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2.12.28 00:56 수정 : 2013.01.03 14:32

지난 3월의 어느 새벽이었다. 119에서 콜이 왔다. “CPR 가요, 폴다운이에요.” 심폐소생술을 해야 할 만큼 위급하고, 추락한 환자라는 얘기다. 콜이 오면 1분 안에 구급차가 응급실에 들이닥친다. 환자는 29살 남성 ㄱ씨였다. 반바지에 흰색 티셔츠를 입고 있는 그에게서 의외로 풀 냄새가 진하게 났다. 술 냄새는 나지 않았다. 입에선 신음 소리가 흘러나왔다.

경기 수원시 아주대병원 응급실 모습. 정용일 기자
 119 구급대원은 ㄱ씨가 아파트 15층에서 투신했지만, 나무에 걸려 충격이 완화됐다고 했다. 온몸에 나뭇가지와 잎사귀가 무성했다. 한쪽 팔과 다리가 부러져 엿가락처럼 늘어져 있었다. 심정지가 올 가능성은 적어 보였다. 서울의 한 종합병원 응급실에서 간호조무사로 일하고 있는 정혜영(31·가명)씨는 그제야 온몸의 긴장을 조금씩 풀 수 있었다.

 그러자 등 뒤에서 엉엉 울음소리가 들렸다. ㄱ씨의 아버지로 보이는 60대 남성이 “나는 몰라”라는 말을 반복하며 바닥에 주저앉아 투정 부리듯 울고 있었다. 그는 면바지에 러닝셔츠 차림이었다. 급하게 뛰어나온 듯 신발도, 양말도 신고 있지 않았다. ㄱ씨는 컴퓨터 단층촬영(CT)실로 옮겨졌다. 환자가 응급실을 나서면, 응급실 근무자들은 이송된 환자가 살았는지 죽었는지 더 이상 확인하기 어렵다. 응급실에서 숨이 멎은 사람을 제외하면, 응급실 이후의 수술이나 치료 과정에서 숨진 사람은 바로 영안실로 향하고, 살아난 사람들은 응급실에서의 기억이 없다. 응급실에서 한 환자를 수술실이나 중환자실 또는 일반 병실로 이송하면 근무자들은 곧 다른 응급환자를 봐야 한다. 이 병원의 응급실에는 모두 25개의 침상이 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났다. ㄱ씨의 아버지가 평상복 차림으로 다시 응급실을 찾았다. 그는 의사와 면담을 원했다. 이유를 물으니 “차트를 고치기 위해서”라고 했다. 의사에게 안내했더니 “‘투신’이 아니라 ‘추락’으로 차트를 고쳐주면 안 되겠습니까?”라고 물었다. ㄱ씨가 살았다는 얘기다. ‘투신’으로 기록되면 건강보험 적용 대상에서 제외돼 치료비가 지급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에 ‘추락’으로 차트 정정을 요청하는 일이 종종 있다. 그런 이유인지 물었을 때, 그는 고개를 저었다. “앞으로 살아갈 날도 길고, 취직도 해야 하는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ㄱ씨의 아버지는 취업 때 회사 쪽에서 의료기록까지 살펴볼까 걱정했다. 그런 일은 불가하지만, 의사는 고민 끝에 ‘추락’으로 오더를 수정한 기록을 의무기록실에 가져다주라고 했다. 아버지는 연방 고맙다는 인사를 한 뒤 병원을 나섰다.

 

삶과 죽음의 경계선

서울 을지로 국립중앙병원 응급실 입구. 정용일 기자
 응급실은 삶과 죽음의 경계에 위치한다. 때론 몇 초 사이의 응급처치가 삶과 죽음의 경계를 나눈다. 소생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심폐소생술(CPR)로 가슴을 압박해 뇌의 손상이나 심장마비를 풀기도 하고, 몸을 갈라 다른 사람의 혈액을 다량 투입하기도 한다. 응급실에선 이렇게 한 사람의 삶과 죽음이라는 경계선 위에 다른 사람들의 삶과 행위가 점으로 개입한다.

 지난 5월 중앙응급의료센터가 펴낸 ‘2011년도 응급의료통계연보’를 보면, 전국 461개 응급의료기관 가운데 ‘국가응급환자진료정보망’(NEDIS)이 구축된 142개 기관에 실려온 응급 환자는 1년 동안 모두 442만9353명이었다. 이 가운데 응급실에서 사망한 환자는 2만7408명이다. 응급조치 이후 중환자실이나 수술실 등에서 사망한 환자는 더 많을 것이고, 때로는 자진 퇴원한 뒤 집에서 숨을 거둔 환자도 있을 것이다.

 “응급실에서는 모두 똑같아요. 돈이 있다고 으스댈 수 있는 사람도 없고, 돈 없다고 내쫓기는 사람도 적어도 우리 병원에는 없습니다. 일단 급한 치료는 하고 봐야죠. 하지만 응급실을 나서면 달라지겠죠. 병실이 달라지고, 약값이 달라지고, 사보험을 적용받는 사람이 있는 반면 1종 의료급여를 받는 사람도 있겠죠. 하지만 응급실에선 일단 다 똑같아요.”

 정씨에게 병원은 두 번째 직장이다. 경력은 1년 6개월 정도 됐다. 2년 계약직이고, 급여는 새벽 근무수당까지 합쳐 세금 떼고 월 140만원 정도다. 병원에서는 좀더 많은 월급이 나오지만, 일정 금액은 정씨의 소속 회사인 인력 파견업체에 수수료로 입금된다. 3교대로, 한 달에 6~7차례 새벽 근무를 한다. 정씨에게 간호조무 일은 삶과 죽음의 경계선 위에 점을 찍는 일이기도 하지만, 그냥 일이기도 하다.

 지난해 10월 어느 날, 정씨는 ‘오후 타임’ 근무를 위해 응급실로 향하는 복도를 올라가고 있었다. 복도 너머 응급실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보이진 않았지만, 어수선한 데다 한기까지 느껴졌다. 잠시 뒤 통곡이 들려오고, 소리는 점점 커졌다. 그는 ‘오늘은 바쁜 날이 되겠다’라고 생각했다.

 

두 아이의 잇단 죽음, 엄마들의 실신 

 침상엔 머리 위까지 시트가 덮여 있었다. 시트 아래엔 8살 아이의 앙상한 다리가 밖으로 나와 있었고, 한 여성이 아이의 발을 붙잡고 주저앉아 숨이 넘어갈 정도로 격하게 울고 있었다. “니가 왜 여기 누워 있냐, 날 두고 어딜 가냐.” 발음이 분명하지 않았지만, 들을 수는 있었다. 옆 침상에는 7살 아이가 산소 호흡기를 달고 응급처치를 받고 있었다. 정씨도 팔을 걷고 뛰어들었다. 그 침상 인근에는 7살 아이의 엄마가 망연자실한 얼굴로 침상을 지켜보고 있었다. 8살 아이의 죽음과 통곡에, 아직 숨이 붙어 있는 7살 아이의 엄마는 신음조차 조심스러워했다.

 이날 오후 서울의 한 아파트 단지 안에선 89살 노모와 52살 딸이 산책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건너편 길에는 두 아이가 학원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갑자기 승용차 한 대가 속도를 제어하지 못하고 달려왔다. 도로를 벗어난 승용차는 노모와 딸을 치고, 방향을 꺾은 뒤 두아이를 쳤다. 그리고 가로등을 들이받고 전복했다. 뉴스에선 브레이크가 파열되면서 일어난 사고라고 했다.

 7살 아이는 밤늦게까지 응급실에서 치료를 받았다. 그리고 CT실로 옮겨졌다. 응급실에선 흔치 않은 긴 치료였다. 정씨는 7살 아이가 잘 버텨주길 기원하며 피곤한 퇴근길에 올랐다.

 이튿날 출근했더니, 탈진한 여성이 침상에 누워 있었다. 응급실에는 종종 장례식장에서 탈진한 망자의 가족이 와서 링거주사를 맞고 간다. 앞 타임 근무자는 “전날 TA(교통사고)로 사망한 아이 엄마”라고 했다. 작은 발을 부여잡고 오열하던 그 여성에게 마음이 쓰여 침상 가까이 간 정씨는 잠시 할 말을 잃었다. 누운 여성은 8살 아이의 엄마가 아니라, 7살 아이의 엄마였다. CT실로 갔던 7살 아이가 간밤에 숨을 거둔 것이었다. “그런 일을 겪을 때마다 삶이 허무해요. 하지만 응급실에선 다들 무덤덤해합니다. 일부러 마음에서 감정을 밀어낸다고 할까요. 일일이 대응하면 견디질 못하니까요.”

 하지만 환자의 죽음 뒤에 남는 회한까지 기억에서 지우긴 어렵다. 최근에 한 30대 남성이 5층에서 추락해 응급실에 실려 왔다. 심전도를 체크하고 CT실로 갈 때까지 그는 정신이 멀쩡했다. 정씨에게 “목이 타니 물을 좀 달라”고 말했다. 하지만 CT 촬영 전에는 물을 마실 수 없기 때문에 “갔다 오시면 물 많이 드릴게요”라고 답했다.

 하지만 그는 돌아오지 않았다. 이미 내장이 파열돼 복강 안에 돌이킬 수 없는 출혈이 있었다고 했다. 응급실에선 그의 부인이 18개월 된 아이를 데리고 부산에서 경찰차를 타고 상경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렸다. “물을 달라”는 그의 말은 세상에 남긴 마지막 부탁이 됐고, 몇 시간 뒤 아이를 안고 응급실에 들이닥칠 그의 부인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가늠할 수 없었다.

 그나마 사고사는 죽음에 이르게 된 원인이 대체로 선명하지만, 죽음의 근본 원인이 불분명한 자살은 정씨에게 강한 의문을 남긴다. 특히 자살은 죽음을 기도한 방식으로 세상에 메시지를 남긴다. 자살은 세상을 향한 무언의 발언이다. 정씨가 근무하는 병원에 자주

실려오는 자살자는 한강에 투신하거나 수면제 등의 약물을 다량 투여한 이들이다.

 자살뿐 아니라 자살 방식 자체도 선연한 메시지다. 남재일 경북대 교수는 강물에 투신해 자살하는 이들에 대해 “그들은 이 세상을 떠나 피안으로 가고 싶은 사람들이니 죽고 싶은 욕구는 강하지만 죽임을 당하고 싶은 욕구는 없다. 시체가 훼손되지 않고 세상 사람들의 시야에서 사라져 어딘가로 떠나버리는 것이 그들의 목적”이라고 말한다. 반면 고층 빌딩에서 투신한 이들은 처참하게 파쇄된 시신으로 세상에 강렬한 메시지를 남기려고 한다는 게 그의 풀이다.

고층 투신과 강물 투신의 차이

서울 을지로 국립중앙병원 응급실에서 의사들이 바쁘게 진료를 하고 있다. 정용일 기자
 정씨도 병원에 실려오는 자살자들을 보면서, 자연스레 비슷한 생각을 했다. 지난 5월 한 50대 여성이 한강에서 투신해 구급차에 실려오다 결국 숨을 거뒀다. 구급차 안 침상에 누워 사체가 된 채 응급실로 건너온 그녀는 등산복을 입고, 예쁜 귀걸이와 진주 목걸이를 하고 있었다. “자살하기 위해 약을 먹은 이들 가운데 제가 본 환자들은 대부분 목숨을 건졌어요.그래서 그들은 죽고자 하는 마음이 강하다기보다 ‘내가 이렇게 힘드니까 세상아, 날 좀 한번 봐줄래?’라고 말을 건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하지만 강물로 투신한 이들은 대부분 사망합니다. 죽고자 하는 마음이 더 강렬한 사람들이죠. 진주 목걸이를 했던 그 여성은 피안으로 가는 마지막 길에 최고로 아름다운 모습을 간직하려 했던 게 아닐까요.”

 하지만 응급실에 목숨이 위태로운 환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술에 취해 정신을 잃은 친구와 함께 응급실에 온 취객이 치료가 늦다며 “왜 내 친구는 안 봐주느냐”, “대한민국에 내가 의료보험료를 얼마나 내는데 대접이 이것밖에 안 되느냐”고 소리 지르는 경우도 있고, 바로 옆에 숨이 끊어지기 직전인 환자를 치료하고 있는데도 자신의 상처를 내밀며 “나부터 봐달라”고 재촉하는 이들도 있다. 신발을 벗기면 이미 짓무른 발에서 고린내가 진동하는 노숙인이 실려오기도 하고, 때로는 일정에 쫓겨 정신없이 바쁜 연예인들이 24시간 언제나 찾을 수 있다는 이유로 응급실에 와 비타민액 주사를 맞기도 한다.

서울 을지로 국립중앙병원 응급실에서 한 의사가 환자의 기록을 보고 있다. 정용일 기자
  때론 황당한 일을 겪기도 한다. 지난해 말, 한 50대 남성이 심장에 갑자기 이상이 와서 CPR 상태로 실려왔다. 응급실 인력이 총동원돼 심폐소생술을 했다. 급박한 시간 동안 누군가 남성의 맨몸을 드러내기 위해 입고 있던 양복을 가위로 잘랐다. 하지만 그 남성은 곧 사망하고 말았다. 다음날 응급실에는 상복을 입은 여성이 찾아왔다. 그녀는 응급실 근무자들에게 “누가 남편의 양복을 잘랐냐”고 소리를 질렀다. ‘상상할 수도 없이 비싼 양복’이라고 했다. 모두 할 말을 잃었다.

 삶과 죽음의 경계선에서 죽음으로 넘어간 이들에 대한 안타까움이 쌓여 응급실 근무자들을 무덤덤하게 만든다면, 이런 일들은 응급실 근무자들의 마음을 닫게 한다.

 “간호사들이 대부분 무뚝뚝해 보이죠. 죽음과 늘 마주하다 보니 감정이 메말라 있기도 할 테고, 온갖 욕망이 충돌하는 것을 보면서 탈진해 있기도 합니다. 그래도 이 일을 당장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아요. 계약 기간이 끝나면 다른 병원으로 옮겨야 할 텐데, 이번엔 신생아 분만실 같은 곳에서 일해보고 싶어요. 거기라면 좀더 좋은 소식을 많이 보고 살수 있지 않을까요?”

이재훈기자 n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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