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3.04.03 16:38 수정 : 2013.04.03 16:50

젊은 날 혁명을 꿈꿨던 오수진씨는 “인간 내면까지 들어가서 세상을 바꾸려는 지금의 꿈이 진짜 혁명의 꿈”이라고 말한다. 한겨레 박승화 기자
대전 지하철 시청역사를 빠져나오자 다시 콧속이 탑탑해온다. 지상에는 옅은 황사 기운이 여전하다.

“실명을 쓰겠다고 하면 오케이할까?”

“비싼 KTX 타고 와서 사진도 못 찍고 가면 낭패인데.”

두 남자의 대화가 초봄 뜨물 같은 공기 속에 아직 잔파동으로 남아 있을 때였다. 중년의 남자가 겅중겅중 다가와 손을 쓱 내민다. 선선한 표정이다. 일행은 그의 뒤를 바쁘게 쫓아 사무실 탁자를 사이에 두고 마주 앉는다. 분주한 몸들이 가르고 온 실내 공기에는 화들짝 놀란 기세가 역력한데, 역광의 햇살에도 떠다니는 먼지 한 점 보이지 않는다.

“격식 갖추지 말고 묻고 싶은 건 뭐든 직설적으로 쭉쭉 물으시죠. 다른 사람들 삶에 보탬이 된다면야 뭔 말씀인들 못해드리겠습니까.”

나름 불편한 질문을 벼르고 있던 일행은 무안했다. 박승화 기자가 삼가 읍하듯 “말씀 도중에 사진을 찍어도 되겠습니까”라고 물었다. 순간 웃음이 쿡 새어나올 뻔했다. 앞에서 놓친 대사를 엉뚱한 장면에서 연기하는 배우처럼 보였다. 사실 나도 연차답지 않게 질문을 더듬거렸다.

*

오십줄에 접어든 남자의 몸피가 날렵해 보인다. 20대 시절의 이력에서 오는 무게감과는 거리가 확연하다. 기억은 더욱 멀다. ‘전학련’을 기억하는 이가 지금 우리 사회에 몇이나 될까. 전대협과 한총련조차 이미 ‘불가촉 ’의 전설이 되어버린 시대 아닌가.1 전학련은 1985년 4월 출범한 전국학생총연합의 줄임말이다. 오수진은 2대 의장을 지냈다.

그해 전두환 정권은 집권 뒤 처음으로 대학 총학생회를 허용했다. 성균관대 행정학과 4학년의 오수진은 이 대학 초대 총학생회장에 당선됐다. 이어 전학련 부의장이 되고, 다시 얼마 지나지 않아 의장직을 넘겨받았다.

“초대 의장이던 민석이가 구속되면서 승계한 겁니다.”

민석이라면 당시 서울대 총학생회장으로, 훗날 여러 차례 소속 정당을 바꿔가며 두 차례 국회의원을 지낸 김민석을 이르는 것이리라. 허인회(고려대 총학생회장), 정태근(연세대 총학생회장)…. 당시 함께 활동했고, 앞서거니 뒤서거니 정치권에 얼굴을 내밀었던 따르르한 이름들이 그의 입에서 비엔나 소시지처럼 주렁주렁 달려 나온다.

<기사 전문은 <나·들> 인쇄판에서 볼 수 있습니다.>

안영춘 편집장 jo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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