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4.07.03 13:50 수정 : 2014.07.03 13:51

이제는 어엿한 사장님이 된 송강빈씨의 경영 철학은 분명하다. 고용주와 피고용인이 아닌 오빠·형과 동생으로서, 수평적으로 수익을 분배하고 소통하는 것이다. 레인톡 동료들과 송강빈 대표(가운데). 한겨레 박승화
“아, 도착하셨어요? **** 누르고 올라오시면 돼요.” 회사 입구 비밀번호를 서슴지 않고 알려주는 남자. 사무실 문을 열어주는 이 남자의 복장이 심상치 않다. 덥수룩한 머리, 푸르스름하게 올라온 수염 자국, 집에서 쉬다 나온 듯한 편한 반바지. 문득 그의 문자가 머릿속을 스친다. 사실 인터뷰는 지난 6월18일 오전으로 요청했다. 곧이어 돌아온 문자. ‘아침에 월드컵 경기 다 같이 보기로 해서요ㅠㅠ’. 황당하다! 결국 인터뷰는 오후 3시30분으로 미뤄졌다. ‘레인톡’ 송강빈(34) 대표와의 인터뷰 비하인드 스토리다.

“축구는 잘 보셨어요?” “네, 진짜 재밌게 봤어요. 그것 때문에 여기에 스크린 롤까지 설치했다니까요. 소리를 너무 질러서 목이 다 쉬었어요.” 독특하다. 레인톡 사무실을 방문해서 느낀 첫인상이다. 축구를 보기 위해 8명이 모두 아침 7시까지 출근했다. 강빈씨를 비롯해 4명만 사무실에 남았고, 나머지 직원들은 축구 경기가 끝난 뒤 바로 퇴근했다.

인터뷰를 위해 축구를 보던 공간에 들어서자 강빈씨가 냉장고에서 캔음료 하나를 꺼내 건넨다. 잠시 숨을 고른 뒤 이 낯선 공간을 둘러보자 사무실에 놓이기엔 생소한 소품이 하나둘 눈에 들어온다. 언제든 김치찌개와 스파게티를 해먹을 수 있는 3평 남짓의 부엌 겸 식당 공간이 있다. 근무시간에라도 취미생활을 위해 외출할 수 있다. 게임하기, 애완견 데려오기, 낮잠 자기 등 사무실에서 할 수 있는 것은 뭐든 가능하다. 별것 아닌 것 같지만 꽤 파격적인 ‘복리후생’이다. “이 정도면 신의 직장이네요.” 무의식중에 흘러나온 혼잣말이었다.

술집 골방서 키운 장사꾼 DNA

온라인 우산 쇼핑몰 레인톡의 전신은 ‘애드블로우’라는 온라인 마케팅·홍보 업체다. 1년 전까지 운영하다가 이제는 거의 사업을 접은 분야다. 시작은 150만원이었다. 2009년 친구가 운영하는 술집의 귀퉁이가 첫 사무실이었다. 낮에는 영업을 하지 않기에 월 10만원 정도의 사용료만 냈다. 컴퓨터공학을 전공한 자신의 재능을 활용해 홈페이지를 만들고 알음알음 지인들을 통해 마케팅이나 홍보가 필요한 작은 업체들을 소개받았다. 수익이 될 거란 확신이 들자 한 달 뒤 서울 종로구 대학로에 있는 보증금 75만원에 월 35만원짜리 지하방으로 자리를 옮겼다. 일단 한 달만 버티면 될 거라고 생각했다. 다행히 수익은 점차 늘었고 회사의 규모도 커졌다. 결국 네 번의 이사를 거쳐 지금의 성북구 정릉동에 안착했다.

1억5천만원 정도의 연매출을 올리던 알짜 사업을 정리한 이유는 뭘까. 창업을 하면서 강빈씨가 내세운 한 가지 철칙이 있었다. 정치·의료 분야는 의뢰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의뢰가 많이 들어오는 것이 성형외과 같은 의료 분야나 아이돌 홍보, 정치 홍보 이런 쪽이거든요. 그런 것이 계속 들어오고 또 그게 돈이 많이 되죠. 그럼 현실과 타협하게 되고, 거기에서 못 빠져나올 것 같았어요. 이건 아니란 생각이 들었죠.”

반면 뿌듯함을 느꼈던 경험도 있다. 재생 재료를 이용한 제품을 판매하는 ‘세이지 디자인’이 그 경우다. 한국업사이클디자인협회의 김자연 이사(강빈씨는 김자연 ‘누나’라고 호칭했다)가 대표로 있는 곳으로, 못 쓰는 물건이나 의류 등을 재생해 제품을 만든다. “세이지 디자인의 마케팅을 할 때는 정말 즐거웠어요. 나도 뭔가 동참하는 것 같았고, 지구를 다시 살리는 것 같았고. (웃음)” 하지만 호스트바 광고부터 연예인 아이돌 홍보까지 원치 않는 의뢰가 많이 들어왔다.

고민 끝에 새로 찾은 활로가 우산 쇼핑몰이다. 정확히 말하면 우산을 직접 디자인하고 주문생산을 해서 판매하는 것까지다. 왜 하필 우산일까? 이유는 단순했다. “사람들이 멋없는 우산을 쓰고 다니는 모습이 싫어서”다. 2년 전 우산 제조와 생산을 위해 디자인·공장·단가 등을 파악하며 사업 준비를 끝냈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한 암초가 등장했다. 우산 시장의 70~80%를 차지하는 한 우산 업체에서 공장에 압박을 가한 것이다. 공장에서 ‘미안하다’는 연락이 왔다. ‘을’의 처지에선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결국 자신들의 시장 진입을 막았던 우산 업체에서 물건을 받아 판매하고 있다. 3년 동안 판매사업을 꾸려오고 있지만 궁극적 목표인 제조가 막혀 있어 답답하다. “다른 아이템들도 비슷하겠죠. 모든 시장에 독점권을 가지고 그걸 행사하는 기업들이 있을 테니까. 동료들과 이를 갈고 있어요. 언젠가 우리가 다 보내버리자면서. (웃음)”

쇼핑몰의 매출을 조심스럽게 물었다. 강빈씨의 답변이 거침없어 되레 무안했다. “성수기인 6∼8월 석 달치의 3년간 평균매출은 5천만원에서 9천만원 정도. 연간 평균매출은 1억5천만원 정도예요.” 처음 쇼핑몰을 열었을 때는 예상보다 판매량이 많아 다들 놀라워했다. 하지만 성수기가 지나자마자 매출은 반토막 났다. 이 때문에 우산 판매가 거의 없는 가을과 겨울에는 목도리나 장갑 같은 시즌 상품을 도맷값에 사들여 되파는 것으로 매출을 충당한다.

오색찬란 우산 쇼핑몰, 내일도 맑음

지금은 투지 넘치는 열혈 청년 창업가이지만 대학생 시절의 강빈씨는 대한민국의 평범한 취업준비생이었다. 컴퓨터공학 전공을 살려서 취업하려 했지만 녹록지 않았다. 어렵게 들어간 회사에서 그는 음료수를 나르고 궂은 심부름을 하는 게 전부였다. 도저히 자신과 맞지 않는다는 생각에 두 달 만에 회사 문을 박차고 나왔다. 청년 실업자가 된 그는 아는 선배가 있는 회사를 추천받았다. 단순히 온라인 마케팅 회사인 줄 알았던 그곳은 소문으로만 듣던 ‘스팸메일 발송’이나 ‘댓글 알바’가 주요 업무인 업체였다.

기자의 눈이 번쩍 뜨였다. 드디어 ‘댓글 알바’의 실체를 알 수 있는 건가 싶어 속사포로 질문을 던졌다. “주로 어떤 일을 했나요? 월급은 많이 줬나요?” “프로그램에 악성 코드를 보내서 깔고, ‘좀비 PC’ 만들고 댓글 작업을 하는 게 주요 업무였어요. 그때가 2009년이었는데 유력 인사에 대한 안 좋은 기사를 덮어달라는 의뢰가 들어왔어요. 근데 제가 생각하기에 이걸 덮는 건 사람들이 알아야 할 걸 모르게 만드는 거였죠. 그건 범법 행위보다 더 나쁜 거라고 생각해서 ‘못하겠다, 죄송하다’ 말하고 그만뒀어요. 월급은 300만원 정도로 꽤 많았네요.”

그가 온라인 마케팅·홍보 회사를 창업하면서 정치·의료 분야의 광고를 하지 않겠다고 결심한 것도 이곳에서의 경험 때문이었다. 성형외과나 안과 같은 병원의 광고 의뢰도 비슷했다. 강빈씨의 업무는 기존에 있는 리뷰들을 토대로 새로운 글을 만드는 일이었다. “글을 쓰는데 스스로 너무 부끄럽다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거짓말을 계속 만들어야 하니까.”

한때의 부끄러운 경험이지만, 창업의 소중한 토대가 된 경험이기도 하다. 비록 좋지 않은 일을 하는 회사였지만 기술력만큼은 선진화된 곳이었다. 단순한 광고가 아니라 스팸메일을 보내고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일을 했던 기술자가 많아 배운 것도 많았다. “일은 그곳에서 배웠죠. ‘메타태그’라는 방식이 있어요. 네이버나 다음에 원하는 키워드가 노출되도록 만드는 거예요. 예전 회사는 안 좋은 곳에다 이 기술을 썼다면, 우리는 제품을 마케팅하는 쪽으로 이용해서 이득을 본 거죠.” 늘 새로운 것,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한 흥미를 가졌던 강빈씨에게 광고는 신세계였다. 아이디어와 창의력만 있다면 무엇이든 창조 가능한 분야였으니 말이다.

이 정도 수완이면 중·고등학교 시절에 이미 장사꾼의 DNA가 꿈틀거리지 않았을까? “어릴 때는 용돈이 두둑한 편은 아니었어요. 그때는 제 모든 목적이 돈이었어요.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부모님 몰래 일을 했어요.” 학원비 낸다고, 자습서 산다고 거짓말해서 받은 돈으로 20만원짜리 중고 군고구마 기계를 샀다. 자그마치 3년 동안 겨울마다 고구마를 팔았다. 몰래 숨겨놓은 기계를 누가 가져가지만 않았다면 아마 더 오래 장사했을지 모른다. 망한 적도 있다. 대학교 때 동대문에서 5천원에 옷을 사서 7천원에 팔았다. 사는 사람도 없고 남는 돈도 없으니 금방 접어야 했다. 실패는 했지만 다양한 경험은 그에게 진짜 하고 싶은 게 뭔지 일깨워주었다. “비록 망했지만 흥미는 있었어요. 사람들에게 뭔가를 홍보하고 판다는 게 재밌더라고요.” 그땐 미처 몰랐지만 그의 창업 역사는 18살에 이미 시작된 것이다.

강빈씨의 경영 방식은 확고하다. 직원들과 수평적인 수익 분배 구조를 갖는 것이다. “주인이라면 당연히 수익을 나눠야 하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레인톡은 기여도에 따라 수익을 배분한다. 초반에는 총매출에서 30%를 기본급으로 정했다. 70%는 운영비로 쓰고 거기서 성과급을 각자의 기여도에 따라 배분했다. 사장도 예외는 없다. 현재 기본급은 120만원. 가장 적게 받는 직원이 150만원이고, 최대 600만원을 받는 직원도 있다. 여기서 의문점 하나, 기여도는 대체 어떤 기준으로 평가한다는 말인가. “모호하긴 해요. 지금은 작은 규모이기 때문에 그게 눈에 보이니까 회의를 하면서 서로 인정하고 평가하는 범위에서 가능하거든요. 우린 휴가가 따로 없고 아무 때나 쓸 수 있기 때문에 휴가일을 따지는 방법도 있고. 물론 단점도 많아요. 그런 부분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개선해가야죠.”

직원들이 스스로 평가해 수익 분배

강빈씨는 직원과 근로계약서를 쓰지 않는다. 사장님 소리도 너무 어색해 그냥 ‘형’ ‘오빠’로 불린다. ‘대표이사’라고 찍힌 명함도 없다. “사실 직원 개념보다는 동료죠. 회사만 제 이름으로 돼 있지 수익을 다 나누는데 그게 무슨 직원인가요. (웃음)” 아르바이트도 마찬가지다. 대학교 1학년부터 방학 때만 2∼3개월씩 일하고 학교 다니기를 4년째 반복하는 아르바이트생은 강빈씨 다음으로 근속연수가 높은 직원이다.

지나치게 이상적인 그의 경영 철학에 대해 듣다보니 문득 그의 동료들 또한 강빈씨의 독특한 경영 방식과 미래 비전을 공유하는지 궁금해졌다. “회사의 미래와 전망까지 공유하지 않는다면 고용주와 피고용인 관계일 뿐이죠.” 레인톡의 정기회의는 매주 수요일 저녁 시간이지만, 누구나 언제라도 먼저 회의를 요청할 수 있다. 불가피한 상황이 아니라면 모두 모여 회의를 통해 커뮤니케이션을 한다. 대부분의 사안은 다수결을 따른다. 그리스 아테네의 아고라 광장에 모인 모든 시민이 투표에 참여했듯이. 애드블로우에서 레인톡으로 오기까지 내린 모든 결정이 대표의 독단적 판단만은 아니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모든 사안을 다수결로 정하다보니 중요한 사항을 논의할 때는 시간이 지나치게 길어지는 비효율도 있다. 지금이야 8명밖에 되지 않는 소규모 사업체이기에 유토피아적 경영 방식이 유지될 수 있지만 ‘직원이 100명이 되어도 이런 방식이 지속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든다. “나쁜 습관이기도 한데, 제 모토가 ‘일단 저지르고 보자’는 겁니다. 해보고 나서 이게 뭔지 구분하고 접을지 계속할지 결정해요. 이 구조가 비합리적이거나 힘들다고 보지 않아요. 오히려 이런 구조를 유지했기 때문에 여기까지 왔다고 생각합니다. 대신 조율해야 할 것이 상당히 많겠죠. 피곤한 일도 생기겠지만 그것보다는 얻는 게 더 많지 않을까요?”

앞으로 애드블로우를 다시 열 생각은 없는 걸까. “사실 그냥 닫으려고 했어요. 그런데 어제 인터뷰 준비로 밤을 새우면서 왜 그만둬야 하나 생각이 들었죠.” 결론은 ‘접지 말자’였다. “어차피 처음 시작했던 거니까 다시 해보는 건 어떨까 싶어요. 주위의 어려운 곳부터 찾아보려고요. 돈이 안 벌리는 사장님들, 뭘 만들었는데 홍보 방법이 없는 사람들 정말 많거든요. 우리에게 여유가 조금만 더 생기면 그런 사람들부터 도와준다는 생각으로 해보는 건 어떨까 해요.” 34살 청년 창업자의 신념치고는 꽤 단단하다.

알바생이 월급 더 받는 ‘제2 제니퍼소프트’

강빈씨의 롤모델은 미라이공업사다. 괴짜 같은 조직 운영 방식으로 유명한 일본의 전기·가스 부품 회사다. 연간 휴일 수는 140일에 이르고, 승진 대상은 선풍기를 돌려 쪽지에 적힌 이름이 가장 멀리 날아간 사람으로 정한다. 상급자는 마음대로 업무를 지시하지 못하고 성과로 직원을 차별하지도 않는다. 일하는 게 즐겁고 행복하다는 직원들의 전언이 회사의 분위기를 그대로 전달한다. 말이 안 되는 시도를 많이 하지만 그만큼 자신의 사업과 직원들에 대한 자신이 넘친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그러고 보니 강빈씨의 경영 모토와도 맞닿아 있다.

다소 좌충우돌하면서도 무한 긍정 에너지를 가진 강빈씨의 포부는 꽤나 세밀했다. 이미 직접 생산의 장벽을 경험한 그는 재활용 재료를 이용한 사업을 구상 중이다. 3개월째 재활용 분야에 대한 공부도 계속하고 있다. 버려진 현수막으로 가방을 만드는 스위스의 ‘프라이탁’처럼 천과 고철만 있으면 재활용 우산을 만드는 일도 가능할 것으로 본다. 든든한 자문단(김자연 대표)도 있다. 사업계획서를 준비해 2015년 4월 정도에는 독자적인 브랜드를 론칭할 계획도 세웠다. 새로운 브랜드를 론칭하기 전까지는 지금의 시스템을 유지할 생각이다. 대신 다양한 제품군을 확보하기 위해 해외 브랜드와도 접촉하고 있다.

인터뷰 기사에 실을 사진을 찍기 위해 직원, 아니 동료들을 불러모으는 강빈씨의 모습은 대표가 아닌 그냥 동네 오빠였다. 정릉동이 내려다보이는 낡은 건물 옥상에서 강빈씨와 동료들이 카메라 앞으로 형형색색의 우산을 펼쳐들었다. 맑은 햇살이 우산 위로 쏟아져내렸다. 화창한 날씨처럼 또다시 새로운 세계에 발을 내디딜 젊은 유목민들의 미래도 ‘언제나 맑음’이기를 기대해본다.

글 이지희 객원기자 amour.fati@hanmail.net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