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3.05.06 21:12 수정 : 2013.05.07 10:52

연애는 기본적으로 지극히 사적인 일대일 관계에서 벌어지는 감정과 행동이다. ‘떨림·자극-호감-사랑-권태-이별-파국’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과정은 이데올로기와는 거리가 멀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우리 사회는 연애가 이데올로기되어버린 사회다. 지성의 공간인 대학에서 연애 특강을 하고, 연애 강사·연애 카운슬러·픽업 아티스트가 성업하는 등 바야흐로 ‘연애 이데올로기’, ‘연애 소비주의’ 시대다. 일상적으로 연애에서 ‘정상’과 ‘정답’을 찾으려는 노력이 벌어진다.

그러나 24시간 전국에서 ‘연애 부흥회’가 열리는 이 나라는 역설적으로 아무나 연애하도록 허용하지 않는다. 연애 이데올로기가 지배하는 사회에서는 ‘정상성’을 부여받았을 때라야 가치 있는 연애가 된다. 정상성은 학벌, 외모, 재력은 물론 육체적·정신적으로 건강한 젊은이들의 연애만 해당한다. 이렇게 규범화된 연애 이데올로기가 지배하는 사회에서는 필연적으로 예외자, 탈락자가 존재한다. 장애인, 노인, 청소년, 성적소수자, ‘프레카리아트’ 등이 그들이다. 연애를 강권하면서 동시에 금지하는 모순은 결국 ‘누구의 연애인가’에서 비롯된 문제다.

중증 지체장애인 방상연씨와 안정란씨는 3년째 연애 중이다. 비록 휠체어에 의지한 몸이지만, 이들의 데이트는 커피를 마시고 영화를 보고 공원을 산책하는 등 일반인과 다르지 않다. 한겨레 박승화 기자

장애인 커플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

3년째 열애 중인 방상연(41)·안정란(45)씨 커플의 연애엔 특별한 것이 있다. 아니 특별할 것도 없다. 두 사람 모두 휠체어에 의지하는 지체장애인이지만, 이들의 연애는 일반인과 크게 다를 게 없다. 3년 전 노들야학 쪽 지인의 소개로 만났다. 상연씨의 적극적인 대시로 정분이 났다. 상연씨는 “솔직히 첫눈에 홀딱 빠지지는 않았어요. 착해 보이고, 잘 맞을 것 같아서 먼저 연애를 걸었죠”라고 말했다. 스무 살 때부터 갈망한 상연씨의 첫 연애는 18년이 흐른 뒤에야 찾아왔다. 노들야학 관계자는 “우리 의식 속에는 연애는 정상적인 육체를 가진 이들만이 제대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며 “이성에 대한 호기심과 관심, 이성을 갈망하는 마음은 인간의 본능으로서 육체의 불편함과 아무런 연관이 없다”고 말했다.

반면 우리 사회에는 이 장애인들의 연애를 터부시하거나 비정상으로 보는 시각이 팽배하다. 심지어 정란씨 가족조차 상연씨와 연애하는 것을 격렬히 반대했다. 상연씨는 중증 장애인으로, 연애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라고 봤기 때문이다. 상연씨는 한동안 정란씨 가족의 따가운 시선을 견뎌야 했다. 연애가 정상의 몸을 가진 이들의 특권, 그래서 장애인은 연애 열외자라는 그릇된 이데올로기의 또 다른 방증이다. 현실에서도 장애인의 연애가 곳곳에서 배척되고 있다. 영화 <말아톤>에서 지적장애인 초원이가 얼룩무늬 치마를 입은 여자의 엉덩이를 만진다. 이에 그녀의 애인이 초원을 때린다. 그때 초원이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우리 아이에게 장애가 있어요”였다. 엄마가 늘 하던 말이다. 상연씨는 “성적 욕구가 왕성한 나이임에도 초원이처럼 장애를 이유로 성욕을 묵살당하는 일이 수시로 생긴다”며 “우리는 연애도 섹스도 다 가능하다”고 말했다. 성범죄학의 관점에서 초원이는 마땅히 맞아야 하지만, 한 번도 자신의 성욕을 승인받지 못한 점에서 보면 그도 피해자인 셈이다.

장애인차별금지법 제29조에는 ‘장애를 이유로 성생활을 향유할 공간과 기타 도구의 사용을 제한하지 말고, 국가는 장애인의 성 향유권을 보장하기 위해 필요한 지원책을 강구하고, 차별적 관행을 없애기 위한 홍보와 교육을 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다. 사회는 비장애인 중심의 인프라 위주다. 또 장애인에 대한 차별적 시선이 상존한다. 장애인의 존재를 인정하면서도 곁에 두기 싫다는 심리인 셈이다. 상연씨는 “휠체어를 탄 채 영화를 볼 수 있는 극장이 손에 꼽히고, 식당에서도 거절당하기 일쑤”라며 “길에서 우리가 손이라도 잡으면 동물원 동물 보듯 신기하게 쳐다보는 시선을 느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고 말했다. “‘쟤네 뭐해?’ 힐끔 쳐다보는 것은 좋아요. 근데 ‘쟤네, 왜 그래?’ 시선은 정말 싫어요. 장애인이 밖에 다니는 게 보기 싫다는 사람이 너무 많더라고요. 집 구할 때도 마찬가지였어요. 계약 성사 직전까지 갔다가도 나중에 우리가 장애인인 걸 알면 절대 자기 집에 들일 수 없다고 했죠. 그나마 반지하 25만 원짜리 월세방을 구한 건 행운이었어요.”

연애 이데올로기는 비장애인이 장애인을 향해 갖는 사랑의 감정조차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영화 <오아시스>에서 뇌병변장애인 공주와 종두의 성관계를 목격한 경찰이 던지는 대사는 그래서 섬뜩하기까지 하다. “저런 애를! 참나 인간으로서 이해가 안 되네. 얌마, 솔직히 성욕이 생기대?”

장애인의 사랑에 성행위는 필연적으로 동반된다. 상연씨와 정란씨는 일주일에 한 번꼴로 성행위를 즐긴다. 관념적으로 고착화된 정상 체위, 성기 결합 형태가 아니다. 몸이 덜 불편한 정란씨가 주도하는 스킨십이 대부분이다. 4년째 활동도우미로 상연씨를 돕고 있는 심아무개씨는 “항상 애틋한 둘을 보면서 연애와 사랑의 위대함을 깨닫는다”며 “이들의 사랑을 품어안을 수 있는 성숙된 인권의식이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하다”고 말했다.

<기사 전문은 <나·들> 인쇄판에서 볼 수 있습니다.>

김미영 기자 kimm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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