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3.03.05 22:12 수정 : 2013.03.05 22:12

지난해 6월 영업시간 제한과 정기휴점제 도입을 촉구하는 ‘플래시몹’을 벌이고 있는 유통업체 노동자들 한겨레 신소영
‘상진이 엄마’, ‘상진이 아빠’.

상진이라는 아이의 엄마·아빠를 뜻하는 게 아니다. 유통업계에서 쓰는 은어다. 제품 교환이나 환불을 해달라는 과정에서 터무니없는 요구를 하며 매장 직원을 괴롭히는 ‘진상’ 고객을 가리키는 말이다. 여자 진상 고객은 ‘상진이 엄마’, 남자 진상 고객은 ‘상진이 아빠’로 통한다. 더 나아가 최고 진상 고객에겐 ‘개상진’이란 극단적 표현도 따라붙는다. 이런 은어가 생겨난 건 억울한 일을 당해도 함부로 고객에게 항의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고객은 왕’이라는 회사 방침에 어긋나는 탓이다.

콜센터 텔레마케터들의 컴퓨터 모니터 옆에는 이런 문구가 붙어 있는 경우가 많다. ‘참을 인(忍)자 세 번이면 도를 통한다’거나 ‘사랑하는 아들을 생각하며 욱하지 말자’ 따위다. 하루 종일 고객의 전화를 받다 보면 분노가 치밀 때가 많다. 가장 쉽게 당하는 게 욕설이다. ‘입을 찢어버리겠다’ 는 협박을 받는 일도 부지기수다.

1천만 명에 육박하는 서비스업 종사자 가운데 상당수가 ‘감정노동’(Emotion Labor)에 매달린다. 업종마다 강도의 차이가 있지만 일부 업종에선 우울증 등의 후유증에 시달리는 노동자가 많다. 2011년 민간서비스산업노조연맹이 노동환경건강연구소와 함께 서비스 노동자 3096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를 보면, 정신과 치료를 요하는 중증 이상 우울증이 있는 사람들이 26.6%나 됐다. 이 때문에 한쪽에서는 ‘웃다가 병든 사람들’이란 표현을 쓴다. 고객을 상대하는 업무 과정에서 화나는 일이 있어도 드러내지 않고 ‘친절’과 ‘미소’로 일관해야 하는 서비스업 노동자의 속사정이 그대로 묻어나 있다.

<기사 전문은 <나·들> 인쇄판에서 볼 수 있습니다.>

황보연 기자 whyn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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