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3.01.08 18:17 수정 : 2013.02.06 18:22

김윤규 청년장사꾼 대표 / 박승화 기자
 얼핏 보면 서울 홍익대 부근 드라마 촬영지로 유명한 ‘커피프린스 1호점’ 카페를 떠올리게 한다. 20~30대 꽃미남 직원 5명은 손님이 들어올 때마다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어서 옵쇼~”를 외친다. 메뉴는 감자튀김과 호프, 일명 ‘포맥’(포테이토+맥주)뿐이다. 테이블도 몇 개 안 된다. 그래도 가게 안은 늘 손님으로 북적인다. 단골 손님이라도 들어오면 인사말은 좀더 친근해진다. “뭐야, 요즘 너무 뜸했어~. 무슨 일 있어?” 한동안 발길이 뜸했는지, 한 여대생이 들어서자마자 서로 한마디씩 건네느라 난리다. 직원들의 등엔 ‘감자 살래, 나랑 살래’ 따위의 재미난 홍보 문구가 붙어 있다. ‘잘 생겨서 죄송합니다’라는 글을 붙인 양용수씨는 동네 여학생 상대로 사인회를 열만큼 인기다.

 ‘열정감자’라는 매장 이름도 독특하지만 위치도 눈길을 끈다. 40~50대 상인들이 주축이 된 서울 금천교 시장(세종마을 음식문화거리) 골목 한 귀퉁이에 자리를 잡았다. 우드 소재와 화려한 색깔의 페인트로 한껏 멋을 냈다. 시장 골목의 다른 업소와 어울리지 않는 모양새다. 하지만 4평 남짓 되는 작은 매장에서, 다섯 청년이 장사하는 소리에 골목 전체가 시끌벅적하다. 하늘이 잔뜩 찌푸린 12월의 어느날, 우중충한 시장 골목엔 금세 활기가 피어 오른다.

 김윤규(26)씨는 이곳의 사장이자, ‘청년장사꾼’ 대표다. 청년장사꾼은 청년 창업을 돕는 동시에 전통시장과 골목상권 활성화에 기여한다는 취지로 올초 만든 단체다. 서울 이태원 이슬람사원 앞 카페 벗(8월)에 이어, 열정감자를 지난 10월 3일 오픈했다. 누구든 점포를 방문해 창업 노하우를 배운다.

 “뭘 팔면 좋을지 여러 차례 브레인스토밍을 거쳤어요. 맛있는 거 한 가지를 집중해 팔자고 의견을 모았죠. 미국 뉴욕에서 감자튀김만 전문으로 파는 ‘폼므 프리츠’(Pomme Frites)를 벤치마킹했어요. 냉동감자 중 제일 품질이 좋은 ‘심플롯’(Simplot)을 사용해요. 우연히 들른 유명 호텔 셰프들이 인정한 맛이죠.”

 김 대표는 매장 면적당 수익률로 따지면, 소상공인 기준으로 전국 10위 안에 들거라고 장담한다. 감자 크기를 다양하게 고르도록 했고 소스도 여러 개 준비했다. 메뉴는 1가지이지만, 선택의 폭을 넓히려는 시도다. 문 연 지 1달여 만에 매일 300명 이상 찾는 동네 명소가 됐다. 그는 ‘장사=감동을 주는 일’이라 생각한다. “뭐든 재밌게 팔면 매출도 오르더라”고 말했다.

열정감자 직원들의 옷에 적힌 재밌는 문구들 / 박승화 기자

 담요팔이로 시작한 장사꾼의 길 

 어릴 때부터 장사를 하겠다고 마음 먹었다. 대구에서 지방공무원을 지낸 아버지의 수입은 넉넉지 않았다. 좀 사는 집 친구들이 맥도날드 햄버거를 쏠 때, 반장인 나는 제과점 빵을 돌려야 하는 게 속상했다. 친구가 신은 나이키 운동화도 부럽기만 했다. 김 대표는 상대적으로 가격이 저렴한 프로스펙스에 만족해야 했다. 어린 마음에 승부욕이 돋았다. 장사해서 돈 많이 벌고 싶다는 생각을 늘 했다. 적성검사를 해도 영업사원이나 사업가를 하면 좋다는 결과가 많았다. ‘그래, 나는 뭔가 이쪽이 맞겠구나’ 싶었다.

 대학 진학을 위해 상경한 지 1년여 만인 2007년 3월, 드디어 김 대표는 생애 첫 ‘장사’를 시작했다. 얼떨결에 전자전기공학도가 됐지만 머릿속엔 계속 장사 생각만 맴돌았다. 상암동 월드컵 경기장에서 열린 프로축구 K리그 경기에서 무릎 담요 100장을 팔자고 마음먹었다. 막상 담요를 팔려니 머뭇거려졌다. 부끄러움은 모르고 자랐는데 이상하다 싶었다. 하나도 못 팔고 집에 와 잘 마시지 못 하는 소주만 들이켰다.

 이대로 물러설 순 없었다. 얼마 뒤 열린 한국-우즈베키스탄 국가대표 대항전 때 다시 무릎 담요를 가져 갔다. K리그 때와 달리, 장사하는 아주머니가 많았다. 김밥 파는 아주머니 옆에 딱 붙어 즉석에서 장사 노하우를 전수받았다. 경영대 친구들에게 미리 자문도 구했다. “20~30대 연인을 집중 공략했어요. 경기장 안에 들어가면 썰렁하니까 나중에 약값 더 들지 말고 담요 사줘라, 바람 불면 여자친구 치맛자락이 날린다, 이런 식으로 접근했죠. 원가 990원짜리 담요인데 1개 3천 원, 2개 사면 5천 원으로 깎아주는 묶음 판매도 시도했어요.” 7분 36초만에 담요 100장을 모두 팔았다. 경기 시작 전 담요를 모두 판 김 대표는 그날 번 돈으로 경기 티켓을 사 축구 관람까지 했다.

 담요 판매는 장사에 대한 호기심을 부쩍 키운 계기가 됐다. 군대 가서 돈 벌 궁리만 했다. 우연히 집어든 책 <총각네 야채가게>(김영한·이영석 지음, 쌤앤파커스)를 읽고 바로 인사담당자에게 전자우편을 보냈다. “총각들이 새벽부터 가락시장에 나가 질 좋은 농수산물을 팔기 위해 뛰어다니는 얘기를 읽어보니 저랑 잘 맞을 것 같더라고요. 장사를 즐겁게 한다는 점도 마음에 들고요. 그래서 ‘육군 상병인데 제대하면 같이 일하고 싶다’고 썼죠.”

 2009년 여름, 제대한 지 3일만에 ‘총각네 야채가게’를 찾아간 김 대표는 대치본점에 채용됐다. 그는 저녁마다 소형 승합차에 남은 재고품을 싣고 나가 팔았다. 훈련소 조교 출신이라 목소리가 컸기 때문에 그에게 특별히 주어진 임무였다. “이것도 요령이 있더라고요. 과일이랑 농산물을 예쁘게 쌓아놓는 노하우도 필요하고 그날그날 세상에서 벌어진 일로 코멘트를 짜는 것도 중요하죠. 한번은 바나나 1600다발을 3시간 30분만에 판 적이 있어요. 마침 세계피겨선수권대회에서 김연아가 우승한 날이예요. 아사다 마오가 밟고 미끄러진 바나나라고 허풍을 쳐 엄청 많이 팔 수 있었죠.(웃음)”

 실력을 인정받은 김 대표는 이듬해 신천점으로 옮긴 뒤, 총각네 야채가게에서 최연소 팀장이 됐다. 팀장이 되니 하는 일도 한층 복잡했다. 매일매일 들어오는 농산물의 원가를 확인한 뒤 가격을 책정하고 재고 처리와 상품 발주까지 차근차근 배웠다. 하지만 부모님은 생각이 달랐다. 대학을 졸업하지 않은 아들이 학교에 돌아가기 바랬다. 마냥 뜻을 꺾을 수 없어 복학을 준비하던 중 그는 필리핀에 어학연수를 떠났다. 필리핀에서 장사 생각은 줄곧 머릿속을 맴돌았다. 다양한 열대과일을 보고 있자니, 이것이 한국에서 어떻게 유통되는지 궁금했다. 꼼꼼히 조사해 총각네 야채가게에 보고서를 보내기도 했다.

 2010년 6월, 그는 우여곡절 끝에 최연소 점장이 된다. “복학하려는데 내게 장사를 가르쳐준 형이 지점을 연다고 잠깐 도와달라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그 형이 배달하다 갑자기 사고가 나 매장 운영을 못하게 됐는데, 저더러 인수하라는 거예요. 처음엔 농담하지 말라고 했지만 제안을 받다보니 한번 해보고 싶더라고요.”

 인수대금 마련을 위해 아버지에게 손을 벌렸다. “은행에 돈을 맡겨도 4%대 이자 밖에 못 받으니, 내가 6% 보장한다고 했어요. 매출이 많이 떨어진 매장이었는데 2배 가까이 올렸죠. 연매출 10억 원까지 찍었으니까요.” 2011년 2월 그는 학교에 돌아갔다. 졸업장을 받겠다는 생각도 있었지만, 채소 장수로만 살기엔 뭔가 큰 일이 기다릴 것 같은 기대가 컸다.

 

 인도 여행길에 만난 든든한 동업자 

 2008년 12월, 인도 여행길에 우연히 만난 김연석(31·전략 기획 담당)씨는 ‘청년장사꾼’의 맏형이자, 김 대표에게 가장 든든한 동업자다. 둘은 델리의 한 관광지에서 만났다. 상황을 잘 몰라 현지인을 위해 마련된 줄에 장시간 서 있는 김 대표에게, 여행 경험이 많은 연석씨가 이것 저것 알려준 게 첫 만남이었다. 공교롭게 둘은 여행길에 4차례나 마주쳤고 어느새 친한 형동생 사이가 됐다.

 건축학을 전공한 연석씨는 ‘감자꽃 스튜디오’에서 문화 기획 일을 해왔다. 특히 전통시장 활성화는 그의 주된 관심사다. 부모가 시장에서 채소를 판 덕에 시장은 어릴 때부터 놀이터나 다름없다. 연석씨는 “살면서 없어져선 안 되는 공간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시장”이라고 했다. 전통시장이 썰렁한 이유를 그는 이렇게 분석한다. “시장에는 원래 이야기가 있어요. 공연을 하는 풍물패가 있고 시장을 찾은 사람끼리 얘기를 주고받는 사랑방 역할을 하죠. 지금은 그런 문화가 사라지고 상행위만 남으니까 대형마트에 밀리는 것 같아요. 시장에서 아무리 카트를 빌려줘도 대형마트를 따라갈 수 없잖아요.”

 장사를 좋아하는 김 대표와 전통시장, 골목상권 활성화에 관심이 많은 연석씨는 이렇게 손을 잡았다. “장사만 잘하는 사람은 많잖아요. 자기네 가게만 잘되는 게 아니라 지역도 활기차게 만들 수 있으면 더 이상 좋을 게 없더라고요.”(김윤규 대표)

 이런 뜻에 공감한 선후배 몇몇을 모아 ‘청년장사꾼’을 결성했다. 연석씨를 제외하면 모두 대학생이다.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모른 채 스펙만 쌓지 않겠다는 데서, 자신들이 지향하는 문화를 전파하는 장사를 해보자는 데 의기투합을 이뤘다.

청년장사꾼이 상암월드컵 경기장에서 펼친 무릎담요 팔기 프로젝트 모습. 청년장사꾼 제공
 첫 프로젝트는 새해 벽두, 경북 포항 호미곶에서 손난로 팔기. 많게는 10만 명이 오는 곳에서 첫 장사를 하기로 했다. ‘난로 팔아 대학 가자’라고 쓴 현수막을 걸고 영화 10도가 넘는 강추위에 반팔만 입고 손난로를 팔았다. 김 대표는 “결과가 썩 좋지 않았다”며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원가 360원에 가져와 2천원에 팔려고 했는데 어떤 대기업이 마케팅 차원에서 공짜로 손난로를 나눠주는 거예요. 결국 반값으로 내려 700개를 팔았어요.”

 전통시장에서 벌여온 ‘캐시몹’은 이들의 지향을 가장 잘 드러낸 프로젝트다. 캐시몹은 원래 미국과 캐나다 등지에서 대형 유통업체에 밀려 고전하는 영세 상인을 돕자는 취지로 마련한 일종의 번개모임이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소비자를 모으고, 하루 동안 2만 원어치의 물건을 해당 가게에서 사도록 유도한다.

 지난 12월 2일 청년장사꾼은 50명을 모아, 서울 금천구 남문시장에서 캐시몹 이벤트 ‘남문탐험’을 벌였다. 참가자들이 참가비 1만 원을 내면 1만5천 원어치의 전통시장 상품권을 받는다. 이 상품권으로 시장 상인들에게 물건을 사거나 인증샷을 찍어 페이스북이나 트위터에 올린다. 중간마다 시장 곳곳에서 답을 찾을 수 있는 돌발 퀴즈를 내는가 하면 자신의 꿈을 표현하는 물건을 시장에서 고르는 등 프로그램도 다양하다. “참가자 대부분이 한번도 전통시장을 가본 적 없는 사람들이에요. 이 때문에 호기심에 참가하는 사람들이 많더라고요. 한번씩 와보고 ‘전통시장에 이렇게 살 게 많은지 몰랐다’는 후기를 올리기도 하죠.”(김연석)

 열정감자를 금천교 시장 골목에 낸 것은 나름 이유가 있다. 이곳이 서촌 지역에 속하기 때문이다. “북촌에는 이미 대기업 프랜차이즈가 상당부분 점령했어요. 북촌에 양반이 많이 살았다면 서촌에는 관가에서 일하는 사람이나 평민들이 많이 살았대요. 그래서 한옥이 많이 남아 있고 역사적으로 보존가치가 있죠. 서촌이 북촌처럼 변질되지 않는 데 일조하고 싶었어요.” 청년장사꾼은 ‘회춘 프로젝트’를 내걸고, 열정감자 주변 상권을 활성화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해 금천교 시장 상인회장과 협의 중이다. 매장 윗쪽에 있는 배화여중고, 배화여대 학생들이 시장 골목으로 발걸음한 게 1번째 성과다.

 현대판 보부상, 열정꼬치 출격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커넥터(Connector)가 되고 싶어요.” 스물여섯, 김 대표가 밝힌 인생 목표다. 지금 하는 장사나 앞으로 할 장사를 그렇게 하고 싶다는 뜻이다. 전통시장 상인들은 물론 창업에 뜻이 있는 청년을 대상으로 한 ‘장사 컨설팅’을 청년장사꾼의 중요 임무로 삼은 것도 이 때문이다.

 창업 컨설팅은 직접 운영하는 매장에서 이루어진다. 누구든 매장을 방문해 장사 노하우를 전수받을 수 있다. 2013년 1월 중순 3번째 매장 ‘열정 골뱅이’를 오픈할 계획이다. “장사를 배운 사람들이 창업하면 지속적으로 네트워크를 가지려고 해요. 아이템이 달라도 청년장사꾼 마크를 달고 장사하는 가게를 많이 만드는 거죠. 무엇보다 장사를 잘해야 하고, 지역 활성화라는 취지에 부합하면 좋겠어요. 많은 자영업자가 실패를 거듭하잖아요. 쌈짓돈은 엉뚱한 데로 날아가고. 망하지 않도록 돕는 조력자가 되고 싶어요.”

 자체 매장을 내는 데 김 대표의 전세금과 연석씨의 대출금 등이 들어갔지만 공공기관에서 진행하는 프로젝트도 적극 활용한다. 한 예로 이태원 이슬람사원 앞에 낸 카페 벗은 서울시 우리마을 프로젝트에 선정됐다. 저렴한 임대료 때문에 젊은 예술가들이 많이 모여사는 이곳에 청년장사꾼은 ‘우사단단’이라는 마을 모임을 만들어, 마을 장터 등 지역 주민과 소통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사실 요즘 힘들어요. 겨우 26살에 일을 많이 벌린 건 아닌지 걱정되고요. 주식회사로 전환해 매장을 늘리는 데 치중할지, 창업교육이나 지역 활성화 프로젝트를 좀더 확장할지 결정해야 해요.” 그에게 영락없이 고민 많은 20대 청춘의 모습이 겹친다. 대통령 선거 몇 달 전 지난여름엔 여야 정당에서 연락이 오기도 했단다. “국가경영전략연구원 초청 대학생 강연을 이준석 전 새누리당 비대위원과 같이 했는데, 그 뒤부터 정치권에서 연락이 많이 오더군요. 선거 때 나서줄 청년이 필요한 게 아니었나 싶어요. 물론 그런 데 몸담을 생각 없다고 했어요. 사람들 앞에서 이야기하는 것은 좋아하지만, 그 매개는 앞으로 ‘장사’가 될 거예요.”(웃음)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서, ‘열정감자’의 다섯 청년은 어묵과 사케(일본 전통 술)를 추가로 팔고 있다.

**추신/청년장사꾼은 2013년 2월 5일, ‘열정 꼬치’(경복궁역 2번 출구 파리바게트 골목 초입)를 오픈했다. 위 인터뷰는 지난해 12월초에 이루어졌다. 당시 3번째 매장으로 구상중이었던 열정 골뱅이가 열정 꼬치로 바뀌었음을 독자들에게 알려드린다.

황보연 기자 whyn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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