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3.01.08 16:45 수정 : 2013.01.08 17:15

“인생 100년도 안 되는데, 부부의 즐거움 때문에 성질을 굽히고 사는 것보다는 부모님 모시고 성질대로 살겠습니다.”(‘기문’, <고금소총>)

조선시대 독신 여성들의 사연은 주로 문헌 설화를 통해 엿볼 수 있다. 정지영 이화여대(여성학) 교수는 <한국여성학> 제20권 3호에 낸 ‘조선시대 혼인장려책과 독신여성’이라는 논문에서 “효녀 또는 열녀가 아닌 여성이 끝내 독신으로 살고자 할 경우 이런 여성은 ‘성질이 사나운 것’으로 묘사됐다”고 전했다. 이 여성이 어떤 조건 속에서 ‘성질대로 살겠다’고 한 것인지 알 수 없지만, 당대 다른 여성들과는 다른 성향과 능력을 가진 여성일 수 있다는 분석이 덧붙었다.

조선시대는 후기로 가면서 가부장제가 강화되는 경향을 보였다. 이 논문은 결혼하지 않는 여성들이 어떤 수모를 겪었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경국대전>에 명시된 혼인 장려책을 보면, 30살이 넘어도 시집을 가지 못한 처녀가 있으면 그 집안에 곡식과 옷감을 주도록 했다. 더불어 궁핍하지 않는데도 시집을 못 갔을 땐 그 집안의 가장을 엄중히 처벌하도록 했다.

처녀가 늦도록 시집을 못 가면 나라에 재앙을 초래한다는 인식이 깔려 있었고, 이는 결혼한 여성을 ‘정상’으로, 결혼하지 않은 여성을 ‘비정상’으로 여기는 담론이었다. 유교적 질서와 규범을 바로 세운다는 명분도 있었지만, 현실적으로는 인구를 늘려 양민을 확보하기 위한 정책이었다. ‘정상’으로 인정받을 수 없었던 독신 여성들은 여승이 되기도 했다.

그럼에도 독신으로 살려고 한 이들은 주로 다른 남자와 맺은 인연이 있거나, 집안이 망해서 혹은 부모에게 효도하려고, 아니면 자신의 기대에 맞는 남성을 찾지 못한 여성들인 것으로 전해진다.

<기사 전문은 <나·들> 인쇄판에서 볼 수 있습니다.>

황보연 기자 whyn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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