷만 살짝 찢긴 채 줄행랑을 쳤다. 변호인 첫 접견에서 피고인은 전 변호사에게 “이제 사형선고 받아서 죽을 수 있는 건가요?”라고 물었다.

검사의 무기징역 구형에도 전 변호사는 피고인이 무죄라고 변론했다. 그는 얼마 전 딸아이의 학부모 공개수업에서 본 <강아지똥>을 배심원들 앞에서 보여줬다.

“쓸모없을 것 같던 강아지똥이 결국 거름이 되는 이야기잖아요. 이 동화의 제작 취지는 ‘이 세상에 쓸모없는 물건은 하나도 없다’는 것이라고 설명했어요. 피고인도 자신이 쓸모없는 사람이 아니라는 걸 꼭 깨달았으면 했고요.”

최후 변론에서 그는 사법연수원을 마칠 때까지 병환에도 자신의 세 아이를 돌봐준 친정엄마의 희생이 없었다면 이 자리에 없을 것이라고 고백했다. 이어 다른 가정에서 태어나 성장했다면 꿈 많은 대학생이었을 피고인의 ‘강아지똥’이 되어달라고 배심원들 앞에서 호소했다. 순식간에 법정은 눈물바다가 됐다.

배심원들의 무죄 평결을 이끌어냈지만 피고인은 실형을 선고받았다. 이 대목에서 전 변호사가 갑자기 목소리를 높인다.

“국선 변호사가 열심히 배심원을 설득해서 무죄 평결을 받아놓았는데 단지 판례와 다르다는 이유로 재판부에서 무시하는 경우가 꽤 있습니다. 재판부는 기존 판례로 무장하고 있는 분들이니까 마음을 바꾸기가 쉽지 않은 거 같아요. 국민참여재판을 도입한 취지가 무색해지는 측면이 있어요. 많이 안타까워요.”

그의 주장은 배심원의 평결에 법적 구속력을 부여해야 한다는 데까지 나아갔다. 드라마에서도 비슷한 상황의 재판이 벌어졌다. 배심원들은 ‘상식이 법’이라고 주장하는 반면 판사는 ‘법리적으로 어렵다’고 맞선 것이다.

“아! 그런데 기사에는 너무 과격하기 쓰지 말아주세요. (국선 변호사의 인사권에 대한) 칼자루를 법원이 쥐고 있다는 건 아시죠? 아직 은행 대출금도 다 못 갚았는데….(웃음)”

내친 김에 배심원들을 설득하는 그만의 노하우에 대해 되물었다.

“드라마에서처럼 일단 검사를 먼저 치켜세워주는 걸로 신뢰를 얻나요?(웃음)”

“그렇지는 않아요. 검사를 치켜세우는 건 우리 쪽에서 하지 않고요. 내가 하는 말이 팥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믿을 만하다는 걸 배심원들에게 보여주려고 노력하죠. 처음에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들기 위해서 유명 농구 선수랑 똑같은 내 이름을 둘러싼 에피소드를 들려주기도 하고요. 법률 용어도 되도록 쉽게 말해요. ‘심신미약’이라는 용어를 이렇게 말하는 식이죠. ‘무슨 말인지 모르시겠지요? 이거 제정신 아니라는 겁니다.’”

국선 변호사는 수임 사건을 고를 수 없다. 성폭력 등 여성 변호사로서 납득하기 어려울 만큼 끔찍한 범죄를 저지른 피고인을 만날 때는 어떤 마음이 드는지 궁금했다.

“직업이니까… 개인감정은 누르고 해야죠. 그야말로 유죄가 인정될 수밖에 없는데 본인은 아니라고 주장하는 분들이 있어요. 그러면 이렇게 생각해봐요. 내가 피고인 말을 들어주는 마지막 사람이라고. 어쩌면 증거가 없을 뿐이지 정말 억울할 수 있겠다는 마음으로 일단 들어줘요.”

전 변호사는 깊이 반성한다고 했던 피고인이 다시 법정에 나타날 때 가장 속상했다. 변론을 열심히 해준다는 점을 악용해 사고를 치고 나서 다시 자신을 찾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법원 부근에 있는 그의 사무실엔 피고인들이 가져다준 선물이 주르륵 쌓여 있었다. 음료수와 돌미역, 고춧가루 등 품목도 다양하다. 이야기를 이어가던 전 변호사가 시계를 흘끔거린다. 7살, 9살, 11살 아이를 도우미 한 번 안 부르고 키운 그가 인터뷰를 얼른 마치자며 서두른다. 남편의 근무지가 서울인 탓에 그는 몇 년째 주말부부로 살고 있다. 전 변호사의 사무실에는 아이들이 아플 때 데려다 돌볼 수 있는 작은 방이 있었다.

“좀 있다 막내 유치원에 가봐야 해요. 오늘 연극 공연이 있는데 3막에서 늑대 역할로 나온다고 했거든요.(웃음)”


<기사 전문은 <나·들> 인쇄판에서 볼 수 있습니다.>

글 황보연 기자 whynot@hani.co.kr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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