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3.07.03 14:47 수정 : 2013.07.04 14:30

2008년 7월 17일 이 기습적으로 주주총회를 열어 이명박 대통령 후보 특보 출신인 구본홍씨를 사장으로 선임했다. 최기훈 당시 기자가 이에 항의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한겨레 김정효
어떤 직업인을 만났을 때 꺼낼 수 있는 가장 흔한 질문 가운데 하나는 ‘당신은 왜 그 직업을 갖게 되었는가’일 것이 다. 나 역시 그랬다. 1996년 1월 에 기자로 입사하고 나서 많은 질문을 받았다. 내 대답은 ‘사회가 더 나은 방향 으로 발전하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 싶어서’였다. 단 순하고 식상한 답이지만 실제 그랬다. 대학 때 과학을 전공 한 것도 사람들에게 뭔가 도움이 되고 싶어서였고, 기자가 된 것도 마찬가지 이유였다.

틀에 박힌 주입식 입시교육의 세례(?)를 받고 대학에 들어갔을 때 큰 충격을 받았다. 그때까지 내가 살아오면서 진실이라 생각한 것이 더 이상 진실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됐고, 내가 가진 세계관도 누군가 내게 세뇌시킨 것일 뿐이 라는 것을 알고 방황했다. 그토록 좋아하던 전공에 대한 흥 미도 점점 잃어갔다. 졸업 후 뒤늦게 군대 생활을 끝낼 즈음 찾은 해답이 기자였다. 부모님의 기대에 부응하고 입에 풀 칠도 하면서, 내 직업 활동으로 사회가 조금이나마 긍정적 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면 그 이상 보람 있는 일이 어디 있겠는가. 그런 생각을 적어도 기자가 된 후 5년 동안 유지 한 것 같다.

그런데 내가 왜 기자가 되려고 했는지 아주 오랫동안 잊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28살에 입사해 40살이 훌 쩍 넘어서였다. 그러니까 2008년이다. 신임 사장으 로 MB(이명박)의 대선본부 방송특보 출신의 구본홍씨가 부임해 그에 맞서 싸우는 과정에서 나는 잊고 있던 기억을 떠올렸다. 내가 ‘왜 기자가 되려고 했는가’를.

그때까지 나는 누구보다 성실하고 충실한 일꾼이었다. 대단한 특종은 없지만 내가 가진 고민을 기사에 최대한 녹 여 넣으려 했고, 일도 꽤 잘 했으며, 회사에서 평가도 좋았 다. 내가 모시던 선배 누구도 나를 싫어하지 않았고, 한 번 이라도 함께 일한 사람은 내 능력을, 인간성을 좋게 평가해 줬다. (의심 나면 에 전화해서 물어보시라.) 그런데 그뿐이었다. ‘공정방송’을 망치려는 서슬 퍼런 정권과 치열 한 전투를 벌이면서 정신 차리게 되었다. 돌발영상팀장 임 장혁 선배가 한 말이 생각난다. “낙하산 사장 출근 저지 투 쟁을 하고 천막 농성을 하다 보니까 그동안 무심코 지나친 수많은 농성자와 언론이 외면한 그들의 사연이 보이더라.” 그는 “다시 취재하게 된다면 이전과는 달라질 것 같다”는 말을 했는데, 나 역시 같은 마음이었다.

하지만 때가 너무 늦은 것일까? 신생 매체로서 산전수 전 겪으며 동지애로 10년 넘게 똘똘 뭉친 조직은 산산이 부 서졌고, 인간적인 배신감과 환멸이 몸서리쳐질 정도로 크 게 다가왔다. 그런 것을 온전히 감당하며 견뎌내기에 나는 너무 약했고 지쳐 있었으며, 남은 내 인생이 불쌍하게 여겨 졌다. 해직 동료 6명이 해고무효 소송 1심에서 전원 복직 판 결을 받고 난 뒤 며칠 지나지 않아 남은 동료에 대한 미안 함, 에 대한 자랑스러움, 가족에 대한 책임 이 모든 것을 던져버렸다. 기자가 되고 싶던 이유도 함께.

초년병 시절 ‘기자는 책상머리에 앉게 되는 순간 더 이 상 기자가 아니다. 기자생활은 그때까지만 하자’고 되뇌이 던 일이 현실이 돼버렸다. 평기자에서 차장 딱지를 단지 1년 여 만에 난 기자직을 던져버렸다.

그 후 언론 쪽으로 다시는 발을 들여놓을 생각이 없었 다. 그러나 어찌됐든 나는 다시 언론으로 돌아왔다. 나 스 스로의 결심을 위반한 것이다. 왜 다시 돌아왔느냐고?

내 대답은 다시 ‘사회가 나은 방향으로 발전하는 데 조 금이나마 도움이 되고 싶어서’이다.

참으로 뻔뻔스럽긴 하다. 하지만 사실이다. 돌고 돌아 서 마흔다섯에 1996년 입사 때의 그 마음으로 다시 서 있 다. 체력? 안 된다. 밤샘작업? 훨씬 많다. 취재 여건? 후지 다. 복지? 봉급? 노코멘트다. 그래도 가끔 생각한다. ‘기자 로서 나는 행복한가’라고. 적어도 지금까지는 오케이다. 행 복하다. 이런 느낌, 에서도 그렇게 많이 갖지 못했 다. 왜일까?

답은 간단하다. 기자가 되려고 한 이유를 이곳에서 조 금씩 실현해가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쓰는 기사로, 내가 내 보내는 방송 리포트로 세상은 많이 바뀌지 않을 것이다. 그 래도 ‘이런 언론도 있구나’ 하면서 희망을 발견하는 사람이 많은 것 같아 크게 고무적인 것만은 사실이다. 매일같이 실 감하고 있다. 보도가 나갈 때마다 ‘고맙다’, ‘힘내라’는 응원 이 쏟아진다. 대한민국 어느 기자가 독자에게, 시청자에게 이런 환대를 받으며 살겠는가? 응원하는 시민이 바라는 것 은 한 가지다. 진실을 있는 그대로 전해달라는 것이다. 숨 기지 말고, 왜곡하지 말고, 외면하지 말고 알려달라는 것이 다. 언론이라면 당연히 해야 하는 본연의 역할일 뿐이다. 그 럼에도 그 평범한 것에 목말라하던 시민이 십시일반 후원 하며 박수를 보내고 응원한다. 바꿔 말하면 원래 했어야 할 언론의 역할을 비로소 <뉴스타파>에서 내가 하고 있다는 말일 것이다.

<기사 전문은 <나·들> 인쇄판에서 볼 수 있습니다.>

글 최기훈 기자를 하다 2009년 11월 스스로 사직했다. 낙하산 사장 반 대투쟁을 하다 해직된 기자 6명이 소송 1심에서 전원 복직 판결을 받고 난 직 후였다. 그 후 소설 쓰기에 도전하기도 했으며, 지난 2월부터 <뉴스타파> 시즌 3에 합류해 다시 기자의 길을 걷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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