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4.04.02 14:28 수정 : 2014.04.03 15:21

소녀의 성장은 성적인 성장뿐 아니라 생각과 가치, 태도와 행동 모두를 아우르는 것이다. 성년이 된 소녀시대는 선정적 전략이 판치는 오늘날 걸그룹 세계에서 세련된 이미지로 승부수를 던지고 있다. 소녀시대가 지난 2월 신곡 〈미스터 미스터〉(Mr. Mr.) 발표를 앞두고 공식 페이스북에 올린 사진.한겨레 자료
‘소녀시절’이 떴다. 4명의 아줌마그룹 소녀시절은 남편에 대한 아내의 마음을 노래한 <여보 자기야 사랑해>라는 노래로 데뷔했다. SC엔터테인먼트 소속인 이들 ‘과거형’ 걸그룹은 일단 그 이름으로 화제를 불러일으키는 데 성공했다. 과거지향적 이름에 ‘소녀시대’를 의식한, 아니 명백하게 그들의 명성과 이미지에 기생하려는 전략으로는 상업적 성공과 음악적 성취에서 한계가 있을 터이다. 그렇게 되지는 않으리라 믿지만(?) 이들의 운명이 그룹 이름처럼 처음부터 ‘과거형’이 되지는 않기를 바란다. 다른 맥락이지만, 얀코빅(Yankobic·1959~)처럼 패러디 가수로서의 한계를 오히려 자신의 정체성으로 삼아 나름 문화적 의미를 획득한 경우도 있으니 말이다. 그의 <이트 잇>(Eat it)이나 <스멜스 라이크 너바나>(Smells like nirvana)는 지금 들어봐도 재미있다.

아무튼 소녀시절의 등장은 그들 자체에 대한 관심보다 오히려 소녀시대를 환기시킨다. 지난 2월24일 싱글 <미스터 미스터>(Mr. Mr.)로 ‘그녀들’이 돌아왔기 때문이다. 우리에겐 수많은 걸그룹이 있(었)다. 원더걸스, 카라, 티아라, 2NE1, 에이핑크, f(x), 브라운아이드걸스, 미스에이, 포미닛, 걸스데이, 시크릿, 씨스타, 애프터스쿨, 나인뮤지스, 달샤벳, 레인보우…. 40대 후반 아저씨가 나열할 수 있는 걸그룹만도 이만큼이다. 모두 누구나 할 것 없이 아름답고 개성이 있다. 그야말로 우리 대중가요계는 걸그룹의 춘추전국시대다. 하지만 최고는 소녀시대다. 소녀시대는 팬카페 회원 수가 약 27만 명으로, 이 기준에서 2위인 원더걸스(8만 명)의 3배가 넘는다. 여자 솔로가수로서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는 아이유가 14만 명 정도임을 보더라도 소녀시대는 당대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는 여성 아티스트임이 틀림없다. “지금은 소녀시대”라는 그녀들의 구호대로 지금은 그녀들의 시대다.

소녀시대는 9명의 소녀(?)로 구성된 걸그룹이고, 2007년에 데뷔했다. 2010년 일본에 진출해 싱글 <지>(Gee)를 발표하고 오리콘 차트 2위에 올랐다. 일본에서는 외국 가수가 오리콘 차트 3위 안에 오른 일이 30년 만에 처음이었다고 한다. 2011년에는 월드와이드 앨범 <더 보이스>(The Boys)를 내고 2012년 1월31일 미국 CBS의 <데이비드 레터맨 쇼>에 출연했다. 소녀시대의 인기와 영향력은 나라의 경계를 넘어 아시아로 유럽으로 미국으로 넓어지고 있다.

이들의 데뷔 무대를 보면서 ‘소녀대’를 떠올렸던 구세대 아저씨의 감수성으로는 소녀시대의 등장이 결코 반갑지만은 않았다. 아홉 소녀들은 그 이름을 외우기는커녕 얼굴을 식별하기도 어려웠다. 마침 ‘모닝구 무스메’와 똑같이 9명이었고, 같은 회사에 슈퍼주니어 같은 남성그룹이 있었으니 그들의 정체성은 더욱 헷갈릴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그들의 노래는 ‘록의 처절함’에 찌들어 있던 이 귀에 들어오기에는 지나치게 얕고 가벼웠다. 물론 하나같이 예쁘다는 생각은 했다.

지금의 주류 대중음악이 그렇듯 소녀시대 또한 댄스와 스타일이 큰 비중을 차지하는 비주얼 중심의 그룹이다. 여기에 찰떡같이 귀에 붙으라고 만든 ‘후크’가 더해진다. 처음부터 끝까지 노랫말을 외울 수 있는 노래는 없지만, “지 지 지 지 베이비 베이비”(<지>)는 안다. 스타일이나 댄스나 모두 나름의 미학을 가진 대중예술의 한 부분이고, 후크송 또한 단지 ‘반복’된다는 이유만으로 상업적이라거나 예술성이 떨어진다고 비난받아서는 안 된다. 비욘세의 <싱글 레이디스>(Single Ladies)는 높게 평가하면서 소녀시대의 노래들에는 야박하게 점수를 매겨야 할 이유가 없다. 실제 록의 역사상 명곡으로 손꼽히는 걸작들 가운데에도 후크송이 적지 않다. 댄스와 스타일 또한 마찬가지다. 세대가 거듭되는 동안 음악에 대한 우리의 개념은 변했다.

그동안 7년의 시간이 흘렀고 소녀시대는 더 이상 소녀가 아니게 되었지만, 그들의 음악은 이제 우리의 대중적이며 보편적인 문화 코드들 가운데 하나로 자리잡았다. 지나치게 얕고 가벼워 귀에 들어오기 힘들었던 노래가 이제는 자연스럽게 들린다. 서태지의 <난 알아요>의 가사가 들리느냐로 신세대와 구세대를 판단하던 시절이 있었지만, 지금 그 노래가 들리지 않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신해철의 <재즈카페>가 신선하고 충격적으로 들렸던 시절을 지나 드렁큰타이거의 랩 <난 널 원해>를 고전으로 생각하는 시절이 되었듯, 소녀시대의 노래 또한 하나의 문화적 코드로 전에는 없던 감수성의 회로를 우리 문화 속에 꾸려넣었다.

전에는 소녀시대의 군무를 보며 수많은 소녀들의 압도적 이미지에서 오는 스펙터클이 상당히 선정적이라 생각했다. 만약 한두 명의 소녀가 똑같은 안무로 춤을 춘다면 그렇게 보이지 않았을 모습이 아홉 소녀의 군무에서는 차이와 반복의 짧지만 강한 효과를 발생시켜 전혀 다른 이미지를 만들어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 AOA의 <흔들려>, 걸스데이의 <섬싱>(Something), 포미닛의 <거울아 거울아>의 퍼포먼스에 비한다면 그들의 무대는 선정적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착하고 건강하다.

세상의 모든 소녀들은 결국 ‘소녀시절’이 된다. 윤아, 수영, 효연, 유리, 태연, 제시카, 티파니, 써니, 서현(아홉 맞다) 또한 다르지 않다. 한 가지 다행인 건, 성년이 된 걸그룹들이 대개 레인보우처럼 ‘블랙’으로 상징되는 선정적 전략을 취하는데 비해 ‘세련됨’을 선택했다는 점이다. 소녀가 성장해 어른이 된다는 건 단지 성적인 측면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소녀의 성장은 몸과 마음, 생각과 가치, 태도와 행동 모두를 아우르는 것이다. 어쩌면 세련된 이미지를 바탕으로 선정적 이미지를 최소화했던 일종의 ‘고급화 전략’이 소녀시대의 주된 마케팅 포인트였을 것이다. 적어도 소녀시대에게 이는 좋은 선택이었다. 수도 없이 많은 아티스트가 켜졌다 꺼지는 우리 대중가요계에서 데뷔 7주년에도 여전히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는 걸그룹은 이들이 유일하다. 그리고 그 인기는 쉽게 소모되지 않는 마디고 단단한 능력과 이미지에 있다고 믿는다. 음악적으로 아쉬운 부분이 없지 않지만 그들의 자리는 또 다른 차원에 있다는 걸 알기 때문에, 그들의 성공이 다만 아름다울 뿐이다.

글 박근서 대구가톨릭대 언론광고학부 교수. 나름 학생들의 좋은 친구가 되려 애쓰고 있다. ‘텔레비전 코미디’로 학위를 받았고, 요즘 주된 관심사는 비디오게임이다. 닌텐도에 우리를 구원할 영성이 있을지 정말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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