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4.04.02 14:25 수정 : 2014.04.03 15:22

소녀시대는 기획상품으로서의 유통기한이 얼마나 남았을까. 빛나던 ‘떼’에서 평범한 개인으로 돌아갈 때 그들은 비로소 자유를 얻을지 모른다. 지난해 발매된 소녀시대의 4집 타이틀곡 〈아이 갓 어 보이〉(I got a boy)의 뮤직비디오 속 한 장면.한겨레 자료
방송을 잘 아는 자들이 전하는 ‘근대 가요사’를 표방하고 있는 tvN의 새 프로그램 <방자전>의 MC인 주병진은 “‘소녀시대’가 몇 명인 줄은 아느냐?”는 질문에 “소녀들이 떼로 나옵디다”라고 대답했다. 오랜 관록의 MC가 보여줄 수 있는 그렇고 그런 ‘순발력’일 수도 있지만 이 대답은 소녀시대에 관한 아주 많은 것들, 특히 기성세대가 그들을 인지하는 한계점을 정확히 드러낸 ‘명답’이었다.

SBS <힐링캠프, 기쁘지 아니한가>에 출연한 소녀시대 수영은 정경호와의 열애를 부인했던 이유로 “소녀시대가 아닌 개인으로 자리를 잡지 못한 상황에 대한 불안감이 있었다”고 말했다. 비단 수영뿐만이 아니었다. 태연을 비롯한 다른 멤버들도 그 말에 적극적으로 공감했다. 대한민국 최고의 아이돌, 한류라는 카테고리 안에 묶이는 아이돌 가운데 부동의 지존으로 불리는 소녀시대지만, 멤버들은 팀 바깥에서도 자신의 존재를 구축할 수 있을지에 대한 근원적 불안감을 갖고 있는 듯 보였다.

2007년 <다시 만난 세계>라고 하는 지극히 SM적인 사운드로 등장한 소녀시대는 그렇게 대단해 보이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전복적인 문법을 갖춘 팀도 아니었다. 소녀시대 이전에 SM 여자가수 ‘No.1’이던 보아가 불렀다면 더 좋았을 것 같은 멜로디에서 소녀시대는 뭔가 보아의 폭발력에 비해 산만해 보였고, 9명의 역할에 대한 규정도 모호해 보였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소녀시대를 두고 ‘본격적인 연습생 대방출’이라 빈정댔고, 또 어떤 이들은 ‘SM의 전략이 이제 한계에 이르렀다’고 평하기도 했다.

하지만 일부일처제에 대한 회의와 탐구가 언제나 대중문화의 소재가 되는 것처럼, 다양한 것을 향한 대중의 욕망은 무려 9명의 캐릭터를 동시에 ‘론칭’한 SM의 전략에 관심을 보였다. 소녀시대는 그렇게 ‘백지영, 이효리, 이수영’의 다소 올드한 삼분지계가 이어지던 여자가수의 흐름에 묘한 변곡점을 형성해냈다. 여기에 충성스러운 팬덤을 가진 SM이 ‘작심하고 낸 걸그룹’이란 입소문이 겹쳐지며, 막대풍선을 흔드는 10대들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소녀시대는 “어리다고 놀리지 말아요”를 외치며 향후 가요계의 흐름을 예고했고, 막대사탕을 흔들며 “키싱유”를 외칠 땐 미래의 걸그룹들이 어떤 경로를 밟아 성장할 것인지를 예감케 했다. 소녀시대는 가요시장의 거품이 꺼진 이후 자신들의 타깃오디언스(표적수용자)가 누구인지를 가장 영리하게 설명해내고 가장 확실하게 설정했던 팀이다. 멀리서 지켜보되 구매력과 영향력을 동시에 갖춰 지켜준다는 ‘삼촌팬’ 현상을 끌어냈고, ‘연예인 공화국’에서 절대 증거를 기다리던 10대들에게는 그 자체로 희망과 성공을 증명하는 아이콘이 됐다.

그렇게 소녀시대는 8년의 역사를 쌓았다. 길지 않은 시간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소녀시대 이후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문법 자체가 소녀시대를 ‘표준’으로 작동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다. 소녀시대의 성공은 이후 모든 기획사가 묻고 따질 것도 없이 ‘떼’로 불리는 걸그룹을 기획하는 배경이 됐다. 이제는 계보학을 쓰고 당대의 서열을 논할 수 있을 정도로 서사의 강을 이루는 2000년대 후반 이후 걸그룹사는 소녀시대를 출발점으로 하고, 여전히 끝나지 않은 소녀시대를 살고 있다.

이제는 군인들의 ‘떼창’이 더 기억나는 <지>(Gee)를 시작으로 <소원을 말해봐> <오>(Oh!)를 잇따라 폭발시켰던 2009~2010년은 대중문화의 거의 모든 것을 소녀시대가 ‘장악’했던 시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굳이 ‘장악’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은 이 시기 소녀시대가 단순히 인기 있는 연예인이 된 것을 넘어 소녀시대의 기획사가 다른 사회·문화적 맥락을 잠식해가며 엔터테인먼트 산업이 바야흐로 다른 산업의 첨병이 될 수 있음을 입증했기 때문이다. 예컨대 2009년 소녀시대가 발매한 싱글 <햅틱모션>은 삼성 휴대전화를 팔기 위한 합작 프로모션이었다. 삼성은 자신들의 브랜드 가치보다 SM의 이름 있는 가수들이 나서는 것이 상품 판매에 더 유효할 것이라 판단했고, 이 판단은 향후 ‘한류’의 경제적 가치를 따지는 데 기념비적인 영감을 제시했다. 소녀시대에 이르러 연예기획사는 한국에서 가장 경쟁력 있는 제조사를 대리할 정도로 강력한 존재로 성장했다.

‘사실성보다는 환상성이 강하고 논리성보다는 즉흥성이 강한 것’이 대중문화의 특징이다. 스타는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하지만, 그 만들어지는 스타들 가운데서도 아무나 소녀시대의 지위에 오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과거에 비해 훨씬 예측 가능한 프로모션이 펼쳐진다고 하지만 여전히 아무도 어떻게 대중의 마음이 포획되는지를 계측할 수는 없다. 그런 의미에서 소녀시대는 이전에 존재하던 ‘걸’에 대한 환상을 가장 넓고 또 낮게 펼쳤던 끌그물이었다. 그래서 성공 가능성을 확신할 수 없었지만 성공한다면 엄청난 일이 될 것이라는 기획사의 전략적 판단이 이뤄낸 승리였다. 9명의 소녀들은 근래 가장 완벽한 환상성의 조합이었고, 그들을 성공으로 이끌었던 후렴구의 즉흥성은 가요의 문법 자체를 압살했다.

다른 진로를 모색했던 소녀시대의 활동이 확실한 성과를 보이지 못하고, 유닛 활동을 통한 솔로 독립의 가능성도 여전히 불투명한 때 앞으로 소녀시대가 어디로 향할지를 가늠하기는 쉽지 않다. ‘센터 윤아’라고 불리던 윤아가 연애를 하고, ‘오빠들의 연인’이라고 불리는 수영마저 한 남자의 여자가 된 상황에서 그들을 향한 환상성도 많이 걷히고 있다. 이제 소녀시대는 ‘연애시대’라는 사실적 추궁과 더 이상 소녀가 아닌 ‘숙녀시대’라는 세월의 논리성에 동시에 답해야 하는 위치에 와 있다. 여전히 ‘전용기를 갖고 싶다’는 꿈을 말하고, 그 꿈에 가장 가까워 보이는 듯도 하지만, 소녀시대가 다음 앨범을 지금과 같은 주기와 모습으로 낼 수 있을지는 장담하기 어렵다. 소녀시대와 함께 소녀 시절을 보낸 많은 소녀들은 ‘이번이 마지막일 것’이라며 소녀시대의 콘서트를 예매하고, 아르바이트를 한 돈으로 SM의 얄팍한 앨범 나누기 전략에 호응하는 의리를 보이고 있지만 그 마음들이 언제까지 유효할지도 두고 봐야 한다.

소녀시대 이후, 다시 소녀시대 같은 그룹을 또 언제 ‘기획’해낼 수 있을지 모르겠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 그 기획은, 상품 주기는 끝났음을 인정해야 한다. 소녀시대보다 앞서 소녀였던 성유리는 소녀들을 향한 힐링 멘토로서 “이제, 자유를 얻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빛나던 ‘떼’에서 언젠가 평범한 개인으로 돌아오더라도 부디 그들이 행복하길 바란다.

글 김완 서울 청량리에서 태어나 청량리에서 자랐다. 충무로영상센터 ‘활력연구소’를 학교 삼아 다녔고, 이후 문화연대에서 ‘변두리’를 메인 이슈 삼아 활동했다. 현재는 매체비평지 <미디어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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