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4.03.04 16:15 수정 : 2014.03.30 14:18

“아니 이럴 수가!” 2월의 어느 날, 마태우스는 인터넷으로 뉴스를 보고 있었다. 쌍용자동차에서 해고된 노동자들이 해고가 부당하다며 낸 소송에서 이겼다는 소식이었다. 정리해고가 설득력을 가지려면 긴박한 경영상의 이유가 있어야 하는데, 회사 쪽이 회계를 조작해 위기를 과장했다는 게 재판부의 설명이었다. 마태우스가 놀란 것은 이 판결에 대한 네티즌의 반응이었다. 가장 공감을 많이 받은 댓글은 “기업이 직원도 마음대로 못 잘라? 여기 북한인가요?”였다. 그다음으로 공감이 많았던 댓글들도 한심하기는 마찬가지였다.

“해고를 못하면 쌍용차가 망하라는 말인가?” “우리도 데모해서 뜻하는 바를 이룹시다. 떼법이 잘 통하는 대한민국입니다.” “불법파업이 정의면 국민세금 퍼부어서 살려놓은 쌍용차는 뭐냐?” “잘리면 다른 일 해야지 그거에 목매냐?”

처음에 마태우스는 이 댓글들이 쌍용차가 고용한 알바들의 소행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20대가 주를 이룰 것으로 추측되는 저 네티즌들은 정말 저렇게 생각해서 저런 댓글을 다는 거였으니까. 이 사실을 깨닫게 해준 건 그 뒤에 마태우스가 읽은 책이었다. 사회학 강사인 오찬호가 쓴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는 저자가 대학생들을 상대로 강의하면서 느꼈던 일들을 책으로 담았는데, 한줄 한줄이 너무 충격적이어서 책장을 넘길 때마다 손이 떨렸다. 20대 하면 떠올리는 ‘진보’와는 180도 다른 20대들이 책장을 가득 메우고 있어서였다. 예를 들어 KTX 여승무원 사건을 보자. 그들은 2년 뒤 정규직으로 해주겠다는 약속을 받았지만, 철도공사는 그런 약속을 한 적이 없다고 잡아뗐다. 결국 승무원 350명은 약속을 지키라며 투쟁에 나섰는데, 여기에 대해 저자가 수업 중 학생들에게 의견을 묻자 한 학생이 이렇게 답했단다. “날로 정규직 되려고 하면 안 되잖아요!”(17쪽) 처음에 저자는 그 학생이 왕따가 되면 어쩌나 걱정했단다. “그러나 걱정도 팔자”였고, 다른 학생들은 모두 동조하는 분위기였다.

비단 이 사건뿐 아니라 20대가 ‘진보’와 동떨어져 있다는 징후는 여러 곳에서 발견된다. 한국 경제에 대한 정확한 예측으로 화제가 된 미네르바 사건을 보자. 검찰은 그를 구속할 명분이 없자 ‘전기통신법’이라는 말도 안 되는 법조항을 적용해야 했는데, 결국 미네르바는 1심에서 무죄판결을 받고 풀려났다. 여기에 대한 20대의 생각은 어떨까? “솔직히 전문대 출신 아닌가요? 표현의 자유가 중요하다는 건 분명하죠. 하지만 비전문가가 전문가 행세를 할 표현의 자유가 전적으로 주어졌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66쪽) 학력이 낮으면 표현의 자유가 제한돼야 한다고 여기는 20대들이라니, 서울 홍익대 청소노동자들의 시위에 대해서도 그들은 같은 얘기를 한다. “요즘에는 비정규직 교직원이라도 되는 것이 만만치 않잖아요. 그래서 저는 이런 느낌이었어요. 할머니들의 요구가 굉장히 세다, 이런 느낌요. 공부 더 많이 한 분들도 아직 어려운데, 좀 지나친 요구?”(75쪽)

그러니 이들이 쌍용차 해고노동자에 대해 부정적 시각을 갖는 것은 당연했다. “파업을 하면서, 폭력적으로 시위를 하면서 다시 회사를 다니게 해달라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잖아요. 제가 보기에는 솔직히 배불러 보여요. 다른 일 찾을 생각은 왜 안 해요?”(70쪽) 책 뒷부분의 이야기는 더 심각하다. 대학의 서열을 따지고, 같은 대학이라도 수능 점수가 낮은 과를 차별하고, 같은 과라도 지역균형 선발 전형으로 들어온 학생들을 ‘지균충’이라고 차별하는 20대의 모습, 정말 전율이 돋는다.

이쯤 되면 이런 생각을 할 수밖에 없다. ‘20대는 괴물이 됐구나’라고. 영화 <괴물>에 나오는 괴물이 한강에 방류된 포르말린 때문에 괴물이 된 것처럼, 생명체가 괴물이 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지금의 20대가 괴물이 된 것은 출구가 안 보이는 그들의 열악한 환경이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 1980년대의 대학생들이 출신 대학을 가리지 않고 연대할 수 있었던 게 대학만 졸업하면 오라는 기업들이 줄을 섰던 상황 때문인 것처럼, 바늘구멍 같은 취업의 문을 통과하기 위해 스스로를 채찍질하는 지금의 20대가 타인을 배려할 여유를 갖지 못하는 것도 당연한 게 아닐까? 게다가 20대가 많이 읽는 베스트셀러 10권 중 9권이 자기계발서다. 자기계발서라는 게 뭔가? 너보다 더 어려운 환경에서 성공한 사람이 있다, 패자는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는 편견이 넘쳐나는 게 바로 자기계발서가 아니던가. “20대들의 일상은 바로 이런 편견이 내재화된 결과들이다. 가난한 것도 다 자기 잘못인데 왜 그걸 사회가 관심을 가져야 하나?”(95쪽)

그렇다면 20대를 다시 인간으로 돌려놓는 방법은 없을까? 저자가 책 앞에서 얘기한, 영화 <내 깡패 같은 애인>에서 깡패로 나온 박중훈이 한 말이 해법이 될 수 있을 듯하다. “우리나라 백수 애들은 착해요. 텔레비전에서 보니까 프랑스 백수 애들은 일자리 달라고 다 때려부수고 개지랄을 떨던데, 우리나라 백수 애들은 다 지 탓인 줄 알아요.”(50쪽)

맞다. 대학을 나온 20대들이 일자리를 갖고 결혼과 출산을 하는 게 당연시되는 사회가 정상적인 사회이며, 그렇지 못할 경우 그 책임을 져야 할 이들은 기성세대다. 그래서 20대는 기성세대에게 요구해야 한다. 자신들이 일자리를 비롯한 기본권을 누리게끔 사회를 뜯어고치라고. 지금 20대에게 필요한 것은 그러니까 서로 간의 연대인데, 이런 연대는 자기계발서를 백날 읽어도 이뤄지지 않는다. 일단 광장으로 모이자. 모여서 흉금을 터놓고 이야기하자. 프랑스 고교생들은 정부가 통과시킨 정년 연장법이 자기들의 일자리를 위협할 수 있다면서 거리로 나섰다. 우리가 프랑스 고교생보다 못해서야 되겠는가?

글 서민 수줍음이 너무 많아, 같은 사람을 다시 볼 때도 매번 처음 보듯 쭈뼛거린다. 하지만 1시간 이상 대화하다보면 10년지기처럼 군다. 기생충학을 전공했고, 현재 단국대 의과대학에 재직하고 있다. 저서로 <기생충의 변명> <헬리코박터를 위한 변명> <대통령과 기생충>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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