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2.12.27 22:11 수정 : 2012.12.27 22:25

이태원은 한국이 외국에 열어준 공간이었다. 임진왜란 이후 돌아가지 못한 일본인들이 모여 살았고, 인근 용산에 조선의 일본군 사령부와 미군기지가 차례로 들고 나면서 기지촌의 성격이 더해졌다. 이 때문에 한국 땅에 있으면서도 통제되지 않는 미지의 공간이 되었고, 역설적으로 해방의 공간이 되었으며, 서로 다른 문화가 충돌하고 섞이는 혼종의 토양을 생성시켰다. 이 해방과 혼종이야말로 예술이 똬리를 틀 토대다.

 그래서 이태원은 한국 대중음악 역사를 생성한 중요한 토대가 됐고, 주류에 편입되기를 거부하는 그림과 그래피티, 설치미술과 춤, 패션 아티스트들의 영감의 터로 기능했다. ‘이태원 연대기’는 그들의 삶을 통해 이태원이라는 공간과 사람과 역사와 문화을 들여다보는 이야기다. 음악평론가 나도원 작가가 본 이태원 토박이자 한국 그래피티 아트 1세대인 반달 작가의 생애로 문을 연다.

옥상에는 붉은 깃발이 나부꼈다. 앞 건물에도, 옆 건물에도, 재개발사업에 반대해 꽂아놓은 붉은 깃발들이 펄럭였다. 풍경은 어느 나라의 혁명시대를 연상시켰다. 영화 속 재래시장 추격전을 찍을 만한 곳이 사라져가는 이유가 그곳에서 벌어 먹고사는 사람들의 뜻과 아무 상관이 없다는 사실을 일러주기라도 할 것처럼, 저 멀리 용산의 고층빌딩들이 이쪽 이태원을 응시하고 있었다. 시선을 가까이로 거두자 건너편에서 하얀 이슬람사원이 기도하듯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사방이 모진 경계선으로 가득한 세상을 가뿐히 넘어서는 옥상에 올라서, 반달(Vandal)은 고급주택들이 자리한 언덕을 가리켰다. 부자들이 사는 동네라 하여 이태원 토박이들끼리 ‘도둑촌’이라 불렀다는 그 언덕 너머가 반달의 옛 동네다. 한국에서 그래피티 아트의 세계를 개척한 1세대 아티스트 반달은 이곳에서 나고 자란 이태원 스트리트 키드(Street Kid)다. 그는 이 나라를 고공에서 바라본다고 가정할 때, 다양한 인종과 문화가 섞여 역동하는 이태원이야말로 가장 컬러풀하게 움직이는 지역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마치 영역표시처럼 옥상 한편에 놓인 노란 물탱크에는 그의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기사 전문은 <나·들> 인쇄판에서 볼 수 있습니다.>

나도원 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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