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3.03.06 01:50 수정 : 2013.03.06 01:52

서울 서대문구 아현동 독신들이 많이 사는 원룸 밀집지역 한겨레 윤운식
폭풍 같은 업무를 마친 금요일 밤, 약속이 없는 날이면 고민이 시작된다. 이제 어디로 돌아가면 좋을까. 선택지는 세 곳이다. 하나는 서울 동대문구 ㅎ동의 남자친구 자취방, 다른 하나는 언니와 함께 사는 강남구 서초동 자취방, 끝으로 인천 논현 신도시에 위치한 부모님 소유 아파트다. 모두 대중교통으로 한 시간쯤 걸리니 그때그때 필요에 따라 귀가처를 정하게 된다.

집 주소를 물으면 항상 세 곳을 놓고 망설인다. 한 달 기준으로 20일쯤 잠을 자는 남자친구 집이 실질적인 주소지이지만, 완전 동거도 아닌 어정쩡한 상태이니 월세를 갖다 바치는 언니 자취방이 옳은 대답이다. 그러나 주민등록상으로는 2주일에 한 번꼴로 찾는 부모님 집이 주소지라 투표는 늘 그곳에서 한다. 이런 나를 보고 회사 선배들은 “야, 넌 집이 세 개나 있어?” 하고 부러워하지만 처지가 그리 밝지만은 않다.

아니, 어쩌면 부러움이 맞을지도 모른다. 가끔 영화 <고양이를 부탁해>의 혜주(이요원 분)를 떠올리곤 한다. 인천에서 여상을 나와 여의도 증권사에 취직한 그녀가 서울에 방을 얻자 ‘더 이상 고기 냄새 나는 1호선 열차를 안 타도 된다’며 성공에의 기분에 취해 있었던 것처럼, 나 역시 서울에 ‘돌아갈 곳이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감격하던 때가 있으니까. 과거에 대한 예의라 할까. 비록 배낭 짐을 지고 때로는 거짓말을 하며 세 ‘임시초소’를 오가는 처지이지만, 만족하는 마음을 갖는 게 맞을지도 모른다.

부모님 신혼집 보증금 10만 원-월세 3만 원

부모님은 1984년 인천 미개발 지역에 보증금 10만 원에 월세 3만 원의 궁한 신혼살림을 차렸다. 두 분 다 형제가 많아 부모에게서 단 한 푼의 지원도 받지 못했다. 충남의 사범대를 졸업한 아버지가 운 좋게 인천에 있는 여중에 발령이 나면서 인천 정착이 시작되었을 뿐, 두 분의 연고지는 아니었다.

1년차 교사 월급은 30만 원이었고, 엄마는 월급의 3분의 1을 계에 부었다. 이듬해 언니가 태어났고, 곗돈을 타 전세 500만 원의 2층 집 독채로 이사했다. 방은 두 개였는데 돈 한 푼이 아쉬운 신혼부부라 방 하나를 하숙으로 냈다. 첫 손은 아빠의 조카였고, 둘째 손은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석유집 일꾼’ 두 명이었다고 한다. 스무 살쯤 된 청년 둘이 월 3만 원을 내고 방에서 잠만 잤다고 하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매우 기형적인 동거다. 당연히 오래가지 못했고, 이듬해 곧바로 내가 태어났다. 파란 대문이었다는 것 외에는 거의 기억이 나지 않는 그 집에서 나는 5살 때까지 살았다.

<기사 전문은 <나·들> 인쇄판에서 볼 수 있습니다.>

동경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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