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3.06.06 14:39 수정 : 2013.06.23 12:00

(1)유령, 먹고 살기 힘들어서 타인을 빌렸다

이름도 호명되지 않는 대필작가 장씨

“직접 만나서 인터뷰하고 싶어요. 언제 어디로 찾아가면 될까요?”

“꼭 대면해야 합니까? 이메일이나 전화로 하면….”

이런 드문 상황, 대략난감이다. 서면 인터뷰라니! 그가 양해를 구한다. “제가, 투명인간이잖아요.” 좋다. 쿨하게 그의 요구를 수용하기로 한다. 10년 넘게 대필작가를 하면서 세운 나름의 원칙이란다. “요즘엔 대필 청탁과 계약서 작성 과정에서도 대면 과정이 생략돼요. 이메일과 전화면 족하죠. 이젠 얼굴을 보이는 게 남우새스럽기도 하고….”

문예창작과를 졸업한 장수철(48·가명)씨는 1990년대 문예지로 등단한 시인이자 소설가다. 그 이름 뒤에 꼬리표가 하나 더 있으니 ‘대필작가’다. 고스트 라이터(Ghost Writer), 유령 작가가 그의 직업이다. 그가 서면 인터뷰를 고집한 이유는 분명했다. 의뢰인 이름 뒤 ‘유령’ 혹은 ‘투명인간’처럼 빌붙어 먹고 사는 존재여서란다. 책 출간과 동시에 그는 사라지는 운명이다. 아무도 그의 존재를 기억하지 않는다. 대필작가조차 자신을, 동료를 투명인간 취급한다. 이들 사이에 연줄·인맥·친분 관계가 생길 리 만무하다. 동명의 영화 <고스트 라이터>에서 보듯 대필작가에겐 이름뿐 아니라 실체도 없다.

“지금껏 100편 이상 작품을 대필했다고 들었습니다.”

“네. 대필, 윤색과 각색 등까지 포함하면 그렇습니다.(웃음)”

그가 보내준 인터뷰 답변지에서 가장 눈에 띈 건 대필작 목록이었다. A4 용지 반 장을 가득 채울 정도로 빼곡했다. (차마 여기서 밝힐 수는 없다.) 장르도 장편소설, 중국 역사소설, 한국·세계사 전집, 정치유머집, 에세이·산문집, 역사서, 자기 계발서 등 다양했다. 놀라웠다.

그가 투명인간이 된 시점은 1990년대 중반이다. 애초 대필은 전업작가의 보조수단이었다. “시인으로 등단한 지 2년 후 지인에게서 장편소설을 윤색해서 완성해달라는 의뢰를 받았죠. 등단 이듬해 첫아이가 태어나, 선택의 여지가 없었죠.”

대필의 시작이었다. 그 뒤로는 알음알음 대필 의뢰가 쇄도했다. 점차 대필작이 늘었다. 2000년대 들어선 부업이 본업처럼 돼버렸다. ‘본업을 위한 최소한의 버팀목’, ‘한때의 외도’라고 보듬은 세월이 십수 년이다. 늘 자신의 이름을 내건 작품을 갈망했다. 대필을 통해 살림이 핀 건 위안이다. 꿀이 흘러넘치는 독배처럼 얄팍한 원고료는 달고 맛났다. ‘돈 때문에 영혼을 파는 투명인간’답게 작가의 자존심과 정체성은 깔끔하게 버려야 했다. 그럼에도 산고의 결과물이 타인의 성과물로만 기억·유통될 때면 소주 한잔을 벗삼아 허탈감을 달랜다.

“작가와 작가지망생이 대필에 발 담그는 건 경제적 이유가 큽니다. 명망 있는 베스트셀러 작가를 제외하고 전업작가로 밥벌이가 녹록지 않아요. 내 책만으로 밥벌이가 가능하다면 대필할 이유가 없지요.”

신춘문예에 당선됐지만 돈을 벌기 위해 대필작가가 될 수밖에 없던, 드라마 <천일의 약속>(SBS)의 여주인공 이서연이 떠올랐다.

많은 이들을 투명인간으로 만드는 ‘대필’은 어떤 과정을 거쳐 이뤄질까. 그는 물색-계약-집필 순이라고 귀띔했다. 적임자 물색이 관건이다. 출판사와 의뢰인의 인맥이 총동원된다. 책의 콘셉트에 맞는 유능한 대필자 확보는 이들의 경제력과 인력풀에 비례한다. 장씨는 “지인들을 동원해 적임자를 찾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자서전에 유능한 작가에게 경제 입문서를 맡기는 경우는 드물다”고 했다. 대필의 세계도 장르별로 분업화·전문화되어 있다는 뜻이다.

대필자가 선정되면 이메일과 전화 등을 통해 계약서 내용을 조율한다. 송달 역시 이메일과 등기우편을 통한다. 계약 형태는 ‘출판(인세) 계약서’, ‘출판권 설정 계약서’가 아니다. ‘윤문 계약서’, ‘집필 계약서’, ‘외주 계약서’ 등 변형된 형태다. “‘비밀 유지’ 같은 구체적인 항목을 직접 기재하는 경우는 드물어요. 문서화하지 않아도 ‘보안’은 이 바닥에서 불문율이거든요. 의뢰인과 편집자, 대필자가 대면하는 일은 극히 없어요. ‘대필작가=투명인간’이니까요.”

대필은 주로 자서전, 평전, 재테크, 자기 계발서, 실용서, 에세이 장르에서 이뤄진다. 트렌드에 맞춰 속성으로 펴내야 하는 특성 탓이다. 출판계에서는 정치인과 기업인, 연예인의 이름으로 나온 자서전의 80% 이상이 대필이라는 풍문이 정설처럼 떠돈다. <마시멜로 이야기> <그림 읽어주는 여자> 등이 대리번역과 대필 논란을 낳은 대표작이다.

대필 기간은 원고의 성격에 따라 다르다. “3~6개월이 일반적인데, 나는 주로 3개월짜리 작업을 했어요. 첫 달에 자료수집과 취재·인터뷰, 둘째 달에 집필, 셋째 달에 교정·수정 작업을 하지요.” 대필작가의 처우와 원고료는 경력에 따라 차등된다. A4 용지 50매를 기준으로 해 희곡·영화 시나리오는 1500만~3천만 원 선, 단행본은 수백만 원 선이다. 이 업계에서 명망(?)을 쌓은 이들은 대필이 본업이기도 하다.

“목돈을 챙길 수 있는, 운 좋은 경우도 있어요. 자금력이 뛰어난 출판사나 의뢰인을 만났을 때, 국회의원 출마를 앞둔 기업인의 자서전을 쓸 때이죠. 특히 후자의 경우 원고료와 상관없이 ‘잘만 써달라’고 읍소할 때가 많아 갑을 관계가 바뀌기도 하지요.”

인터넷에서 ‘대필작가’를 검색했다. 관련 사이트와 블로그가 실타래처럼 얽혀 나왔다. 국회의원과 지자체장, 교육감과 교육위원 등 선거 출마를 준비하는 사람만 전국적으로 2만여 명이다. 여기에 단행본, 논문, 자기소개서, 희곡, 시나리오의 대필까지 합치니 수요가 어마어마하다. 최근에는 저자들이 먼저 작품을 윤색하기 위한 대필자를 요청하는 추세란다. 여기에 ‘88세대’ 등 좁은 취업문도 한몫했다. 기업형 대필작가 그룹도 성업 중이다. 출판사마다 확보한 대필자 사진과 프로필을 홈페이지에 노출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그렇게 투명인간이 역설적으로 가시화되고 있다. 대필을 매개로 투명인간을 양산하는 구조이다.

“대필작가로 선호도가 높은 직업군은 시인, 소설가, 방송작가, 출판 편집자나 기획자입니다. 언론사 기자, 국문학과나 문예창작과 졸업자, 작가지망생, 각종 문예 관련 공모전 수상자, 남성보다 여성이 인기가 있고요.”

끝으로 그에게 물었다. 우리 출판계에 투명인간이 넘쳐나는 양태를 어떻게 보느냐고. “첫째는 먹고살기 힘들어서죠. ‘투명인간이 되더라도 글을 쓰겠다’는 욕망을 가진 작가 지망생들의 적극적인 의견 표출의 결과로 볼 수 있고요. 투명인간일 때라야 가능한 관음, 일탈, 세속 등의 욕망을 타인의 이름을 빌려 분출할 수 있는 것도 한 원인 아닐까요?”

김미영 기자 kimmy@hani.co.kr


(2)불멸, ‘운칠복삼’ 정신으로 오늘도 버틴다

다국적기업의 영업맨 ‘제2 고 과장’

다국적기업의 영업맨들은 본사의 눈에는 투명인간이다. 투명인간 영업맨들은 글로벌 메커니즘 속에서 ‘밀어내기’ 전쟁을 벌인다. 누가 죽고 누가 죽이는지 알 수 없는, 말 그대로 스마트 전쟁이다. 한겨레 이종근 기자
운칠기삼(運七技三)은 이 바닥에서 물색없는 소리다. 여기서는 운칠복삼(運七福三)이다. 뭐, 복칠운삼이라고 뒤집어도 뜻의 차이는 전혀 없다. 다들 그렇게 말하는 근거는 딱 하나다. 누구나 직접 겪었고, 지금도 겪고 있으니까. 안 그러고는 우리가 탄 이 아찔한 롤러코스터를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노력과 성실? 그거 안 하는 사람이 어디 있나.

나는 영업맨이다. 옹근 7년이다. 그러나 늦깎이다. 30대 중반에 엔지니어링 부문에서 이쪽으로 갈아 탔다. ‘기업의 꽃은 영업’이라는 말에 혹하기에는 철든 나이였다. 말이 좋아 엔지니어링이지 영업 지원이었다. 마케팅에 필요한 기술 자료를 영업 쪽 요청을 받아 제공하는 일이었다. 선배들은 마흔이면 못 버티고 나갔다. 제 발로 나가기도 했지만, 예외 없이 돌아서서 욕을 했다. 내 앞의 시간도 사위어가는 촛불이었다.

이곳에선 기술 개발을 하지 않는다. 엔지니어링 고유 분야가 없다는 뜻이다. 그런 걸 어디에서 하는지도 모른다. 본사만 정확히 안다. 아, 본사는 미국에 있다. 한국 법인은 형식상으로는 본사와 직접 관련도 없다. 세계 영업을 총괄하는 유럽 어느 나라 법인과 한국 고객을 연결해주는 에이전트일 뿐이다. 한국 법인은 장부상 비용을 쓰기만 할 뿐 매출도 없다. 당연히 세금도 안 낸다. 이쪽 분야 다국적기업 대부분이 그렇다.

얼마 전 드라마 <직장의 신>(KBS2 TV)에서 고정도 과장이 한때 ‘영업왕’으로 불리던 자기 과거를 쓸쓸히 추억하는 장면을 보았다. 영업왕이 어떻게 투명인간 취급받는 만년 과장으로 전락할 수 있느냐고? 벌써 잊었나, 운칠복삼! 특이한 건 그의 몰락이 아니라, 그러고도 그가 안 나가고 버티고 있다는 사실이다. 내 주변에도 그런 사람이 한둘 있기는 하다. 집에서만큼은 투명인간이 되기 싫어서 직장에서 이 악물고 버티는 투명인간.

고 과장이 어떻게 영업왕이 되었는지 모르지만, 나도 시작은 찬란했다. 첫해, 전임자가 실적을 못 내고 손 털고 나간 분야를 맡았다. 그러고도 목표의 220%를 달성했다. 입소문 타고 스카우트된 난다 긴다 하는 영업맨들도 처음 몇 해는 헤매기 마련인데, 어제까지 기술 서적만 들여다보던 내가 낸 실적이었다. 비법이 궁금하면 들려줄 수 있다. 다만, 실망하지 말길. 꿈에도 예상치 못한 초대형 발주 두 건이 터진 것이다. 굴러 들어와도 실적은 실적이다. 뻔뻔해서 하는 말이 아니다. 회사도 당연하게 여긴다. 통 큰 회사라고 봐도 무방하다. 회사는 두둑하게 수당도 챙겨준다. 목표 초과분에 대해서는 3배까지 가중치를 부여해 지급한다. 물론 공짜는 없다. 회사는 이듬해 할당 목표를 크게 올린다. 그해 10억 원을 하면 17억5천만 원을 던진다. 역시 통이 크다 할 수 있다. 목표를 낮추는 협상도 하지만, 통이 확 줄어 기껏 2~3%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보자. 올해 그 분야에서 주문이 쏟아졌다고 해서 내년에도 그럴 거라는 보장은 없다. 아니, 그 반대다. 우리 제품이 하루이틀 쓰고 버리는 소비재도 아니니, 이듬해 수요는 오히려 줄어드는 게 맞다. 영업맨 2년차, 나는 글로벌 금융위기까지 만났다. 주문이 줄줄이 취소됐다. 이 회사는 주 단위로 영업 실적을 점검하고, 다음 주 목표를 보고한다. 잇따라 목표에 미달했다. 매주, 아니 하루하루가 지옥이었다. 몇 차례 영어로 적힌 이메일이 날아왔다. 본사였다. 번역해보니 내가 ‘회사의 미래에 심각한 치명타를 가하고 있다’는 경고였다. 달걀로 바위 치기 신공도 아니고, 전세계에서 돈을 벌어들이는 본사에 내가 무슨 수로 치명타를 가할 수 있단 말인가. 본사는 좀더 기회를 줄 테니 매주 본사로 실적을 보고하라고 했다. 황공하게도 멘토까지 붙여주었다. 문제는 멘토가 하필 입사 동기라는 사실이었다. 굴욕감을 삼켜야 했다.

그해 말 한국 법인 직원 20% 가까이가 잘렸다. 절반은 미국 본사에서 직접 명단이 내려왔다. 자르는 쪽과 잘리는 쪽은 얼굴 볼 일이 없었다. 서로에게 투명한 존재였다. 애초 고용 계약서에 명시된 대로라고 했다. 평소에는 하위 5%에 해당하는 직원을 본인 동의 없이 해고할 수 있고, 경기가 안 좋으면 15%까지 확대할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경기가 좋으냐 안 좋으냐는 전적으로 본사가 결정한다. 이 어찌 투명하다 하지 않겠는가.

나도 ‘밀어내기’라는 걸 시작했다. 어느 우유 기업 영업사원의 3년 전 욕설 녹음이 공개돼 국민의 정의 감정을 일깨운 그것 말이다. 내가 보기에도 그 사람은 악질이었다. 하지만 대한민국 영업맨 가운데 밀어내기 안 하는 사람은 박카스와 신라면 영업맨 말고는 없다는 게 이 바닥 정설이다. 살 사람들 앞에 두고 “줄을 서시오” 할 정도가 아닌 한 밀어내기는 필수다. 그러지 않고는 목표 달성이 불가능하다. 목표란 그런 것이다.

연초가 되면 누구나 그해 목표를 채우기 위한 스케줄을 제출한다. ‘언제 누구와 얼마를 거래하겠다’는 식으로 규모와 아이템까지 제시한다. 우리는 그걸 ‘그림 그린다’고 표현한다. ‘소설 쓴다’고도 한다. 무슨 수로 1년을 깨알같이 예상할 수 있다는 말인가. 불가능하다는 건 우리도 알고, 매니저도 알고, 한국 지사도 알고, 미국 본사도 안다. 하지만 강력한 먹이사슬을 형성할 수 있다. 그걸 토대로 무시무시한 ‘쪼기’가 시작된다.

어려서 개천에 방뇨하다가 내 오줌이 태평양까지 흘러갈 수 있을까 상상해본 적이 있다. 지금도 정답은 모른다. 하지만 내가 그린 그림, 내가 쓴 소설이 미국 본사까지 간다는 건 안다. 영업맨 각자가 써낸 스케줄과 목표를 매니저가 취합하고, 그걸 다시 한국 지사가 취합해 미국 본사에 올린다. 미국 본사는 전세계에서 올라온 걸 모두 취합한 뒤, 그걸 토대로 일주일 단위의 영업 전망을 발표한다. 이에 따라 주가가 오르내린다.

그렇다. 우리의 터무니없는 그림 그리기의 최종 표적은 주식시장이다. 놀라운 건 우리는 난사를 했는데, 미국 본사에서는 가지런이 탄착군이 형성된다는 것이다. 매주 전망치가 얼추 맞아떨어진다. 좋게 말하면 집단 지성이지만, 영업맨들에겐 천당과 지옥의 차이다. 이렇듯 다국적기업에서 일하는 영업맨의 밀어내기는 글로벌 메커니즘 안에서 이뤄지는 셈이다. 밀어내기에 대한 미국 본사의 입장은 뭘까?

‘안 돼요 돼요 돼요….’

본사의 주가를 떠받치기 위해 오늘도 영업맨들은 소총수가 되어 밀어내기라는 총알 세례를 ‘을’에게 퍼붓는다. 더 약자에겐 ‘갑’이지만, 저 높은 곳에서는 보이지도 않는 존재다. 보이지 않지만, 그럴수록 군령은 엄격하게 집행된다. 이것이야말로 진짜 스마트 전쟁이다. 죽는 사람도, 죽이는 사람도 서로를 볼 기회조차 없다. 그런데 여러분은 내가 보이나요? 기자 양반한테 안 보이게 해달라고 단단히 다짐을 받아두긴 했는데. 고 과장이나 나나 투명 망토가 있어야 목숨을 부지할 수 있으니 이해해주기 바란다. 이 바닥에서는 그걸 ‘맨홀 뚜껑 뒤에 숨는다’고 한다. 존재감이 없으면 윗사람들이 살생부를 작성할 때도 눈에 띄지 않고 슬쩍 빠져나갈 수 있다. 그러려면 될수록 비용도 안 쓰고, 큰 거래도 안 해야 한다. 다만, 다시 일어설 수 있을 때를 기다릴 뿐.

안영춘 편집장 jona@hani.co.kr


(3)단절, 집에만 오면 입을 닫는다

한집에 따로 사는 아버지와 딸

올해 칠순을 맞은 이기준(가명)씨는 오늘도 혼자서 밥상머리에 앉는다. 2년 전 암수술 뒤 홀로 보내는 시간이 대부분이다. 아내는 바깥일로 바쁘고 같이 사는 딸은 냉랭하다. 20대 초반 결혼해 40여 년간 일군 가족은 이제 주위를 맴돌 뿐이다. 평생 가족을 위해 섬유공장에서 일하며 새벽별을 보던 그였다. 보수를 높게 쳐준다는 공장이 있으면 해외도 마다하지 않았다. 60대 중반 직장에서 은퇴하고 경비일까지 쉼없이 달려온 삶이었다. 하지만 그에게 돌아온 건 투명인간 취급하는 딸뿐이다.

결혼 적령기를 넘은 40대 이미숙(가명)씨는 오늘도 허공에 대고 인사를 한다. 역시나 메아리 없는 외침이다. 지난해 아버지와 ‘사건’을 치르고 난 뒤 입을 닫았다. 대학을 졸업하고 노동조합, 시민단체에서 일한 그녀는 최근 직장을 옮겼다. 일터에서는 동료들과 사이 좋은 직장인이지만 집에만 오면 말문을 닫는다. 거실에서 텔레비전을 보며 소파를 차지하는 아버지를 피해 방문도 닫았다. 가끔 마주치는 아버지도 좀처럼 말을 걸지 않는다. 아버지 역시 그녀를 지나치기 시작했다.

“꼭 필요할 때 아니면 말을 안 해요.” 딸 미숙씨는 ‘투명인간’ 사례를 찾는 <나·들>의 트위터를 보고 직접 연락을 취했지만, 가족 일을 남에게 말하는 것에 부담을 느끼는지 말을 아꼈다. 조심스럽게 입을 연 그녀는 아버지와 해를 넘겨 사실상 대화를 끊고 지낸다고 털어놨다. “술 때문이죠, 술.” 화목하지 않은 가족의 단골 메뉴다. “술 마시면 주사가 심해요.”

아버지가 암수술을 받은 건 2년 전이었다. “전립선암 진단을 받았어요. 가족이 모두 놀랐죠.” 다행히 초기에 발견해 수술을 마친 뒤 지금은 통원치료하고 있다. 가족이 아버지의 건강을 걱정하고 있을 때 아버지는 실수를 하고 말았다. “수술 뒤에는 술을 멀리했는데 이틀 연속 과음하고는 심하게 주사를 부리셨어요.” 딸은 지난해 여름쯤으로 기억했다. 왜였을까? 아버지는 “답답했으니까” 했다. 그날 이후로 딸은 사실상 아버지와 관계의 끈을 놔버렸다. 한 번의 실수로 아버지와 자식의 관계가 사실상 단절로 이어지긴 쉽지 않다. 과거에도 쌓인 게 많았으리라. “아버지는 젊은 시절부터 그랬어요.” 딸은 어렸을 때부터 술 취

한 아버지가 어머니와 다투는 모습을 보고 자랐다. 어렸을 때는 어머니가 피해자였다. “주사를 자주 보게 되면 멀어지게 돼요.” 말꼬리를 흐렸다. 결정적 사건이 있기 전까지 부녀는 그럭저럭 대화를 나누고 살았다. “아버지가 다정다감한 편도 아니고, 자식들하고 돈독하지도 않았어요. 저도 그런 편이고…. 그렇지만 살갑지는 않아도 같이 식사도 하고 안부 정도는 묻고 살았지요.”

술·주사뿐만 아니라 아버지의 직업도 단절을 거들었다. 야간 일과 지방 일이 늘어날수록 아버지와 자식은 얼굴 볼 시간도, 대화도 줄었다. “아버지는 주말에는 주로 텔레비전을 보세요. 소리를 크게 틀어놓고 보는데 그게 싫어 짜증을 냈어요.”

아버지와의 관계는 어쩌면 딸이 어릴 때부터 평행선이었는지 모른다. 그래도 결정적 사건이 있기 전까지는 부녀라는 자기장이 희미하게 둘을 끌어당겼지만 이젠 그 자기장마저 완전히 인력(引力)을 잃었다.

현재 집에는 아버지와 어머니, 딸이 살고 있다. 전에는 아버지가 주사를 심하게 부리면 오빠들이 중재했지만 분가 뒤에는 딸 몫이 되었다. “아버지는 해코지는 안 하세요. 다만 집을 난장판으로 만들어놓죠.” 그날도 그랬다. 중재에 나서야 할 딸은 그동안 쌓인 감정이 폭발했다. “술이 깬 아버지에게 집을 나가겠다”고 말했다. 처음으로 단호하게 내뱉은 말이었다. “인간적으로 너무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 거죠. 대화하기 싫은데 나 스스로 스트레스받으며 뭔가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어요.” 이제 피해자의 위치는 엄마에서 딸로 넘어왔다.

그 뒤로 대화만 끊긴 것이 아니다. 둘이 있을 때는 식사도 일부러 피한다. 딸은 “제가 같이 안 먹죠. 저도 혼자 먹고, 아버지도 혼자 드시죠”라고 담담하게 말했다. 어색하고 할 말도 없다는 것이 이유였다. 주말에는 마주치지 않으려고 방에서 나가지 않는다. 딸은 아버지를 투명인간 취급하고 자신도 투명인간이 되었다.

손홍규의 단편소설 <투명인간>을 보면 아버지의 생일에 투명인간 놀이를 하는 가족이 나온다. 아버지를 놀려주기 위해 어머니와 여동생, 아들은 아버지를 못 본 체한다. 한갓 놀이로 시작한 생일잔치는 실제로 아버지의 상실로 이어진다. 가족은 뒤늦게 아버지의 존재를 부각시키려 하지만 아버지는 자신이 투명인간일지 모른다는 착각에 빠져 가족을 외면한다. 가족이 되레 아버지에게서 투명인간이 된 것이다. 투명인간의 주체가 바뀌는 장면이다. 소설은 투명인간이 사건으로 등장하는 게 아니라 서사 속에서 형성되는 것임을 보여준다.

평생 가족만 바라보고 살아왔을 아버지의 목소리에서는 지난 세월에 대한 회한과 현재의 처지가 겹친 마른 소리가 났다. “가족을 살갑게 대하지 못했지요. 내가 하는 일이 주로 밤일이고 지방으로 일 다닐 때도 많아서…. 자식들한테 미안하죠.”

그렇다면 아버지는 딸이 말한 결정적인 사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내가 술을 좋아해서 탈이에요. 나는 다 잊었어요.” 아버지는 담담하게 말했다. 아버지와 딸의 편차가 느껴졌다. 평소 대화가 부족했던 아버지는 딸이 왜 집을 나가겠다고 하는지, 왜 이제야 폭발했는지 사태의 심각성을 파악하지 못했다. 지금의 침묵이 과거와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딸은 ‘사건’으로 기억하는 것을 아버지는 ‘과정’으로 기억했다. 딸과의 거리는 평행선이 아니었다. 더 멀어지고 있었다.

아버지는 요즘 일주일에 네 번 ‘정기’ 외출을 한다. 구청 컴퓨터 강좌를 듣는 것이 낙이다. “비슷한 연배들이 모여요.” 그리고 오후에는 뒷산에 오른다. “집에 혼자 있기 답답하니까….” 하지만 집에서는 여전히 살얼음을 걷는 침묵의 시간이 이어지고 있다. “요즘 딸 얼굴 보기도 힘들어요. 거실에서 마주치면 말 걸 생각도 안 하죠. 이렇게 살다 한평생 가는 거죠.” 아버지는 체념 상태였다. “젊을 때부터 그랬는데 지금 굳이 살갑게 하는 것도 어색하잖아요.” 아버지는 자식들과 데면데면하던 과거를 시인했다. 하지만 현재 관계 복원에는 소원하다. 스스로 투명인간임을 자처하고 사는 것일까? 아니면 병마를 겪고 난 뒤 약해진 것일까? “딸도 귀찮아할 테고.” 아버지는 딸의 눈치를 보며 스스로 투명인간 행세를 하고 있다.

소설 속의 나와 아버지는 허구가 아닐 것이다. 어쩌면 현실 속에서도 수많은 이들이 알게 모르게 투명인간 놀이를 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뒤늦게 돌이킬 수 없게 된 상황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

김원일 기자 nirvana@hani.co.kr


(4)무시, 나는 남성·여성 아닌 제3의 성이다

남자 화장실의 여성 청소노동자

남자 화장실을 청소할 때 경자씨는 투명인간으로 취급받기 일쑤다. 휴식 시간에도 그는 남들 눈에 띄지 않는 작고 밀폐된 공간에서 숨죽이며 지낸다. 한겨레 박승화 기자
“새벽에 혼자 일하다 보면 우렁각시가 된 것 같다우.

서울의 한 대학에서 9년째 청소 일을 하는 김경자(가명·62)씨가 멋쩍게 웃는다. 뭔가 엇박자다. 청소용 작업복에 장화를 신은 그의 모습은 각시와는 어울리지 않아 보였다. 게다가 얼굴엔 주름이 깊이 팬 60대 여성이 아닌가! ‘투명인간’ 혹은 ‘유령’이라는 말을 내심 기대한 기자에겐 우렁각시란 표현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남들 눈에 띄지 않게 일한다는 의미에선 맥락이 닿아 있지만, ‘우렁각시’란 표현에는 청소 일에 대한 그만의 자긍심이 묻어났다.

대학 본관 건물 청소를 담당하는 김경자씨의 알람시계는 새벽 4시에 울린다. 나이를 먹으면 새벽잠이 없어진다고들 하지만, 그에겐 4시 기상이 여전히 고역이다. 출근 준비를 마치고 학교에 도착하면 5시가 된다. 퇴근 시간이 오후 3시인 걸 감안하더라도 이른 출근임이 분명하다. 도대체 해도 뜨기 전에 청소를 서둘러야 하는 이유는 뭘까.

“원래 정해진 출근 시간인가요?”

“딱히 그런 건 아니지만… 아침 8시가 되기 전에 사무실에 나오는 분들도 있으니까 서로 부딪히지 않으려면 일찍 끝내야지.”

좀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경자씨가 직원들의 눈에 띄지 않게 청소를 재빨리 마쳐야 하는 상황이다. 사무실 직원들이 출근한 뒤에도 청소노동자들이 쓸고 닦는 일을 계속하는 걸 불편해한다고 했다.

“사람들이 대개 청소를 너무 하찮은 밑바닥 일로 여기잖우. 그러다 보니 자기네들 눈에 안 띄게 얼른 해놓고 사라지길 바라는 게 아닌가 싶어. 그런데 안 해본 사람들은 모르겠지만 이게 결코 수월한 일이 아니거든. 아무리 열심히 해도 티 안 날 때가 많고. 그런 속사정도 몰라주고 조금만 지저분한 게 보이면 툭툭 무시하는 말투로 지적하는데…. 나이 먹어서 혼나면 분하고 눈물 난다고. 그러니 미리미리 알아서 해놓는 수밖에.”

처음 청소 일을 시작할 때 가장 난감했던 장소는 남자 화장실이었다. 화장실은 오전과 오후에 각각 한 번씩 청소를 해야 하는데다 수시로 청결을 점검하는 공간이다. 화장실 크기는 건물마다 다르다. 간혹 소변기가 열댓 개쯤 되는 곳을 청소하려면 아무리 빠르게 움직여도 30분은 족히 걸린다.

난감한 상황은 남자 화장실 청소도 여성 노동자들에게 맡겨지는 데서 발생한다. 건물 내 청소 용역 업무를 하는 대다수가 여성이기 때문이다. 청소노동자들이 밀대로 바닥을 닦는데도 남자들이 아무렇지 않게 지퍼를 내리는 것은 이미 공공연하게 알려진 ‘불편한 진실’이다. 청소노동자들이 ‘투명인간’ 취급을 받게 되는 대표적 상황이기도 하다.

경자씨는 기자에게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남자 화장실을 이용해본 적이 있느냐고 묻는다. “왜 가끔 그럴 때 있잖우. 여자 화장실 줄이 너무 길어서 급할 때 남자 화장실을 기웃거리게 될 때 말이야. 그럼 엄청 눈치 살피고 들어가잖아. 남자들 있나 없나 두리번거리고, 몰래 들어가서 볼일 보고 나오면서도 괜히 뒤통수가 따갑고. 처음에는 딱 그런 느낌이었어.” 청소하러 갔다가 누군가 들어오면 얼른 자리를 피했다. 그런 횟수가 많아질수록 직원들의 호출도 잦아졌다. 화장실을 수시로 점검하지 않으면 ‘왜 이렇게 더럽냐, 여기 좀 치우라’는 요구가 빗발쳤다. “이래선 안 되겠다 싶더라고. 그래서 그때부터 ‘여긴 내 일터다, 여기서 일을 해야 봉급을 탈 수 있다’고 되뇌이니까 부끄러움도 사라졌어.” 더 이상 남자 화장실은 수치심을 불러일으키는 공간이 아니었다. 청소하러 들어가면 가끔 소변보다가 자세를 고쳐잡는 사람들도 있지만 별다른 의식을 하지 않는 이들이 더 많았다. 그들에게 나이 지긋한 청소노동자들은 남성도 여성도 아닌 ‘제3의 성’일 뿐이었다. 경자씨도 그저 묵묵히 할 일을 하고 나오면 그만이었다. “볼일 보는 사람이나

청소하는 우리나 순간적으로 아무도 없는 텅빈 공간으로 인식하는 것 같다”고 그는 말했다.

분명 사람이 있는데 마치 보이지 않는 것처럼 취급받는 일이 비단 화장실에서만 일어나는 건 아니다. 건물 바깥에서 빗자루로 바닥을 쓸고 있을 때도 종종 겪는 일이다.

“학생들이 담배 피우다 꽁초를 바닥에 버리는 경우가 많아. 그걸 우리가 바로 옆에서 빗자루로 쓸고 있으면 좀 비켜주는 게 상식이잖아. 그런데 꼼짝 안 하고 그냥 서 있어. 그럴 땐 정말 속상하지.”

‘투명인간’으로 취급받지 않으려면 최소한의 ‘소통’이 필요하다는 쪽으로 생각이 미쳤다. 민망한 상황이 연출되기 일쑤인 화장실을 비롯해 청소하는 공간에서 경자씨는 사람들이 지나가면 “안녕하세요?” 하고 먼저 인사를 건넸다. 툭하면 막히는 남자 소변기에는 ‘껌과 휴지는 버리지 말아주세요’라는 문구를 붙여놨다.

“우리가 일할 때 ‘수고하십니다’라는 말 한마디만 해줘도 엄청나게 감동할 텐데, 그런 작은 배려를 받는 게 쉽지 않더라고. 그나마 인사를 먼저 하기 시작하니까 지금은 받아주는 사람들이 꽤 있어.(웃음)”

출근 시간이 너무 이르다 보니 아침밥은 건너뛰기 일쑤다. 오전 청소를 마무리하는 10시쯤 되면 땀으로 범벅이 돼 있는 경우가 많다. 휴식이 필요한 시간이란 뜻이다. 그는 매일 아침 건물 내 여자 화장실 한쪽에서 달달한 ‘모닝커피’ 한 잔을 즐긴다. 때론 점심 도시락도 그곳에서 해결한다. 왜 굳이 화장실일까.

“여기가 볼일 보는 데지, 뭘 먹는 데가 아니라는 건 우리도 잘 알지. 먹다 보면 볼일 보고 물 내리는 소리를 들어야 하고 방귀 뀌는 소리도 고스란히 들어야 하잖아. 처음에는 밥이 잘 안 넘어가더라고. 지금은 면역이 돼서 아무렇지 않게 먹지만!”

이유는 간단했다. 신축 건물이든 아니든, 대학 건물을 지을 때 청소노동자들을 위한 휴식 공간은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 건물 1층 계단 밑에 있는 비품 창고를 휴게실로 이용하는 게 전부였다. 두 평도 안 되는 작은 창고 안은 한여름이 아닌데도 벌써 후텁지근했다. 그나마 창문이 있고 공간이 넓은 편인 화장실 안에서의 휴식도 최대한 눈에 띄지 않도록 강요받는다. “여기서 음식을 먹으면 어떡하느냐”며 눈을 흘기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었다.

결국 경자씨는 변기 칸 옆에 비품을 쌓아두는 작은 공간을 그만의 휴게 공간으로 삼았다. 쓰레기통을 거꾸로 엎어놓고 스티로폼을 깔아서 간이 의자로 쓸 수 있게 만들었다. 한 평도 안 되는 작은 공간에는 미니 선풍기와 커피믹스, 옷걸이 등이 잘 정돈돼 있었다. 문을 닫으면 아무도 그를 발견하지 못한다. 휴식 시간에도 그는 영락없는 ‘투명인간’이었다.

지난해 동료들과 노동조합을 결성한 뒤로는 점차 노동여건이 나아지고 있다. 만 70살까지 고용을 보장받게 됐고 월 70만 원에 그치던 급여(실수령액 기준)도 110만 원 수준으로 올랐다. 지난 명절에는 난생처음 ‘떡값’도 손에 쥐어봤다. 행여라도 잘릴까봐 벙어리 냉가슴만 앓던 사이, 대등한 협상이 이루어져야 할 사용자와의 관계에서도 ‘투명인간’이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고 그는 말했다.

황보연 기자 whyn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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