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4.02.04 15:20 수정 : 2014.03.02 14:25

김광석이 애잔하지만 덤덤한 목소리로 불렀던 주옥같은 노래들은 그를 추모하는 후배 가수들에 의해 리메이크돼 대중과 꾸준히 만나고 있다.엠비시플러스미디어 제공
<히든싱어>(JTBC)라는 프로그램이 있다. 제법 인기도 있고 화제성도 높아 나름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프로그램이다. 2012년 시즌1에 이어 2013년 시작된 시즌2가 해를 넘겨 방송되고 있으니 제법 성공이다. 출연자는 가수와 그를 흉내 내는 모창 가수들, 객석과 따로 마련된 자리의 패널과 관객이다. 패널과 관객은 스무고개 하듯 모창 가수를 찾아내 하나둘 떨어뜨리고 결국 원곡 가수를 찾아낸다. 음악성보다는 ‘놀랍게도 닮은 목소리’를 지향한다는 점에서, 그리고 수많은 패널들이 무리지어 앉는 점에서 <스타킹>(SBS)의 분위기다. 나름 우리 가요사에 족적을 남긴 가수들을 골라 그들의 노래를 흉내 낸다는 점에서 <불후의 명곡>(KBS)을 모티브로 삼고 있기도 하다. 아무튼 관객과 패널은 귀를 세워 모창 가수를 떨어뜨리고 원곡 가수를 찾아야 한다. 그리고 우승의 영광과 상금은 원곡 가수와 모창 가수에게 돌아간다.

<히든싱어> 시즌2 12회(2013년 12월28일)는 김광석을 등장시켰다. 지금은 고인이 된 그가 살아 등장할 수는 없었다. <신비한 TV 서프라이즈>도 아닌데, 그의 혼령을 불러냈을 리도 만무하다. 제작진은 그의 레코드에서 음성만 추출해 다른 참가자들이 MR(Music Recorded·미리 녹음된 반주 음악)에 맞춰 노래하듯 재녹음한 것이다. 아날로그 음원으로 녹음된 레코드에서 목소리를 따내고 이것으로 방송용 스테레오 음성을 재구성하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고 한다. 다만 육성으로 노래하는 가수들처럼 한 공간에서 노래하듯 만들어 패널과 방청객들이 김광석의 목소리와 모창 가수의 목소리를 구분하지 못하도록 만드는 일이 상당히 신경 쓰이고 어려운 작업이었다 한다. 그렇게 프로그램은 만들어졌고, 고인의 목소리는 살아 있는 그의 모창자들과 경연을 펼쳤다.

1996년 1월6일은 그가 서른둘 짧은 삶을 놓은 날이다. 올해 1월6일 그가 태어난 대구 방천시장 ‘김광석길’에서는 어김없이 그를 기리는 추모행사와 콘서트가 열렸다. 13년간 노래를 끊고 살았던 김창기(전 ‘동물원’ 멤버)가 콘서트를 열어 ‘김광석을 추억하며’를 노래했다. <미처 다하지 못한: 김광석 에세이>가 출간됐고, 그를 기리는 뮤지컬 <그날들>(연출 장유정, 2013년 4월4일~6월30일), <디셈버>(연출 장진, 2013년 12월16일~2014년 1월29일), <바람이 불어오는 곳>(연출 김명훈, 2013년 11월8일~2014년 1월26일)이 공연됐다. <바람이 불어오는 곳>의 배우 최승렬은 <히든싱어>에 출연해 마지막까지 남아 김광석의 목소리와 경합하기도 했다. 2월에는 ‘김광석 다시 부르기’ 2014년 공연이 시작된다. 열여덟 해가 흘렀지만 죽은 그의 목소리는 시간과 공간을 가로질러 여전히 산 사람의 귀를 울린다.

이제 자기를 청춘이라 부르지 않는 사람들이라면 어떤 그림으로든 김광석의 살아생전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1987년 10월 ‘노래를 찾는 사람들’의 첫 공연에서 그가 부른 <녹두꽃>이 아직 귀에 쟁쟁한 사람도 있을 것이고, ‘동물원’의 <변해가네>나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를 기억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어쩌면 1996년까지 쉼 없이 공연하고 노래했던 서울 대학로 학전 소극장 무대를 떠올리는 사람도 있을지 모른다.

로이킴과 정준영(<슈퍼스타K 4>)이 부른 <먼지가 되어>는 그의 육성을 기억하지 못하는 젊은 세대에게 그의 이름을 각인했다. 이 노래는 <불후의 명곡> ‘김광석 편’(2014년 1월18일)에서 알리에 의해 리메이크되기도 했다. 같은 프로그램에서 허각은 <사랑이라는 이유로>를 불렀고, 장미여관은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 에일리는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박수진은 <기다려줘>를 노래했다. 조금 시간이 흐르긴 했지만, 박완규가 <일밤-나는 가수다>에서 <부치지 않은 편지>를 불렀고, 아이유는 <어느 60대 노부부의 이야기>를 노래했다.

요란하지는 않지만 어쩌면 지금 우리 대중문화계에는 ‘김광석 현상’이 번져가는 듯하다. 살아 있었다면 쉰이 되는 해라는 이유도 있겠고 삶을 놓았던 1월이라는 이유도 있겠지만, 그것만으로는 설명하기 힘든 좀더 강하고 무거운 기운과 움직임이 감지된다. SBS 뉴스(2014년 1월22일)는 이러한 현상을 ‘열풍’이라고 이름 붙이기도 했다. <변호인>이 개봉 한 달 만에 1천만 관객을 넘어선 시점에서 ‘김광석 현상’은 어쩌면 다른 맥락을 가진 같은 의미의 사건이라고 생각한다.

특별하게 정치적 의미를 담아서 이야기하자는 건 아니다. 김광석의 노래에 대한 기억이나 변호사 노무현에 대한 기억을 1980년대 민중가요 운동이나 대통령 노무현에 대한 입장에 연관하기에는 넘어야 할 산과 건너야 할 강이 너무 크고 넓기 때문이다. 물론 그것을 끊고 생각하기에는 그 관계가 질기고 단단하지만, 여기서 어떻게 그 이야기를 모두 풀어놓을 수 있을까. 당장은 감당할 수 없으니 발을 빼련다. 싱겁게 변죽만 울리는 소리가 되더라도 말이다. 그만큼 김광석의 노래는 보편적이다. 그의 노래는 어떤 세대가 전유한 노래, 어떤 기억이나 입장에 결착된 노래가 아니다. 그렇다고 복고 트렌드의 한 현상으로 중년 세대의 과거에 대한 향수를 자극하는 유행으로 치부하기에는 그 노래의 의미가 가볍지 않다.

“또 하루 멀어져간다/ 내뿜은 담배 연기처럼/ 작기만 한 내 기억 속에/ 무얼 채워 살고 있는지/ 점점 더 멀어져간다/ 머물러 있는 청춘인 줄 알았는데/ 비어가는 내 가슴속엔/ 더 아무것도 찾을 수 없네.” 요즘 특히 많이 들리는 <서른 즈음에>의 가사다. 1인당 국내총생산(GDP) 2만5천달러, 세계 26위 대한민국은 아마 나라의 나이로 치면 서른 즈음이 되지 않았을까. 서른을 넘기며 삶의 의미를 되새기듯이, 지금 우리는 무언가를 이루려고 일과 직업에만 몰두하던 지나간 시간을 되새기며 지친 마음에 스스로 가여워하고 있는지 모른다. <응답하라 1994>의 그 시간으로부터 20년이 지났지만, 우리는 이 작은 기억 속에 대체 무얼 채우며 살아왔는지, 생각할수록 허무하고 공허한 우리 가슴속에선 더 아무것도 찾을 수 없다. 의미를 잃고 껍데기만으로 살아가는 이 시절, 그의 노래들은 다른 어떤 이야기보다 설득력 있다.

가수는 삶을 노래한다. 노래가 위안이 되는 건, 뒤돌아보게 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다시 살아갈 힘을 보태주기 때문이다. 모든 노래가 심각하거나 진지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무겁고 진지한 노래가 없는 세상은 진정 노래가 제구실을 다한다고 말할 수 없는 세상이다. 그런 세상에서 김광석은 우리의 삶을 노래했다. 그것으로 위안받고 힘을 얻는 사람들은 앞으로도 계속 있을 테고, 그런 한에서 그의 노래는 늘 노래되고 연주될 것이다.

글 박근서 대구가톨릭대 언론광고학부 교수. 나름 학생들의 좋은 친구가 되려 애쓰고 있다. ‘텔레비전 코미디’로 학위를 받았고, 요즘 주된 관심사는 비디오게임이다. 닌텐도에 우리를 구원할 영성이 있을지 정말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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