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3.02.05 01:15 수정 : 2013.02.07 12:02

<오마이스타> 편집국장. 20년 넘게 연예기자 외길을 걸어옴. 한겨레 박승화
김미화 코미디언. 라디오 시사 프로그램 ‘김미화의 여러분’ 진행자이기도 함. 한겨레 박승화

김미화는, 아시다시피 코미디언이다. 그리고 라디오 시사 프로그램 진행자다. 언제부턴가 세상 사람들은 그를 ‘소셜테이너’라고 부른다. 그러나 그가 스스로 인식하는 자기 정체성은 여전히 ‘일자 눈썹 순악질 여사’로 웃음을 주던 그때 그 코미디언이다.

 김대오는, 아는 이들은 아는 연예기자다. 20년 넘게 외길을 걸어왔다. 한때 호사가들 사이에서 ‘배때(대)기’라고 불리던 연예기자 삼총사(배국남·김대오·서병기) 가운데 한 명이다. 언제부턴가 ‘연예 저널리즘’ 규범을 설파하는 전도사 노릇까지 하고 있다.

 일설에 따르면, 몇 해 전 KBS2 TV <개그콘서트>에서 크게 흥한 ‘분장실의 강 선생님’의 강 선생님 캐릭터는 김미화를 모델로 삼은 것이라고 한다. 그는 후배들에게 “니들이 고생이 많다”며 격려성 몽니를 부릴 수 있는 ‘선생님’ 반열에 오른 셈이다. 김대오는 여러 연예 매체를 거치며 연륜을 쌓아왔다. 지금은 <오마이스타>의 편집국장을 맡아서 후배 기자들을 성심껏 닦아세운다.

 두 사람 모두 ‘중견’이라고 하기엔 넘치고 ‘원로’라고 하기엔 모자라다. 하지만 그 정도 세월이면 연예인과 기자, 기자와 연예인이라는 둘의 역할 관계(혹은 역학 관계)는 이미 유전자(DNA)처럼 확고부동할 터이다. <나·들>은 궁금했다. 양쪽 배역이 뒤바뀌면 어떤 상황이 연출될까.

 <나·들>의 요청에 둘 다 흔쾌히 응해주었다. 김미화가 주로 묻고, 김대오가 주로 답하기로 했다 (물론 의지와 결과가 늘 일치하는 건 아니다). 20년 가까이 사회부와 그 언저리에서만 굴러온 <나·들>의 기자는 아는 게 없어서 끼어들지 못했다. 다만, 듣고 관찰하고 기록했다. 지난 1월 16일 오전, 김미화가 라디오 시사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사옥 내 어느 공간이었다.

 “그러니까 오늘 이 자리는 역지사지의 자리라고 할 수 있겠네요. (처지가 바뀌었으니) 연예인들이 취재당하는 게 어려웠겠다, 이런 생각이 들겠죠?”

 김미화가 특유의 비음으로 말문을 연다. 시사 프로그램 진행자로서 그의 주특기는 말솜씨가 아니다. 오히려 말을 더듬는 편이다. 그런데도 상대방은 더듬는 말 앞에서 하릴없이 무장 해제된다. 그가 ‘한국의 오프라 윈프리’라는 애칭(자칭 혐의도 있는 듯)을 얻은 데는 그의 더듬이 촉수도 한몫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재미있어요, 거기는?”

 밑도 끝도 없이 툭 던지는 말에 내공이 서려 있다. 그래서였을까. 김대오가 무릎을 붙이고 자세를 가다듬는다.

 “재미있죠…. 1보 전진, 2보 후퇴 하면서. 많이 힘들어요, 경쟁이. 하지만 원칙을 세우고 가기 때문에 흔들리지 않으려고 많이 노력합니다.”

 “원칙이라….”

 “저널리즘 원칙이죠. (원칙을 지키니까) 우리 기사가 차별화되기는 하죠. 그런데 시간이 오래 걸리고, 사람들에게 쉽게 다가서기 어려운 측면도 있어요. 원래 뉴스가 이래야 하는데 (연예 저널리즘) 상황이 이상하게 되어 있어서….”(1)

[나들 영상] 베테랑 연예기자-30년 연예인 ‘뒤바뀐 인터뷰’

 김미화가 이번에는 김대오를 풍선에 태운다.

 “2004년부터 그런 노력을 했으니 꽤 오래됐네요. 김 국장이 어려 보여서 어린 줄 알았는데… 어리면 좀 놀리려고 했는데….”

 ‘젊어 보인다’는 칭찬은 고래도, 아니 중년의 베테랑 연예기자도 춤추게 한다. 김대오, 금세 팬덤을 드러낸다.

 “1985년 여름이었어요. 김동건 아나운서가 진행하는 프로그램에 방청객으로 출연했는데, 거기서 김미화씨를 봤어요. 녹화를 마치고 그때 유행한 가방이 짜장면 철가방처럼 생긴… 요만한 화장품 가방 같은 거였는데, 그거 들고 나오더군요. 방송국에서 처음 본 연예인이었어요, 대학 1학년 때였죠.”

 이런! 얘기가 30년이 다 된 먼 과거로 뱃머리를 돌리고 있다. 나쁜 징후다. 나이 든 사람일수록 회고담을 좋아한다. 이제 곧 군대 이야기와 축구 이야기가 합쳐진 군대에서 축구한 이야기가 나올 차례인가.

 김미화: 예전엔 연예기자들이랑 아주 친했는데…. 일로만 만나는 그런 사이는 아니었던 것 같아요. 아날로그적인 사람 관계 같은 거….

 김대오: 너무 밀착된 면도 없지 않았지만, 그래도 그땐 대면 취재가 가능했죠. 쉽게 밝힐 수 없는 내밀한 얘기까지 당사자에게 직접 물어보기도 했고, 기사로 쓰더라도 연예인과 대중 사이에서 충격을 흡수해주는 스펀지 역할도 했고요. 지금은 다른 매체들이나 후배들을 보면 너무 각이 서 있는 것 같아요.

 김미화: 그땐 기자들이 어떻게 사는지, 사생활까지 다 알았어요. 사는 곳이 어딘지, 아내가 어떻고, 아이가 어떻고.

 김대오: 아이 돌잔치에도 오고.

 김미화: 맞아요, 돌잔치 때도 가고.

 전설적인 어느 사진기자 이야기까지 나온다.

 김미화: 내가 기분 나빴던 건 뭐냐면, 그 ‘오라버니’, 그땐 기자들에게도 그렇게 불렀습니다. 그 오라버니가 코미디언, 개그맨들도 죄다 수영복 촬영을 해줬는데, 나한테는 한 번도 그런 사진 찍자는 말을 안 했어요. 지금도 두고두고 말하는데, 하하.

 김대오: 그 선배는 거의 모든 여자 연예인들 사진…, 그걸 ‘핀업걸’이라고 하나요? 잡지에서 펼쳐보는 브로마이드 사진을 찍었습니다. 그걸 찍으려고 포니 자가용에 수영복을 싣고 다니기까지 했어요. 연예인들에게 빌려주려고. 사진기자인데도 대면 취재를 오래하다 보니 2000년대 초반 취재기자가 못하는 취재를 그 선배는 했어요. 데뷔 시절 맺은 인연이 있었기 때문에. 

 이쯤 되면 전설을 넘어 설화 수준이다. 이러다 배가 산으로 가지 않을까 싶은 찰나, 우리의 오프라 윈프리급 진행자가 베테랑 강태공처럼 순간 말을 낚아챈다.

 “그런데 지금은 그게 가당키나 합니까?”

 물론 가당치 않다. 그런데 듣고 있던 <나·들> 기자에게는 그 ‘가당찮음’이 중의적으로 들린다. 지금은 도저히 그런 관계를 기대할 수 없다는 현실 가능성에 대한 회의로도 들리고, 당대 연예 저널리즘은 건전하지 않았다는 언론 윤리에 관한 문제 제기로도 들린다. 글쎄, <나·들> 기자도 그 시절 연예 저널리즘이 훌륭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어느 쪽일까.

 김미화: 경쟁이 너무 심해서 그래.

 김대오: 매체가 너무 많다 보니 대면 취재도 불가능하고, 그러다 보니 파파라치 같은 조금은 부정적인 취재 방법으로 차별화하려고 해요. 뉴스 속도도 너무 빨라졌고. 연예 뉴스라는 게 예나 지금이나 엔터테인먼트적인 속성이 있지만, 요즘은 지나치게 상업적이면서도 기계적이고 도식적으로 작성돼요. 연예인에 대한 일종의 재단이죠, 비인간적인.

 하지만 듣고만 있는 <나·들> 기자에게는 다시 의문이 고개를 쳐든다. 육상 동물을 통한 연상 작용(<애마부인>)이나 조류를 통한 연상 작용(<앵무새 몸으로 울었다>)을 넘어서 식물(<뽕>)에까지 성적 욕망이 상징으로 투사되던 그 시절, <선데이 서울>로 대표되던 연예 저널리즘도 딱 그만한 수준의 당대 문화적 감수성으로서 충분히 선정적이지 않았는가? 그리고 기자와 취재원의 관계는 ‘불가근 불가원’이라 했거늘, 과거 연예인과 연예기자의 관계가 바람직했다고만 할 수 있을까? 이 궁금증을 오늘 이 자리에서 풀 수 있을까?

 “근데 김 국장은 어떡하다가 연예기자가 되었나? 원래 꿈이 연예기자였어요?”

 인터뷰어는 <나·들> 기자가 의문을 붙들고 늘어질 겨를을 조금도 주지 않는다.

 “대학 때 문예창작과를 다녔는데 (학생)운동하다가 군대에 전투경찰로 끌려갔어요. 복학해서 한 학년 정도 남겨뒀을 때, 취직하는 게 어떻겠느냐는 제안이 들어와서 시작했는데, 여태 하게 됐어요, 연예 쪽으로만.”

 그래서 하고 싶어서 했다는 거야, 어쩌다 보니 하게 됐다는 거야? 우리 인터뷰어는 이번에도 틈을 주지 않는다. 앵무새는 몸으로 울 수밖에 없다. 엉엉.

 “만족해요?”

 “살면서 한 가지만 했다는 것, 머잖아 쉰인데 그 점에서는 행복했던 것 같아요. 하지만 최근 들어 스트레스를…, 죽음에 대해 책임을 느끼게 되는 그런 부분에서….”

 이 대목에서 <나·들> 기자는 불가피하게 변칙을 쓸 수밖에 없다. 바로 이 다음에 배치하는 대화는 실제 인터뷰에서는 훨씬 뒷부분에서 나오는데, 맥락을 고려해 여기에 이어 붙인다. 영화 문법에 빗대면 일종의 몽타주 기법이라고 자위하면서. (이외에 여러 대목에 같은 기법이 숨어 있다.)

 김대오: 언젠가… 한번 퍽, 맞은 적이 있거든요.

 김미화: 나한테요?

 김대오: 아뇨, 인생에서요. 그러니까 최진실 죽고 나서. 그 전날 제가 최진실과 같이 있어서 충격이 컸는데….

 김미화: 아, 그랬구나.

 김대오: 최진실이 그날(죽기 전) 마지막으로 한 말이 (그때 그렇게 힘든 상황에서) “오빠, 나 이제 연예계 은퇴하고 아프리카 같은 데서 오드리 헵번처럼 봉사하면서 살까?”였어요. 그래서 내가 그랬죠. “야, 미쳤냐. 너 지금 <장밋빛 인생>으로 다시 뜨고 <내마스>(내 생애 마지막 스캔들)로 떴는데. 애들도 키워야 하는데….”

최진실은 생애 마지막 인터뷰를 김대오 기자와 했다. / 메이 킴
  

 원래 시퀀스로 다시 돌아가보자. 가까운 연예인들의 잇단 죽음 문제를 빼고 나면 요즘 그는 만족할까, 그럭저럭?

 “요즘 언론들이 너무 직설적이에요. 우리도 마찬가지로 타성에 젖은 부분이 있겠지만, 인간을 다뤄야 하는데 인간을 다루지 않고 사건만 다뤄야 하는 비애라고 할까요. 내 생각이 틀리는지 모르겠어요. 선배님이라고 부를게요. 선배님이 보기엔 어떨지 모르지만, 선배님을 ‘소셜테이너’라고 부르는 것도 조금은 낙인이지 않나 싶어요.”

 우리 인터뷰어는 갑자기 곰살맞게 엉기는 취재원에게 ‘선배님’이 되고 말았다. 내공의 일합을 계속 지켜보자.

 김대오: 좀더 폭넓게 접근할 수 있는데도 언론이나 정치적 진영에서 (너무 좁게) 규정을 내리는 게 아닌가 해서, 오히려 활동의 폭을 좁혀놓는 게 아닌가 해요. 제가 지금 진보 매체라고 할 수 있는 곳에 있지만, 소셜테이너라고 불리는 분들에겐 일부러 접근을 자제했어요. 다른 매체들이 이미 규정을 내린 상황에서 우리 매체에 어떤 발언을 하면 (그 매체들이) 더욱 재단해서 기사를 쓰거나 제목을 뽑지 않을까봐요. 소셜테이너뿐만이 아니에요. 봉사활동하는 분들이나 나눔을 실천하는 분들, 그냥 자기 영역에서 연기나 연예계 활동 하는 분들에게도 정치적 낙인까지는 아니지만 사전에 굉장히 편협한 시각으로 규정한 상태에서 취재하고 또 그걸 발췌하는 것에 대단히….”

 김미화: 소셜테이너가 뭐예요?

 처음엔 시사 프로그램을 진행할 때 그가 흔히 쓰는 “제가 잘 몰라서 그러는데, 그게 뭐예요?”와 같은 뜻이려니 했다. 그런데 듣고보니 이번에는 그런 뜻이 아니었다. 소셜테이너라는 규정이 굴레가 되어, 친정이나 다름없는 KBS의 블랙리스트에 올라 소송까지 가고, MBC 시사 프로그램에서 돌연 쫓겨나고, 사찰까지 당해야 했던 아픈 기억이 다시 격발된 것이다.(2)

 김미화: 어떨 때 보면 기자들이 소셜테이너라고 말하면서 ‘정치적인 연예인’과 헷갈리는 것 같아요. ‘정치적인 연예인=소셜테이너’, 이렇게 이야기한단 말이에요. 소셜테이너는 정치적인 연예인이 아니에요, 사회적인 연예인이지. ‘폴리테이너’가 정치적인 연예인인데, 기자들부터 용어의 혼돈이 있는 것 같아요. 소셜테이너는 김 국장이 말하는 것처럼 사회 참여를 하고, 어려운 사람들 옆에 같이 있는 사람들이죠. ‘이런 문화는 곧 바뀌겠지’ 하면서 살아온 게 30년이거든요. 안 바뀌더라고요. 모르겠어요, 이젠.

 김대오: 소셜테이너와 폴리테이너를 나누는 기준점을 난 이렇게 봐요. 그러니까 나눔을 바탕으로 어떤 정치적 활동이 있는 분은, 거기까지는 소셜테이너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나눔에 대한 생각이나 어떤 실천도 없이 정치적 지향점만 가지는 분들, 이런 분들은 폴리테이너죠.

 김미화: 정치인들이 나처럼 30년 동안 이런 인지도를 가지려면 얼마나 애를 써야 하겠어요. 김미화 하면 대한민국에 모르는 사람이 없어요, 남녀노소. 정치권에서 나한테 손을 안 뻗었겠습니까.

 김대오: 발도 뻗고….

 김미화: 발도 뻗지. 그러면 여당은 안 그렇겠습니까? 야당만 그런 줄 아는데, 여·야 상관없이 자기들에게 도움이 될 거라고 손을 뻗는다 말이야. 그런 걸 다 뿌리치고 이 자리에 코미디언으로서 앉아 있는 나 자신이 자랑스럽거든요. 기자들도 나를 평가해줘야 돼요, 어떤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았다고.

 김대오: 순악질 여사가 아니라 이웃의 착한 여사, 지나가면서 손도 잡을 수 있고 도와주는….  김미화: 그게 칭찬이 없으면 상당히 어려워요. 요즘은 내가 잘못 살아온 건가,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 내가 소신을 가지고 오랫동안 그런 일을 해온 건 다 알잖아요. 근데 이런 것들을 한꺼번에 싸잡아서 정치적인 걸로 재단하니까, 내 인생이 다 허물어지고 없어지는 것 같아요. 내가 좋아하는 코미디도 못하고. 그렇다고 내가 소신을 갖고 남을 도우면서 살겠다는 것도 다 폄하돼버리고. 야, 이거 웃긴다.

 거기서도 웃음을 찾아내다니, 천상 코미디언인가. 한동안 부창부수같이 이어지던 대화는, 그러나 갑자기 ‘민원성’으로 빠진다. 인터뷰어가 이러면 안 되는데, 역시 의지와 결과가 일치하기는 어려운 건가.

 김미화: 난 그런 사람으로 남길 원해요. 그러니까 기자들이 그렇게 평가할 수 있도록 유도를 좀 해주세요.

 김대오: 만약 <오마이스타>가 선배님에 관해 기사를 쓴다면, 진행자 김미화씨나 희극인 김미화씨를 쓰고나서 사회적 활동을 하는 것에 대해 쓸 겁니다. 그래야 그 활동에 대한 사회적 여파도 더 커지기 때문에…. 우리는 새로운 용어도 만들었습니다. ‘볼런테이너’(자원봉사자라는 뜻의 ‘볼런티어’와 연예인이라는 뜻의 ‘엔터테이너’를 합친 말)라고.

 김미화: 기자도 그런 생각을 하는구나. 나는 인터뷰를 당하면서 이런 생각을 할 때도 있었거든요. 저분이 잘 써야 하는데, 한쪽으로 막 몰아가지 않을까 하고. 어떨 땐 굉장히 과격하게 나오는 기사들이 있어요. ‘허걱’ 할 때가 있지. 그리고 연예면보다는 사회면 같은 데 자꾸 나오니까 부담이 돼요. 나는 코미디언으로 평가받고 싶은데….

 김대오: 좀 병행을 하는 건 어떨지.

 김미화: 그렇게 좀 써줘요. 김미화가 코미디 하고 싶어 한다고.

 <나·들> 기자는 속이 타들어간다. ‘인터뷰어님! 제발 질문을 하세요, 질문을.’

 “근데, 국장님은 어떻게 하다가 연예 기사에 저널리즘 원칙을 담으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어떤 계기가 있었는가요?”

 <나·들> 기자는 염력이 통했다고 짐짓 믿어버린다.

 김대오: 나쁜 짓을 하도 많이 해서요. 예전엔 열애, 이혼… 이런 기사를 주로 썼죠. 좋은 기사는 정신 차리고 나서 쓰기 시작했고요.

 김미화: 좋은 기사, 어떤 좋은 기사를 쓰셨죠.

 김대오: 연예 쪽 기사가 개인적인 삶도 다루기 때문에 다른 사회적 기사와 달리 (감성적) AS가 필요하다는 걸 깨달았어요. 어떤 연예인 친구는 나를 신뢰해선지 몰라도, 군대 가서 내게 전화했어요, 새벽 2시에. 여자 친구와 헤어진 모양이에요. 어차피 기사는 나가게 될 텐데, 자기가 나쁜 놈인 것처럼 써달라는 거예요. 절대 그녀가 고무신 거꾸로 신은 것처럼 표현하지 말아달라고 해요.

 김미화: 야, 어떻게 연예기자에게 그런 전화를 하지. 그래서 써줬어요, 그렇게?

 김대오: 그렇게 써줬죠.

 김미화: 우와, 좋은 형이다. 우리 대오가 철들었네.

 그러나 <나·들> 기자는 다시 의문을 품을 수밖에 없다. 사실을 있는 그대로 써야지, 어떻게 사실을 왜곡한다 말인가. 그런데 우리 인터뷰어는 칭찬 일색이다.

 김미화: 기자들 나이가 점점 어려지고 연예인들도 어려지잖아요. 어린 사람들끼리는 그런 배려를 하기가 쉽지 않을지도 모르죠. 세상 돌아가는 속도도 점점 빨라지고. 연예인들의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독자들이나 시청자들에게 어느 선까지 알려줘야 하는지 고민할 겨를도 없죠. 김 국장은 연예기자 생활 오래하면서 연예인이 어떤 존재인지 이해하게 됐을 것 같아요.

 김대오: 그들의 삶이 있더라고요, 그걸 존중하지 않으면 끝내 이해할 수 없는. 일반적인 가치 기준을 똑같이 들이대면 굉장히 위험한 결과가 나와요.

 김미화: 풀어서 얘기해봐요. 일반 독자들이 이해하기 쉽게. 예를 들면….

 김대오: 예를 들면 연예인의 삶이라는 게 꿀렁꿀렁하잖아요.

 꿀렁꿀렁? <나·들> 기자는 감조차 잡지 못하는데, 인터뷰어는 금세 알아채는 눈치다. 연예인이어서인가. 동병상련 같은 것?

 김미화: 팔자가 세다? 기가 세다?

 김대오: 기 같은 게 없으면 연기나 웃음이나 좋은 노래를 사람들에게 줄 수 없다고 생각해요. 제가 볼 때 감정의 진폭이 보통 사람들보다 훨씬 커요. 제가 1990년대 말 조사한 바로는 가장 행복해할 것 같은 희극인들이 우울증을 가장 많이 앓는다고 해요.

 김미화: 족집게시네.

 김대오: 그래서 그때 지난 10년간 결혼한 연예인 자료를 다 확보해서 이혼율을 조사해봤는데, 일반인에 비해 오히려 낮아요. 지금 조사하면 좀 다른 결과가 나올지 모르겠지만. 희한한 건 특정 계층과 결혼한 연예인들은 이혼율이 상당히 높았어요.

 김미화: 높은 계층, 높은 분들과 결혼한 경우겠지. ‘사’자 붙은 사람들 아니에요?

 김대오: 아니에요.

 김미화: 아우, 내가 또 이런 편견을 가지고 있네.

 김대오: 그걸 구체적으로 말하기는 좀 그렇고. 왜 그런 결과가 나왔는지 우리끼리 회의도 해봤는데, 아무튼 데이터는 맞거든요. 세 번 이혼한 사람도 있고.

 김미화: 거기 나도 끼어 있었나?

 김대오: 선배님은 그때 아직….

 여기서 잠깐! <나·들> 기자는 김미화가 자신의 이혼 경력을 스스럼없이 대화에 끼워넣는 걸 보며, 뜬금없이 앙리 베르그송의 말이 떠오른다. “희극배우는 자신을 징벌의 대상으로 변형시켜야 하는 ‘자살특공대’적 운명을 갖고 있다.’(<웃음>)

 김대오: 음주운전하는 경우도 마찬가지 같아요. 사실, 연예인의 음주운전 비율이 훨씬 낮거든요. 물론 음주운전을 하면 따끔하게 비판받아야죠.

 김미화: 당연하죠.

 김대오: 그런데 사적인 영역까지 사회적으로 손가락질하고 있잖아요. 팩트를 쓰더라도 갈등을 유발시키기보다는 적절히 게이트키핑을 해야 당사자들의 복귀도 빨라질 수 있는데….

 김미화: 왜 배려하지 못하나 몰라, 지켜야 할 선이 있는 건데. 선을 긋는 게 어럽겠지만 말이에요. 특종이라는 게 있으니까.

 김대오: 저는 기자들이 특종 보고를 해도 더 이상 질문을 안 하고 취재도 못 하게 하는 아이템이 하나 있어요. 바로 가족의 내밀함에 관한 것이에요.

 인터뷰어의 맞장구와 칭찬이 이어진다.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김 국장의 연예 저널리즘에 관한 철학으로 넘어간다.

 “연예 언론은 조선시대에도 있었고, 고려시대와 통일신라시대에도 있었어요. 뭔가 하면 여인들이 아침에 가족들 밥 해주고 나서 빨래터에 나와 방망이 두드리면서 얘기를 하잖아요. 어젯밤 남편이랑 회포 푼 이도 있고, 회포를 못 풀어서 짜증 난 이도 있고. 그런 얘기 하다가 “옆집 김 진사댁 며느리가 어젯밤에 물레방앗간에서 나왔대” 하면서 깔깔대는 거. 저는 거기에 분명히 순기능이 있다고 봐요. 사람들의 스트레스를 풀어주는 것이죠.”

김대오 편집국장과 개그우먼 김미화./한겨레 박승화
 <나·들> 기자, 별안간 묵은 체증이 내려가는 기분이다. 앞서 두 사람이 좋았던 시절의 회고담을 나눌 때 당대 연예 저널리즘의 선정성과 연예인-연예기자의 관계에 대해 품었던 삐딱한 의문 말이다. 연예 저널리즘이란 사적인 것과 공적인 것 사이의 절묘한 줄타기가 아닐까 하고, 염전에 소금이 오듯 나름 생각의 상이 잡혀가는데….

 김대오: 지금은 미용실 같은 데서 쑥덕쑥덕 얘기하고 웃는 정도에서 끝나야 하는 사안인데도, 언론이 마치 그걸 처벌하겠다고 나서고 있어요. 사생활에도 윤리적으로 엄격한 판단을 내려야 하는 것처럼. 그래서 굉장히 공격적이고 가해적인 제목이나 내용이 많이 나타나는 것 같아요. 그러다보니 독자들도 그런 태도에 물들고.

 김미화: 죽음에 대해 그냥 애도만 하면 좋겠는데, 거기다 대고 비난을 퍼붓거나 모진 소리를 하는 사람들까지 있더라고요. 저는 방송할 때 말 한마디라도 ‘누가 자살을 했대’ 하기보다는 ‘얼마나 힘들면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까요. 그렇게 생을 마감한 게 참 슬픕니다’ 하는 식으로 순화하려고 노력하거든요. 무엇보다 그게 다 기록으로 남거든요.

 김대오: 매체가 너무 많고 무한경쟁에 내몰려 있어서 그래요. 지금 연예 언론은 풍선이 터지기 직전과 같아요.

 김미화: 가계 부채처럼?

 (일동 웃음)

 김미화: 으하하, 이게 내 병이야 병. ‘시사병’.

 약속된 시간이 다가온다.

 김미화: 마지막으로 한마디하면 지금 세상이 너무 각박해져서 문화적으로 순화운동이랄까, 그런 걸 해야 할 때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김대오: 그래서 우리는 올해 모토를 ‘슬로 뉴스’로 잡았습니다. 속도를 늦춰보려고요. 어떤 사인이 터지면 곧바로 다루기보다 차분하게 정리해서 접근하려고 합니다. 저부터 그 기사 왜 안 보내느냐고 기자들에게 야단치는 횟수부터 줄여보려고 합니다.

 김미화: 오늘 김 국장과 인터뷰를 나눈 소감은 ‘기자이면서 그 안에 사람이 녹아 있다’는 거였습니다. 진작에 이런 얘기를 못 해본 게 한이네.

 우리는 각자 다음 일정에 쫓겨 바쁘게 흩어졌다.

 묵직한 마음으로 글을 시작했지만, 이렇게 정리하고보니 이 글도 빨래터의 한바탕 수다처럼 보인다. 오랜 시간 사회부 영역에서만 구른 <나·들> 기자는 ‘어쩌면 그들과 함께 짧은 장자몽을 꾼 건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며 글을 마무리한다.

 * 두 사람은 오늘날 연예 저널리즘의 행태와 구조적 원인에 관해 많은 대화를 나눴다. 그러나 이어지는 관련 기사에서 다루는 내용이라 이 글에서는 대부분 생략했다.

 (1) 김대오는 2004년 <노컷뉴스>의 방송연예팀장을 맡으면서부터 기존 선정적 보도를 배제하고 이니셜 보도를 삼가는 등 연예 기사에 저널리즘 규범을 적용하려 했다. 특히 2009년 장자연 사건과 관련해 이른바 ‘장자연 문건’을 입수하고도 문건 내용을 보도하지 않았다. 반면 KBS는 그 문건 내용을 공개했다.

 (2) 김미화는 경험을 담아 <김미화의 웃기고 자빠졌네>(메디치미디어)라는 책을 최근 펴냈다.

안영춘편집장 jo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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