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2.12.27 23:26 수정 : 2012.12.27 23:28

시인 김지하는 “밥이 똥이고 똥이 밥이다”라고 했다(<밥>·1995). 먹고 싸는 사태가 생태 순환의 일부임을 통찰한 긴장감 넘치는 경구이지만, 똥이 수세식 변기를 거쳐 정화조에 고였다가 물과 침전물로 분리되는 이 시대에, 그 말은 단층대에서 발견된 선사시대 화석처럼 멀게만 느껴진다. 지금은 밥은 밥이고 똥은 똥인 시대다. 밥과 똥의 순환고리가 끊긴 것은 ‘밥벌이’라는 말보다 ‘노동’이라는 말이 훨씬 널리 쓰이게 된 현실의 은유 같다. 일과 삶이 단절되고 그 사이를 임금이 매개하게 된 현실에서, ‘밥’은 심지어 일본말 비속어 ‘시다바리’와 비슷한 쓰임새로 ‘전락’했다. 하지만 여전히 사람이 사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세 가지(의·식·주)의 행사로 교과서에 실려 있고, 실제로도 그렇다. 오늘, 이처럼 복잡다단한 밥의 모습을 한 줄로 꿰면 바로 ‘희망식당 하루’의 구호가 된다.

 ‘밥을 구하다 밥이 되어버린 노동자들에게 따뜻한 밥 한 끼의 연대!’

3인조 펑크 록밴드 옐로우 몬스터즈
 희망식당이 장벽 너머로 들어가는 작은 문이었다면, 이제 그 벽 너머에서 ‘밥’을 주제로 한바탕 축제가 벌어진다. 10월 26일 저녁 7시(이 글은 이 행사가 열리기 전 원고 마감일에 맞춰 쓴 것이다), 서울 대한문 앞에서 열리는 ‘희망 밥 콘서트’. 밥 콘서트 아이디어 역시 희망식당을 처음 기획하고 운영해온 이들에게서 나왔다. 그러나 희망식당처럼 밥과의 연계를 노동자로만 한정하지 않는다. 작은 차이처럼 보이지만, 밥 콘서트의 구호는 ‘밥을 구하다 밥이 되어버린 우리 삶에 희망을!’이다. 여기서 ‘우리’는 누구일까? 희망식당과 밥 콘서트를 기획한 ‘오후에’(닉네임)는 “희망식당에 찾아오는 다양한 손님들을 보면서 밥이야말로 오늘날 모든 사람에게 피부로 와닿는 생존권과 존엄성의 상징이라고 생각했다”며 “밥을 중심에 놓고 유쾌한 난장을 열어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우리 모두를 위한 콘서트

 애초 밥 콘서트 장소로 물색한 곳은 대한문 길 건너의 훨씬 너른 서울광장이었다. 하지만 일찌감치 잡혀 있던 다른 공연들을 미루게 하고 이틀 만에 가수 싸이가 공연한 그곳을, 이들은 지난여름부터 서둘렀으나 끝내 잡지 못했다. 지난 이른 봄부터 쌍용차 해고 노동자들이 천막 농성을 벌이고 있는 대한문 앞은 서울광장에 견주면 턱없이 비좁다. 축제 참가자가 아닌 그 앞을 오가는 이들에게도 길을 내주어야 한다. 너무 남루하지 않을까? 행사 기획자 가운데 한 명인 박래군 ‘인권재단 사람’ 상임이사는 “그래도 뜻만 있으면 원하는 건 뭐든 할 수 있다”며 너털웃음을 짓는다.

한국방송 밴드 오디션 프로그램 에 출연해 화제를 낳았던 록밴드 게이트 플라워즈
 콘서트 출연진만 봐도 축제 열기는 대한문 앞을 넘어 서울광장까지 차고 넘칠 태세다. 싱어송라이터 한동준이 대중에 널리 알려진 ‘너를 사랑해’, ‘사랑의 서약’과 같은 감미로운 노래로 가을 밤의 낭만적 분위기를 한껏 고양시킬 가수라면, 나머지 세 팀은 태평로 보도블록을 들썩이게 할 록밴드이다. 국악과 록을 접목시켜 만든 곡 ‘아리랑’으로 2001년 강변가요제 대상을 거머쥔 뒤 최근 일본과 대만으로 활동 영역을 넓히며 왕성한 활동을 하는 4인조 록밴드 ‘네바다51’은 친숙한 음악으로 콘서트 시작을 알릴 것이다.

 2011년 한국방송 밴드 오디션 프로그램 <탑밴드>에 출연해 숱한 화제를 낳으면서 4강까지 올라 이름을 알린 록밴드 게이트 플라워즈가 예열된 무대를 용광로처럼 달군다. 게이트 플라워즈는 시나위 신대철의 지휘 아래 지난 5월 발표한 정규 1집 앨범 에 실린 노래를 부른다. 마지막 무대는 최근 ‘가장 핫한 밴드!’로 꼽히는 옐로우 몬스터즈가 장식한다. 델리스파이스의 최재혁, 마이앤트메리의 한진영, 검엑스의 이용원이 결성한 3인조 펑크 록밴드로, 한국 뮤지션 가운데 최초로 일본 후지 록 페스티벌에 출연한 독보적인 이력의 뮤지션이다.

 

시민에 의한, 시민을 위한 주먹밥 

4인조 록밴드 네바다51
 그러나 ‘노래만 들어도 배가 부르다’는 말은 <응답하라 1997> 세대에나 통하는 얘기다. 배가 불러야 노래도 들을 수 있는 게 만고불변의 법칙. 밥 콘서트라면서 밥은 도대체 어디 있는 걸까? 길바닥에서 먹는 한데밥이 진수성찬이면 먹고 치우는 것도 골치 아픈 일이다. 주최 쪽에서 주먹밥을 준비하기로 했다. 밥 콘서트 주먹밥은 맛보다는 누가 어떻게 만드느냐에 주목해야 한다. 당일 주먹밥 만들기에 참가할 자원자들을 트위터(@hopeharu)에서 모으고 있다. 엄청난 분량 때문에, 여러 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만들어서 가져오게 된다. 밥값은 후원 계좌(신한은행 110-373-065389)로 미리 받는다.

 한쪽에서는 바자회도 열린다. ‘정리해고·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향한 네트워크’에서 물품을 모으고 판매도 한다. 한겨레신문사는 이 행사를 후원하고, <나·들>은 현장에서 창간호 특별판을 무료로 배포할 예정이다. 독자 제위께서 궁금해할지는 모르겠으나, <나·들> 편집진이 그곳에 출몰할 것이 확실시된다.

안영춘편집장 jo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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