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3.03.05 20:35 수정 : 2013.03.05 22:05

자립음악생산자조합 한겨레 박승화
빈센트 반 고흐를 세상에 너무 일찍 온, 그래서 조용필보다 훨씬 외롭게 살다 간 천재 화가로 보는 것은 그의 일면만 보는 것이다. 그의 배고픔은 ‘킬리만자로의 표범’ 같은 고독자의 미장센과 아무 관련이 없었고, 다만 화상(畵商)들의 요구를 좇는 대신 자신의 예술을 추구했기에 배고픔을 면치 못했을 따름이다. 19세기 고흐는 화가들의 생산조합을 만들려고 노력했으나 끝내 성공하지 못했다.

K팝 군락이 대중음악의 숲을 뒤덮고 있는 21세기 한국. 그 숲의 한 귀퉁이에 ‘홍대 앞 인디신’이라는 작은 군락이 있다. 이곳의 인디밴드들은 한국 대중음악계에 작은 축복으로 여겨졌으나, 홍대 앞이 상업주의 공간으로 재편되면서 그들의 음악 또한 관성화된다. 시장의 요구에 어쩔 수 없이 순응해온 결과다.

‘홍대신’에 상업화의 그림자가 짙어갈 무렵, 새로운 징후적 움직임이 시작된다. 홍대 앞 칼국수집 철거 반대투쟁에 인디밴드들이 대거 결합한다. 이들은 철거 반대투쟁을 거치면서 홍대 앞 상업화가 자신의 노래에 미치는 영향을 구체적으로 간파해간다. 그리고 이들은 오래전 고흐가 꿈꾸던 생산조합을 현실로 만들어가고 있다. 그것은 곧 자신의 음악을 지키고 완성해가는 일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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