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4.02.04 14:56 수정 : 2014.03.02 14:24

앳된 얼굴의 30대 사장 심여린 대표는 2011년 온라인 영어교육 콘텐츠인 ‘스피킹맥스’를 출시해 이듬해 63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그는 태블릿PC에 적합한 영어교육 콘텐츠인 스피킹맥스를 앞세워 세계적인 영어교육 업체로 성장하겠다는 꿈을 꾸고 있다.스피킹맥스 제공
현재 시가총액 5천억원이 넘는 교육업체 메가스터디는 2000년 온라인강의 서비스를 세상에 내놓았다. 처음엔 열악한 통신 기반시설로 인해 동영상 강의가 아닌 ‘전자칠판’ 형태였다. 교사가 칠판에 쓰는 내용과 목소리만이 통신선을 타고 학생들에게 전달됐다. 이 서비스의 성공 가능성은 커 보이지 않았다. 많은 학부모들은 교사가 보이지도 않는 컴퓨터 앞에 자녀들이 앉아 공부할 거라 생각하지 않았다. 당시까지 컴퓨터는 학습 도구라기보단, 공부를 방해하는 물건이라는 인식이 강했다. 하지만 이런 예상과 달리 온라인 교육 시장은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2000년대 초반 국내에 급속하게 보급된 초고속 인터넷 통신망의 역할이 컸다. 메가스터디는 서울 강남구 대치동 등 유명 학원강사의 동영상 강의를 서비스하기 시작했고, 2004년 코스닥에 상장돼 한때 시가총액 1조원을 넘어섰다.

10년이 지난 2010년, 창업 2년 만에 온라인 영어교육 서비스의 출시를 앞둔 심여린(32) 당시 스픽케어(현 스피킹맥스) 대표는 투자자를 찾고 있었다. 심 대표는 투자자를 찾아 “영어권 국가에서 어학연수하듯 현지인들이 현지의 명소, 문화, 음식 등을 소개하는 내용으로 콘텐츠를 만들었다. 녹음해서 발음을 비교하거나 현지인의 발음을 받아쓸 수 있도록 만들어 태블릿PC로 어디에서든 학습할 수 있다”고 설명했으나, 투자 유치는 쉽지 않았다. 심 대표는 “당시까지만 해도 태블릿PC의 성공 가능성을 낮게 점치는 투자자도 적지 않았다”고 말했다. 어렵사리 찾은 투자자는 초기 벤처기업에 투자하는 본엔젤스벤처파트너스였다. 이 업체의 강석흔 투자심사역은 스피킹맥스가 만든 콘텐츠의 가능성을 높게 평가했다. 향후 영어 말하기 교육 시장과 태블릿PC의 성장 가능성도 높게 점쳤다. 본엔젤스는 2010년 6월 3억원을 이 업체에 투자했고, 이듬해 4월 2억원을 추가 투자했다.

서비스 출시 4년 만에 하루 매출 1억원

다시 4년이 지난 2014년 1월6일, 심 대표가 이끄는 스피킹맥스는 하루 매출 1억원을 돌파했다. 지난해에는 하루 4800만원 매출이 최고 기록이었다. 스피킹맥스는 2011년 63억원의 매출을 기록한 데 이어 지난해엔 70억원을 기록했다. 서비스 출시 이듬해부터 견고한 실적이 나오기 시작했다. 벤처업체로선 드문 경우다. 심 대표를 지난 1월22일 서울 광화문에 있는 스피킹맥스 사무실에서 만났다. 그는 올해 매출 100억원을 예상하고, 2년 뒤엔 코스닥 상장을 계획하고 있다며 목표를 밝혔다. 자신 있는 목소리였다.

“스피킹맥스는 기존 강의식 콘텐츠와 달리 현지인들의 영상을 이용했고 녹음과 음성 비교, 받아적기 등이 가능한 모바일 기기의 특성을 살려 제작했어요.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 3년 동안 현지인을 1천 명 넘게 인터뷰했고, 지금도 해외에 나가 콘텐츠를 제작하고 있어요.”

스피킹맥스는 유학이나 여행을 직접 체험하듯이 콘텐츠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기존 강의 일변도의 온라인 교육과 차별화했다. 심 대표는 “현지에서 실제 유학하거나 여행하듯 ‘가상체험’을 하는 데 주안점을 뒀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런던’편 과정에 들어가 ‘런던의 데이트 코스’라는 내용을 선택하면, 현지에 있는 한 여성이 나와 데이트하기 좋은 장소로 코벤트 가든을 추천한다. 이 여성은 “코벤트 가든에는 동상같이 온몸에 금칠을 하고 각기 다른 자세로 서 있는 거리의 예술가들이 여럿 있는데 동전을 내밀면 움직인다. 또 거리에서 연주하는 예술가가 많고, 레스토랑이나 카페 등도 많다”고 말한다. 영상의 전체 혹은 일부 내용을 반복해서 들을 수 있고 받아적기도 가능하다. 중간에 일부 표현을 녹음하고, 현지인의 발음과 얼마나 유사한지를 비교해준다. ‘서바이벌’편을 선택하면 유학 가는 학생의 입장에서 한국을 떠나 미국 현지에서 겪는 일들을 현지의 영상으로 재구성한다. 예를 들어 입국심사대에선 어떤 대화가 오가고, 공항에서 수하물을 잃어버리면 누구에게 어떻게 문의해야 하는지 제시된다. 또한 미국 현지에서 운전면허를 따거나 쇼핑을 할 때 어떤 대화가 오가는지도 나온다.

스피킹맥스는 이런 식으로 구성된 콘텐츠 66.5시간 분량을 갖고 있다. 촬영한 도시는 미국의 뉴욕·로스앤젤레스·샌프란시스코, 영국의 런던, 오스트레일리아의 시드니·멜버른 등이다. 가상체험이 가능하도록 구성한 ‘아이비리그’ ‘비즈니스 패턴’ ‘서바이벌’ ‘경영학석사(MBA)’ 편도 인기가 높다. 스피킹맥스는 두세 달에 한 편씩 새로운 콘텐츠를 출시하고 있고, 2월 중엔 ‘세계일주’편을 선보일 계획이다. 학습에 게임 요소를 적용한 것도 특징이다. 받아쓰기나 발음이 현지인과 유사하면 점수를 얻고 레벨이 올라간다. 점수와 레벨은 실시간으로 다른 학습자들과 비교되고, 특정 단계를 넘으면 커피 기프티콘이나 상품권 등의 선물도 제공된다. 콘텐츠의 완성도를 높인 시도로 인해 스피킹맥스는 지난해 5월 일본 앱스토어에서 유료 앱 부문 전체 1등을 기록했고, 지난해 11월엔 ‘2013 일본 이러닝 어워드’에서 ‘아시아 이러닝 포럼상’을 받았다.

누드교과서 만든 남편이 창업자

심여린 대표는 부부 창업가로도 유명하다. 2008년 스피킹맥스를 창업한 이는 심 대표의 남편 이비호(36) 부사장이었다. 심 대표는 네이버(전 NHN)에서 디스플레이 광고를 담당하다 창업 1년 뒤인 2009년에 합류했다. 남편이 아내를 회사로 끌어들인 데 이어 기업의 대표로 삼은 것이다.

심 대표는 남편을 ‘부사장님’으로 불렀다. 회사에선 공과 사를 구별하기 위해 ‘아내’나 ‘남편’이란 호칭조차 사용하지 않는다.

“부사장님은 대학교 창업 동아리에서 만났어요. 부사장님은 이미 누드교과서를 만들고 교육업체 이투스를 창업한 경험이 있었고, 저는 나중에 창업하겠단 꿈이 있었죠. 우리는 연인이 되어서도 데이트하며 ‘저건 사업 아이템이 되겠다’ ‘저건 수익성이 부족하겠다’는 등의 대화를 많이 했어요. 여느 연인의 대화와는 좀 달랐죠.”

이비호 부사장은 서울대 컴퓨터공학과 4학년 때인 2001년, 상세하고 쉬운 설명으로 교과서를 재구성한 <누드교과서>를 출간했다. 이 책은 학생들 사이에 큰 인기를 얻었고, 2004년엔 교육업체 이투스를 직접 창업해 학원사업과 온라인 교육사업을 병행했다. 2006년 이투스가 SK커뮤니케이션즈에 인수되자 이 업체의 이러닝혁신그룹장을 맡았고, 2008년 유학을 준비하려고 회사를 그만뒀다. 이즈음부터 이 부사장은 아내 심 대표와 함께 미국을 자주 찾았다. 현지 문화를 익히고, 유학할 학교를 정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정작 미국에 도착해보니 언어의 난관에 부딪혔다. 두 사람 모두 토플(TOEFL)이나 대학원입학자격시험(GRE) 등 현지 학교에서 수학하기 위해 치러야 하는 영어시험에서 고득점을 얻었으나, 현지에서 공부하고 생활하는 수준으로 영어를 구사하기 어려웠다. 고민 끝에 현지 어학원을 찾은 뒤 놀라운 경험을 했다. 몇몇 현지 어학원에는 한국인 유학생이 가득했다. 영어시험에서 높은 점수를 받고 평생 영어를 공부한 한국 학생들이 현지에서 기본적인 대화조차 어려워하는 경우가 많았다. 토플 주관사인 ETS(Educational Testing Service)에서 측정한 결과, 2009년 말하기 시험 응시자들 가운데 한국인의 말하기 성적은 세계 136위였다.

홈쇼핑 상품기획자가 사장님으로

이 부부는 영어 공부를 함께 하며 한국의 교육 현실에 문제가 있다고 진단했다. 괜찮은 말하기 교재와 콘텐츠를 찾기 어려웠고, 그나마 있는 콘텐츠도 강사가 강의하는 형태이거나 성우가 읽어주는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이 부부는 현지인들의 영상으로 ‘가상체험’을 하는 형태의 콘텐츠를 구상했다. 이 부사장이 먼저 창업에 뛰어들었고, 심 대표가 1년 뒤 합류했다.

“처음엔 부사장님이 저 대신 다른 사람을 찾고 있었나봐요. 그렇지만 신생 벤처기업은 사람을 데려오기 어려워요. 또 온라인 마케팅 쪽은 제가 전문이기도 했죠. 그래서 부사장님에게 ‘그냥 내가 하겠다’고 했어요. 친구들은 부부 중에 한 명이라도 안정된 직장에 다녀야 한다고 말렸지만, 전 같이 하면 더 잘할 수 있다고 생각했죠.”

심 대표는 2003년 대학을 졸업하고서 CJ오쇼핑에 입사했다. 당시는 전자상거래 시장이 활성화되기 직전이었다. CJ오쇼핑은 주력인 홈쇼핑 외에 인터넷 쇼핑을 신사업으로 추진했고, 신입사원인 심 대표에게 패션 부문 상품기획자(MD)를 맡겼다.

“처음 시작하는 사업이라서 신입사원에게 많은 권한을 줬어요. 정말 밤낮없이 즐겁게 일하던 시절이었죠. 연예인의 패션 아이템을 온라인 쇼핑몰에서 판매했던 ‘파파라치숍’이 제 아이디어였어요. 2005년 모델 변정수, 배우 정려원, 아나운서 정지영 등의 패션 아이템으로 쇼핑몰을 만들어 대박이 났죠.”

심 대표는 2006년 네이버에 입사해 온라인광고 업무를 맡았다. 그가 주로 맡은 일은 영화 홍보 쪽이었다. 온라인에서 광고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온라인 예매율이 실시간으로 바뀌는 걸 확인할 수 있는 업무였다. 그는 직장생활을 통해 광고 영업과 온라인 홍보를 익혔다.

심 대표가 2009년 스피킹맥스에 합류한 뒤 부부는 대학교 벤처 동아리에서 만난 양회봉 이사를 기술최고책임자(CTO)로 영입했다. KT에서 국무총리상까지 받은 기술 인재다. 심 대표가 전화로 “이런 사업을 할 건데 같이 해보자”고 제안하자, 그 자리에서 바로 “알겠다”고 답하고서 일주일 만에 다니던 직장을 그만뒀다. 심 대표는 스피킹맥스의 콘텐츠를 제작하면서 먼저 사업을 시작할 수 있는 전화영어 서비스인 ‘스픽케어’를 2010년 6월에 출시했고, 3년간의 제작을 통해 2011년 4월 스피킹맥스를 내놨다. 회사가 성장하면서 직원도 30명으로 늘었다. 이렇게 열정적으로 사업을 진행한 심 대표는 천생 사업가일 것 같지만, 두 아이의 엄마이기도 하다. 7살인 첫째와 태어난 지 7개월 된 둘째가 있다.

“육아와 사업을 잘 병행했다고 하고 싶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아요. 두 아이를 친정엄마가 봐주고 있어요. 한창 서비스를 출시할 때쯤엔 늦게 퇴근하는 날도 많았고, 만삭 때까지 정신없이 일하기도 했어요. 지금은 되도록 정시에 퇴근하려고 합니다. 우리 부모 세대는 저뿐 아니라 제 자녀까지 두 세대를 키우는 셈이에요. 예전엔 시부모도 모시고 살았으니 더 고생이 많았죠. 사업도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으니 이젠 육아도 잘해야죠.”

부부가 한 회사에서 근무하는 것이 어떨지 궁금했다. 더군다나 부부가 창업해서 부인이 대표이사를 맡고 있고, 남편은 부사장이다. 두 사람 사이에 갈등이 생기면 직원들이 나서서 조정하기도 어렵지 않을까. 심 대표는 “주변에서 그런 우려가 많다”며 설명을 시작했다.

벤처기업가이자 두 아이의 엄마

“투자를 했던 본엔젤스의 장병규 대표도 처음엔 부부가 함께 사업을 한다는 점을 우려했어요. 하지만 우리를 오래 보고는, 오히려 ‘부부가 함께 창업하길 잘했다’고 했죠. 집에선 부사장님이 애를 잘 안 보거나 집안일을 돌보지 않으면 다투기도 하지만, 회사에선 전혀 별개의 일이에요. 서로 이견이 생겨도 감정적으로 대응하지 않죠. 회사에선 남편이 아니라 동료고, 우리는 프로니까요.”

스피킹맥스는 지난해 중국과 일본에도 진출했다. 한국에서 출시한 콘텐츠에서 한글 자막 대신 중국어와 일본어 자막을 입혔고, 일부 콘텐츠는 중국인과 일본인에 맞게 새로 제작됐다. 심 대표는 해외에서 성과를 내어 한국 교육 콘텐츠의 우수성을 입증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어떤 사업을 하겠다는 구상을 한 뒤 하나하나 실행하며 목표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 심 대표에게도 방황하던 시절이 있었을까. 젊은 나이에 결혼해 두 아이를 키우고 사업도 척척 진행하는 모습이 일견 일반인과 동떨어진 ‘엄친딸’로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심 대표는 학과에선 재능이 부족한 학생이었고, 졸업반일 땐 대기업에 취직하는 친구들을 부러워했다고 말했다.

“디자인이 하고 싶어 의류학과에 들어갔지만, 타고난 아티스트적인 감각은 없었어요. 그래서 마케팅을 배워보려 벤처 동아리에 들어갔고, 공부보다 동아리 활동에 열중했죠. 졸업할 즈음엔 바로 창업할 자신이 없어 온라인 마케팅을 배울 수 있는 곳에 가고 싶었어요. 친구들이 연봉이 많은 금융권이나 대기업에 취업하는 것을 보고 많이 혼란스러웠죠. 하루는 금융권 채용 응시서류인 자기소개서를 써보려 하는데, 한 줄도 쓸 수 없었어요. 금융 분야에 대한 고민이나 관련 경력이 전무했기 때문이죠. 결국 제 뜻대로 온라인 마케팅을 할 수 있는 곳에 취직했어요. 그 기업에서도 주력 부서가 아닌 신생 부서였죠. 순간순간 선택의 기로에서 제 강점을 키우려 했던 결정이 좋은 결과를 낳았다고 봐요.”

글 윤형중 <한겨레> 토요판팀 기자 hjy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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