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3.07.03 16:33 수정 : 2013.07.05 10:02

무더위가 본격화되면서 ‘블랙아웃’ 사태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그러나 우리 생활 공간을 조금만 신경 써서 살펴보면 전력 사용을 크게 줄일 수 있다. 사진은 건물 외벽에 걸린 에어컨 실외기들.한겨레 탁기형
밀양에 다녀온 뒤 극심한 후유증(?)을 앓고 있다. ‘전력 다이어트’에 온 신경이 곤두서 있다. 하루 종일 ‘전기밥솥 보 온 기능은 끄고 나왔나’, ‘플러그 전원은 제대로 껐나’ 하는 염 려뿐이다. 가족을 향한 잔소리도 늘었다. 세 아이에게 전기 절약의 중요성을 깨닫게 하기 위한 목적도 있다. “불 끄고 나 와야지.” “잘 거면 텔레비전 전원 꺼야지.” “아무도 없는 목욕 탕 불 누가 켰니?” 이런 식이다.

회사에서도 증세가 이어진다. 출근해서 가장 먼저 하 는 건 쓸데없이 켜진 조명 스위치를 끄는 일이다. 비어 있는 화장실 칸에 켜진 전등(한겨레신문사 화장실은 칸마다 별 도의 전원 스위치가 있다) 끄기도 요즘 신경 써서 챙기는 일 중 하나다. 컴퓨터를 쓰지 않을 때는 전원을 끄거나 대기모 드로 전환시키는 일도 빠뜨리지 않는다.

‘밀양 후유증’ 내가 가해자?

그뿐만이 아니다. 버스 타고 출퇴근할 때나 길을 걸을 때, 심지어 여행할 때면 전봇대와 송전탑의 수를 세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그러고선 ‘저리 많이…’ 한탄한다. 신기한 일 이다!

지금껏 ‘전기’의 가치와 의미를 깊이 고민해본 적이 없 다. 실생활에 꼭 필요한 것, 값싸고 유용한 것쯤으로 치부 했다. 그런데 그것이 전부가 아님을 밀양에서 배웠다. 편리 하게 쓰고 있는 전기가 누군가의 ‘고통의 눈물’임을 밀양에 다녀와서 깨달았다. 내 습관부터 돌아보게 됐다. 전력 사용 량이 증가하면 전력 생산시설 증설과 전력 이송을 위한 송 전탑 건설이 반드시 뒤따른다. 밀양의 비극도 여기에서 기 인했다.

송전탑으로 고통받는 이들이 비단 밀양 사람뿐일까. 우리 모두가 가해자이자 희생자다. 자각하지 못할 뿐 우리 는 전봇대와 송전선, 송전탑으로 둘러싸인 공간에서 아등 바등 살아가고 있다.

6월 17일 출근길, 집에서 버스정류장까지 가는 길에 마주친 전봇대만 24개다. 도로 옆 폭이 1m도 채 안 되는 인 도를 따라 50m 간격으로 주욱 늘어선 전봇대를 보니 가슴 이 콱 막힌다. 전봇대가 세워진 곳은 아이와 일렬로 걷기조 차 어려웠다. 점령군이 따로 없다. 어른 키의 2배 가까이 되 는 전봇대에 거미줄처럼 얽혀 있는 수십 가닥의 송전선 뒤 로 파란 하늘이 가려져 있었다. 예전 같으면 대수롭지 않게 넘겼을 일상 속 광경이다.

구로와 여의도 사이를 운행하는 5618번 버스를 탔다. 창밖을 내다봤다. 도로를 따라 전봇대 행렬이 이어졌다. 전 국에 설치된 전봇대가 700만 개에 육박하고, 서울에만 20 만 개가 세워져 있다고 한다. 정부는 2017년까지 서울·부산·인천·대구·광주 등 인구 50만 명 이상 대도시, 2022년까지 중소도시 대상으로 전봇대 정비에 나설 계획이다.

밀양 사람들은 “송전탑이 가난하고, 못 배우고, 늙고, 힘없는 사람들이 사는 농촌 지역에 세워진다”고 억울해했다. 과연 그런가? 6월 15~16일 경기도 가평을 방문할 일이 있었다. 습관적으로 산 위에 우뚝 솟은 송전탑을 찾았다. 산과 강이 교차하는 수려한 풍광은 이미 송전탑으로 상당히 훼손된 상태였다. 도로와 농로를 따라 전봇대가 빼곡했다. 가평 전역이 송전탑과 송전선, 전봇대에 둘러싸인 분지 같았다. 전력의 공급처와 수요처가 멀리 떨어진 우리나라에서 송전탑은 어쨌든 필요악이다. 전력 수요가 줄지 않는 한 송전탑 건설을 막을 수 없다. 최선책은 전기 사용을 줄이는 것뿐이다.

‘전기 먹는 하마’는 전기밥솥

6월 18일, 퇴근 뒤 중대 결심을 했다. ‘전력 다이어트’를 위한 구체적인 행동지침을 만들기로 한 것이다. 지난 5월 기준 32평(105.8㎡) 아파트에서 우리 다섯 식구가 사용하는 월 평균 전력사용량은 219kWh(전기요금 2만890원)였다. 서울 지역 가구당 월 평균 전력사용량 315.5kWh(5만690원)에는 미치지 못했다. 그럼에도 전기를 좀더 절약할 수 있는 여지가 있지 않을까.

<기사 전문은 <나·들> 인쇄판에서 볼 수 있습니다.>

글 김미영 기자 kimm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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