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4.01.05 16:02 수정 : 2014.01.06 16:11

직장인들의 소망은 한 번쯤 ‘임원’이 되는 것이지만, 실상은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격’이다. 대졸 신입사원이 임원으로 승진하는 비율은 0.8%에 불과했다. 고 정주영 명예회장 7주기를 맞아 현대그룹의 각 계열사 사장단과 임직원들이 경기도 하남시 창우리 선영을 참배하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뉴시스
“임원은 한번 달아보고 그만둬야지.”

직장인들이 늘 입에 달고 사는 말 중의 하나다. 임원(任員). 간단한 이 두 글자는 우리나라 1450만 노동자(2012년 연말정산 근로자 1554만 명에서 공무원 100만 명을 제외한 수), 말하자면 모든 월급쟁이를 웃고 울리는 마법의 단어다. 특히 대기업의 승진인사가 잇따라 발표되는 12월에는 더욱 그렇다. 어딜 가도 누가 되고 누가 떨어져나가느냐에 대한 소문으로 술렁인다. 올해도 누구는 기쁨의 축하주를 마셨을 것이고, 누구는 낙담한 채 쓸쓸히 쓴 소주잔을 털어넣었을 것이다.

임원을 말 그대로 풀면 ‘일을 맡아 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무슨 일에 책임이 있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영어로는 ‘executive’라고 부른다. 요즘에는 잘 쓰지 않지만 ‘중역’이라고도 불렸다. 기업에서는 보통 간부 이상의 고위 직원을 뜻한다. 직위 이름은 회사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부장에서 한 단계 더 승진한 직위라는 점은 동일하다. 삼성·LG·SK그룹의 경우 상무부터 임원이고, 현대자동차는 이사대우부터 임원이다. 상무 위에는 전무, 전무 위에는 부사장, 부사장 위에는 사장, 사장 위에는 부회장이 있다. 회장 자리는? 우리나라에서는 오너가 아닌데 회장이 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대기업 중에는 포스코나 KT 정도에서 선출직이 회장을 맡는다. 그나마 KT는 이석채씨가 회장 자리를 만들고 본인이 올랐다. 이사대우부터 시작하는 경우는 이사를 거쳐 상무대우, 상무로 올라간다.

보통 사장은 한 회사에 한 명만 있을 것 같지만 큰 회사들은 그렇지 않다. 예를 들어 삼성전자에는 부회장이 2명, 사장이 13명이나 된다. 권오현 부회장과 이건희 회장의 아들인 이재용 부회장은 각각 반도체와 최고운영책임자(COO)를 맡고 있다. 스마트폰을 만드는 무선사업부만 해도 신종균 사장(IM부문장 겸 무선사업부장)과 이돈주 사장(전략마케팅실장), 김종호 사장(글로벌 기술센터장), 김재권 사장(글로벌 운영), 이철화 사장(개발실장) 등 5명이나 된다. 각 영역마다 덩치가 크고 처리해야 하는 업무가 많아 책임경영을 하는 사람이 필요한 탓에 사장은 계속 늘어나는 추세다. LG전자도 사장이 조성진 사장(가전사업본부장), 박종석 사장(MC사업본부장·스마트폰), 정도현 사장(최고재무책임자·CFO), 하현회 사장(HE사업본부장·TV) 등 4명이다.

달기만 하면 부와 명예가 한 몸에

당연한 말이지만, 임원은 아무나 되는 게 아니다. 삼성을 예로 들면 사원 4년, 대리 4년, 과장 5년, 차장 5년, 부장 4년이 지나야 임원이 될 수 있는 자격을 얻게 된다. 그것도 승진 연한이 됐을 때 바로바로 승진한 경우에만 그렇다. 가끔 ‘발탁인사’라는 이름으로 1~2년을 먼저 승진하기도 하지만 그건 그야말로 하늘의 별 따기에 가깝다. 승진에서 시쳇말로 한두 번 ‘물먹게’ 되면 임원 승진할 자격을 얻는 데 더 오랜 시간이 걸린다. 물론 승진에서 누락된 적이 있는 사람은 임원을 달 가능성이 그만큼 낮아진다. 2011년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가 전국 254개 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를 보면, 대졸 신입사원이 임원이 되기까지는 평균 21.2년이 걸린다.

대리, 과장까지는 승진하는 게 그다지 어렵지 않다. 삼성은 고과점수·어학점수·자격증 등으로 산정되는 포인트만 채우면 자동적으로 승진한다. 현대자동차의 경우 승진시험이 따로 있는데, 시험을 앞둔 직원들은 따로 공부할 수 있게 시간을 빼주는 경우가 많아 탈락하는 비율은 그렇게 높지 않다. 문제는 차장, 부장 등 흔히 고급간부 승진이다. 이때부터는 승진에 심사가 들어가기 때문에 좋은 업무 실적 외에도 인맥과 운 등 다양한 변수가 필요하다. 그렇게 부장까지 승진한 사람들 중에서도 고르고 골라서 되는 게 임원이다. 같은 경총 조사에서 대졸 신입사원이 임원으로 승진하는 비율은 0.8%에 불과했다. 2005년 1.2%에 비해 0.4%포인트 줄어들었다. 특히 대기업의 임원 승진 비율은 0.6%에 그쳤다. ‘바늘구멍 통과하기’라는 말이 딱 들어맞는다.

임원이 되지 못한 사람들은 어떻게 될까? 보통 몇 년 더 ‘만년 부장’ 꼬리표를 달고 있다가 밑에서 치고 올라오는 후배들에게 치여서 회사를 그만두기 마련이다. 후배가 상사로 오는 경우에는 상당수가 그만둔다. 그만두지 않고 버티는 사람들에게는? 대기업이 가장 잘 쓰는 방법이 지방 전근이나 대기발령이다. 책상 하나만 덜렁 주고 일도 주지 않으면 그나마 버티던 몇 명도 그만둔다. ‘사오정’(45살 정년)의 슬픈 전설은 이렇게 탄생한다.

필요 없어지는 3가지 외투, 가방, 우산

뭐하러 이렇게 힘들게 임원이 되려 하느냐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그에 따르는 반대급부를 보면 십중팔구 생각이 달라진다. 임원이 되면 말 그대로 ‘부귀영화’가 따라온다. 우선 독립된 사무실이 생긴다. 삼성의 경우 임원이 워낙 많기 때문에 다 독립된 방을 줄 수 없어 칸막이가 쳐진 독립된 사무공간만 제공하지만, 나머지 기업들은 대부분 따로 사무실을 내준다. 비서도 생긴다. 전화를 대신 받아주고 스케줄을 관리해주는 비서들은 대부분 계약직으로 뽑힌 20대 여성이다. 자리가 높아질수록 사무실은 넓어지고 책상도 커진다.

차량도 지급된다. 상무급에는 대부분 그랜저급, 흔히 말하는 준대형 자동차가 지급된다. 2013년 LG그룹의 상무 승진자들은 현대차 그랜저 하이브리드와 K7 하이브리드 중에 하나를 골라 지급받았다. 전무에게는 기사가 딸린 제네시스급 자동차가 나온다. 부사장 이상에게는 에쿠스급 차량이 나오는데, 삼성의 경우 본인이 원하면 추가 비용을 자신이 대는 조건으로 수입차를 탈 수도 있다. 흔히 임원이 되면 세 가지가 필요 없어진다고 한다. 외투·가방·우산인데, 집 문 앞에 차량이 대기하고 회사 문 앞까지 데려다주기 때문에 실외에 나가는 상황이 거의 없어진다는 뜻이다. 임원이 되고 나서는 걸을 일이 거의 없어 건강이 나빠진다는 말을 하는 사람도 제법 있다.

해외 출장을 갈 때의 처지도 달라진다. 임원이 되면 비즈니스석을 타게 되고, 잠도 특급호텔에서 잔다. 사장 이상은 일등석이다. 보통 임원이 되면 따로 특별히 부부 동반 만찬에 초대되고 ‘회장님’이 주시는 선물도 받는다. 삼성은 보통 고급 남녀 시계 세트와 의류상품권 등이 지급된다.

가장 크게 달라지는 것은 급여다. 보통 임원이 되면 부장 시절보다 연봉이 2배가 뛴다는 것이 정설이다. 이런 법칙은 직급이 올라가면서 계속 적용된다. 삼성전자의 경우 초임 상무의 연봉은 2억~3억원이다. 능력별로 개별 연봉 협상이 이뤄지기 때문에 임원끼리도 서로의 연봉은 비밀로 하는 경우가 많다. 의외로 임원이 되고 나면 해가 가면서 연봉은 그리 크게 오르지 않는다. 삼성전자의 한 상무는 “승진할 때 그전 고과를 기준으로 연봉을 정하기 때문에 갈수록 연봉이 조금씩 떨어지는 경우도 많다”고 털어놓았다. 다만 전무로 승진하면 또 연봉이 2배 가까이 오른다. 이렇게 차근차근 올라가서 사장이 될 경우 연봉은 엄청나다. 국정감사 때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김현숙 의원(새누리당)이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제출받은 자료를 분석한 결과를 보면, 삼성전자의 신종균 사장은 2013년 5월 14억3100만원의 월급(세전)을 받아갔다. 여기에는 보너스와 성과급이 포함돼 있지 않기 때문에 연봉이 얼마인지는 계산하기가 힘들지만 대충 계산해도 200억원을 훌쩍 넘을 것으로 보인다.

12월 인사철 부쩍 느는 도보 여행자

직원과 임원 간의 연봉 격차는 갈수록 벌어지는 추세다. <한겨레>가 2013년 8월, 1998년부터 2012년까지 한국거래소 유가증권시장에 계속 상장된 기업 457곳의 사업보고서에 기재된 직원 및 임원 보수 지급액을 분석했더니, 직원과 임원의 연간 보수 격차가 평균 3배에서 3.9배로 커진 것으로 나타났다. 이 기간에 연간 직원의 임금은 1인당 평균 2386만원에서 6360만원으로 늘어난 데 비해, 임원 보수는 1인당 평균 7203만원에서 2억4496만원으로 증가했다. 직원 임금이 166% 증가하는 동안 임원 보수는 240% 늘어난 것이다. 사내 등기이사의 보수만 보면 그 격차는 더 벌어지는데, 유가증권시장 상장사 가운데 투자사업체 등을 제외한 710개사 사내 등기이사의 연봉은 평균 4억9177만원으로 이들 상장사의 직원 연봉(6115만원)보다 6.9배 높은 것으로 분석됐다. 사내 등기이사는 3~4명의 사장급 이상 핵심 경영진이기 때문에 이를 전체 임원의 평균연봉이라고는 볼 수 없지만, 임원이 직원보다 훨씬 많은 돈을 받는 추세만은 명확하다. 결국 임원에 대한 높은 보수는 그 아래 직급의 직원들 전체에게 동기부여를 하는 장치가 된다. 모두가 임원이 되려고 기를 쓸 수밖에 없는 구조를 회사가 만들고 있는 셈이다.

이렇게 많은 혜택과 돈을 주는 것은 결국 그만큼 회사가 더 부려먹겠다는 뜻이다. 임원이 되면 당장 출근 시간부터 빨라진다. 올해 상무가 된 한 삼성그룹의 신임 임원은 “출근을 아침 6시30분 정도까지는 해야 한다. 누가 찾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밑의 직원들은 보통 7시30분~8시에 나오는데 그때까지 혼자 일할 때가 많다”고 말했다. 회의도 부쩍 늘어나고 혼자 결정해야 할 일도 많아진다. 책임과 권한이 그만큼 커지는 것이다. 보통 임원은 하나의 독립된 부서를 이끄는데, 결국 그 부서의 공과는 자신의 책임이다.

임원은 사실 간부들보다 더 심한 ‘파리 목숨’이다. 임원으로 선임되면 우선 다니던 회사에서 퇴직한다. 퇴직금도 다 받는다. 그리고 다시 근로계약을 하게 되는데, 임기는 기본적으로 1년이다. 잘하지 못하면 1년 만에 바로 잘릴 수 있는 ‘계약직 신분’이 임원이다. 그래서 일부 기업들은 만년 부장을 자르는 방법으로 임원 승진을 사용하기도 한다. 1년간 임원 대우를 해주고 계약 갱신을 하지 않으면 곧바로 짐을 싸서 집으로 가야 하기 때문이다. 임원이 ‘임시직원’의 준말이라는 자조적인 말도 나온다. 간부들보다 더 열심히 하지 않으면 내년 계약을 기약할 수 없다. 월급은 두 배 늘지만 집에서 자는 시간은 절반으로 준다는 말도 있다.

컨설팅업체 ‘아인스파트너’가 2010년 조사한 ‘국내 100대 기업 퇴직임원 현황분석’을 보면 임원 승진 1년 만에 17.35%가 퇴직하고, 15.48%는 2년 만에 퇴직한다. 전체 임원의 30% 이상이 승진 뒤 3년을 못 버티는 것이다. 회사 상황이 안 좋아 구조조정이 이뤄질 때도 임원은 1순위다. 승진 또는 재계약을 하지 못하고 퇴직한 임원들은 가슴 가득 울분을 품게 되는 것이 예사다. 임원 승진철, 다시 말하면 재계약 탈락자가 속출하는 12월이면 심화를 달래기 위해 도보로 전국일주를 떠나는 사람이 늘어난다는 것도 우스갯소리만은 아니다. 부사장 이상까지 간 사람은 보통 ‘고문’이라는 이름을 달고 1~2년 연봉을 더 받는 경우도 있지만, 그 전에 퇴직하는 사람은 그런 혜택에서도 소외된다.

계속 승승장구해 ‘별 중의 별’이라는 최고경영자(CEO) 자리를 차지하더라도 파리 목숨이긴 마찬가지다. 지난해 경영성과 평가 사이트인 ‘CEO스코어’가 조사한 것을 보면, 1999년부터 2012년 6월 말까지 국내 10대 그룹 94개 상장사 대표 310명의 재임기간은 평균 2.97년에 불과했다. 상법상 임원 임기인 3년을 못 채운 기업이 대부분이었다. 평균 임기가 가장 긴 곳은 LG그룹으로 4.3년이었고, SK그룹이 2.4년으로 가장 짧았다. 삼성(3.7년)·현대중공업(3.1년)·한화(3.1년)가 비교적 길었고, 현대차(2.5년)·GS(2.7년)는 짧았다.

오너 자식에겐 해당 사항 없음

올해 대기업 인사에서 가장 많이 나온 설명은 ‘실적주의’다. ‘성과 있는 곳에 보상 있다’는 원칙 말이다. 빨리 실적을 내놓지 않으면 임원 자리는 그대로 날아간다. 대기업 임원들은 ‘월화수목금금금’ 생활을 하면서도 한시도 마음을 놓을 수 없다. 간부 때는 임원이 되기 위해서, 임원이 되면 그 자리를 지키기 위해서 회사에 충성하고 열심히 일하는 수밖에 없다.

이런저런 설명에도 불구하고 대기업의 임원에 대한 가장 핵심적인, ‘불편한 진실’은 모두가 다 ‘오너 맘대로’라는 것이다. 임원 인사는 ‘회장님’의 결재를 받게 되는데, 여기에서 갑자기 결과가 뒤바뀌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나마 상무급의 하위 임원은 인사팀이 올린 안이 그대로 통과되는 경우가 많지만 고위급 임원은 말 그대로 ‘회장님 맘대로’ 이뤄진다. 대기업 임원이 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역시 오너의 자식으로 태어나는 것이다. 오너 일가는 승진 연한도, 실적주의도 필요 없다. 대표적으로 이재용 부회장은 1991년 삼성전자 부장으로 입사해 9년 만인 2001년 상무보를 달면서 임원이 됐고, 지난해 입사 21년 만에 부회장에 선임됐다. 이건희 회장의 둘째딸 이서현 사장은 2002년 제일모직 패션연구소 부장으로 입사해 올해 입사 11년 만에 사장 자리에 올랐다. 제일모직 패션사업은 그다지 큰 성과를 내지 못했지만 ‘실적주의’는 여기에 적용되지 않았다.

글 이형섭 <한겨레> 경제부 기자 sub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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