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4.01.05 18:43 수정 : 2014.02.04 10:51

32억원 규모의 리베이트가 적발됐을 때, 궁금증을 참지 못한 마태우스는 광덕산으로 올라가 리베선사(가명)를 만났다. 리베선사는 국내 굴지의 제약회사에서 리베이트를 담당하다 회의를 느껴 회의 도중 회사를 때려치웠다. 그 뒤 행적은 훨씬 더 괴이하다. 광덕산의 한 바위에 앉아 3년째 가부좌를 틀고 있으니까. 처음에는 그러려니 하던 사람들도 해가 거듭될수록 그에게 감동한 나머지 먹을 것을 바위에 놔두곤 했다. 감자, 옥수수, 호떡, 치킨, 그리고….

“선사님, 저 왔습니다.”

마태우스의 목소리에 리베선사는 가부좌를 풀고 몸을 일으켰다.

“그래, 오늘은 또 어떤 얘기를 듣고 싶은가?”

마태우스는 말했다. 제약회사에서 리베이트로 그렇게 많은 돈을 써도 남긴 남는 거냐고. 리베선사는 턱수염을 손으로 훑었다.

리베- 2001년 보고서에 따르면 가장 큰 회사들의 경우 매출의 35%를 마케팅 및 관리 비용으로 지출하지. 관리비용이라는 게 뭐겠는가? 의사한테 가는 리베이트지.

마태- 그렇게나 많이요? 그게 다 약값에 포함되는 거겠군요. 근데 요즘은 리베이트가 많이 없어지지 않았나요? 돈 주고 그러다 걸리기라도 하면….

리베- 하하, 요즘은 그런 식으로 봉투를 주지 않아요. 의사들이 모이는 학회에 찬조를 하거나, 해외연수 갈 때 비용을 다 내주지. 모 제약회사가 적발된 것도 동영상 강의를 부탁하고 1천만원 가까운 돈을 강의료로 준 게 문제가 됐지. 심지어 강의를 안 하고도 강의료를 받은 의사까지 있었거든.

마태- 저도 뉴스에서 봤어요. 그런데 의사들이 돈을 받는다고 해서 그 약을 써준다는 보장은 없잖아요?

리베- 그런 보장은 없지. 하지만 제약회사는 바보가 아닐세. 리베이트 효과가 없다면, 다시 말해 리베이트를 준다고 해서 의사들이 자기네 회사 약을 써주지 않는다면 왜 지금까지 리베이트가 근절되지 않는 걸까? 내가 해봐서 아는데, 리베이트는 가장 싼 마케팅 수단이야.

말을 마친 리베선사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 숙소로 가지. 자네에게 줄 게 있네. 으, 다리 저려! 잠깐만 좀 기다려봐.”

마태우스는 리베선사를 업고 숙소에 갔고, 그에게서 책 한 권을 받아왔다. <제약회사들은 어떻게 우리 주머니를 털었나>였다.

책을 읽어보니 놀라운 사실이 한둘이 아니었다. 예를 들어 제약회사의 연구·개발(R&D) 비용이 마케팅비보다 훨씬 적다는 것. 그렇게 연구·개발비를 조금 쓰고도 신약을 만드는 게 가능할까? 물론 아니다.

“1998년부터 2002년까지 5년간 415종의 약이 FDA(미국 식약청) 승인을 받았는데, 이 중 14%만이 혁신적인 약이었다. (…) 77%는 놀랍게도 같은 병을 치료하는 데 있어 기존의 약보다 나을 게 없다고 분류된, 소위 ‘나두요’ 약들이었다.”(99쪽)

그런데도 어떻게 신약이라는 간판을 달고 세상에 나올 수 있을까? 효과가 비슷하거나 못하다면 굳이 신약으로 출시할 필요가 없는데 말이다. 그 비결은 다음과 같다. 원래 약이 세상에 나오려면 환자를 대상으로 임상시험을 해야 한다. 임상시험이 제대로 되려면 기존 약을 쓰는 환자들과 신약을 쓴 환자들을 비교해서 그 효과를 판정해야 하는데, FDA 승인 기준의 허점을 이용해 대부분의 제약회사들이 약을 안 쓰는 환자와 신약을 쓴 환자를 비교한단다. 아무 약도 안 쓴 환자보다 나으면 된다니, 너무 쉽지 않은가? 이렇기 때문에 리베이트가 필요해진다. 다음 구절을 읽어보자. “정말 좋은 약은 판촉이 필요 없다. (백혈병에 쓰이는) 글리벡 같은 약은 가만있어도 팔리게 되어 있다. 반면에 그렇지 못한 약은 의사와 환자들을 설득하기 위한 끊임없는 노력을 필요로 한다.”(158쪽)

‘14%에 불과하긴 해도 신약을 만들기는 하잖아? 거기에는 천문학적인 돈이 들었을 테니, 나두요 약을 좀 만든다고 해서 뭐 그리 흉이 되겠어’라는 반문이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그럴까봐 저자는 여기에 대해서도 명쾌하게 반박을 한다. 신약의 핵심이 되는 약들은 국가연구비로 수행된 의사 혹은 생명공학자들의 연구를 통해 발견된 게 대부분이고, 제약회사는 그들로부터 특허를 사들인 것에 불과하다고. “택솔(항암제)은 세금으로 지원된 연구 결과 이뤄낸 의학적·상업적 가치를 지닌 약이 거의 공짜 선물처럼 거대 제약사에 넘어가 판매되고, 상업적인 가치가 확대된 전형적인 예다.”(83쪽) 저자는 택솔 말고도 유명한 약들이 다 이런 식으로 개발됐다고 하는데, 이 대목을 읽고 나니 연구·개발비가 왜 마케팅비보다 적을 수밖에 없는지 이해가 된다.

탐욕스런 제약회사를 바꾸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저자는 환자들에게 다음과 같은 요구를 한다. 의사가 신약을 처방할 때 “이 약이 다른 약보다 낫다는 증거는 무엇인가요? 그 증거는 전문적인 학술지에 실린 것인가요? 아니면 제약회사 담당자들로부터 입수한 정보인가요?” 심지어 이런 질문도 하란다. “선생님은 이 약의 제조사와 금전적 연관이 있으신지요?” 정곡을 찌르는 질문이긴 하지만, 정작 이 말을 실천할 환자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 질문을 하는 환자가 많아진다면 리베이트가 없어지고 약값이 좀더 내려갈 수 있지 않을까? 모든 진보는 개인의 실천에서 시작하니 말이다.

글 서민 수줍음이 너무 많아, 같은 사람을 다시 볼 때도 매번 처음 보듯 쭈뼛거린다. 하지만 1시간 이상 대화하다보면 10년지기처럼 군다. 기생충학을 전공했고, 현재 단국대 의과대학에 재직하고 있다. 저서로 <기생충의 변명> <헬리코박터를 위한 변명> <대통령과 기생충> 등이 있다.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