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2.12.28 01:14 수정 : 2012.12.28 01:16

주민센터에 있는 헬스장과 수영장에서 운동을 하고 사우나를 마친 뒤 1층에 있는 카페에서 커피를 마신다. 결제는 오직 출입구 키로만 가능하다. 카페에는 지하 2층 골프연습장에서 골프를 마친 사람들, 그림을 그리며 노는 아이들, 유모차를 세워놓고 수다를 떠는 엄마들이 보인다. 이 건물 앞에는 이영애가 나오는 TV 광고의 배경이 된 분수대가 있다. 한 바퀴를 도는 데 30분이 걸리는 단지 산책로를 따라 걷다 보면 아이들이 놀고 있는 카약장이 나온다. 수영복을 입은 꼬마들이 튜브를 끌고 달려가는 그곳에는 ‘외부인 출입 금지’라는 푯말이 달려 있다. 이 브랜드 아파트의 카피는 ‘모두가 꿈꾸는 그곳’이다. 그리고 CF 카피는 ‘아파트가 나를 특별하게 만들었어요’였다. 나는 모두가 꿈꾸는 그곳에 사는 정말 특별한 ‘시프트’ 입주민이다.

  평화로운 이 단지의 광고 카피는 ‘세상이 꿈꾸는 휴양지를 품다’였다. 이 말이 지금 우리 집에 해당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지난 20년 동안 우리 가족의 주거사에는 썩 어울리는 말이다.

나의 살던 고향은 강남

 1984년생인 나는 태어난 곳마저 강남으로, ‘내추럴 본 강남키드’다. 1946년생인 아버지에게 아직 개발의 손길이 닿지 않은 1970년대 서울 변두리 강남구 삼성동은 생활의 터전을 잡기에 나쁘지 않았다. 가난한 살림이었기 때문에 나는 태어난 지 백일이 지나자마자, 할머니의 품에 안겨 경남 하동으로 내려갔다. 시골집은 아버지가 베트남전 참전의 대가로 받은 돈으로 마련한 것이었다. 할머니 손에 이끌려 다시 서울에 올라온 것은 1989년, 내 나이 다섯 살 때였다. 당시 부모님과 친척들은 공장 부지를 겸하던 공터의 가건물에 함께 살고 있었다. 구청 공무원들이 손수 망치를 들고 무허가 건물을 부수러 다니곤 했다. 상수도 시설이 없어서 녹물을 받아 녹을 가라앉혀 사용했고, 주변 이웃들은 천막집, 소파 천갈이집, 낡은 화원 등이었다. 동네에서 가장 큰 건물은 교회와 유치원, 그리고 전 대통령 딸이 산다는 담이 높은 주택이었다. 그 집으로 공이 넘어가면 공을 버린 셈 쳤다.

<기사 전문은 <나·들> 인쇄판에서 볼 수 있습니다.>

김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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