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3.04.03 17:32 수정 : 2013.04.03 17:32

지율 스님은 “우리는 강을 흐르는 건 물이라고만 생각하지만 모래도 같이 흐른다. 모래는 ‘강에 실려 흐르는 땅’인 셈이다”라고 말한다. 한겨레 박승화 기자
“그의 아버지가 처음 모래를 채취하던 때나 그때나 강은 별다르지 않았다. 강은 물로만 이루어지지 않았다. 제 안에 언제든 하류로 싣고 갈 수 있는 유동적인 바닥을 품었으며 그 바닥이야말로 그의 아버지가 닿고자 하는 목표였다. 바닥을 드러낸 강. 한 톨의 모래도 없는 매끈하고 순종적인 강이 그의 아버지가 정복하려는 곳이었다. 강과 조화롭게 살기로 마음먹은 누군가에게는 파내고 파내어도 끝없이 샘솟는 모래가 든든한 미래처럼 여겨질 것이다. 그러나 강바닥을 송두리째 들어내 다시는 둑을 넘을 수 없을 만큼- 강은 강이로되 얌전하게 지하로 흐르는 강이나 마찬가지가 되기를 바라는 누군가에게 저 모래는 강의 교활하고도 음험한 방어막일 뿐이었다. 강의 진짜 제방은 바닥에 있었다. 언제라도 범람할 준비가 된 강이야말로 그의 아버지에게는 정복할 가치가 있는 강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강과의 지루한 싸움을 포기하지 않았다. 채취권을 따내듯 결혼을 했고 강바닥에서 모래를 끌어올리듯 아이들을 낳았다. (중략)

그 무렵 그의 아버지는 최초로 강의 근원이 무엇인지 알고 싶어졌다. 강을 거슬러 올라가보았다. 며칠이 걸리는 여행이었다. 발원지에 이른 그의 아버지는 그 작은 못에서 강이 시작된다는 말을 믿을 수가 없었다. 이 물은 대체 어디서 왔을까.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았다. 강은 지상에서 시작되지 않고 하늘에서 시작된다는 걸 깨달았다. 강의 공모자는 하늘이었다.”(<화요일의 강>·손홍규)

‘강에 실려 흐르는 땅’, 지율 스님은 모래를 그렇게 불렀다. 강이 시작되는 곳에서는 강에 침식된 땅이며, 강이 끝나는 곳에서는 강에 퇴적된 땅이기에. 손에 들린 카메라에 몇 년간 빼곡이 담은 내성천의 구석구석이 다큐멘터리 영상으로 만들어졌을 때, 망설임 없이 <모래가 흐르는 강>으로 제목을 결정했다.

내성천에는 어떻게 관심을 갖게 되었는가.

지율 2008년 말 우연히 경북 안동에서 4대강 사업 착공식을 한다는 뉴스를 보게 됐어요. 운하선이나 강 본류에서 벗어난 지천에서 착공식을 한다는 게 이상해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가봐야겠다고 결심했지요. 2009년 1월에 자전거를 타고 낙동강 유역을 돌아봤어요. ‘강을 바꾸려는 이들이 강에서 본 것은 대체 무엇일까.’ 걱정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어요. 어려서 한강변에 살았던 저는 개발사업이 강을 어떻게 바꾸는지 이미 몸으로 겪은 터였거든요. 강은 사람들의 시야에 놓여 있고, 사람들의 발밑을 흐르는 곳이에요. 변화를 숨길 수 없어요. 처음에는 강의 변화를 기록으로 남겨야겠다는 생각에 100m마다 한 장씩 사진을 찍기 시작했죠. 그렇게 낙동강을 돌아다니며 2년을 지냈어요. 2010년경 지천 공사가 시작되더라고요. 낙동강은 내성천 같은 지천을 따라 내려온 모래가 매해 1m씩 쌓이기에 자연적인 복원력이 있어요. 그런데 모래가 못 떠내려오게 보 쌓는 공사를 한다는 겁니다. 그건 강의 ‘뇌’를 건드리는 공사인 셈이지요. 그래서 서둘러 강을 거슬러 내성천으로 올라가게 되었어요.

<기사 전문은 <나·들> 인쇄판에서 볼 수 있습니다.>

글 손아람 힙합 그룹 ‘진실이 말소된 페이지’의 멤버로 활동했다. 그룹 이름과 같은 제목의 소설을 써서 작가의 길로 들어섰다. 용산참사를 소재로, 정통 법정소설인 <소수의견>을 썼으며, ‘전태일’이라는 이름을 가진 인물을 찾아다니며 인터뷰해 <너는 나다-우리 시대 전태일을 응원하다>에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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