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4.06.03 11:33 수정 : 2014.07.03 11:15

김보성의 ‘의리’ 아닌 ‘으리’는 불의로 점철된 시대가 선택한 희화화 대상이다. 새로운 희화 코드는 논리가 통하지 않는 세상에서 차라리 마초적 과장을 지향하는 태도이거나 그립지만 닿을 수 없는 감정을 비틀어보는 시도일 수도 있다. 씨네21 오계옥
별로 오래된 얘기도 아니다. 그때 그 시절 형, 누나들은 그리고 또 우리는 어떻게 세상의 변혁을 믿게, 아니 믿기로 했던 것일까. 여러 가지 기원을 따져볼 수 있겠지만, 그 복잡성을 가장 압축적으로 설명해낼 수 있는 문장은 역시 “형, 못 믿니?”가 아닐까 싶다. 정파를 가리지 않고, 그러니까 주체사상은 뭔가 미심쩍고 마르크스의 변혁론은 잘 이해되지 않았지만 차마 그렇다고 말할 순 없던 청초하던 시절, 말이 되는 것 같기도 하고 안 되는 것 같기도 하던 장광설을 늘어놓던 선배들은 회의의 눈초리를 던지는 후배들을 향해 이 말을 뱉곤 했다. 그럼, 그걸로 끝이었다. 믿으니까, 믿어야 하니까. 그게 의리니까.

의리를 생각하면 조건반사적으로 그 순간들이 떠오른다. “형, 못 믿니”를 물었던 그 선배들. 그리고 따라붙던 “소주나 한잔 하러 가자”. 그럼 또 우린 가야 했다. 그게 거대한 불의의 세상에 맞서는 의리니까. 그런 의리를 지키려고, 지켜보자고, 지키겠노라고 우린 함께 어울리기를 주저하지 않았고, 어떤 얘기라도 가감 없이 들어주고, 지구적 차원과 개인적 차원을 넘나드는 고민을 나누고, 끝내 시시껄렁한 연애상담으로 귀결되더라도 속을 게워내고 또 게워냈다. 세상의 불의가 하나둘 ‘개혁’이란 이름으로, 그리고 뭔가 합리적인 기동을 통해 정돈돼가는 시간 동안 그 의리의 형들은 무얼 했을까. 지금은 어디에 있을까.

김보성이 1980년대 하이틴 스타 ‘허석’이었음을 아는 처지에서 어느 날 갑자기 그가 이름을 바꾸고, 잘 안 풀리는 연예계 주변인으로 전락했다가 갑자기 ‘의리’를 앞세운 뭔가 묘한 캐릭터로 돌아왔을 때, 그건 우스운 일이라기보다 처연한 일이었다. 그가 ‘산기슭’ ‘사나이의 고독’ ‘의리의 길’ 같은 진부하기가 ‘으리으리한’ 관형어구들로 점철된 자작시를 읽으며 희화화되는 모습은 뭐랄까, 그냥 짠했다. 그럴 때는 종종 그때 그 시절 그 형들도 아직 거기서 빠져나오지 못했다면 저런 모습이 아니었을까,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세련됨이 모든 것을 지배하게 된 시대. 그래서 사회변혁을 말하는 목소리마저 이제는 ‘스타일’이 중요하다는 주장이 거침없는 시대. 김보성은 다시 예능 프로그램의 소환을 받았다. 그 무렵, 김보성을 비롯해 ‘부활’의 김태원 그리고 ‘백두산’의 유현상 같은 이들이 공교롭게도 함께 등장했다. 가죽바지에 가죽점퍼를 존재 근거로 삼으며 시대와 동떨어진 낭만적 인식을 읊던 그들은 희화 혹은 희롱의 대상이 됐다. 그러나 그들은 세상이 자기를 놀리는 걸 아는지, 아니면 그냥 이제는 그런 것과 상관없이 인생을 즐길 수 있는 대단한 내공을 갖춘 것인지, 아니면 그저 그 나이가 되었음에도 다시 일할 수 있다는 것이 스스로 대견한 것인지 꾸역꾸역 놀림을 견디며 허명을 떨쳤다. 물론 그 허명을 본인의 고유함과 연결하고 이미지를 타협하며 좀더 오래 인기를 누린 이도 있었지만 김보성은 그러지도 못했다. 곧 사라졌다.

어쩔 수 없었다. 그가 외치던 의리는 흡사 논리의 반대말처럼 들렸다. 당대를 구축하는 말과 글을 거부하는 것처럼 들렸고, 어떤 문제를 적합하게 사고하고 판단하는 과정을 생략하기 일쑤였다. 그의 의리는 이제 와서 갑자기 ‘민족해방 민중민주주의 변혁론’을 설파하는 것처럼 들리기도 했고, 인터넷 문학상을 받은 이가 ‘민초의 삶을 더듬는 올곧음의 한길로 정진하겠다’는 소감을 말하는 것처럼 우스꽝스러웠다. 물론, 그러거나 말거나 우리는 잠깐 웃었고, 그를 잊었고, 그는 그 뒤로도 그냥 거기 있었다.

그런 그가 몇 해 지나 또 난데없이 다시 소환됐다. 익숙하지만 더 강력해졌고, 진부하지만 희한하게도 이번에는 폭발적이다. 몇 개월 전부터 꾸준히 그를 소재로 한 ‘짤’들이 발견돼 심상치 않단 생각이 들더니 아예 대중문화의 전위라고 할 ‘광고’를 점령하는 지경으로 도약해버렸다. 언어 파괴적 유희 요소가 있다곤 하지만 특별한 근거가 없는 실존 인물의 성향이 그 자체만으로도 캐릭터로 승화된 이 기묘한 경우는 차라리 대중이 그의 진심에 ‘의리’를 발휘해준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잘 납득이 가지 않는 현상이다. 철 지난 유행가가 누군가의 목소리로 리메이크되지도 않았는데 다시 차트에 진입한 경우랄까.

이건 차라리 우리가 본격적으로 ‘무논리’의 세상을 구축하기 시작했다는, 그래서 의리 같은 낭만적이되 불가능하고 그립지만 닿을 수 없는 어떤 감정들을 변주하며 그저 웃고 말자는 가장 낮은 단계의 향유가 대중문화에 전면화되는 과정은 아닐까도 싶다. 어떤 유의미도 없지만 그저 재미있으니 더 묻고 따지지 말자는. 이 포기에 가까운 집단적 정서에도 시대적 감각은 있다. 논리로 구축되지 않는 세상, 도저히 세련되게 포장하기 어려운 현실에서 사람들은 ‘내 식구는 내가 책임진다’는 마초의 과장을 차라리 그리워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연속된 무책임의 향연에서 “그건 의리가 아니다”라고 외쳐줄 메시아를 기다리는 심리다.

‘의리’의 시절로 표상되던 그때 그 시절에서 우리가 벗어났다는 믿음은 철저한 착시였다. 퇴직 뒤 자리를 알뜰살뜰하게 보장하고 보장받으며, 밀어주고 끌어주며, 어떤 형들은 아직도 “형, 못 믿니”의 시간을 굳건히 살고 있다. 그들을 ‘관피아’라는 세련된 조어로 불러주는 것은 그 무참한 비논리성을 그럴싸하게 포장해주는 효과가 있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다. 그냥 이건 나라가 아니었고, 특정 집단의 이익 공동체가 발휘해온 ‘불의’로 국가의 꼴이 유지돼왔다고 해도 결코 과하지 않다. 그 부정함에 치를 떠는 대중은 한동안 국가적으로 금지됐던 웃음의 시간 이후 첫 번째 희화 코드로 ‘의리’를 ‘으리’로 비틀어 소환해 맞서고 있는 것이다.

물론, 우리가 ‘으리’를 관람하고 합창하는 이 광경이 어떤 것의 징후라는 것과 우리를 어디로 데려갈지는 별개의 문제일 수 있다. 한 가지 힌트는 ‘으리’의 폭발적 확산에 기여한 <무한도전>에서 나왔다. 그 ‘으리’의 후보는 2%의 지지율을 기록한 채, ‘보통 사람들의 혁명’을 주장하는 후보에게 존재를 의탁하는 상황을 연출했다. 거기일까. 대중의 분노는 다행히 ‘선거’를 경유할 수 있게 됐고, 그 선거에서 어떤 ‘의리’의 판단이 나올지는 모른다. 다만 기억해야 하는 것은 이 의리가 우리가 마주하는 거대한 슬픔의 파생적 자락이란 점이다. 이 유희는 분명 무엇도 믿을 수 없게 된 이들이 잊혀졌다고 생각했던 과거형을 소환해 꺼이꺼이 세상 자체를 조롱하고 있음이다. ‘으리’로다가!

글 김완 서울 청량리에서 태어나 청량리에서 자랐다. 충무로영상센터 ‘활력연구소’를 학교 삼아 다녔고, 이후 문화연대에서 ‘변두리’를 메인 이슈 삼아 활동했다. 현재는 매체비평지 <미디어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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