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3.05.06 20:57 수정 : 2013.05.07 11:42

트랜스젠더 하리수는 성소수자이자 이성애자다. 그녀를 사랑한 남성도 이성애자이다. ‘트랜스 이전’의 상대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천상 이성애자 여성이다.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그녀를 처음 본 건 2001년 봄이었다. 그녀는 내가 일하던 시사주간지 표지 인물로 선정돼 사진 촬영과 인터뷰를 하러 왔다. 화장품 모델로 연예계에 갓 데뷔해 뜨거운 관심을 모으며 연일 화제를 낳고 있을 때였다. 관심과 화제는 그녀의 성 정체성과 외모가 만나 일으킨 화학작용 같은 것이었다. 성전환수술을 해서 여자가 된 것과, 남자인지 여자인지는 몰라도 겉모습만큼은 빼어나게 예쁜 여자로 보인다는 것만으로도 세간의 호기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그때는 ‘이성애’라는 표현조차 낯설었다. 사랑이면 사랑이고 연애면 연애지…. 지금은 보편적으로 쓰이는 표현이 그땐 일종의 동어반복 같았다. 하물며 트렌스젠더라니. 고릿적 서귀포 앞바다로 흘러든 서양인 하멜을 본 조선 사람들의 심정이 그 정도였을까. 그녀가 내 앞을 스쳐 지나갔다. 그 뒤로 한동안 TV 화면에 나오는 특급 여성 연예인들 얼굴에서 흠집밖에 보이지 않았다.

어느덧 그녀는 방송 데뷔 13년이 되었다. 아이돌 스타들이 유성우처럼 명멸하는 요즘, 특이성 하나만으로 연예인의 삶을 알속 있게 채워가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더구나 그녀는 연예계에서 범용적인 캐릭터도 아닌데다 생물학적으로 나이가 들면서 성적 호소력도 퇴화하고 있을 것이다. TV에서 그녀의 얼굴을 본 게 언제인지 가뭇없었다. “인생을 너무 일찍 누설하여 시시쿠나”(허수경·‘늙은 가수: 뽕짝의 꿈’)라는 시구를 읽었을 때 떠오른 이미지처럼, 어쩐지 어두운 조명 아래서 나이트가운을 걸친 채 독주가 든 병을 홀로 기울이고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런데 최근에 그녀가 <드랙퀸>이라는 창작 뮤지컬에 주인공으로 출연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드랙퀸’이라면 여장남자 아닌가. 자신의 성 정체성을 여성으로 인식하지만 육체는 (아직) 남자인 성소수자. “내 목젖이 꽃잎 열 듯 발개지던 그 시절”(앞의 시)을 다시 노래하고 싶은 건가.

하리수, 그녀를 만났다. 봄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저녁, 공연 시작을 앞두고 텅 빈 긴장감이 공기를 팽팽하게 떨게 하는 서울 대학로 어느 극장이었다. 화장을 짙게 하고 머리에 큰 꽃을 단 그녀가 무대 위에서 성큼 내려와 내가 있는 객석 옆자리에 앉았다. 애초 인터뷰 목적은 한곳으로 집중되어 있었다. ‘당신은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는가. 그리하여 현재를 그 힘으로 살아가고 있는가.’ 그러나 대화는 기본조차 되어 있지 않은 나의 무지에서부터 출발했다. 그녀는 지금 여자의 몸이지만 남자의 몸을 기억하는 몸일 것이다. 그러니까 자신의 정체성을 인식하는 데도 어느 지점에선가 부정교합이 나타날 것이다. 적어도 내 기준으로 볼 때, 일말의 분열적인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그녀의 남편을 비롯해 사적 관계인들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나는 생각의 연쇄에 사로잡혀, 어리숙하면서도 통속적인 지점에서 말문을 열 수밖에 없었다.

과거 연애사에 대해 언론에 밝히면 남편이 질투하지 않을까. 농담처럼 던진 질문은 결혼 후 그녀가 ‘보통’ 부부와 얼마나 같고, 또 얼마나 다른지 탐문하려는 더듬수였다.

하리수 그렇지는 않아요.(웃음)

실없는 응수 타진에 맥없는 답이 돌아왔다. 그렇다면 하리수의 결혼은 적어도 그녀의 생에서 매우 예외적 사건은 아니었을까. 트랜스젠더를 사랑한다는 건 보통의 이성애자로서는 쉽지 않을 것 같았다. 이번에는 수치로 가늠해보기로 했다. 에둘러 물었다. 살아오면서 연애는 몇 번이나 해봤는가? 누구나 연애를 일생일대 한 번만 하는 건 아니지 않은가.

하리수 저를 특별한 사람이라고 보고 (지난날이) 몹시 암울했을 거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은데, 물론 인생 자체는 많이 힘들었지요. 하지만 사랑 경험은 굉장히 많아요. 사랑 때문에 피눈물 흘리고, 심지어 자살을 시도하기도 했으니까요. 제 자랑 하는 건 아닌데, 남자친구가 헤어진 후 새 여자친구와 비교해가면서 ‘네가 최고였다’는 둥, ‘못 잊는다’는 둥 계속 관심을 드러내곤 했어요. 제가 사랑하는 사람한테 굉장히 잘 하는 스타일이거든요. 뭔가를 바라지 않고요. 그냥 같이 있는 걸로 행복감을 찾고, 그 사람이 요구하지 않아도 잘 챙겨주고…. 한마디로 현모양처의 ‘양처’ 스타일이죠. 그래서 과거 남친들이 저를 못 잊는 것 같아요. 지금도 친구처럼 지내는 경우가 많아요. 아, 물론 연애 감정을 다시 갖거나 하지는 않아요.

연애 경험을 꼽아보려다가도 손가락들이 허전해 제풀에 관두고 마는 내게 그녀는 자신의 차고 넘치는 연애 경험을 겸손하게 과시하고 있었다. 어쨌든 연애는 신체(정신과 육체)와 신체가 마주치는 사태다. 그녀의 신체는 특별하다. 그 특별함을 마주하고 속절없이 연애에 빠져드는 상대의 신체 역시 특별할 것이다. 세상에 특별한 신체가 그토록 많다는 말인가. 스스로 보편적 신체의 주체라고 여겨온 나는, 빈곤한 연애 경험을 떠올리며 순간 소수자 감수성을 빙의할 뻔했다. 그녀의 특별한 신체를 다시 생애주기로 분할해보면 트랜스 이전과 이후일 것이다. 나는 그녀 신체의 변화보다는 변화 이전과 이후, 그녀 상대의 차이가 더 궁금했다.

하리수 저는 고등학교 졸업한 뒤에 수술비를 마련해서 바로 (성전환수술을) 했어요. 그러니까 트랜스 이전이라면 성인이 되기 전이라고 봐야죠. 첫 연애는 중3 졸업 앞두고 시작해서 1년 정도 사귀었어요. 고2 때 사랑하는 사람이 다시 생겨 1년쯤 지나 헤어졌지요. 그 친구와 헤어지고 나서 너무 힘들어 자살 시도를 했고요.

자살 시도? 그럼 결과는? 막 입이 떨어지려는 찰나 후회했지만, 중단하기에는 애초 질문이 너무 짧았다.

하리수 (자살에) 성공했으면 제가 지금 여기 있겠어요?(웃음) 고등학생 때는 가슴도 없고 성전환 전이었지만 사귀는 남자들은 저를 여자로 사랑했어요. 자신에게는 여자친구인데 남들은 남자와 남자가 연애한다고 보니까 떳떳하게 말할 수 없었죠. 저를 사랑하면서도 다른 사람들 시선 때문에 항상 갈팡질팡하다가 견디지 못하고 가슴 아프게 헤어지곤 했어요. 그 충격에 자살 시도까지…. 그때는 암울한 시기였습니다.

남자의 몸을 가진 타자를 여자로 사랑한 그 청소년들의 성 정체성은 무엇이었을까.

하리수 물론 일반 남자이지요. 이성애자 남성!

처음엔 의외로 들렸지만 차츰 가닥이 잡혔다. 게이나 레즈비언은 같은 성을 가진 타자에게 반응하지 동성을 이성으로 인지하지는 않으니까. 그렇다면 두 신체의 마주침에서 변수는 그들 남성이 아니라 하리수에게 있다고 보는 게 타당할 것이다. 생물학적 신체는 남성인데 정신적 신체는 여성인 고등학생 하리수의 성 정체성은 분명 여성이지 않았을까. 굳이 다시 이성애자와 동성애자의 범주로 구분한다면 이성애자! 하리수는 이성애자이(었)고 ‘트랜스 이전’의 정인들도 이성애자였다는 사실은, 무지한 이성애자인 내게 새삼 깨달음으로 다가왔다. 트랜스 이후의 정인들은 어땠을까.

하리수 수술 뒤에는 그런 암울한 일은 없었어요. 물론 여러 남자들과 만나고 헤어졌지만, 제가 과거에 남자였다는 이유 때문은 아니고… 그냥 말 그대로 성격 차이로 헤어지거나, 아니면 제가 애를 낳을 수 없기 때문에 헤어졌어요. 아무래도 제가 양처 스타일이어서인지 항상 장남 아니면 외아들하고 만나게 되더라고요. 대를 이어야 하는데 애를 못 낳으니 걸림돌이 되었죠. 2002년 국가에서 호적을 여자로 바꿔줬는데, 그전에 만나던 남자들은 내 호적 정리가 안 되어서…. 그래서 제가 그냥 가라고 보내준 경우가 많아요. 그런데 지금 남편은 외아들인데도 그런 거 다 이해해주고 시부모님도 저를 받아주셔서 결혼까지 하게 된 거죠.

모두 결혼을 전제로 한 만남이었다는 얘긴가. 호기심으로 추근댄 남자는 없었을까.

하리수 추근대는 남자들이 많긴 했죠. 고위직에 있는 사람들도 있었고, 유명 연예인도 있었고요. 그렇지만 단순한 호기심 같은 건 아니었고, 나름 진지했어요. 저는 연애를 하면 적어도 1~2년은 사귀고, 대부분 그보다 오래 사귀거든요. (그녀는 다른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하리수라는 예명으로 데뷔하기 전 연예계를 접했을 때 성 접대를 요구받은 적도 있었다’고 밝힌 바 있다. 이 지점에서 고 장자연과 하리수는 약자와 소수자로 마주한다.)

그녀는 천상 여자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선남선녀의 연애사에서 나올 법한 질문이 슬슬 떠오르기 시작했다. 학교 다닐 때 연애했으면 공부는 뒷전이었겠다.

하리수 전 예체능반이었어요. 중학교 때는 트럼펫 불고, 고등학교 때는 호른을 불었어요. (‘주로 부는 쪽이었군요?’라고 농을 던지자 못 들은 체 넘어간다. 내 예능감은 그녀를 앞에 두고 백일하에 드러났다.) 그런데 선배들이 하도 괴롭혀서 음악 관두고 연기 쪽으로 빠졌어요. 그래도 공부는 중간 정도 했죠.

그녀가 답하면서도 ‘왜 그런 질문을?’이란 표정을 지었다. 나도 그 표정을 간파했고, 서둘러 연애가 삶의 에너지가 된 적은 없었는지 물었다. 그녀는 금세 수긍하는 표정으로 바뀌었다.

하리수 연애한다고 뭘 빼앗기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오히려 무언가 좋아하는 게 생기면 엔도르핀이 돌잖아요. 고등학교 때 연애를 안 했다면 너무 암울해서 못 견뎠을 거예요. 이래봬도 3년 개근상 타고 예체능으로 장학금 받으며 학교 다녔어요. 제가 열여섯 살 때부터 트랜스젠더 세계로 나왔고 연기도 그때부터 시작했는데, 사랑하는 사람이 같은 반 짝이 아니었더라면 학교를 중간에 관뒀을 거예요. 학교 가서 그 친구 만나는 게 즐거웠고, 안 좋은 모습 보이기 싫어서 더 열심히 하려고 했고. 그런 것이 즐겁지 않나요?

어쩐지 준비된 답 같다고 하자, 정색을 한다.

하리수저 준비된 답 잘 못해요. 재지 않고 그때그때 생각나는 대로 말해버리는 편이에요.

성전환 이후에도 연애는 연예에 도움이 됐을까.

하리수 일할 때도 항상 사랑이 뒷받침됐어요. 그래서 더 즐겁고 재미있게 살았고. 제가 아는 어떤 (트랜스젠더) 후배는 항상 연애에 실패해요. 그러고 나면 집에 틀어박혀서 나오기도 싫어하고 항상 우울해했어요. 미니 홈페이지에 들어가보면 ‘나는 외톨이다’ 같은 비관적인 글이 써 있고. 그런 거 보면 안됐다는 생각이 들죠. 그러니까 일도 일이지만 삶의 활력소는 사랑과 연애가 아닐까요.

인터뷰는 점점 ‘보통’ 여성 연예인과의 대화처럼 흘러간다. 대개 사람들은 열정적으로 사랑하다가도 결혼이라는 관문을 통과하면 현실적 관계로 전환해 사랑 따위는 잊고 살아가게 된다. 공식적인 부부관계 이면에서 복잡한 연애관계가 많아지기도 한다.

하리수 저는 남편과 항상 이런저런 대화를 많이 해요. 저희는 취미도 같아요. 온라인 게임 같은 거 좋아하고, 함께 맛있는 거 먹으러 다니고, 영화 보러 다니는 거 좋아해요. 제가 워낙 바쁘고 외국도 많이 나가는데, 그런 중에도 함께 있으려고 많이 노력합니다.

결혼 몇 년차?

하리수 7년 됐어요. (그쯤 되면 권태기가 한번 오게 돼 있는데.) 언젠가 올지 모르겠지만 아직까지는…. 서로를 생각하고 배려하니까 권태감이 오지 않는 것 같아요. (남편에게 비평가적 태도는 없는가?) 나쁜 거는 하지 말라고 해요. 제가 입은 옷이 어울리지 않으면 언제든지 ‘여보, 그건 아니야. 더 예쁜 거로 입어’라고 해요. (닭살 커플이다.) 주변에서 다들 그렇다고 해요. 무엇보다 결혼해서 편해졌죠. 제가 바빠서 못 가는 자리에 남편이 대신 가주고, 제가 뭘 빠뜨리고 못 한 게 있으면 남편이 대신 해주고.(웃음) 술 마시지 마라, 몸 관리 잘해라, 아프지 마라… 잔소리해주고. 제가 다이어트할 때 새벽에 뭐 먹고 싶다고 하면 ‘무대에서 좋은 모습 보여야 한다’며 말리고, 남편도 함께 다이어트해주고….

남편 자랑 듣자는 자리는 아니었다. 그런데 남편에게 받기만 하는지.

하리수 제가 양처 스타일이라고 했잖아요. 저도 남편이 말하는 건 웬만해선 다해요. 그리고 저는 가족을 위해서 하루도 안 빼고 열심히 일하잖아요.

그녀의 남편 자랑이 시들해질 무렵, 그래서 듣는 나도 생각의 여유가 생기기 시작할 무렵 인터뷰를 앞두고 떠올린 시구가 다시 떠올랐다. 하리수라는 이름으로 데뷔한 초창기엔 인기가 대단했다. 그 이후엔 줄곧 내리막길 아닌가. 인생을 너무 일찍 알아 삶이 스산해지지 않았을까.

하리수 2003년 말 이전 기획사와 법정 공방을 한 뒤 2004년부터 홀로서기를 했어요. 더는 싸우고 방해받기 싫어서 외국 활동에 주력했습니다. 국내 방송은 간간이 하다가 2008년 말 한국에 트랜스젠더 클럽을 열면서 더욱 바빠져 사실상 국내 활동을 할 여력이 없었어요. 그러고 나니 거리에 나가도 시민들이 ‘저 사람 하리수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다’는 반응이더라고요. 자유롭고 좋았어요. 메이크업 안 하고 다녀도 되고, 남편이나 시부모님, 친정엄마와 함께 놀러 다닐 수 있게 되고요. 그리고 늘 바빴기 때문에 슬럼프 같은 건 느끼지 못했어요.

한국 풍토에서, 특히 여성 연예인은 젊을 때 반짝 떴다가 빠르게 소비된 다음 잊히고, 얼마간 시간이 지나 그중 일부가 이미지 변신해 활동하는 게 패턴화돼 있다. 그녀도 세월을 비켜갈 수는 없을 것이다. 데뷔 13년. 어느덧 중견 초입 아닌가.

하리수 제가 벌써 중견이요?(웃음) 처음에 엄청나게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건 사실이지만 부당한 대우도 많이 받았어요. 2002년 한-일 월드컵 때 여러 곳에서 응원이나 공연무대 섭외가 들어왔는데 트랜스젠더라는 이유로 ‘높은 분’들이 취소시키기도 했어요. 드라마나 영화에 캐스팅됐다 취소되기도 했고, 심지어 어느 잡지에서는 인터뷰까지 해놓고 싣지 않은 적도 있어요. 그래서 저는 한창 대중의 사랑을 받을 때도 올라가는 게 있으면 내려가는 것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언제까지 현역으로 활동할 생각인가.

하리수 저를 대신할 (트랜스젠더) 후배들이 많이 나와서 제가 쉬어도 될 정도가 되면? 저 이후로 많은 후배가 도전했는데, 연예계에서 성공할 기회도 드물고, 오랜 세월이 걸릴 수 있잖아요. 인내심과 끈기로 버틴 후배들이 드물어요. 트랜스젠더에게는 특히 ‘이쪽’ 바닥이 얕고 좁아요. 여자 연예인하고 경쟁해야 하는데, 여자 연예인으로 안 봐주고 트랜스젠더 배역도 감초 역할뿐이잖아요. 그럴수록 저는 더 열심히 하려고 합니다. 제가 완벽주의자예요. 남편과 가족을 사랑하듯이 제 일을 무척 사랑합니다.

그녀가 주인공을 맡은 뮤지컬 <드랙퀸>은 서울 이태원의 드랙퀸 클럽 ‘블랙로즈’를 배경으로 화려한 드랙퀸쇼와 함께 여장남자들의 일과 사랑을 보여준다. 그녀는 한 남자를 지고지순하게 사랑하는 ‘오 마담’ 역을 맡았다. 물론 극중에서 그녀도 드랙퀸이다. 여성으로 사는 자신의 실제 삶에 견주면 신체 조건을 역진시키는 셈이다. 자신이 걸어온 길의 단면을 다시 연기하는 걸까.

하리수 그렇다고 볼 수 있죠. 메시지는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가르치고 계몽하는 건 아닙니다. 오셔서 편하게 웃고 즐기다 보면 어느새 ‘이런 메시지가 숨어 있었구나’ 느끼게 될 거예요. 현실과 다른 면도 있지만 우리의 능력과 정열, 노력을 제대로 보여준다고 생각해서 작품을 선택했어요. 그래서 남편도 적극 지지한 것 같아요.

그녀도 극중 오 마담처럼 12년간 한 남자만 바라볼 수 있을까.

하리수 저요? 그 정도 순정파는 아니에요. 오 마담 역에서 제가 갖고 있지 않은 면이 있어서 캐릭터 잡기가 힘들었어요. 하지만 제가 원래 갖고 있는 면을 표현할 때, 특히 사랑을 표현할 때는 아주 편안하고 좋아요.

리허설 시간이 닥쳤다. “공연 꼭 보고 가세요.” 그녀가 치렁치렁한 드레스를 끌며 무대 뒤로 바쁘게 사라졌다. 그녀는 천상 여자였다. 설령 이 표현이 성차별적 뉘앙스를 담고 있다 해도. 그녀는 그것을 얻기 위해 울고 싸우고 사랑해온 게 아닐까. 서둘러 늦은 저녁을 먹고 객석으로 돌아왔다. 조명이 들어왔다. 그녀가 무대 한가운데 서 있었다. 순간, 13년 전 내 책상 앞을 스쳐 지나가던 그녀의 모습이 겹쳤다. 노래가 시작됐다.
“오늘 밤 당신은 우리를 사랑하게 될 거야. 오늘 밤 세상이 정해놓은 규칙 따윈 날려버려.”
그녀의 대사가 귓전에 꽂혔다.
“우리가 우리 스스로를 자랑스럽게 여기지 않으면 정말 삼류 된다.”
그녀(들)는 사랑 때문에 울고 웃었다. 2시간 남짓한 공연은 내게 그저 한 편의 러브스토리였다.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눈시울을 적시고 있었다.

안영춘 편집장 jona@hani.co.kr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