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3.03.05 22:03 수정 : 2013.03.05 22:04

자립음악생산조합.단편선 한겨레박승화
2008년

나는 데모를 하고 싶었다. 거리에선 사람들이 매일 모여 시위를 했다. 발단은 ‘여고생’이라고 했다. 도심은 늘 마비상태였다. 음악가들은 자신의 악기를 들고 시위대의 흥을 돋웠다. 평화롭게 행진하는 시위대를 향해 경찰은 살수차를 동원했다. 컨테이너 박스를 이용해 길을 막기도 했다. ‘집단지성’이니 ‘다중’이니 ‘중간계급’이니 하는 단어도 심심찮게 들려왔다. 5년 전 서울. 그때 나는 23살이고, 군인이었다.

바깥소식은 신문을 통해서만 들을 수 있었다. 신분상 제약으로 인해 나는 한 번도 데모에 참여할 수 없었다. 대신 나는 공부를 했다. 관물대 뒤 쪽엔 슬라보이 지제크니, 자크 라캉이니, 질 들뢰즈니 하는 이들의 책이 늘 숨겨져 있었다. 한편으론 어렵사리 구한 음반들도 그곳에 있었다. 불침번을 서지 않아도 되는 날엔 새벽까지 책을 읽고 음악을 듣고 생각을 정리했다. 아무도 무엇이 맞는 해석인지 가르쳐주지 않았기에 나는 늘 내 뜻대로 짐작하고 해석할 수밖에 없었다. 몇 시간째 책을 읽고 있으면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고양감이나 해방감 같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책에 쓰인 어려운 문장들을 이해했는지 그렇지 않은지는 사실 중요치 않았다. 내게 필요한 것은 어쨌건 나란 인간이 어딘가에서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신분과 상관없는 개인으로서 생각하고 말할 수 있는 자유였다. 책은 그런 나의 니즈를 채워주기에 부족함이 없는 것이었다.

일단은 내 마음대로 무언가를 합리화할 수 있게 도와준다는 면에서 그러했다. 시위 한번 나가지 않아도 나는 이미 훌륭한 혁명가가 되어가고 있었다. 나 자신을 지키는 수단으로서, 나는 주저없이 독서를 이용했다. 나는 속물이었다. 속물인 나를 부끄러워하진 않는다. 다만 불행해서 불쌍하다

<기사 전문은 <나·들> 인쇄판에서 볼 수 있습니다.>

단편선 자립음악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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