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3.06.06 11:55 수정 : 2013.06.12 13:59

낸시랭의 정체성은 뭐죠?

“굳이 정체성 같은 단어를 쓰고 싶지 않아요. 큐티, 섹시 키티, 낸시! 큐티도 있고, 섹시도 있고, 키티도 있고, 우리 낸시도 있는 거죠. 이를 한마디로 줄인 말이 바로 ‘앙’이에요, 앙!”

낸시랭은 ‘앙’이라고요?

“‘앙’이죠.”

8호 3차원 인터뷰
녹화 중인 카메라는 어디에도 없다. 이런 일상 화법을 가진 사람은 처음 본다. 다루기 어렵다. 뜬구름 잡는 듯하지만 횡설수설은 아니다. 촉감은 또렷하지만 뉘앙스를 문자로 온전히 옮기기는 불가능하다. 그녀의 ‘예술’은 자신을 질료로 쓰고, 그녀의 언어는 공기를 질료로 쓴다. 전략이라고 부르기엔 허술하고, 천방지축이라 부르기엔 지능적이다. 통찰력이라 부르기엔 모자라고, 본능이라 부르기엔 아쉽다. 술친구로는 바람직하지만, 인터뷰이로는 난감한 존재다. 직관과 관능 사이에서 작동하는 기묘한 감각기관을 가진 사람. 기록이 역할인 나에게 일방적으로 불리한 조건이다. 5분 정도 그녀를 유심히 관찰하고 나서, 준비해온 두 시간 분량의 질문지를 몽땅 날려버려기로 결심했다. 그녀가 원하는 질문이 아닐 것이고, 내가 원하는 대답이 아닐 것이다. 언어의 집행권을 떠넘기고 마치 상담치료사처럼 가만히 의자에 앉아 바라보기로 한다. 다행히 입을 연 낸시랭에게 두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그녀를 활자 안에 잘 담아낼 수 있을지 여전히 확신이 안 선다. 인터뷰 기사의 바람직한 형식은 모두 무시한다. 맥락을 버리고 손 가는 대로 툭툭 끊어 쓸 것이다. 랭의 화법과 랭의 작품처럼.  

자리에 앉자마자 물 한 컵을 달라고 했다. “커피 한잔 사드릴까요?” “못 마셔요.” “해외파잖아요. 커피를 못 마셔요?” “나는 달콤한 게 좋아요.” “술도 못 마시나요?” “음주가무의 여왕, 낸시랭이죠! 못 들어봤어요?” 물을 가져다 줬다. 홀짝홀짝. 작은 컵을 두 손으로 받아들고 고양이처럼 물을 넘긴다. 그녀 어깨 위에 언제나처럼 고양이가 앉아 있다. 사람들은 인형이라 부르고 그녀는 애완동물이라고 주장한다. 이름까지 내렸다. 코코 샤넬. “코코 샤넬에게 목욕도 시켜주나요?” “그럼요.” “어떻게 목욕시키죠?” “울샴푸로 정성스럽게 씻기죠. 그다음은 탈수기에 넣고 탈탈 돌려서 말려줘요. 한번은 눈알이 빠져서 놀랐어요. 순간접착제로 잘 붙여줬지요.”

이 일관된 모순화법은 그녀의 언어뿐만 아니라 세계관과 작품관을 관통하며 어디에서도 들어본 적 없는 이상야릇한 울림을 만들어낸다. 진심이 깃든 모순의 위력이랄까. 독자들은 감안하기 바란다. 대화를 시작한다.

“삶은 자연스럽게 퍼포먼스가 되는 거예요”

“상대방을 위하고, 잘되기를 바라는 게 진짜 사랑이에요. 그저 타인을 이용하려는 사람이 너무 많아요. 하지만 다 추려내기도 쉽지 않죠. 다들 연기를 잘하면서 다가오니까요. 제 주변에도 그런 사람들이 많고요.” “예를 들면?” “예를 들기 싫어요.” “궁금한 사람들이 많을 텐데?” “내가 사람들 궁금한 걸 다 충족시킬 필요는 없지요.” “낸시랭처럼 이용당하기 쉬운 처지의 사람한테 도움이 될지도 몰라요.” “겪으면 알게 돼요.” “조금 이기적인데?” “아니요. 내가 하고 싶지 않은 그 이야기를 끄집어내려고 하잖아요. 안할 거예요.”

낸시랭은 변희재에 대해 묻지 않는 걸 인터뷰 조건으로 내세웠다. 그 조건은 윤리적으로나 논리적으로나 완벽하게 준수되었다. 약속대로 변희재에 대해 묻지 않았다. 단지 잠시, 그리고 작게 변희재를 언급할 뿐이다. 그녀가 내건 조건을 들었을 때 우리 사이에 커다란 오해가 있음을 알게 됐다. 우리는 낸시랭을 오해했다. 그녀가 변희재에 대해 하고픈 말이 많을 거라 여겼기 때문이다. 그녀는 우리를 오해했다. 애초 변희재에 대해 물을 계획이 없었다. 그녀가 그 질문을 간절히 원한다고 오해했기 때문이다. 어쨌든 그녀가 내세운 조건은 호감을 샀다. 기대보다 훨씬 입체적인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예감이 들었다. “안 물어볼 겁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안 물어봐도 내 입에서 막 나올 거 같아서 말의 싹을 잘라놔야 해요.”

그녀는 말했다. “어디든 난 캠코더를 들고 다니며 컸어요. 내 세 번째 눈이죠.” “혹시 삶 자체를 퍼포먼스로 여기고 있나요?” “그건 퍼포먼스라 부르는 게 아니에요. 나르시시즘이라고 하죠. 난 나를 찍는 게 좋아요. 남은 안 찍어요.” “코코 샤넬의 경우 어때요? 퍼포먼스입니까, 패션 액세서리입니까?” “내 분신 같은 애완동물이에요. 두 번째 애완동물이죠. 첫 번째는 ‘폴 랭’인데, 폴은 15년을 같이 살다 작년에 죽었어요.” 머리가 혼란스럽다. “잠시만! 폴은 인형인가요, 아니면 진짜 살아 있는 포유류인가요?” “살아 있는 강아지요. 그 아이는 폴 랭이지만 이 아이는 코코 랭이 아니에요. 직계손이 아니라 입양된 아이라서.”

“도무지 삶과 퍼포먼스의 경계가 없는 사람으로 보여요. 자신이 생각하는 삶과 작품의 경계가 있나요?” “삶은 자연스럽게 퍼포먼스가 되는 거예요.” “작품이 될 수 없는 개인적 삶의 영역이 정말 없나요?” “그건 아티스트가 결정하는 거죠. 현대예술은 정답이 없기 때문에. 팝아트에서는 좋은 작품은 있을 수 없어요. 나쁜 작품도 있을 수 없고요. 다양성만이 존재하지요. 숭고한 미술과 숭고한 미학처럼 추한 미술과 추한 미학도 가능한 거예요.”

“평면미술을 전공했고, 평면 작품을 더 많이 만들었어요. 퍼포먼스는 일부이고요. 페인팅은 캔버스로 보여지고, 비디오아트는 비디오를 통해 보여지고, 퍼포먼스는 사람의 인체를 통해 보여지죠. 다른 건 물질적으로 표현되지만 퍼포먼스만이 생명체를 통해 표현되기 때문에 더 많은 관심을 받을 뿐이에요. 데미안 허스트나 매튜 바니 같은 세계적인 아티스트도 자기들이 다루는 메인 장르가 아닌 퍼포먼스 작품으로 널리 알려져 있어요. 특히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 시대에는 퍼포먼스가 영향력을 발휘하기 쉽지요.” 

“앤디 워홀이 롤모델”

방송은 어떤가. 많은 사람들은 낸시랭이 예술가인지 연예인인지를 두고 혼란스러워한다.

“대체 예술가냐 연예인이냐. 이 질문은 10년 가까이 받았어요. 봐요, 지금도 받고 있죠? 미학 쪽에서 설명하려면 길고 복잡해요. 어차피 그쪽이 전공이 아니면 이해하기 어려울 거고.” “전 미학을 전공했습니다.” 나는 조용히 대답했다.

‘미학을 전공한’ 나는 길고 복잡하게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한다. “국내 최초. 난 국내 최초 타이틀이 많아요. 좋은 쪽에서도 나쁜 쪽에서도. 패션 기업과 컬래버레이션한 아티스트는 내가 처음이었어요. 그때 영혼이 썩었다고 말한 사람들이 많았죠. 신경 안 썼어요. 앤디 워홀은 오래전에 했던 일이니까. 미술계는 고급이고 연예계는 저급이라는 인식이 미술계에 팽배해 있을 때 ‘큐티, 섹시 키티, 낸시 앙!’을 외치며 나타난 거죠. 앤디 워홀을 보면 그래픽으로 시작해서 팝아트를 하면서 미술 바깥에서도 왕성하게 활동했잖아요. 나의 롤모델이에요. 앤디 워홀은 자신이 작품이 되지 않았고, 나는 자신이 작품인 차이가 있지만.” “앤디 워홀은 못생긴 게 콤플렉스였으니까요.” “와, 잘 아네요. 전공도 아닌데 아주 스마트해요!” “난 팝아트를 전공했습니다.” 이택광 교수가 조용히 답했다.

‘팝아트를 전공한’ 이택광 교수는 <터부 요기>와 <캘린더 걸> 사이에서 작품관의 변화가 감지된다고 지적하며, 어떤 일이 있었는지 물었다.

“사회에 대한 새로운 관심이 생긴 시기였어요. 팝아티스트 강영민씨에게서 정신적인 영향을 크게 받았죠. 한국 미술계의 현실, 현대미술의 추세, 사회의 동향 등을. 나는 원래 상식이 부족한 사람이에요. 형제가 없어서 주고받는 정보가 별로 없었죠. 관심사는 항상 내가 관심 있는 것뿐이었어요. 강영민씨가 내게 가르쳐줬어요. 현실, 지구 위에서 벌어지는 현실을. 재능만으로 예술가가 될 수 없는 게 현실이라는 것을.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와 신자유주의가 뿌리 내린 현실을 알게 했지요. 그동안 관심도 없고 모르던 것을, 강의가 아니라 대화로 일깨워주었지요. 나는 백지 상태여서 흡수력이 좋았어요.” 


“영국 여왕 앞에서 낸시랭 왕국을 선포했죠”

그럼 이제 정치적 관점을 갖게 되었나?

“누군가는 나를 열심히 종북으로 몰아가지만, 내가 오래전부터 ‘아이 러브 달러’를 외쳐왔다는 걸 대중들이 알고 있어요. 나는 자유주의자예요. 좌파도 우파도 아니에요. 그냥 대한민국이 잘됐으면 좋겠어요. 모두가 잘됐으면 좋겠고, 잘하는 쪽이 좋아요. 좌파는 종종 찌질하고, 우파는 종종 비열하게 구는 게 싫을 뿐이에요.”

예술가는 태생적으로 자유주의자이기 쉽다. 이념 갈등의 골이 깊고 중간 지대가 인정되지 않는 사회의 특수성 때문에, 한국에는 자신을 자유주의자로 규정하는 예술가를 찾아보기 어렵지만. 스스로 규정하지 않아도 낸시랭이 전형적인 자유주의자임은 금방 눈치챌 수 있다. 그녀를 종북주의자로 규정하려면 먼저 미국 시민권을 가진 종북주의자라는 새로운 인간 범주가 필요할 터다. 그녀가 자유주의자인 만큼 작품에 담긴 개념도 자유주의적 가치를 지향하는가? 영국까지 찾아가 벌인 <거지 여왕> 퍼포먼스는 자유주의자가 시도할 만한 것으로 보이지 않았다.

“‘개인이 곧 국가’라는 콘셉트의 퍼포먼스였어요. 사랑과 평화와 예술이 가득한 나라. 영국 여왕의 생일에 티아라(작은 왕관)를 쓰고 낸시랭 왕국의 건국을 선포했지요. 여왕은 세금을 받아 봉건적 지위를 이어받는 삶을 살고 있지만, 민주주의에 속하는 나는 똑같은 세금을 받아 사랑과 평화와 예술이 가득한 나라를 세우겠다는 거지요.”

봉건제 여왕에 대항하는 민주주의의 여왕이라…. 모순적이고 독창적인 발상이다. 대화를 계속하려면 먼저 봉건주의·민주주의·여왕에 대한 정의에 합의를 봐야 하고, 그다음엔 사랑·평화·예술이 가득한 것과 민주주의의 관련성을 논해야 한다. 무엇보다 하필 왜 ‘거지 여왕’이었는지 궁금했다. “자본주의에 대해 문제제기하려는 의도가 있었나요?” 그녀는 대답했다. “왕의 반대편에 거지가 있으니까요. <왕자와 거지>라는 동화도 있잖아요.”

봉건적 제왕의 반대편에 거지가 있다. 그래서 민주주의자 낸시랭은 거지로서 왕을 찾아가더니 도리어 나르시시즘에 빠진 여왕으로서 건국을 선포한다. 이 나라는 사랑과 평화와 예술이 가득하다. 한편으로 달러의 최대 피해자, 거지로 분한 그녀는 줄곧 ‘아이 러브 달러’를 외친다. 미국 시민권자면서 종북주의자로 낙인 찍힌다. 자유주의의 화신이자 신자유주의자의 사냥감이 됐다. 랭의 삶은 논리를 아득하게 초월한 듯하다. 이렇게 물어보자. ‘아이 러브 달러’를 외치는 나라에 사랑과 평화가 가득할 수 있을까? 자본주의 사회에서 많은 사람이 불행을 느끼는 이유는 누군가 지나치게 많은 달러를 가졌기 때문인데. 

“불행의 진짜 이유는 나 자신이 되지 못했기 때문이에요. 누군가 더 많이 갖는 것에 불만을 터뜨릴 필요가 뭐 있어요?” “하지만 낸시랭씨 자신부터 더 많이 갖고 싶어 하잖아요.” “맞아요. 그럼 스스로 더 많이 가지면 돼죠!” “더 갖고 싶었지만 결국 가질 수 없었던 사람들은 여전히 불행하지 않을까요?” “그럼 사회를 바꿀 생각을 해야죠.” “모든 사람이 원하는 만큼 가질 수 있는 사회가 가능할까요?” “내가 그런 나라를 만들 수 있어요! 나에게 기회를 주세요!” 

“난 연예인형 아티스트”

“어렸을 땐 비엔날레에 무척 가고 싶었어요. 미술계에서도 그런 작가를 우대하는 분위기가 팽배했고요. 그래서 초대받지도 않은 베니스 비엔날레에 찾아갔지요. 하지만 이제 미술계도 비엔날레에 초대받은 작가를 무조건 높이 평가하지 않아요.” “그새 무엇이 어떻게 바뀐 거죠?” “사랑과 평화와 예술이 가득한 세상으로요!”

“미술계 제도를 부정하고 갈아엎고 싶은 생각은 없어요. 신이 아닌 모든 것은 완벽할 수 없어요. 나보다 먼저 산 사람들이 만들어놓은 모든 것을 몰살해버리고 새로 시작하는 건 독재의 방식이죠. 그냥 품고 정화시키면 돼요. 더 큰 것으로 더 감동시키면 되지요. 그게 예술가의 방식이고,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예술만의 방식이에요.” “예술지상주의자처럼 말하는군요.” “응? 그게 뭔데요?”

“예술가에게는 상반된 욕망이 있어요. 최고의 예술가로 평가되기 바라면서 동시에 자신이 몸담은 예술계에 속박되기 싫어하죠. 속박되는 걸 좋아하는 예술가는 없어요. 그걸 넘어서길 꿈꾸죠. 나 역시 마찬가지고요.” “그럼 낸시랭의 생계 수입은 주로 예술계에서 들어옵니까, 아니면 그 너머에서 옵니까?” “아무래도 미디어에 출연하거나 기업과 컬래버레이션하는 게 큰돈을 벌어다 주는 건 사실이에요. 하지만 고승덕 변호사도 직업이 있지만 방송 활동을 하잖아요. 연예인이냐 아티스트이냐는 질문을 왜 나한테만 하는지 모르겠어요.” “직업을 생계로 규정한다면 그런 질문이 가능할 것도 같은데요. 고승덕 변호사는 주요 수입이 방송이 아니잖아요. 낸시랭씨 경우와는 좀 다르지 않을까요?” “나는 직업을 규정하지 않아요. 다른 사람들이 내 직업을 규정하려고 하죠. 뭔지 모르겠으면 ‘연예인형 아티스트’라 부르면 되는 거죠!” 

“우리 사회에선 다들 자신의 삶이 아니라 타인의 삶을 살고 있는 것처럼 보여요. 타인의 시선을 따라 자기 삶이 결정되지요. 그래서 사실은 자기 삶이 아니라 부모의 삶, 친구의 삶, 직장 동료의 삶을 사는 거예요. 하물며 옷차림마저도!” “낸시랭씨는 어때요. 혹시 지금 자신의 삶을 살고 있나요?” “헌드레드 퍼센트! 저는 낸시랭 그 자체죠!”

“결혼은요?” “결혼하고 싶어요!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고 싶지 않아요. 애는 원래 안 좋아했지만요.” “왜죠?” “울잖아요. 외계인처럼 생겼고. 안 예뻐요.” “애완동물은 좋아하면서?” “동물은 징징대지 않아요. 그저 반기죠. 그래도 자연의 섭리대로 결혼은 하고 싶어요. 애는 남자가 낳아주고요. 아님 가위바위보 해서 진 사람이 낳거나. 아니, 사실은 그래도 애를 낳아볼 거예요. 싫다고 시도조차 하지 않는 건 아티스트의 자세가 아닌 것 같아서요.” “아티스트의 자세요?” “네! 그것도 새로운 경험이죠.” “애 낳는 것을 예술가의 창작으로 여긴다는 이야기인가요?” “세상의 온갖 새로운 걸 다 해보고 더 이상 새로운 게 없다고 생각하는 내가, 애 낳는 경험만 피한다는 건 앞뒤가 맞지 않는 것 같아요. 그래, 해보자!” 이택광 교수가 아버지처럼 근엄한 목소리로 말한다. “내가 장담하지요. 낸시랭씨는 애를 낳는 경험뿐만 아니라 애를 사랑하게 될 겁니다. 아주 야단법석을 피우게 될 거예요. 낸시랭 같은 사람은 그냥 딱이에요.” “히히, 사실 그 이야기 정말 많이 들어요.”

“뇌가 섹시한 남자 좋아… 외모는 안 봐요”

올해 계획은 어떻게 되나.

“힐링, 트레블링, 러브. 예상치 못한 일을 겪으면서 많은 분들이 힐링해줬어요. 내가 원한 방식은 아니었지만. 여행도 이미 다녀왔고요. 말레이시아에.” “말레이시아 어디로 갔나요?” “콸라푸룸푸?” “콸라룸푸르.” “아, 맞아요. 거기요.” “괜찮습니다. 우리도 보통 기억 못해요. 술집 이름까지는.” 

그럼 ‘러브’만 남았는데?

“결혼하고 싶어요.” “올해?” “결혼할 사람이 나타난다면 결실을 보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강력하게. 이번에 사람들이 사생활을 마구 헤집는 힘든 일을 겪었잖아요. 많이 울었거든요. 처음으로 나 자신을 알게 됐어요. 내 편에 머물러줄 사람을 간절히 원한다는 걸요. 물론 진중권 선생님이 내 편이 되어서 열심히 싸워주긴 했지만…. ”(‘그분 말고’란 뉘앙스였으니 진중권씨는 오해할 필요가 전혀 없다) “어떤 남자를 찾는데요.” “뇌가 섹시한 남자, 눈빛에 인류애가 서린 남자. 외모는 안 봐요. 관심조차 없어요. 남자 재력 보는 건 20대 이야기고요. 무조건 뇌가 섹시해야 돼요. 거기에만 매력을 느껴요.”

“제가 어떻게 될지 모르겠어요. 어디로 튈지. 시련과 고통을 겪었다고 교과서처럼 성장하는 사람은 아닐 거예요. 난 오로지 내가 선택한 것을 실행하는 데만 신경 써요. ‘낸시랭’, ‘난실행’할 거야! 자서전 제목이기도 한데요. 떠오른 걸 바로 실행에 옮겨요. 그렇지 않으면 날아가버리니까요. 지나가면 붙잡을 수 없어요. 실행하기 전에 더 알려고 하면 이미 늦어요. 연애만 해도 그렇지 않나요? 여자들이 가질 수 있는 최고의 남편감이 어디에 있는지 알아요? 망설이다 휙 지나가버린 인연 중에 있어요.” 

이택광 교수가 말했다. “요즘 낸시랭씨에게 관심이 가고 기대가 돼요. 예전엔 그저 한국 미술계가 낳은 사생아인 줄만 알았는데.” “으흐하핫!” “주체가 되어간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노력하는 낌새도 보입니다.” “여러 가지 일을 겪으면서 영향이 있었죠.” “하지만 본인의 길이 컨트롤이 되지 않으면 어떡할 거예요?” “그게 무슨 말이에요?” “지금 낸시랭씨 주변을 둘러싸고 만들어지고 있는 것들이요.” “뭐가 만들어지고 있는데요?” "새로운 기류가 만들어지고 있잖아요. 못 느끼나요?” “그러니까 뭐가요?” “예를 들어 사람들이 낸시랭씨를 바라보고 평가하는 시각부터.” “그냥 알아서들 하시면 돼요.” “신경 쓰지 않고 내 길을 가겠다?” “모두 같은 저에요. 한때는 싹을 밟아 죽이려는 듯이 굴던 사람들의 태도가 갑자기 바뀌었어도 구원받았다는 생각은 조금도 안 들어요.” 


“내가 가진 개념은 무개념이에요”

어둡고 고통스러운 시기는 어떻게 보냈는가?

“나에게 악랄하게 굴던 사람들 다 기억하죠. 치밀한 복수 계획을 세워요. 장기계획이에요. ‘내가 이걸 그냥 넘어갈 줄 알았지? 난 뇌가 섹시해서 보통 사람들이 상상할 수 없는 방식으로 복수할 거야.’ 그러다 해야 할 일로 바빠져요. 올인하죠. 그러고는 잊어버려요. 계획이 기억이 안 나요.” 

장기적인 복수를 계획한다. 빠르게 잊는다. 어깨 위의 인형이 영혼을 가졌다고 믿는다. 탈수기에 돌려 말린다. 봉건적 사고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자유주의자면서 여왕에 즉위하길 꿈꾸고, ‘아이 러브 달러’를 외치면서 거지로 분장한다. 큐티하고 섹시하다. 합하면? ‘앙!’이다. 도저히 일관성 있는 맥락으로 배열해보기 어려운 철학이다. 그래서 낸시랭은 흥미진진하다. 그래서 낸시랭은 스타가 됐다. 그녀는 내가 처음 만나는 종에 속하고, 그녀의 사고방식은 내가 처음 발견한 과에 속한다. 랭을 향한 비난과 관심 역시 오로지 랭의 모순과 독창성에 쏟아지는 것. 그녀 입에서 나오는 대개의 문장 역시 순결성마저 느껴지는 독창적인 모순 구조로 닫힌다. 이렇게. “요즘엔 사람들이 나를 ‘개념녀’라고 부르는데, 사실 내가 가진 개념은 무개념이에요.”

작별하기 직전 코코 샤넬을 잠시 빌렸다. “얘 궁둥이 때리는 거 동영상으로 찍어도 되겠어요?” 장난스럽게 물었다. 그녀는 진지하게 성화를 부렸다. 나는 당황했다. 그게 랭을 구성하는 양립 불가능한 두 세계의 어느 쪽에서 나온 반응인지 모르겠다. 작품이 훼손당한다고 여겨설까? 아니면 애완동물이 학대당한다고 여겨설까? 뾰로통한 표정을 짓는 랭의 왼쪽 어깨에 코코 샤넬을 곱게 올려주었다. 하하, 당분간 이보다 흥미진진한 사람은 만나볼 수 없겠지.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손아람
글 손아람 힙합 그룹 ‘진실이 말소된 페이지’의 멤버로 활동했다. 그룹 이름과 같은 제목의 소설을 써서 작가의 길로 들어섰다. 용산참사를 소재로, 정통 법정소설인 <소수의견>을 썼으며, ‘전태일’이라는 이름을 가진 인물을 찾아다니며 인터뷰해 <너는 나다-우리 시대 전태일을 응원하다>에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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