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3.07.03 16:39 수정 : 2013.07.05 10:24

지난 5월 22일 밀양시 부북면 평밭마을 127번 송전탑 건설 현장에서 마을 주민들이 농성을 벌이고 있는 모습.
“내 한평생 나고 자라 농사만 짓고 사는데/ 논 한복판 마을 길에 송전탑이 웬말/ 아리아리랑 스리스리랑 아무도 몰라.”

지난 6월 17일 오후, 경남 밀양시 부북면 평밭마을에서 울려퍼진 노랫가락이다. 구성진 가락의 전통 민요 ‘밀양 아리랑’은 송전탑 반대를 위한 ‘투쟁가’로 개사돼 불리고 있었다. 개사된 노래는 정절을 지키려다 죽임을 당한 밀양부사의 딸 아랑을 기리는 애달픈 가락만큼이나 절절하다. 평밭마을이 시작되는 화악산 중턱에 차려놓은 ‘움막’(농성장)에 앉은 주민들의 수다도 송전탑 설치를 저지한 ‘무용담’으로 모아진다.

“벌써 3년째 아이가. (한국전력 쪽 용역업체 직원들이 송전탑을 세우려고) 나무를 벨라꼬 하믄 우리가 (나무를) 꼭 부둥켜 안고 있었는기라. 관절도 안 좋은 할매들이 짝대기를 짚고 새벽부터 밤까지….”

움막 바로 위쪽 129번 송전탑 부지를 가리키는 한옥순(66)씨가 분통을 터뜨린다. 가파른 산길을 오가면서 전기톱을 든 용역 직원들과 충돌한 기억이 생생하다고 했다. 마을의 한 어르신은 전기톱에 다리를 잘릴 뻔했다. 몸싸움이 벌어지는 과정에서 톱이 어르신의 몸을 스쳤고, 그 바람에 솜바지가 떨어져나갔다. 이들의 격렬한 저항에도 송전탑 부지에는 이미 밑동만 남은 나무들이 여럿 눈에 띈다.

한씨는 올해 한전이 송전탑 설치 공사를 중단한 지 8개월여 만에 재개한 지난 5월 20일부터 ‘전문가협의체’1 구성으로 공사가 잠정 중단된 5월 29일까지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당시 한전은 곳곳에서 주민들과 충돌했다. 팔순 넘은 노인들까지 공사하러 온 용역 직원들과 장비의 진입을 막는 데 온 힘을 쏟았다. 공사장으로 가는 길은 경운기와 트랙터 등 농기계로 막았고, 강제로 들어오면 목을 매겠다며 진입로 주변 나무에 밧줄을 걸어놓기도 했다.

한씨는 공사 인력 앞에서 ‘알몸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전경들까지 와서 서 있는데… 갑자기 가슴이 콱 맥히면서 이게 뭔가 싶었다 아이가. 우리가 할 수 있는 기 별로 없다. 무기로 쓸라꼬 인분도 두 병씩 차고 그랬대이.”

고령화된 이 마을에서 ‘새댁’으로 불리는 장재분(57)씨도 옆에서 거든다. “마을에 500m 간격으로 철탑이 들어선다 안 하드나. 여기가 365일 지나다니는 길이다. 그라믄 송전탑 전선을 머리에 이고 사는 기랑 뭐가 다르겠노.”

평화롭던 마을이 아수라장이 되고 농사 일밖에 모르던 주민들이 ‘탈핵’ 전사가 되기까지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그리 높은 탑이 들어서는 줄 누가 알았겠습니꺼.”

같은 날 밀양시 상동면 여수마을에서 만난 백영민(60)·성은희(52)씨 부부는 “송전탑이 그렇게 무시무시한 건지 몰랐다”는 말을 연신 쏟아낸다. 2005년 마을에 765㎸ 송전탑이 들어설 거라는 이야기가 처음 나왔을 때만 해도 이들은 “전봇대가 하나 더 서는 줄만 알았다”고 한다. 그들을 비롯한 마을 주민들은 이전에 한 번도 송전탑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2005년 8월부터 시작된 주민설명회는 마을 이장 등을 중심으로 형식적으로 진행했기에 자세한 사정을 아는 주민이 많지 않았다.

초고압 송전탑 62기… 논·밭·마을 초토화

송전선은 발전소에서 생산한 전력을 변전소로 보내기 위해 설치한 전선이다. 변전소는 전기 수요자에게 보내는 과정에서 전압이나 전류의 성질을 바꾸기 위한 시설이다. 이런 송전선을 걸기 위해 높이 세운 철탑이 송전(철)탑이다. 신고리 원자력발전소(이하 원전)에서 북경남 변전소(경남 창녕군)로 송전선을 깔기 위한 경과지를 선정하는 데 밀양 구간(39.15km)이 포함된 것이다. 총 162기의 765㎸송전탑이 세워지는데, 그 가운데 밀양시를 통과하는 구간인 5개 면(단장면·산외면·상동면·부북면·청도면)에 62기가 들어선다.

2007년 11월, 당시 지식경제부(현 산업통상자원부)의 승인을 받은 이 사업은 2008년 착공됐지만 밀양 주민의 반대로 공사 중단과 재개를 반복해왔다. 정부와 한전은 완공 시기를 애초 계획보다 2년 늦춘 오는 12월로 잡았지만 주민 반발로 다시 공사가 중단된 상태다.

상동역에서 불과 100m가량 떨어진 121번 송전탑 부지를 보여준 백씨는 “산에서 산으로 멀리 떨어져 있어도 마음이 편치 않을 텐데 기차역과 논·밭 위, 마을 바로 앞까지 아주 초토화될 판”이라고 우려했다. 마을 곳곳에 들어설 765㎸ 송전탑 높이는 최대 145m에 이른다. 아파트 40층 높이다. 전봇대밖에 본 적 없는 마을 주민들로서는 충격이 아닐 수 없다. 일본 전력중앙연구소도 이런 높이의 송전탑은 거리 280m 안에서 압박감이 강하게 느껴진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은 적이 있다.

국내에서 초고압인 765㎸ 송전선을 처음 도입한 것은 1999년이다. 197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66㎸와 154㎸를 썼고, 1976년에 처음으로 345㎸ 송전선을 사용했다. 765㎸ 송전선은 154㎸에 견주면 18배 많은 전기를 보낼 수 있다. 한전은 ‘초고압 송전선이 송전 용량을 늘리고, 전력 손실을 줄여 경제적 이득이 높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기사 전문은 <나·들> 인쇄판에서 볼 수 있습니다.>

글 황보연 기자 whyn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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