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2.12.29 02:11 수정 : 2012.12.29 02:11

함경남도 원산금융조합 부이사를 지낸 할아버지(고 박규회 샘표식품 창업주·사진 맨 왼쪽)가 월남한 건 1945년이었다. 서울 명동에서 교복 장사를 하던 할아버지는 1946년 삼시장유양조장을 인수했다. ‘미스야’라는 식초로 유명했던 일본 소스 기업이었다. 교복 장사로 번 돈과 아들(박승복 샘표식품 회장·사진 가운데)이 다니던 식산은행(산업은행의 전신)에서 받은 퇴직금으로 인수자금을 마련했다. 샘표식품의 시작이다.

 당시는 집집마다 간장을 직접 담그던 시절이었다. 간장 회사를 만든다는 것 자체가 파격이었다. 생수가 처음 판매됐을 때 “누가 물을 사먹느냐”고 하던 분위기와 비슷했다. 하지만 할아버지의 생각은 달랐다.

 “이북에서 내려온 분들이 굉장히 많았고 그분들이 아직 정착하지 못했을 때였어요. 집에서 간장을 담그기 어려운 상황이었다는 이야기죠. 그분들을 대상으로 하면 새로운 비즈니스가 되겠다 싶으셨대요.” 박진선 사장이 할아버지에게 들은 이야기다. 사먹지 않던 걸 사게 하려면 새로운 시도가 필요했다. 우선 집집마다 방문해 공짜로 간장을 먹어보게 했다. 시식행사라는 개념이 없던 시절이어서 소비자들은 의아해했다. 1961년 만든 TV 광고음악(CM송)도 국내에선 원조 격이다. “보고는 몰라요, 들어서도 몰라요~”로 시작되는 샘표의 CM송은 당시 학생이었던 무명 가수 김상희가 불렀다. 어린아이부터 대학생, 주부까지 흥얼거리고 다닌 이 노래는 대학 응원가로 쓰일 정도의 최고 유행가로 자리잡았다. 주부 사원을 채용한 것이나 충무로 공장 옥상에 네온사인 광고를 내건 것도 모두 국내에선 첫 시도로 꼽혔다.

 공교롭게도 박승복 회장이나 박진선 사장 모두 간장 장수가 되는 걸 싫어했다. 웬만하면 다른 일을 하고 싶었다. 대학을 졸업하면 입사해 착실히 경영 수업을 받는 다른 오너 일가들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미국 대학 강단에서 철학을 가르치다 마흔을 넘겨 샘표식품에 입사한 박진선 사장은 그나마 이른 편이다. 아버지 박승복 회장은 55살이 돼서야 회사로 왔다.

<기사 전문은 <나·들> 인쇄판에서 볼 수 있습니다.>

황보연 기자 whyn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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