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3.02.05 02:02 수정 : 2013.02.05 02:04

나는 얼리어답터다. 어릴 때부터 그랬다. 호기심을 무한 자극하는 새로운 물건이 포착되면 그날부터 부모님 조르는 게 일상 다반사였다. 원하는 걸 ‘득템’하는 방법은 여느 아이들과 다르지 않았다. 꺼진 불 아래 글을 읊는 ‘한석봉’으로 빙의하든지, 집안일을 쓱싹쓱싹 해치우는 ‘콩쥐’ 모드를 시전하든지 해서 얼리어답터의 기초를 어릴 때부터 닦았다.

사실 학창 시절엔 형제들에 비해 공부를 못했다. 어머니 표현을 빌리면 엉뚱한 데 한눈파느라 책상머리에 붙어 있지 못했다. 모범생인 누나나 동생과 달리 재미없는 공부에 마음을 붙이지 못했다. 대신 운동을 좋아했고, 팝송과 무협지를 줄줄 꿰고 다녔다. 몇 갑자의 공력을 얻으려면 어떤 수련이 필요한지에 더 관심이 있었다. 한 뱃속에서 나왔지만 좀 다른 종족이었던 것 같다. 남들은 조금 언짢게 들리겠지만 결국 누나와 동생은 서울대 교수가 됐고, 난 고려대 교수가 됐다. 하지만 지금은 어머니도 내가 셋 중 제일 똑똑하다고 믿는다.

 

프로 선수와 붙어 30초 만에 KO패

성격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교수 시절에도 곽승준 하면 좀 엉뚱하고 튀는 선생으로 통했다. 2000년대 우리나라에 격투기 열풍이 불었을 때다. K1과 프라이드가 케이블 TV로 중계되면서 난 격투기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노트북 컴퓨터엔 격투기 기술이 실시간으로 업데이트됐다. 예밀리야넨코 표도르, 팀 실비아, 미르코 크로캅의 강약점이 무엇인지 분석했다.

문제는 이론에 그치지 않았다는 것. 영화 <올드보이>엔 감금된 주인공이 혼자 방송을 보고 격투기를 연습하는 장면이 나온다. 체계적인 훈련을 받지 않았지만 이미지 트레이닝으로 격투기 고수가 된다. 거기서 영감을 얻어 방학 때 몸으로 부딪혀보기로 했다. 아는 체육과 교수에게 부탁해 실제 격투기 시합을 벌인 것이다.

첫 상대는 프로선수였다. 결과는 1회전 KO패. 영화는 영화일 뿐 현실과 거리가 멀었다. 경기 시작 30초 만에 항복하고 말았다. 상대 선수의 다리를 잡고 넘어뜨려 마운틴 자세로 파운딩 기술(상대의 배 위에 올라타 타격하는 기술)을 쓰리라 작전을 세웠다. 실제로 넘어뜨리긴 했는데 바로 기요틴초크(‘단두대’라는 뜻의 목조르기 기술의 일종)에 걸려 정신이 혼미해졌다. 비공식 시합이었어도 주위 사람들에게 여간 민망한 게 아니었다. 그 길로 도장으로 달려가 개인교습을 받았다. 하지만 두 번째, 세 번째 시합도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하이킥에 나가떨어져 뇌진탕 진찰을 받는가 하면, 눈탱이가 밤탱이 되도록 두들겨 맞았다. 의사에겐 학생들과 농구 경기를 하다가 다쳤다고 둘러댔다. 결국 3전3패의 아픈 성적을 뒤로하고 격투기계를 떠났다.

<기사 전문은 <나·들> 인쇄판에서 볼 수 있습니다.>

곽승준 대통령직속 미래기획위원회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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