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3.07.03 17:33 수정 : 2013.07.05 10:33

정부가 네덜란드의 시간제 일자리를 한국에 구현하겠다고 한다면 최저임금 인상과 노동시간 단축 등의 정책이 병행돼야 한다. 네덜란드는 시간제 일자리라고 해서 곧 나쁜 일자리가 되지 않는 사회·문화적 제도를 갖추고 있다.한겨레 자료
지난 6월 21일 강남구 논현동 최저임금위원회 앞에서 열린 집회에 참가했다. 올해도 최저임금 협상이 난항을 겪 고 있는 탓이다. 최저임금 5910원, 올해 대비 1050원 인상 요구에 경영계는 단 한 푼도 올릴 수 없다고 한다. 조세회피 처까지 만들 정도로 돈이 넘쳐나고, 기업엔 돈이 쌓이고 가 계엔 부채가 늘어도 ‘인상 없음’ 주장은 변함없다.

박근혜 정부의 잘못된 정책도 최저임금 문제 해결을 어렵게 하는 요인이다. 정부 발표처럼 고용률을 높이려면 최저임금 인상과 동시에 규제와 지원 정책이 필요하다. 최 저임금조차 주지 않는 일자리가 190만 개이고, 최저임금조 차 주기 어려운 영세사업장의 파산과 설립이 반복되는 한, 오늘 만든 일자리는 내일이면 사라져 고용률은 제자리걸음 이다. 그 때문에 최저임금 인상과 영세사업장 지원 등을 위 한 정책 패키지가 필요한데, 정부는 뒷짐만 지고 있다.

더욱이 양질의 시간제 일자리를 늘리려면 최저임금 인 상은 최우선 과제다. 시간제 일자리의 임금 수준은 최저임 금이 좌우한다. 손님이 많은 대규모 맛집 혹은 패밀리 레스 토랑이든 손님이 없는 작은 분식집이든, 해당 일자리의 임 금은 최저임금이다. 양쪽의 차이라면 패밀리 레스토랑은 ‘최저임금+주휴수당’의 임금 테이블이 있다는 것이고, 분 식집은 그조차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최저임금 인상을 통 한 시간제 일자리의 질 개선이 필요한데, 최저임금을 평균 임금의 50%로 하는 야당의 법 개정안을 정부와 여당은 반 대한다.

게다가 2012년 현재 183만 개에 달하는 시간제 일자리 의 시간당 임금은 7113원으로 정규직 대비 53.3%이며, 월 급여는 60만 원(정규직 대비 24.7%)에 불과하다. 고용보험 적용률은 14.8%이고, 국민연금 역시 12.2%로 사회보험 사각지대의 일자리이다. 정부가 ‘반듯한 시간제 일자리’라며 100억 원을 들여 만든 1300여 개 일자리의 평균 시간당 임 금도 8235원이다. 그런데도 다시 ‘반듯한 시간제 일자리’를 거론한다.

너무 부러운 네덜란드 시간제

여기에 네덜란드 시간제 논란까지 겹쳐 혼란이 더 크 다. 만약 이것이 네덜란드 시간제 일자리를 한국에 구현하 겠다는 정부 의지의 표현이라면 다음과 같은 정책이 연이 어 나와야 했다.

첫째, 최저임금 5910원에 대한 무조건 찬성이다. 네덜 란드의 최저임금을 한국 돈으로 환산하면 1만5천 원 정도 이다. 그렇다고 1만5천 원으로 올리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국민소득이 다른 점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네덜란드 의 명목 국민소득은 한국의 2.4배이며 실질 국민소득은 한 국의 1.3배이다. 이를 고려한 네덜란드 대비 한국의 시간당 임금은 5900원에서 1만1천 원 사이의 어느 값이다. 최저임 금 5910원은 그중 최저값과 같다는 점에서 네덜란드를 목 표로 하는 정부라면 군말 없이 수용해야 한다.

둘째, 시간제 일자리의 최저임금을 전일제 일자리의 그것보다 높인다는 발표이다. 네덜란드에서 주 36시간 이 하 일자리의 최저임금은 주 40시간 이상 대비 10% 정도 높 다. 따라서 한국의 최저임금을 5910원으로 확정할 경우 시 간제 노동자의 최저임금은 6500원이어야 한다.

셋째, 최저임금 이하 노동자 비중을 네덜란드 수준인 0.3%로 낮추겠다는 정책이다. 한국의 최저임금 미만자는 전체의 10.6%로 네덜란드보다 35배 정도 많다. 최저임금을 받는 노동자가 네덜란드에서는 2%인 반면 한국은 20%에 육박한다. 그 때문에 최저임금을 주지 않는 사업장에 대한 감독을 강화하고, 최저임금조차 주기 어려운 영세사업장 노사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영세사업장의 임금 지불 능력 을 키우기 위해 대중소기업 공정거래, 하도급이나 편의점· 대리점·가맹점 문제 해결을 위한 경제민주화가 중요하다.

그런데 기대했던 정책이 없다. ‘고용률 70% 로드맵’을 이 리 보고 저리 보아도, 꼼꼼히 훑어보고 수없이 읽어도 보이 지 않는다. 오히려 경제민주화 속도 조절만 거론할 뿐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시간제가 전체 일자리의 20%를 넘는 나라는 독일·스위스 등 소수에 불과 하다. 이런 나라에서도 시간제 일자리의 대부분이 저임금이기 때문에 시간제 늘리기 정책에는 난색을 표한다. 그나마 네덜란드가 입소문에 오르내리는 것은 시간제 일자리가 곧바로 나쁜 일자리가 아닌 사회·문화적 제도 탓이다. 중국 속담에 ‘귤이 회수를 건너면 탱자가 된다’는 말이 있다. 그처럼 사회·문화적 배경, 물리적 토양의 차이가 중요하다. 쌍둥이라도 다른 집에서 기르면 서로 달라진다지 않은가. 말뿐만 아니라 제도를 비슷하게 만들어야 한다.

연간 노동시간 ‘2193시간 vs 1377시간’

이때 가장 중요한 것은 노동시간 단축이다. 네덜란드는 유럽에서 노동시간이 가장 짧은 나라며 이것이 좋은 시간제 일자리를 만드는 배경이다. 네덜란드는 30년 전인 1983년 연간 노동시간이 1524시간이고, 시간제가 늘어난 현재 노동시간은 1377시간으로 더 줄었다. 장시간 근로 관행이 없고 전일제와 시간제 간의 노동시간 차이가 크지 않은 탓에 시간제에서 전일제로, 전일제에서 시간제로 이동하기 쉽다. 반면 한국은 1983년 근로시간이 2911시간이고, 지금도 OECD 최장인 2193시간이다. 한 사람을 채용하면 그 사람에게 장시간 일을 시키는 노동 관행이 있기 때문에 그보다 짧게 일하는 시간제 일자리는 보조 수단일 뿐이다. 노동시간을 단축하고 장시간 노동 관행을 없애지 않는 한 시간제 일자리는 영원히 보조 수단이다. 양질의 시간제 일자리는 불가능하다.

<기사 전문은 <나·들> 인쇄판에서 볼 수 있습니다.>

은수미 민주당 초선 비례의원. 노동권 확립과 경제민주화를 위해 노력하며 ‘소명으로서의 정치’가 무엇인지 항상 묻고 산다. 제주 올레 걷기, 친구와 수다떨기, 팥빙수 먹기, SF영화 보기, 춤추는 것 보기를 무척 좋아하지만 의원이 된 뒤부터 좋아하는 것이 아닌 해야 할 것이 우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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