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3.04.03 17:39 수정 : 2013.04.08 20:19

자연을 자연으로 볼 수 있는 시선은 쉽게 가질 수 있는 미덕이 아니다. 그래서 지율 스님의 시선으로 기록한 ‘모래가 흐르는 강‘은 슬프지만 아름답다. 스님은 진눈깨비가 내린 지난 3월 22일 아침 서울 한강 노들섬에서 ‘나·들‘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한겨레 박승화 기자
지율 스님. 그 이름은 ‘천성산 도롱뇽 소송’이라는 사건과 떼려야 뗄 수 없을 것이다. 참여정부가 들어서고, 모든 것은 완벽하게 완성된 것처럼 보였다. 민주주의는 더 이상 논란거리가 아니었고, 사회 모순의 해결은 시간문제처럼 보였다. 그런데 이 완성된 것처럼 보였던 세계를 뚫고 전혀 낯선 존재가 출현한 것이다.

그는 단식이라는 극단적 방법을 동원해 진보와 보수가 공통으로 합의하고 있는 개발의 패러다임을 폭로했다. 숱한 비난을 감수해야 했다. 스님이 정치적이라는 소리까지 들었다. 만나자마자 물어본 것이 이에 대한 견해였다. 의외로 담담한 대답이 돌아왔다. “그 소송은 도롱뇽을 위한 것이기보다 도롱뇽조차 지키지 못하는 개발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를 묻는 행위였다”는 것이다.

심오하다면 심오한 말이지만, 의외로 간단한 논리였다. 도롱뇽도 살지 못하는 세상을 만들어놓고 우리는 무슨 영화를 누리겠단 말인가? 미물 하나에도 불성이라는 우주의 원리가 깃들어 있다는 불가의 말씀과 일맥상통하는 것 같다. 지율 스님이 인터뷰 내내 강조한 것도 이것이었다. 세간에 ‘스님이 지나치게 정치적이고 전략적이다’라는 지적에 대해 그는 단호했다. “내가 하는 일은 불가의 수행과 다를 게 없다”는 확신이 있었다.

도롱뇽을 청구인으로 해서 벌인 법정 투쟁은 성공하지 못했다. 아직 한국은 ‘개발’이라는 절대명제를 넘어설 수 있는 패러다임을 받아들이지 못한 것이다. 궁금해서 물었다. 지율 스님은 자신을 생태운동가라고 생각하는지 말이다. 우문에 현답이 돌아왔다. “나는 그런 규정에 들어맞지 않아요.” 인터뷰하기 전 상상한 것에 비해 그는 훨씬 불가의 선승에 가까웠다. 그는 자신을 생태주의자라고 부르는 것도 저어했다. 어떤 규정도 자신을 설명해줄 수 없다는 말이었다.

확실히 그는 일반적 범주로 설명할 수 없는 ‘다른 존재’처럼 보였다. 도롱뇽을 위해 목숨 걸고 단식한다는 것 자체가 웃음거리로 거론되던 시절이었다. 투지처럼 보이던 그 단호함이 사실은 불가의 전통에서 고스란히 발견되는 수행의 치열함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런 지율 스님이니 당연히 4대강 사업이 눈에 들어왔을 것이다. 이번에도 그의 눈은 남달랐다. 그가 찾아낸 것은 다른 무엇도 아닌 강 자체였다. 천성산 개발을 반대하는 논리를 도롱뇽이라는 작은 생명에서 발견했다면, 4대강 사업의 문제점은 모래가 흐르는 내성천에서 찾아낸 듯하다.

지율 스님이 이번에 선택한 수단은 단식이 아닌 카메라였다. 내성천을 영상으로 담담하게 담아낸 다큐멘터리 영화를 들고 우리 곁으로 찾아온 것이다. 영화를 보면서 ‘스스로 자연’을 관조하는 그의 시선에서 특별함을 읽을 수 있었다. 물론 그는 손사래를 쳤다. “특별한 시선은 아니에요.” 물론 특별한 시선은 아닐지도 모른다. 그러나 자연을 자연으

로 볼 수 있는 시선은 그렇게 쉽게 가질 수 있는 미덕이 아닐 테다.

그래서 그의 영화는 슬프지만 아름답다. 영화 제목이 ‘모래가 흐르는 강’인 것도 의미심장하다. 4대강 사업은 기본적으로 강의 모래를 파내는 작업이었다. 모래가 유입되어서 강 수위가 높아져 문제라고 진단했다. 그런데 지율 스님은 정반대의 모습을 보여준다. 내성천의 모래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영화를 통해 보여주고 있다. 의도된 것이었다면 참으로 놀라운 전략인 셈인데, 역시 지율 스님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전략이라기보다 그냥 실제로 일어나는 일을 그대로 보여주었다는 뜻인 것 같다. 영화에서 맑은 물에 금빛 모래가 아름다운 내성천이 4대강 사업이라는 명목으로 훼손되어가는 것을 본 사람이면 누구나 가슴 아파할 것이다. 천진난만하게 뛰노는 아이들을 담아놓은 영상은 지율 스님이 영화를 통해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은 것인지 선명하게 보여준다.

“이름에 법률을 의미하는 ‘율’자가 들어가서 그런지 유독 법정에 갈 일이 많다”는 재치는 그의 마음을 짐작하게 만든다. 아이 같은 마음이 거기에 숨어 있는 것이다. 누가 봐도 사회운동가처럼 보이는데, 지율 스님은 극구 자신을 그 반열에 올려놓지 않으려고 했다. 의아해할 수 있다. 비판자들이 보면 영악하다는 소리가 나올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야기를 나누면 나눌수록 그는 정말 자신의 말처럼 사심을 숨기고 있지 않았다.

시민단체 마저 불편한 생태인

어쩌면 그는 전략적이지 않은 것을 추구하기에 전략적 존재로 받아들이는지도 모른다. 마치 그리스 비극에 나오는 ‘안티고네’처럼 말이다. 안티고네는 오빠의 주검을 장례 치르지 말라는 왕의 명령을 어기면서 국가의 법을 거스르는 천륜의 법을 주장하는 존재로 유명하다. 이런 의미에서 안티고네는 합의된 법을 넘어선 다른 법의 정당성을 옹호하는 형상으로 거론되곤 한다. 지율 스님은 시민단체마저 불편하게 여기는 자신의 법에 따라 움직이는 존재였다. 진영 논리를 벗어난 그만의 전략은 이런 이유로 가능한 것 같다.

지난 18대 대선 후보 문재인 의원에게 질문을 던진 것도 그 때문이다. 천성산 터널 공사를 백지화하기로 약속한 노무현 전 대통령은 당선되자 말을 바꾸고 사업을 그대로 밀고 나갔다. 이에 대한 해명을 요구하자 문 의원 쪽은 궁색한 변명을 늘어놓았다. 아마 문 의원 지지자들은 그의 행동을 괘씸하게 여겨졌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랑곳하지 않고 그는 필요한 질문을 던지는 ‘악역’을 자임했다.

그렇다면 내성천 문제는 어떤가? 문 의원에게 실망한 지율 스님은 이 문제와 관련해 새누리당을 비판하지 않는다고 했다. 비판은 자기한테 가까운 이들에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란다. 그럴듯한 답변이었다. 새누리당은 비판 대상이라기보다 하나의 현실이라고 보는 것 같다. 넘어가야 할 현실 말이다. 이런 현실을 바꾸려는 의지는 오히려 그 반대편에 있기 마련 아닐까, 이런 의미였다. 천성산에서 내성천까지 이어지는 그의 행보가 이 지점에서 하나로 꿰어지는 느낌이었다.

기가 막힌 이야기를 들려줬다. “문제는 환경영향평가였어요”라고 운을 뗀 그는 서늘한 표정으로 말을 이어갔다. 환경영향평가라는 게 평가위원 한 명이 내성천을 한번 둘러본 뒤 내린 결론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 한마디가 오랜 세월 자기 자리에 있는 내성천을 바꾸어버리는 결과를 초래해서 안타깝다는 말이었다. 더욱 기가 막힌 이야기가 나왔다. “천성산 사업 때 환경영향평가를 담당한 그분이 또 오셨더라고요.” 강도에 비해 지율 스님의 표정은 변하지 않았다.

천성산의 도롱뇽을 환경영향평가에서 빼버린 그 ‘전문가’가 내성천의 환경영향평가를 내렸다는, 마지막 한 방이 지율 스님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그 ‘전문가’가 시민단체의 의뢰로 천성산 사업을 재고하기 위한 환경영향평가를 재실시할 때 관여한 이라는 증언이었다. 영혼이 없는 ‘전문가’에 대한 묘사가 아팠다. 변한 것이라면 ‘전문가’ 노릇을 하고 있는 교수의 경력이 더 늘어난 것이다. “그분이 거의 모든 국책사업에서 환경영향평가를 담당하셨더군요.” 당연히 과거에 비해 그는 더 ‘전문가’로 평가받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그의 평가 방식은 예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이 사실은 냉정한 현실을 드러낸다. 지율 스님은 다른 무엇도 아닌 이 현실과 싸우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측면에서 그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는 이였다. 역시 안티고네였던 셈이다. 자기의 욕망을 포기하지 않는 안티고네의 과잉은 결과적으로 법에 대한 침묵에게 목소리를 부여한다. 법에 대한 이야기가 소란스럽게 저잣거리에서 피어나는 것, 이것을 유도하는 것이 지율 스님의 목적인지도 모른다.

내셔널트러스트와 연계해 내성천 주변 땅을 사는 운동을 펼치는 것도 그 일환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그 논리가 신선하다. “그 땅은 원래 강의 것이에요. 우리가 사서 강에게 돌려줘야 하는 것이죠.” 이런 생각이 어디에 있을까? 영국에서 공부할 때 나는 녹색당 활동도 했고, ‘자연의 친구들’ 같은 전투적 생태주의자들을 만나보기도 했지만, 이처럼 담백한 논리로 자신의 행동을 설명해주는 이는 없었다. 대체로 ‘합리’ 아니면 ‘억지’였다. 자연을 보전하는 것이 경제적으로 훨씬 이득이라거나, 지구 내열을 이용하면 화석연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따위의 입증 불가능한 이야기였다.

내성천 땅 한 평 사기, 강은 땅의 것

지율 스님의 이야기는 피부에 와닿는 사례를 들어서, 왜 그렇게 하는 것이 정당한지 명확한 설득력을 제시했다. 땅이 강의 것이라는 발상이 놀라웠다. 제방을 허물고 강을 더 넓히기 위해 쓸모없는 땅을 사는 것이 ‘내성천 땅 한 평 사기’ 운동의 목적이라니 나도 모르게 마음 깊은 곳에서 잔잔한 물결이 일었다. 매사에 이런 식인 것 같았다. 그가 불가에 몸담고 있기 때문이라는 추측이 일었다. 불교와 생태의 문제에 대한 연구가 떠오르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일목요연한 논리적 증명보다 더 확실한 것은 지율 스님이라는 존재였다. 그는 이 복잡한 내용을 몸소 실천하면서, 그의 표현대로 하면 직접 ‘수행’하면서 보여주고 있었다.

좀 도발적인 질문을 던졌다. 이른바 실천불교의 흐름에 속하지 않는 지율 스님이 사회운동에 관여하는 것에 대해 마뜩찮게 여기는 시선도 있지 않은가? 전혀 머뭇거리지 않는 대답이 돌아왔다. “나는 세상에서 쓸모없는 사람이었어요. 세상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했던 것이죠.” ‘다른 세계관’을 가지고 있었기에 출가했고, 또한 그렇기 때문에 이런 일을 하게 되었다는 말이다. ‘신앙의 선택’을 이야기할 때, 그의 언어는 선승 특유의 추상성을 띠었다. 그는 확실히 ‘다른 스님’이었다. 출가의 사연을 더 캐내려고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던 손아람 작가의 시도는 거기에서 멈췄다.

이미 지율 스님에게 출가 이전의 사연은 과거의 일이었다. 지금 앞에 앉아 있는 선승은 더 이상 과거에 ‘쓸모없는 존재’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 ‘쓸모없음’이 오늘날 그의 존재를 부각시키고 있는 셈이다. 이런 관점에서 또 짓궂은 질문을 던져봤다. ‘요즘 힐링 열풍이 불며, 거기에서 몇몇 스님이 승승장구 중이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역시 망설임이 없었다. 평소 많이 생각해봤다는 암시이다. “그분들은 그렇게 맡은 역할을 하고 있다고 봐요. 다만 그것이 얼마나 세상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 잘 모르겠어요.” 적절한 진단과 판단이었다.

미국의 힐링(Healing·치유) 서적은 기본적으로 체제 순응을 설파한다. 이른바 힐링을 이야기하는 스님들의 논리도 가만히 들여다보면 이런 논리와 크게 다를 것이 없다. 현실에서 상처 입은 이들이 어떻게 체제로 다시 복귀할지에 대한 문제가 여기에 드리워져 있다. 복귀할 수 있는 이들만 ‘능력’을 가진 존재로 재평가되는 것도 문제다. 어쩌면 마음의 치유를 말하는 것은 지당한 논리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거기에 ‘다른 세계관’에 대한 문제의식이 깔려 있다면, ‘깨달음’이라는 질적 차원을 만들어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율 스님과 대화를 나누는 것은 이런 식이었다. 불편한 질문을 던져도 피해 가는 법이 없었다. 나름대로 태도와 입장이 분명했다. 그리고 반드시 그 뒤에 ‘깨달음’이 따랐다. 처음에 생태주의라는 관점으로 지율 스님의 행동을 바라보던 내 판단을 근본적으로 수정해야 했다. 그는 생태주의자라기보다 그냥 ‘선승’이었다. 선승이 산에 있어야지 왜 세속에 내려와 있는지 궁금할 수 있다. 불가에서는 지율 스님의 행동을 어떻게 평가하는가? 큰스님이 지율 스님에게 물었다고 한다. 수행을 게을리 하는 것이 아닌지. 큰스님 입장에서 우려할 만했다. 그런데 역시 불가는 불가였다. 지율 스님은 앞서 언급한 것처럼 자신의 행동을 수행의 일환으로 본다고 큰스님에게 전했다. 그제야 큰스님은 안심하더란다. 어떤 의미가 거기에 스미어 있는지 문외한의 입장에서 완전히 이해하기 어렵다. 다만 지율 스님은 철저하게 불교 관점에서 지금 행동을 밀고나간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사정이 이러니 그의 행동은 일반적인 생태주의 관점에서 제기할 수 있는 문제의식보다 더 근본적인 느낌이었다. 영화를 왜 만들었는지 그 이유도 굳이 갖다 붙일 필요가 없었다. 손아람 작가는 지율 스님의 카메라가 궁금했다. 어떤 카메라로 영화를 찍었는지 물었다. 주섬주섬 배낭을 뒤져 꺼내 보인 것은 평범하기 이를 데 없는 홈비디오다. 그런 평범한 카메라로 그가 담아낸 영상은 눈부셨다. 이 사실 자체가 그의 의미를 말해주는 것처럼 보였다.

이런 방식으로 지율 스님은 평범함에서 비범함을 이끌어내는 활동을 해온 것 아닐까? “선방에서 수행할 때는 문자도 못 봐요. 텔레비전이나 영화는 언감생심이죠.” 그렇게 그와 전혀 관계없는 매체를 덥썩 받아서 영화를 만들어냈다는 것이 놀라웠다. 출가해서 거칠 것 없는 존재이기에 가능한 건 아닐까? 우연의 연속이 필연을 만들어내는 느낌이 그의 궤적에 있었다. 내성천을 만나게 된 것도 아주 우연이었다. 4대강 사업을 추진한다는 뉴스를 접하고 또 얼마나 강이 파헤쳐질까 염려하던 차에 영주댐 근처를 지나게 되었다. 거기에서 아름다운 내성천을 발견한 것이다.

슬픔을 보면 슬퍼하고, 기쁨을 보면 기뻐하고

여담으로 잠깐 나눈 대화에서 지율 스님은 ‘예쁜 남자 배우들’ 이야기를 하면서 밝게 웃었다. 처음엔 ‘스님도 이런 생각을 하는구나’ 싶었는데, 내성천 만난 이야기를 할 때 똑같은 표정이 피어오르는 것을 보고 ‘아하’ 생각이 교차했다. ‘그래, 아름답고 예쁜 것에 공감하는 것, 거기에 지율 스님의 순수성이 있구나’라는 느낌이 팍 든 것이다. 감히 ‘득도’를 생각해볼 지경이었다. 이렇게 계속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세상을 전혀 다른 관점에서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자신의 세계를 만들어낸 이들은 그 자체로 다른 이들을 바뀌게 만든다. 지율 스님도 그랬다. 사소하고 평범한 이야기에서 그는 깊지만 단순한 의미들을 찾아내 들려줬다. 내성천에 머물면서 4대강 사업에 저항하는 것은 누구 말대로 ‘불온사상’에 물들어 있기 때문이 아니다. 내성천의 아름다움이 그를 그곳에 붙잡고 있는 것이다. 예쁜 아이돌 가수나 배우가 나오면 텔레비전 앞에 앉게 되는 것처럼, 그도 내성천의 아름다움에 마음을 빼앗겨 영화까지 찍었다.

문득 현각 스님이 전해준 달라이 라마에 대한 말이 떠올랐다. 부처는 어린이의 마음과 같아서 슬픈 것을 보면 슬퍼하고 기쁜 것을 보면 기뻐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여기에서 눈물짓다가 저기에서 금방 웃을 수 있단다. 지율 스님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나는 왠지 현각 스님의 말이 자꾸 떠올랐다. 여러모로 자신의 행동이 수행이라는 말이 옳았다. 내성천의 아름다움은 그의 영화에 오롯이 나타난다. 강에 대한 사랑이 지극했다. 생물도 아니고 강이라는 대상에 이렇게 깊은 마음을 내보일 수 있는지 궁금할 지경이었다.

그의 인터뷰는 이런 의문점에 적절한 대답을 제공하는 것 같았다. 그는 대상을 사랑하는 것 이외에 욕심을 내지 않았다. 그래서 남들이 볼 수 없는 것을 보는지도 모른다. “모래가 있어서 아름다운 강이 내성천이에요”라는 말이 가슴에 와닿았다. 4대강 사업이 무엇인가? 그 모래를 ‘쓸모없다’고 규정해서 파내는 사업이다. 그런데 그 ‘쓸모없는’ 모래를 지키기 위해 과거 세속에서 ‘쓸모없는 존재’였던 지율 스님이 나선 것이다. 측은지심이라고 해야 할까? 서로 통하는 마음이 그를 내성천으로 불러들인 것이다. 마치 천성산 도롱뇽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인상 깊은 것은 그가 어떤 집착도 내보이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내 이름이 알려지고, 존재가 부각되는 것은 의미 없어요”라는 말은 너무 겸손하지만 지당한 말처럼 들렸다. 그렇게 알려지는 이름이나 부각되는 존재가 자신의 것은 아니라는 인식이 깔려 있었다. 그것은 세상 만물의 이름이자 존재일지도 몰랐다. 지율이라는 이름은 어떤 ‘선승’의 것이지만, 실제로 그는 그 개인에 멈추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처음 카메라를 잡고 찍은 영화라는데, 영상에 대해 이미 ‘전문가’다. <모래가 흐르는 강>은 대부분 봄 풍경을 담고 있다. 손아람 작가가 그 이유를 묻자, “봄 햇살을 담고 싶었다”고 했다. 겨울은 햇살이 너무 쨍해서 화면을 안정시킬 수 없다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을 언제 터득했는지 놀랍다. 따로 영상 촬영기술을 배운 것도 아닐 텐데. 지율 스님의 말이 쏟아지자 박승화 사진기자가 옆에서 혀를 내둘렀다. 그 비법은 무엇일까? 끝내 말해주지 않았다. 다만, 암시는 있었다. “봄부터 초여름까지의 빛이 가장 예뻐요.” 그랬다. 그가 영상을 그렇게 잘 이해할 수 있는 것은 대상에 대한 애정에 기초한 관찰이었다. 내성천을 깊이 사랑했기에 사랑하는 대상이 언제 가장 예쁜지 알아본 것이다.

모래가 흐르는 강, 스님이 담은 내성천

그렇지 않은가? 연인들은 서로 자신의 짝을 멋지고 예쁘게 만들고 싶어 안달한다. 그만큼 상대방이 눈에 쏙 들어오는 것이다. 지율 스님은 자연과 사랑에 빠지는 존재였다. 아이 같은 마음이 거기에 있었다. 그래서 <모래가 흐르는 강> 마지막 장면은 뛰노는 아이들의 모습으로 꾸몄던 것일까? “아이들이 꽃무늬 치마를 입고 물속에 거침없이 들어가서 노는 모습이 예뻤어요.” 어른들은 물에 들어가려면 옷을 벗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아이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아이들은 거침없다. 부처의 마음인 셈이다.

앞으로 계획은 뭘까? 대뜸 영국에 가볼 생각이란다. 인공습지를 만들어서 성공시킨 한 마을을 탐방해 영상에 담고 싶다고 했다. 그곳에 가면 ‘자연의 친구들’이라는 단체가 있는데 아마 지율 스님을 반갑게 맞이할 것이라 하니, 노트에 이름을 적는다. “모르는 것은 꼭 적어둬야 한다”고 순진하게 웃는 모습이 선선했다. 안티고네 이야기를 했더니, 그것도 노트에 적었다. 나중에 찾아보고 공부할 것이라 한다. 이러니 전혀 모르던 영상 촬영기술도 금방 터득했을 것이다. 그는 언제나 배우려는 자세가 있었다.

소크라테스는 메논에게 생각하는 것은 가르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이미 배움의 능력은 타고난 것이다. 그 배움이 곧 우리에게 다른 세상을 열어주지 않을까 싶다. 지율 스님은 그 누구이기 이전에 배우는 이였다. 물론 그 배움은 세속에서 일컫는 ‘쓸모 있음’을 위한 것은 아니다. 지율 스님은 이 원칙을 그대로 살아내고 있다. 그의 처지에서 이 모든 행동이 곧 수행일 수밖에 없다.

배움의 능력은 대상에 대한 사랑에서 나온다는 진리를 지율 스님은 다시 보여줬다. 철학이 달리 ‘앎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다. 앎을 사랑하는 것은 다른 세계관을 갖게 만든다. 왜냐하면 모든 사랑은 대상에 대한 지극한 ‘굄’이기 때문이다. 뚫어지게 대상을 바라보는 것이야말로 사랑이다. 그 사랑을 통해 지율 스님은 다른 이들이 사소하게 보는 것에서 아름다움을 찾아내고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그와 영화는 가장 적절한 조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본다’는 행위에서 지율 스님은 영화와 높은 친화성을 가질 수밖에 없지 않을까. 깨달음이 보는 것이기도 하다면, 영화는 그에게 가장 훌륭한 수행 도구인 셈이다. <모래가 흐르는 강>은 이런 문제의식을 선명하게 드러내는 증거물이다.

천성산 도롱뇽 소송 때부터 지금 내성천에 이르기까지, 그의 행동은 기존 운동권 상식에 반하는 것이었다. 그는 누구의 말도 듣지 않고, 자신의 뜻에 따라 움직였다. 이것이 어떤 이들을 불편하게도 만들었다. 그러나 그 불편함이 지율 스님의 존재 이유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그가 제공하는 불편함은 다른 세상을 꿈꾸지 않으려는 완강한 저항에 대한 죽비이기 때문이다. 다시 안티고네로 돌아가서 생각해보면, 그는 자신만의 만행을 여전히 계속하고 있었다.

세속의 법을 어기는 것은 그의 운명에서 필연적인 것처럼 보인다. 그를 통해 그는 진리를 드러내고 있다. 그 모양새가 아름다워서 보기 좋다는 생각이었다. 자기가 사랑한 것을 남에게 보여줘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것보다 더 강력한 전략은 없다. 그것은 순수한 마음이 없다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인터뷰 내내 지율 스님이 보여준 태도도 그것이었다. 순수한 척 가장한 것이 아니라, 세속이 돌아가는 원리를 잘 알기에 터득할 수 있는 깨끗한 마음이 거기에 있었다. 그는 본질적으로 ‘선승’이다. 선방은 세속에 내려와 있었다. “옥이 묻힌 산은 산빛이 달라요”라는 그의 말은 그래서 허투루 들리지 않았다. 그야말로 옥이 묻힌 산이 아닌가. 인터뷰를 마치고 바삐 어딘가로 떠나는 그의 뒷모습이 내성천처럼 맑게 빛났다.

이택광
글 이택광 영국 셰필드대학 문화학 박사. 경희대 영미문화전공 교수. 다양한 문화 분석을 통해 한국 사회를 이해하는 코드를 찾아내는 작업을 한다. 지은 책으로 <인문좌파를 위한 이론가이드> <이것이 문화비평이다> <한국문화의 음란한 판타지> <인상파, 파리를 그리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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