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4.02.04 15:24 수정 : 2014.03.02 14:26

다가구주택 옥탑방에서 고양이와 함께 사는 건 선택이고 곰팡이와 동거하는 건 숙명이다. 최첨단 건축 기술과 자재를 총동원한다면 모르겠지만, 다가구주택을 그렇게 짓는 건축주는 세상에 없다. 경기도 광명시의 한 다가구주택 밀집 지역을 내려다본 모습.한겨레 김태형
겨울이 주는 선물이 추위만은 아님을 깨닫게 된 것은 3년 전이었다. 열 번째로 이사해 정착한 집은 1989년에 지은 다가구주택이었다. 이 집에서 산 지 10년째 되는 해인 2010년 겨울, 외기에 닿은 안방 벽에 곰팡이가 피어나기 시작했다. 천장과 벽이 맞닿은 부분부터 얼룩이 지더니 곧 벽을 타고 내려왔다. 얼룩은 어느새 곰팡이의 서식지가 되었다. 가구를 들어내고 본 안쪽 벽은 가관이었다. 가구 사이에 쌓아둔 물건들을 서둘러 치우고 벽을 닦아보았다. 물론 소용이 없었다. 원인은 결로 현상이었다.

결로 현상은 내부와 외부의 온도차가 심할 때 내부의 수증기가 벽에 맺히는 현상이다. 실내 온도와 외부와 닿아 있는 실내 벽면의 온도차가 클수록, 실내의 습도가 높을수록 결로 현상이 심해진다. 결로 현상을 방지하려면 건물의 단열 시공이 중요하다. 창을 낼 때 창 윗부분의 단열 시공이 특히 중요하다. 단열 시공이 꼼꼼해야 실내 온도와 벽면의 온도차를 줄일 수 있다. 또 방 안에서 빨래를 말리거나 하여 내부의 습도를 높이면 더 쉽게 결로가 생긴다. 그 외에도 환기가 잘되는 구조여야 하고, 환기가 잘되지 않는다면 강제로라도 통풍이 잘되게 해야 한다. 이 부분이 겨울철의 난관이다. 물론 문을 열어두면 실내 기온이 떨어지기 때문에 벽면과의 온도차를 줄이는 효과가 있다. 추위에 따라 집 안이 춥다면 결로 현상을 막을 수 있다. 하지만 엄동설한에 환기를 잘 시켜보겠다고 창을 활짝 열어두고 살 수는 없는 일 아닌가.

전에는 없던 곰팡이를 제거하기 위해 집주인 부부는 악전고투를 시작했다. 부부는 2001년까지 서울 변두리에서 이발소를 운영하다 당시에는 경기도 안산에서 이발소를 운영하고 있었다. 비교적 저렴하게 머리를 손질할 수 있는 이발소인데도 서울 안에서는 손님을 찾기 어려웠다. 경기도에서는 외국인 노동자가 주요 고객이라고 했다. 주인집 부부는 집에 문제가 생기면 직접 고치곤 했다. 수도관이 동파되거나 계단 손잡이가 파손되는 잡다한 공사 같은 것들 말이다. 대문 자물쇠 손잡이가 부서졌을 때는 노끈을 매달아 해결했다. 돈 들어가는 일을 끔찍이 싫어하는 분들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제 손으로 곰팡이와 싸우겠다고 나선 것이다.

우선 옥상 방수 공사가 개시됐다. 어느 집이나 마찬가지이듯, 법의 눈을 피해 설치된 옥탑방이 하나 있는 옥상은 평평한 슬래브 지붕이었다. 집이 오래되니 옥상 바닥의 방수재가 갈라지고 깨져 있었다. 주인집이 지목한 결로 현상의 원인은 옥상에서 새는 물이었다. 이틀에 걸친 방수재와의 사투에다 옥탑방에 사는 아저씨에게 방수재를 바른 곳에 발을 디디면 절대 안 된다는 신신당부 끝에 옥상 방수 공사가 마무리됐다. 그러나 곰팡이는 계속 자기 자리를 넓혀갔다. 그제야 단열재가 삭았거나 애당초 시공이 엉터리가 아니었나 하는 이야기가 나왔다. 벽을 뜯어야 하나. 한숨이 나왔다.

이런저런 임시변통으로도 사태가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으니 주인집에서도 결국 큰 결심을 했다. 대대적인 보강 공사를 하고 내부도 싹 고쳐놓겠다는 것이었다. 그 뒤에는 전셋값을 두 배로 올리겠다고 했다. 우리 집은 미련 없이 이사를 결심했다. 2000년대 초반까지는 그럭저럭 운영되던 아버지의 사업이 2004년을 넘기지 못하고 엎어졌다. 납품받던 공장의 인건비를 정산하려니 돈이 모자라 전세금을 빼다 썼던 모양이다. 주인집은 계약 기간이 남았음에도 전세금을 빼주는 편의를 봐주었다. 빠진 전세금은 10% 이율의 월세로 전환됐다. 이런 상황에서 전세를 두 배로 올리겠다는 이야기는 월세를 두 배로 내라는 말이었으니 당연히 이사를 결심할 수밖에 없었다.

곰팡이 피하려다 전세금 폭탄

새 집을 찾는다는 말이 좀 우습다는 생각이 들었다. 새로 이사할 집을 물색하는데 우리가 이사할 만한 집 중에 최근에 지은 집은 없었다. 우리는 옥상을 짊어진 최상층에 살았기 때문에 결로가 더 심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부동산 중개업소를 통해 다음 집 후보들을 돌아보는 동안, 이 가설은 더욱 그럴듯해졌다. 3층 건물의 3층, 4층 건물의 4층에는 어김없이 곰팡이가 피어 있었다. 집주인들은 커튼이나 가구로 가려보려 했겠지만 애당초 곰팡이 찾기에 혈안이 된 우리의 눈을 피할 수는 없었다. 얼마 되지 않는 돈으로 까다롭게 굴던 우리는 지금 살고 있는 2층 다가구 주택의 1층에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이 건물은 1988년에 지어진 것이었다.

전에 살던 집만큼이나 오래된 다가구주택이었지만 새 집은 그런대로 괜찮아 보였다. 우리가 이사하기 전까지는 집주인이, 정확히는 집주인의 아들 내외가 살고 있던 집이어서 최근에 내부 수리를 했고 싱크대도 새것이어서 어머니가 만족해했다. 집은 크지 않았지만 구조가 네모반듯해 공간의 낭비가 적은 장점도 있었다. 곰팡이도 없었다. 옥상은 윗집이 대신 짊어져주고 있었던 것이다. 슬래브 구조의 옥상 바로 아래 최상층에 살 때는 곰팡이의 위협에 노출되는 것만이 문제가 아니었다. 겨울엔 곰팡이가, 여름에는 끔찍한 직사광선이 위협을 가했다. 햇볕으로 데워진 집의 온도는 금세 30℃가 넘어가곤 했다. 아침부터 빛을 받아 뜨거워진 지붕의 열이 그대로 아래에 있는 집까지 데우는 식이었다. 여름이면 한증막이 따로 없었다. 이사를 결심하며 최상층을 피한 데는 그런 이유도 있었다.

새로 이사간 집의 주인은 동네에 이런 집 3채를 가진 이북 출신 할머니였다. 할머니는 또래 친구 할머니와 함께 계약하러 왔다. 이 동네에 다가구주택 4채를 가진 그 친구분은 여기서 오래 살면서 집을 여러 채 가진 할머니들끼리 자주 만난다고 했다. 중개업자의 말에 따르면, 집주인 할머니에게는 아들 셋이 있는데 모두 일류대를 나온 수재였다고 한다. 그런데 아들들이 할머니가 모아둔 재산으로 사업을 하거나 주식 투자를 한다며 집 2채를 날려먹었다고 했다. 그 뒤 할머니는 남은 3채 중 2채를 각각 50대의 두 아들에게 맡기고 월세를 받아 살게 했다. 이렇게 세 아들 중 두 아들이 하는 일 없이 어머니의 집에 붙어먹고 있다고 했다. 우리가 이사한 집은 놀고 있는 막내아들의 차지였다.

가난은 곰팡이를 피할 수 없다

봄에 이사해서 여름을 나고 가을이 되기까지는 별다른 문제가 없었다. 문제가 터진 것은 재작년 겨울이었다. 멀쩡하던 집 천장을 뚫고 물이 떨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천장을 마감한 나무판 사이에서 물이 새는 곳은 마침 형광등을 매달기 위해 뚫어놓은 구멍이었다. 합선으로 형광등이 꺼지며 물이 떨어졌다. 집에 한바탕 난리가 났다. 집주인은 내려와 거듭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어쩔 수 없는 일 아닌가. 공사를 한다고 하니 그러겠거니 하고 넘어갔다. 다음날 사람이 와서 물 새는 곳을 찾는다며 분주하더니 금세 공사가 끝났다. 그러기를 2주쯤 지났을 때다. 안방 벽에 곰팡이가 생기기 시작했다. 신경을 못 쓰고 있는 사이 벽이 축축해져 있었던 것이다.

곰팡이의 원인을 두고 의견이 분분히 갈렸다. 전에 이 집에 살던 주인의 말도 이전까지는 곰팡이를 보지 못했다고 했다. 우리는 물이 샜던 지난 사건이 의심스러웠다. 공사가 그렇게 금방 끝난 것도 의심스럽거니와, 한 곳을 막으면 다른 곳이 새기 마련이어서 어려운 것이 방수 공사였기 때문이다. 우리 집이 환기를 제대로 하지 않아 곰팡이가 생겼다고 했다. 집에 곰팡이 같은 하자가 발생하면 당연히 집주인이 문제를 해결해야 하지만 환기를 하지 않거나 세입자의 과실인 경우에는 집주인의 책임이 없다고 하는, 인터넷에 떠도는 상담 내용이라도 검색해본 모양이었다. 유독 추웠던 그해 겨울, 집주인은 매일 창을 열고 환기를 하라는 말을 남기고 냉큼 자기 집으로 올라갔다.

몇 번의 고성과 내용증명이 오간 이후 대책이 마련됐다. 처음에 나온 대책은 도배를 다시 하는 것이었다. 원인이 그대로 있는데 임시변통으로 도배를 한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그러다 우리 집 안방 위에 자리한 윗집의 베란다에 물이 새는 것이 발견됐다. 베란다 방수 공사와 외벽 단열 공사가 뒤를 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한결같았다. 곰팡이는 여전히 자라났다. 우리는 계속 오래된 이 집의 단열 문제를 지적했다. 우선 집이 오래돼서 외벽 안의 단열재가 삭았을 가능성이 있고 창호도 오래돼 뒤틀려 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그것들을 고치려면 돈이 많이 들었다. 결국 집 안쪽 벽에 방수재를 바르고 합판을 덧대어 새로 도배를 하는 것으로 합의했다. 하긴 우리 집도 아닌데 다시 이사를 가면 되지.

공사를 하러 아침 일찍 온 아저씨가 재미난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분은 오래전부터 이 집의 이런저런 하자를 손봐주던 분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그분 이야기에 따르면 원래 이 집의 월세는 주인 할머니가 모두 받고 이 집에 살던 막내아들 내외의 생활비를 따로 주고 있었는데 재작년, 그러니까 우리 집이 이사온 뒤 생활비를 주는 것을 그만두고 이 집의 관리권과 월세를 모두 주겠노라고 했다는 것이다. 마침 반지하에 살던 사람이 나간 이후 다른 세입자를 구하지 못하고 있던데다 막내 내외는 직업도 다른 수입도 없어 살림이 편치만은 않았다고 한다. 궁여지책으로 윗집으로 옮겨가며 내부 수리 비용으로 받은 돈을 남기기 위해 더 싼 시공업자를 찾아 집을 대강 고쳤다. 저번에 물이 샐 때도 더 싼 업자를 찾느라 동분서주했다는 것이다. 덕분에 이 집의 문제가 터질 때마다 단골로 나서던 자신이 재작년 이후로는 처음 여기 공사를 맡게 되었노라고 했다. 자기가 오게 된 것도 문제가 커지자 주인 할머니가 직접 움직였기 때문이라고 한마디를 붙였다. 주인집에 돈이 없다는 게 요지였다.

헌집살이는 주인 노릇을 하게 된 막내아들 내외에게도 가혹했던 모양이다. 하루는 곰팡이 문제로 설왕설래를 하다가 부인의 입에서 아파트 이야기가 나왔다. 자기도 이 집에 오기 전까지는 아파트에 살았으며 그때는 이런 문제도 없었다는 것이다. 자기가 사정이 어려워 이런 집에 와서 고생하는 것이 너무나 서럽다며 세입자인 우리더러 이런 곳에 살지 말고 아파트에서 살 것을 권했다. 한마디로 아파트에 살 형편이 안 되면 참고 살라는 것이었다. 자신도 나름대로 억울한 사정이 많다는 것이기도 했다. 그런 사정과 임대인 대 임차인의 책임 문제는 전혀 별개의 차원이지만, 한 가지 실질적인 문제를 공유하게 되었다. 주인집에 돈이 없다는 걸 당사자에게서 직접 듣게 된 것이었다.

호황 땐 움츠리고 불황 땐 투자했으니…

가끔 어머니와 마주 앉아 돈과 인생에 대한 하나 마나 한 이야기를 나눈다. ‘돈이란 있을 때도 있고 없을 때도 있다’는데, 우리는 왜 한결같이 없는가 하는 것이 주요 주제다. 어머니는 마치 경기변동과 같이 인생에도 굴곡이 있으며 지금이 바로 바닥일 거라는 기대로 30여 년을 아버지와 살았던 것이다. 그런데 그 굴곡이란 몇 세대에 결쳐 일어나는지, 그래서 어머니 대에 와서는 계속 바닥인지, 언제 다시 올라갈지는 어머니와 내가 머리를 맞대고 아무리 궁리해본들 도무지 알 수 없는 문제였다. 어머니는 아버지와의 결혼을 후회한다고 했지만 우리를 낳은 것은 후회하지 않는다고 했다. 내 입장은 조금 다르지만 그런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어머니와 아버지의 어린 시절은 비교적 유복했다. 1952년생인 어머니는 당시로서는 꽤 좋은 직장에 다니는 외할아버지의 6남매 중 넷째로 태어났다. 외할아버지는 온갖 뒷돈이 오가는 요직에 있으면서 한 번도 비리를 저지른 적이 없는 청렴한 분이었다. 대신 번 돈에 대해선 악착같아서, 넉넉한 살림에도 수학여행조차 쓸데없는 일이라며 보내주지 않을 정도였다고 한다. 어머니는 아직까지도 이 일에 이를 갈고 있다. 외할아버지에게도 나름의 사정이 있었다. 외할아버지는 자신만 못한 형제들을 공부시키고 살림을 건사하느라 나름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문제는 형제들을 챙기느라 자녀 교육에는 눈감은 것이었다. 마음만 먹으면 대학에 진학할 수도 있었지만, 어머니는 시집이나 잘 가라는 ‘배려’로 고등학교까지만 졸업했다.

결혼을 잘했는가 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별다른 직업이 없던 아버지를 신랑감이라고 데려오자 외할아버지는 노발대발했다. 둘은 500만원을 들고 고향을 떠났다. 당시 서울의 아파트 분양가가 1천만원이 되지 않는 경우가 많았고, 강남구 은마아파트 31평(102.5m²)형의 분양가가 1850만원 정도였음을 감안하면 500만원은 그리 작은 돈이 아니었다. 그러나 지방에서 별다른 정보도 없이 상경한데다 자리를 잡느라 이곳저곳에 돈을 써 마포구 아현동 달동네에서 살림을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 이제 와서 소용없는 후회지만 당시 부모님의 도움을 받아 서울에 아파트 한 채를 분양받아 살림을 시작했더라면 어머니가 상상하듯, 인생의 굴곡과 같이 상승하는 경기를 따라 시세 차익을 맛볼 수도 있었을 것이다. 1970년대 말 아파트 분양가는 평당 55만∼75만원으로, 당시 15평(49.6m²)형 안팎의 아파트는 지방에서 모은 돈이 조금 있다면 충분히 노려볼 수도 있었다.

하다못해 아버지라도 제대로 된 직장이 있었다면 1980~90년대 호황에 몸을 맡겨볼 수도 있었을 것이다. 아버지의 아버지, 그러니까 나의 할아버지는 젊어서 사업을 크게 하셨다. 아버지가 어릴 때는 가죽 가방에 가죽 구두를 신고 학교에 다닐 정도였다고 하니 꽤나 부자였던 모양이다. 그러던 사업이 갑자기 기울고 할아버지가 화병으로 쓰러지자 주인 없는 사업체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부자는 망해도 3년 간다는 말처럼 딱 3년 정도 버텼다고 한다. 애당초 억척스러운 성격도 아니거니와 일찍 어버지를 여의어 사업가로서의 수완을 익힌 바도 없던 차에 공부도 제대로 하지 못했으니 별다른 대책이 있을 리 없었다. 그런데 덜컥 어머니를 만나 결혼한 것이다. 아무래도 희망의 시대였던 모양이다.

평소 옷을 좋아하던 아버지는 서울에서 남성복과 원단 등을 취급하는 곳에서 일을 배웠다. 동대문시장이나 서대문구 홍은동 유진상가 등에서 일하다 자기 사업을 시작했다. 주로 남성복을 취급하는 도매업을 하며 물건을 떼어 팔다가, 직접 공장에 의뢰해 물건을 만들기도 했다. 하필이면 사업을 결심한 때가 1995년이었다. 2년 뒤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를 아슬아슬하게 버텨낸다 싶었지만, 2003년 신용카드 사태가 터진 이후로는 완전히 내리막이어서 장사를 접어야 할 지경에 이르렀다. 전세로 살던 집이 월세로 바뀐 사연이 바로 이것이다. 마침 군대를 마치고 직장을 잡은 나는 월급을 모조리 집안 살림에 보태야 했다. 수습 시기 100만원이 갓 넘은 월급을 모두 집에 갖다줘야 했던 것이다. 물론 그 돈은 어느 집처럼 아들의 방종한 소비를 다잡고 정기예금에 넣기 위해서가 아니라 당장 급한 월세와 생활비로 차출된 거였다.

결혼이라니? 다 죽자는 말인가

‘왜 한결같이 가난한가’라는 어머니의 물음에는 별다른 고민 없이 대답할 수 있다. 실제 어머니에게 대답하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돈을 벌 수 있었던 시기에 돈을 벌지 못했기 때문이다. 특별히 불운했다기보다는 아직도 가난한 사람들 대개가 이런 사정일 거라는 생각도 든다. 어머니의 고민은 아들도 결혼해 독립하고 남들처럼 살아야 하는데 과연 이대로 가능하겠느냐는 것일 테다. 물론 거의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보증금을 조금 모았지만 여전히 집세는 비싸고 월세를 내면서 저축하는 돈이 많지도 않으며 이제 나이든 부모님이 병원에 다니는 횟수도 점점 늘어간다. 지금까지 버텨온 것도 용하지만 앞으로 닥칠 일이 무엇일지 다 가늠하기도 어렵다. 결혼이라니, 다 같이 죽자는 말인가. 물론 이 이야기도 어머니에게는 하지 않았다.

그나저나 다음번 이사 때는 2000년대에 지어진 빌라로 갈 수 있으면 좋겠다.

구술 이유현·정리 박재현

노후 주택 용적률 완화

빚을 늘리는 리모델링

2013년 12월9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는 리모델링 수직증축 허용을 포함하는 ‘주택법’ 개정안을 의결했다. 이전까지는 리모델링을 할 때 기존 세대수의 10% 이내로 세대수 증가를 규제했으나, 개정된 법에 따라 기존 세대수의 15% 이내로 지을 수 있고, 15층 이상 공동주택은 최대 3개층, 14층 이하의 공동주택은 최대 2개층까지 수직증축할 수 있게 된다. 현재 이 법의 적용 대상이 되는 준공 뒤 15년 이상 된 아파트는 약 430만 가구로 전체 아파트의 49.1%를 차지한다. 주택시장이 멈춰버린 상황에서 노후 주택을 개량하기 위해 용적률을 완화해준 것이다. 이 법은 오는 4월25일에 발효된다.

법이 국회의 문턱을 넘자마자 신문에는 수직증축 리모델링의 사업성을 분석하는 기사가 쏟아졌다. 개별 상황에 따라 적용되는 사업비는 제각각이라서 명확한 기준을 제시할 수는 없으나 수직증축 외에도 면적을 늘리는 수평증축, 구조보강, 지하 주차장 신설 등을 하다보면 생각보다 많은 돈이 들어가리라 짐작할 수 있다. 신문기사와 다른 분석 자료 등에서 국민주택(85m²) 규모와 유사한 아파트를 기준으로 제시하는 공사비 부담은 세대당 1억∼2억원인데, 이를 기준으로 간단한 사업성 분석을 해보려 한다.

인기가 시들해진 중·대형 평형으로 면적을 늘리기보다 소형 평형을 개량하는 것이 더 나은 현재 상황을 고려해 85m²형 30가구로 구성된 15층 아파트 한 동을 수직증축하는 경우를 생각해보자. 공사비 부담은 세대당 1억5천만원으로 가정하고, 이는 증축분 세대를 포함한 공사비로 한다. 총공사비는 45억원이며, 일반 분양이 가능한 가구는 3개층을 증축하면 85m²형 6가구가 된다. 리모델링 대상 노후 아파트가 많은 1기 신도시의 2012년 평균 아파트 가격(3.3m²당 약 1200만원)을 일반분양 가격으로 가정하면 사업 수익은 가구당 약 3억원, 총 18억원이다. 따라서 공사비 부담은 총 27억원으로 세대당 9천만원이 된다.

2013년 가계금융복지조사 결과, 우리나라 가계의 평균 순자산 규모는 대표성이 높은 중앙값을 기준으로 할 때 약 1억4500만원이다. 이 중 부동산 등 비유동자산이 차지하는 평균적인 비율(75%)을 감안하면 빚을 지지 않고 리모델링 공사비에 투입할 수 있는 돈은 3600만원 정도밖에 안 된다. 약 5400만원을 다른 수단으로 충당해야 하는 것이다. 이미 자녀 교육, 노후, 질병 등에 대비하기 위한 준비도 모자라는 형편에 집을 수리하는 용도로 다시 빚까지 질 집이 얼마나 될까. 신문기사는 리모델링을 할 경우 아파트 가격이 오를 거라는 예측을 덧붙이고 있다.

2010년 주택총조사 결과를 보면, 1994년 이전에 지어 개량이 필요한 아파트는 약 280만 가구(34.4%)다. 반면 단독주택은 70%인 약 260만 가구, 연립주택과 다세대주택은 46.1%인 약 80만7천 가구에 이른다. 서울에 있는 단독주택·연립주택·다세대주택 중 1994년 이전에 지은 가구는 56.5%인 약 55만4천 가구다. 서울시는 2013년 7월 기준 총 65개의 정비사업구역 지정을 해제하기로 결정했고, 경기도는 당초 23개 뉴타운 지구 213개 구역에서 13개 지구 106개 구역으로 정비구역을 축소했다.글 박재현 아파트 키드 생애 기획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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