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3.05.06 21:49 수정 : 2013.05.07 10:52

2002년 영구 귀국했을 때, 홍세화는 책상다리로 앉는 걸 힘들어했다.

그러나 다리 관절과 근육의 불편함은 사소한 것이었다. 이후 10년, 그는 한국 사회와 내내 긴장했다.

보수 진영과의 대결은 선명해서 차라리 편안했다. 진보 진영은 그를 무시로 무대 위로 불렀고, 아니 부르기 전에 그가 먼저 무대 옆에 섰으나, 한순간도 중심에 든 적은 없었다.

중심에 들려고 하지 않은 건 그의 천성이지만 그의 천성과 상관없이 진보는 그에게 배타적이었다.

서생 노릇을 관두고 진보 정당 당대표로 짧게 ‘외유’했을 때조차 그곳은 변방이었다.

이제 그는 대놓고 ‘가장자리’를 선언하고 진보 진영의 패권주의와 무지를 통박하는 ‘말의 화살’을 날리기 위해 시위를 당기기 시작했다.

사대(射臺)에 선 그를 <나·들>이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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